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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희망과 기다림 (막 4:2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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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김흥규 목사

      <대강절에 생각해 보는 예수님의 비유>

      오늘은 대강절이 시작되는 주일입니다. 강림절이라고도 말하는데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고대하는 바 성탄절 전의 4주간을 말합니다. 대강절을 흔히 장식절이라고 말하는데 상가나 거리마다 크리스마스 추리를 만들고 해서 소비 심리를 크게 부추기는 그런 절기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경건하고 차분한 마음으로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기다려야 할 것입니다.

      사실 예수님께서 부활 승천하신 다음부터 대강절은 초림주(初臨主) 예수님을 기다린다기보다는 재림주(再臨主) 예수님을 기다리는 절기라고 해야 더 정확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처음 이 땅에 오신 사건은 온 인류에게 엄청난 소망이 되었습니다. 죄와 죽음 속에 갇혀 신음하던 인류가 살 길이 활짝 열린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다시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초림하셨을 때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마음속에 큰 소망을 품고 주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려야 할 것입니다.

      대강절 첫 번째 주일에 저는 예수님의 비유 하나를 여러분에게 소개하려고 합니다. 예수님은 천국을 설명하실 때 주로 비유를 통하여 말씀하셨습니다. 비유란 생활 속에 일어나는 여러 가지 이야기를 통하여 진리를 쉽게 전달하는 방편으로 흔히 쓰입니다. 예수님은 가지가지 비유를 통하여 추상적이고, 이해하기 어렵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 나라를 아주 쉽게 가르치시려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막 4: 34에 보면 비유가 아니면 가르치지 않으셨다고 할 정도로 예수님은 비유를 자주 사용하셨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 가운데 비유가 1/3 정도나 된다는 사실은 그러므로 우연이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의 비밀’과 ‘스스로 자라나는 씨’>

      오늘 본문 말씀은 흔히 ‘스스로 자라나는 씨의 비유’로 알려져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 당시 유대인들의 농사짓는 모습을 꼼꼼히 챙겨 보셨으며 농부들이 씨를 뿌리고 열매를 거두는 모습에서 하나님 나라의 진리를 보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와 같이 농부들의 파종과 수확 행위를 비유로 말씀하셨지만 이 비유를 하나님의 나라와 연결시켜 이해하는 것은 그리 간단하지 않습니다. 영적인 눈이 열려야 할 뿐 아니라 깊은 사색이 필요합니다.

      여러분, 본문 26절 말씀을 보세요. “또 가라사대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이 씨를 땅에 뿌림과 같으니.” 여기서 중요한 표현이 ‘같으니’(LIKE)라는 말입니다. 우리는 분명한 확신이 서지 않을 때 “~~같아요”라는 말을 흔히 사용합니다. 심리학자들에 따르면 특히 십대 소녀들이 “~~ 같아요”라는 말을 자주 쓴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이다”라는 직설적인 화법을 쓸 경우 너무 자기주장이 강한 것처럼 보여서 친구들로부터 왕따를 당할 수 있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입니다. 말을 좀 더 부드럽게 하기 위하여 “~~같다”라는 말을 쓴다는 것이지요.

      이런 맥락에서 본다면 예수님께서도 “하나님 나라는 이것이다”라고 직설적으로 말씀하시지 않으시고 “~~한 것과 같다”라고 은유적으로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그 엄청난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진리를 좀 더 부드럽고 유연하게, 그리고 보통 사람들이 알아듣기 쉽게 설명하려는 의도에서 이런 표현을 쓰셨던 것이지요.

      자, 그렇다면 본문으로 다시 돌아갑니다. 오늘 이 비유에서 하나님의 나라는 무엇과 같다고 했습니까? 어떤 사람이 씨를 땅에 뿌림과 같다고 했습니다. 저는 이 말씀을 오랫동안 묵상하다가 처음에는 알레고리칼하게, 즉 풍유적(諷諭的)으로 해석을 해보려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씨앗’은 ‘하나님의 말씀’을 의미하고, ‘땅’은 ‘우리의 마음밭’을, ‘농부’는 ‘예수님의 제자된 우리 자신’을 가리킨다는 식으로 해석을 시도해 본 것이지요. 그러나 이 짧은 비유 말씀을 깊이 묵상하면 묵상할수록 이렇게 개별적인 단어에 집착해서 단편적으로 해석할 것이 아니라 이 말씀 전체를 놓고 통전적으로 해석하는 것이 옳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이 비유가 말하려는 대지(大旨), 즉 전체의 주제는 무엇입니까? 작은 씨앗이 점점 자라나 농부가 다 일일이 헤아리지도 못하는 가운데 추수하게 된다는 성장의 신비가 아니겠습니까? 그러므로 이 비유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려고 했던 요점은 26-29절 전체를 다 놓고 봐야지만 풀릴 수가 있습니다. 26절 한 구절만 보아서는 안 됩니다. 본문 전체를 놓고 볼 때, 그렇다면, 하나님의 나라는 어떤 것과 같습니까?

