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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을 아는 것이 영생이다 (요 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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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조향록 목사

  소크라테스가 “사람아 너 자신을 알라”라고 했는데, 그 말은 너는 언제라도 죽는다는 것을 알라라는 말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사람이 사는 동안만 그에게 그의 인생이 있고 그의 세계가 있습니다. 죽음으로 그의 인생 ,세계는 종말을 고합니다.

1. 사람은 왜 살아야 하는가?

  이 물음에 예수님께서 대답하시길 “참 하나님과 그가 세상에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영생”이라 말씀하십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하나님은 산 자의 하나님이요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사람은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을 바로 알면 영생합니다.  사람이 사람 만을 알면 사람은 죽는다는 것을 알게 되고 사람이 하나님을 알게 되면 사람은 영원히 산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왜냐 하면 사람은 근원적으로 하나님과 연관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사람만을 알면 죽음이지만 사람이 하나님과 관련되어 있음을 바로 알면 사람은 영생하는 존재임을 알게 됩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하나님을 알아야 자기를 바로 알고 하나님과 더불어 영생합니다.

2. 사람은 하나님을 어떻게 알 수 있을 까?

  모든 사람은 일반적으로 누구의 소개를 받지 않고서도 자기 아버지 ,어머니를 아는 것 처럼 그렇게 하나님을 알고 있습니다.  세상 모든 종교들도 하나님을 초월자 ,창조자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들어서 아는 것은 마치 누구에게 명함을 한 장 받아 들고 아는 것과 비슷합니다.  기독교는 사람이 하나님을 아는데 있어서 제일 정확한 교과서 입니다.  하나님이 세상 만물을 창조하시고 인간을 흙으로 지어 그 속에 자기의 생기를 불어 넣어 생령이 되게 하셨다고 말씀 하실 뿐 아니라 성서와 그의 지음을 받은 그의 인간, 그의 세상 간에 개인적 집단적 그리고 역사의 과정 마디 마디에서 관련되었던 사건 사실 등을 여러 가지 형태로 설명하여 주십니다. 기독교 성서 만큼 인간이 하나님을 아는데 있어서 풍부하고 완벽한 교본은 없습니다.

3. 기독교 성서를 잘 배우고 통달하면 하나님을 잘 안다고 말 할 수 있을 까?

  일단 그렇다고 말 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과연 그렇다고 장담할 수는 없습니다.  어떤 저자가 누구의 전기를 완벽하게 잘 썻다고 합시다 어떤 화가가 자기 어머니의 초상화를 아주 잘 그렸다고 합시다. 그 저자나 화가 가 그린 그림이나 책을 보고 그것으로 그 분을 잘 안다고 말 할 수 있겠습니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더구나 하나님에 관하여는 더더욱 그렇지 않습니다.  그 분은 영원히 살아계시며 자존,자주,자율하시는 분이십니다.  한정된 시간, 공간 안에서 하나님과 사람과 세상과의 관계를 실제 그대로 조명한 기록 사진첩을 만일 성서라 해도 그분을 아는데 요긴한 참고는 되겠지만 그 사진첩 자체가 하나님은 아니기 때문에 내가 성서를 통달했다고 해서 그분을 잘 안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인격과 또 다른 인격의 만남은 쌍방이 서로 알아 상호고백적인 형식으로 앎을 확인 할 수 있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알 뿐 아니라 하나님도 나를 잘 알아주는 상호 관계의 맺음으로 서만 우리가 서로 아는 사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 에서 안다는 헬라 말은 알아간다는 동사형으로도 쓰입니다.  즉 하나님을 알아간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피차  잘 알아가는 관계에 이르기 까지는 많은 시간 많은 관계가 필요합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아는 일 알아 가는 일 그리고 체험할 수 있는 일 은 꼭 한 길이 있습니다. 우리가 늘 외우는 주기도문 첫 마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에 주목하십시요. 예수님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첫마디이고 예수님도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 첫마디가 “아버지여”입니다. 하나님은 한 분이신데 그는 인격주체로서 한 분이지만 아버지 어머니를 다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아버지 어머니 하는 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아는데 있어서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딸  그분은 내 아버지 어머니이십니다. 이렇게 말로는 표현을 하지만 부모지식간의 관계를 아는가 모르는가 , 또 알면 얼마나 알고 , 모르면 얼마나 모르는가 이렇게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 하나님을 아는 길이, 그것도 정말 내 하나님을 가슴으로 아는 길은 내가 그분을 아버지요 어머니로 부를 수 있게 되는 그 순간부터 하나님을 안다는 말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을 때 그 앎의 절정을 이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성서에서 가끔 “말 할 수 없는 사랑 그 어떤 사랑으로….”이사야서 51장 “어찌 여인이 그 젖 먹는 아기를 잊겠으며…그들은 혹시 잊을 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하리라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사 50:15-16)이 말씀에 표현하고 있는 정감은 인간으로서 부모자식간에 느껴지는 쌍방정감의 절정을 체험으로 하는 경우에만 실감할 수 있는 그런 표현입니다.

