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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물고기 뱃속에서 드릴 기도 (욘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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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유관지 목사 (목양교회)

‘요나가 누구입니까?’ 이런 질문을 받으면 여러분 무엇이라고 대답하시겠습니까?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 아니지요. 교회학교 어린이들도 쉽게 대답할 수 있는 문제입니다.
‘네,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다가 고기 뱃속에 들어간 선지자입니다!’
맞습니다.
요나라고 하면 ‘불순종한 선지자’ 이렇게 인식되어 있습니다. 복음성가 가운데 “탕자처럼 방황할 때도 애타게 기다리는 부드런 주님의 음성이 내 맘을 녹이셨네” 이렇게 시작되는 복음성가가 있는데 이 복음성가의 2절 가사를 잘 아실 것입니다.
2절은 “불순종한 요나와 같이도 방황하던 나에게” 이렇게 시작됩니다.

요나는 분순종하다가 물고기 뱃속에 들어갔습니다.
그래서 불순종하면 물고기 뱃속, 이런 교훈을 우리에게 주고 있습니다.

물고기 뱃속, 질척질척하고 깜깜합니다.
지난 주일에 기도원에 가는데 방을 예약하려고 전화를 했더니 기도원에서 ‘지금은 빈 방이 없습니다. 다만 제일 꼭대기 층에 골방 같은 방이 남아있는데 그것도 좋다면 오십시오.’ 했습니다.
좋다고 하고 갔는데 좁고, 천장도  낮고, 무엇보다도 창이 없었습니다. 천장에 창이 있었는데  여는 장치가 고장이 났는지 제가 스위치를 잘못 조작했는지 열리지 않았습니다.
한 두 시간 기도하기에는 그런 방이 더 좋겠지만 이틀을 머물고, 자고 하는데 매우 답답했습니다.
방에 창이 없어도 이렇게 답답한 데 물고기 뱃속, 얼마나  숨이 막혔겠습니까?
거기에서 성경을 읽다가 이 말씀을 준비하게 되었는데 ‘물고기 뱃속에 비하면 여기는 천국이다.’라고 했습니다.

물고기 뱃속에 들어간 요나, 절망하기 쉬웠습니다. 
처음에는 그래도 소망을 가졌을지 모릅니다.
‘물에 빠져 죽지 않은 것을 보면 하나님이 나를 구해 주시려다 보다.’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깜깜한 가운데서 시간이 유난히 길게 느껴지는 법입니다. 요나는 밤낮 삼일을 물고기 뱃속에 있었는데 체감 시간은 삼십 일쯤으로 여겨졌을 것입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소망은 사라지고 절망에 사로잡혔을 것입니다.

물고기 뱃속에 들어간 요나, 원망하기 쉬웠습니다.
하나님을 원망하고, 자기를 바다에 던진 선장과 사공들과 무리들을 원망했을 것입니다.

물고기 뱃속에 들어간 요나, 자포자기하기 쉬웠습니다. 
‘나 같은 놈은 죽어서 싸지!’ 하기 쉬웠습니다.
‘내가 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라고 해서 이렇게 되었으니 할 수 없지!’ 하기 쉬웠습니다.
가룟 유다는 바로 그런 마음으로 목매달아 죽었습니다.

그러나 1절을 보세요. 물고기 뱃속에서 요나는 무엇을 했습니까?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였습니다.
요나서 2장은 불순종하고 다시스로 도망가려다가 물고기 뱃속에 들어간 요나가 드린 기도입니다.

성도 여러분 가운데에도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 들어간 것과 같은 처지에 있는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건강 때문에 물고기 뱃속에 들어갔거나, 사업 때문에 물고기 뱃속에 들어갔거나, 가정 문제로 물고기 뱃속에 들어갔거나, 남이 알지 못하는 사유로 물고기 뱃속에 들어가 있는 분들이 이 계실 것입니다.

지금 우리나라의 형편은 물고기 뱃속에 들어간 요나와 같습니다. 
노무현 대통령께서 이 말을 들으시면 물론 대단히 싫어하시겠지만 대한민국은 지금 분명히 물고기 뱃속에 들어가 있는 것과 같은 형편입니다.
정치계, 경제계, 노동계, 농촌, 교육계, 공직자 사회, 군대, 풍랑이 일어나지 않는 곳이 한 군데도 없습니다.

이 때 우리가 할 것은 절망이 아닙니다,
원망이 아닙니다,
자포자기가 아닙니다.

기도입니다!

한 때 불순종하다가 물고기 뱃속에 들어가는 처지가 되기는 했지만 요나는 기본적으로는 강한 신앙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들을 세울 때 경건하고, 믿음이 뛰어나고, 영성이 풍부한 사람들을 택했을 것입니다.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아모스, 호세아, 요엘, 말라기, 다 그런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안에서 말씀을 전할 선지자가 아니라 먼 이방도시, 그것도 악독이 하나님 앞에 상달된 니느웨에 보낼 선지자로 하나님은 요나를 택했습니다.
이 한 가지를 보아도 요나가 보통 믿음의 소유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물고기 뱃속, 그 깜깜한 가운데에서 요나의 믿음이 기도의 불꽃으로 되살아난 것입니다.