      표준 새번역 개정판은 이렇게 해석해놓았습니다. “어떤 사람이 땅에 씨를 뿌려 놓고, 밤낮 자고 일어나고 하는 시간 사이에 그 씨에서 싹이 나고 자라지만, 그 사람은 어떻게 그렇게 되는지를 알지 못한다. 땅이 저절로 열매를 맺게 하는데, 처음에는 싹을 내고, 그 다음에는 이삭을 내고, 또 그 다음에는 이삭에 알찬 낟알을 낸다. 열매가 익으면, 곧 낫을 댄다. 추수 때가 왔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이 비유 말씀을 통하여 지적하시고자 하는 요점은 파종에서부터 수확에 이르기까지의 신비한 성장 과정입니다. 그렇다면, 이것이 하나님 나라와 도대체 무슨 상관이 있을까요?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나라는 두 가지 역설적인 속성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지금 여기에 이미 시작된 내재적인 나라’인 동시에 ‘아직 이 땅 위에서 완전히 실현되지 않은 바 종말론적이며 초월적인 나라’입니다.

      눅 17: 20-21에 보면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질문을 하나 던졌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언제 오느냐 하는 질문이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의 질문에 대해서 예수님은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이게 무슨 말씀입니까?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님을 구주로 모시고 하나님의 뜻 안에 살려고 하는 사람들 속에 이미 시작되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가 죽어서 가게 될 천국도 되지만 예수님과 더불어 이미 시작된 현세적인 나라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져서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나라는 다 하나님의 나라가 될 수 있다는 것이지요!

      어쨌든지 간에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나라가 두 가지 역설적인 속성을 다 가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HAVE ALREADY,' 지금 여기에 이미 시작되었을 뿐 아니라, ‘NOT YET,'‘아직 완전히 실현되지 않은 종말론적인 실재’가 또한 하나님의 나라인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에 대한 이와 같은 두 가지 속성을 놓고 볼 때 예수님께서 본문의 비유에서 말씀하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님을 구주로 모시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자 하는 사람들 속에 지금 여기에서 이미 시작된 현세적인 하나님의 나라를 뜻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을 선포하시고 각색 병자들을 고쳐주실 때부터 하나님의 나라는 이미 그 사람들 속에 이루어졌습니다.

      따라서 본문의 비유는 이 하나님의 나라가 소리 없이 확산되는 모습이 마치 스스로 자라나는 씨앗과 같다는 진리를 가르쳐줍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비유에서 찾을 수 있는 하나님 나라의 비밀은 어떤 것입니까? 세 가지 속성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① 하나님의 나라는 생명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생명 운동입니다. 생명을 살리는 운동입니다. 본문 비유에 보면 어떤 농부 한 사람이 씨앗을 땅에 뿌렸습니다. 씨앗이 겉보기에는 살아 있을 것 같지 않은 하나의 작은 고체 덩어리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이 씨앗이 점점 자라나서 큰 열매를 맺습니다. 그 안에 생명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비유 말씀 속에 나오는 씨앗은 주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해석합니다. 땅은 우리의 ‘심령’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심령의 밭에 떨어져 심기어질 때 놀라운 열매를 맺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속에 생명력이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주만물을 말씀으로 창조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말씀으로 병자들을 고치셨고 죽은 자를 살리셨습니다. 히 4: 12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여기서 중요한 말이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서 운동력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옳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언제나 생명력이 있고 운동력이 있습니다. 그리하여 말씀이 심기어지는 땅마다 열매를 맺게 됩니다. 오늘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나라가 죽어서 가게 될 미래의 천국으로만 생각하지 마십시오. 오늘 여러분들이 주님의 말씀을 듣고 그 주님의 말씀이 여러분의 마음에 심기어지는 그 순간 이미 천국은 여러분 안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놀라운 생명력이 있어서 아주 작아 보이는 씨앗 같아도 그것이 큰 열매로 자라나게 된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② 하나님의 나라는 성장합니다.

      농부가 씨앗을 땅에 심었는데 이 씨앗이 자꾸만 자라납니다. 처음에는 싹이 나고 그 다음에는 이삭이 나오고 그 다음에는 이삭에 충실한 곡식으로 열매를 맺게 됩니다. 점진적으로 자나라고 퍼진다는 말씀입니다. 씨앗 속에는 생명이 있기 때문에 이와 같이 씨앗이 다른 생명 형태로 성장해나가고 확산되어 나가는 이치는 당연하다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에는 생명력이 있기 때문에 자꾸만 자라나고 퍼지게 되어 있습니다. 사도 행전을 보면 사도들이 복음을 전하지 못하도록 매질도 하고 감옥에 가두기도 하면서 온갖 협박을 다했지만 복음은 요원의 불길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사방팔방으로 퍼져 나갔습니다! 로마 제국의 철권통치 아래 초대 교인들은 이루 말할 수 없는 환란과 핍박을 당했지만 하나님 나라가 확산되어나가는 기세는 그 누구도 꺾을 수 없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특징은 반드시 성장하고 확산된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그 속에 무한한 생명력이 있기 때문에 국경을 모르고 사방으로 퍼져나갈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어떤 경우에는 성장이 더딘 것처럼 보일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는 생명력이 있기 때문에 조금 속도가 늦어지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반드시 자라나고 퍼져나갈 수밖에 없습니다.