4. 사람이 하나님을 내 아버지요 어머니로 깨달아지는 그때는 언제쯤인가?

  저는 세살적부터 하나님을 믿었으니 그때부터 하나님을 안다 할 수 있을 까요 또 신학교육을 받고 목사가 되어 하나님, 예수님을 평생가르치고 살아왔으니 하나님을 아는데는 전문가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쉽게 대답할 수 가 없습니다. 어린이들이 유치원에서 어버이 은혜는 태산과 같다고 노래하지만 그들이 모두 커서 효자효녀가 되었을 까요. 자식이 부모를 안다는 것 자체가 언제나 불완전합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도 그와 꼭 같습니다.  북에서 보내온 내 어머니의 사진을 아이들에게 설명할 때 난 내 마음 속에 새겨진 모습으로 설명합니다. 저는 감각이 약간 둔한 사람이라 내부모의 지극한 사랑을 이제 팔십이 너머서 더더욱 가슴이 저리게 그리워집니다.

  그와 꼭 같이 내가 애기때부터 예수를 믿고 목사가 되어 예수님 하나님을 일생동안 가르쳐 왔는데 이제 팔십을 넘기고 인생의 뒷길을 회고해보니 이제 더더욱 한 걸음 마다 하나님이 내 곁에서 이끄시고 안으시고 지켜주신 것을 이렇게 실감나게 깨닫게 되어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감격을 느낍니다.“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이 말씀에 감격하지 못한다면 하나님을 안다는 말을 쉽게 할 수가 없습니다. 이게 무슨 말인가 하고 묵상해 보았습니다. 내 이름을 새겼다는 말인가? 그 말이 아니고 너를 새겼다는 말씀입니다.  손바닥에 가만이 나를 놓고 지켜보는 겁니다. 네 마음대로 살아봐라 하시며. 왜 손 바닥에서 놓치 않으시는 걸까? 혹시나 잘못되면 큰일이나는 겁니다. 여러분 살아오신 과거를 회고해 보십시요. 그 당시에는 다 내가 한 일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하나님은 위급할때는 손안에 쥐어 주시고 평안 할 때는 네 마음대로 하라고 하셨습니다.

5. 하나님 안에 있으면 그것이 바로 영생입니다.

  하나님의 생명씨앗을 마음 속에 담고 있는 사람은 변화만 있을 뿐 죽음이 없습니다.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할 것으로 몸을 바꾸어 입습니다.  하나님 없이 산 사람은 그대로 죽어서 육신의 죽음이 인생의 종말입니다.  하나님의 생명씨앗을 담고 사는 사람은 마치 굼벵이가 호랑나비로 변화하듯이 그렇게 찬란하게 영생하는 것입니다. 우리 온 성도들이 이 신앙만 가슴에 부글 부글 끓게 하시고 ,깨닫고 , 말로 설명을 못해도 가슴이 저리게 알면 이미 영생의 축복을 받고 천국 문의 열쇠를 받은 것과 같습니다. 나 같이 둔한 사람은 좀 늦게 진리를 깨닫고, 부모 자식이 만나는데 어색하게 만나서 되겠는가 하는 심정을 가지고 스스로 감사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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