      어떤 중국 대나무는 싹을 땅에 심으면 한 4-5년 동안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물을 주고, 거름을 주고, 아무리 노력을 다해서 가꾸어보아도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러다가 한 5년 정도 지나면 갑자기 극적인 변화가 일어나 불과 6주일 만에 약 27미터 정도의 크기로 훌쩍 자라난다고 합니다. 그 안에 성장 잠재력이 잠복해 있다가 충분한 시간이 흘러간 다음에 급성장을 하게 된다는 것이지요. 그런가 하면 또 어떤 대나무는 수 년 동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다가 불과 24시간, 즉 하루만에 90센티미터까지 급속하게 자라나는 대나무도 있다고 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이치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시간과 속도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마침내 자라나고 퍼져나갈 수밖에 없다는 성장의 불가피성이 중요합니다. 오늘 여러분의 마음밭에 새겨진 씨앗 하나님의 말씀은 여러분의 마음밭이 옥토(沃土)인 한 반드시 자라나고 퍼져나갈 수밖에 없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③ 하나님의 나라는 신비합니다.

      본문의 비유는 뿌려진 씨앗의 성장 과정에 그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씨앗이 곡식으로 자라나는 과정을 보면 아주 신기합니다. 씨앗을 뿌린 농부는 이 작은 씨앗이 자라나서 어떻게 열매가 되는지 그 과정을 전혀 알지 못합니다. 본문 27절 말씀을 보십시오. “저가 밤낮 자고 깨고 하는 중에 씨가 나서 자라되 그 어떻게 된 것을 알지 못하느니라.” 이게 무슨 말입니까? 농부가 일단 씨앗을 땅에다 뿌리지만 그 작은 씨앗이 어떤 모양으로 썩어지고 싹을 내고 이삭을 내고 마침내 곡식낟알로 무르 익게 되는지 그 과정을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부지불식중(不知不識中)에 씨앗은 자라나고 있다는 것이지요!

      사실 농부들이 하는 일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 가뭄이 찾아오면 물을 끌어다 주고 홍수 때에는 물고랑을 터주고 하는 일은 합니다. 그러나 농부는 파종에서 발아, 수확에 이르기까지 그 전과정을 소상히 알지 못하는 가운데 땅이 스스로 열매를 맺습니다! 한마디로 성장 과정은 신비의 베일 속에 쌓여 있다는 것이지요!

      그렇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성장과 확산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가운데,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천국은 조금 조금씩 자라나고 퍼져나갑니다! 오늘 이 세상에 비록 요란스럽지는 않더라도 여러분들이 말씀의 씨앗을 여러분 마음에 뿌리고 하나님 나라와 그 나라의 의를 구한다면 하나님의 나라는 반드시 신비한 방법으로 산지사방으로 퍼져나가게 될 것입니다! 

      <結語: 아기 예수의 강생을 희망 속에 기다리며>

      이제 결론을 맺어야 할 것 같습니다. 본문 비유는 희망과 기다림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농부가 씨앗을 땅에 뿌리고 묵묵히 기다립니다. 그런데 이 기다림은 항상 좋은 것에 대한 기대, 즉 추수할 곡식에 대한 벅찬 희망 때문에 기다리는 것입니다. 농부는 비록 씨앗이 곡식으로 자라나가는 신비의 과정을 다 알지는 못하지만 추수 때를 묵묵하게 견디고 기다립니다. 수확의 기쁨에 대한 희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 가운데 어떻게 시작되고 어떻게 자라나고 퍼져나가는지 우리는 잘 알지 못하지만 하나님의 나라는 분명히 성장하고 확산되어 나갈 수밖에 없습니다! 농부가 뿌린 씨앗이 어떤 과정을 거쳐 곡식 낟알로 자라나게 되는지 볼 수 없고 확인할 수 없지만 언젠가 열매로 나타나듯이 하나님의 나라도 마찬가지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씨앗은 이미 이 세상에 뿌려 졌습니다. 아무도 알지 못하는 가운데 그 씨앗은 조금씩 조금씩 자라나고 있습니다. 저 세상에서의 완전한 하나님의 나라가 도래할 때까지 하나님의 나라는 이미 우리 가운데 점진적으로 자라나고 퍼져나가는 가운데 있습니다! 바로 여기에서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도래와 하나님 나라의 최후 승리에 대해서 낙관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 우리는 아기 예수님의 강생을 희망 속에 기다려야 할 것입니다. 예수께서 낮고 천한 모습으로 이 땅위에 오신 성탄을 큰 희망 가운데 맞아야 할 것입니다. 농부가 추수 때를 희망과 설렘 속에 기다리듯이 예수님의 탄생을 희망과 설렘 속에 기다리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아멘.

      “침묵의 열매는 기도이며, 기도의 열매는 신앙이며, 신앙의 열매는 사랑이며, 사랑의 열매는 봉사이며, 봉사의 열매는 평화이다.”――Printed on Mother Teresa's Business Car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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