아파트에는 비상 발전기가 있습니다.
저희 교회에도 비상 발전시설이 있습니다.
발전소에서 오는 전기가 끊어져 깜깜해졌을 때 이 비상 발전기가 ‘윙-“ 소리를 내며 작동해서 전등이 들어오게 하고 엘리베이터도 움직이는 것을 겪으셨을 것입니다.

요나의 믿음이 이 비상 발전기처럼 작동하여 요나서 2장의 기도가 나오게 했습니다.
지금 물고기 뱃속에 들어가 있다고 여겨지는 성도들은 자기 안에 있는 믿음을 바로 이 때 비상 가동시켜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한국의 성도들은 지금 비상 발전기가 되어 나라를 구하기 위한 기도운동을 일으켜야 합니다.

요나는 물고기 뱃속에서 어떻게 기도했습니까?
우리는 지금 어떻게 기도해야 합니까?
물고기 뱃속에서 드릴 우리의 기도는 어떤 것이어야 합니까?
요나서 2장은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드린 기도인 동시에 우리가 지금 드려야하는 기도입니다.

첫째, 이 기도는 이루어진다는 확신을 가지고 기도해야합니다.

오늘 본문에는 모순이라고 해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요나는 지금 물고기 뱃속에서 기도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현재형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과거형으로 되어 있는 곳들이 있습니다.
2절을 보세요. 정확하게는

내가 받는 고난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 불러 아뢰나이다. 주여 내게 대답하소서 내가 스올의 뱃속에서 부르짖으니 주여 내 음성을 들어주소서

이렇게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보세요,

내가 받는 고난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 불러 아뢰었더니 주께서 내게 대답하셨고 내가 스올의 뱃속에서 부르짖었더니 주께서 내 음성을 들으셨나이다

과거로 되어 있습니다.
6절도 그렇습니다.

이 문제에 대한 해명은 여러 가지입니다.

요나가 나중에 과거를 회상하면서 「요나서」를 썼기 때문에 이렇게 되었다고 말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성경을 자유롭게 해석하는 분들은 어떤 편집자가 이 기도문을 적절하지 못하게 삽입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요나가 물에 빠져 죽지 않고 물고기 뱃속에 들어간 것을 일단 구원받은 것이라고 생각하고서 이렇게 기도했다고 말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원래는 10절이 2절 앞에 있기 때문에 이렇게 되었다고 말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공동번역 성서 개정판」을 보면  오늘 본문이

1야훼께서는 큰 물고기를 시켜 요나를 삼키게 하였다.
2요나는 사흘 밤낮을 고기 뱃속에 있었다. 요나가 그 물고기 뱃속에서 하느님 야훼께 기도를 올리니 야훼께서는 그 물고기에게 명령하여 요나를 뱉어내게 하셨다.
3요나가 입을 열었다

하고서 2절 이하의 기도문이 나옵니다.
물고기 뱃속에서 나와서 기도를 드렸다면 이렇게 과거형이 된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모두 좋은 해명입니다.
저는 좀 더 신앙적으로 해석하고 싶습니다.
주께서 대답하실 줄로 믿었기 때문에, 주께서 내 음성을 들어주실 줄로 믿었기 때문에, 주께서 내 생명을  구덩이에서 건지실 줄로 믿었기 때문에, 내 기도가 주께 이르고 주의 성전에 미칠 것을 믿었기 때문에, 요나는 물고기 뱃속에 있으면서도 이렇게 과거형으로 기도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성경에는 이와 같은 형태의 기록들을 여러 군데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미래의 일인데 현재의 일처럼 기록이 되었습니다.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일인데 이미 이루어진 일인 것처럼 기록되어 있습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인데 바라는 것이 이뤄질 것을 믿었기 때문에 이렇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예언적 완료형이라고 부릅니다.
과거, 현재, 미래, 과거완료, 현재완료, 미래완료, 이런 것들은 문법의 시제입니다.
예언적 완료형은 믿음의 시제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실 줄로 믿고, 이 물고기 뱃속에서 나가게 해 주실 줄로 믿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야고보 사도는 야고보서 1장 6절과 7절에서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의심하면서 드리는 기도를 주님은 들어주지 않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에 들어가시면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1장 21절과 22절의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가 믿음이 있고 의심하지 아니하면 이 무화과나무에게 된 이런 일만 할 뿐 아니라 이 산더러 들려 바다에 던져지라 하여도 될 것이요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하시니라

의심하지 않고 드리는 기도, 믿고 구하는 기도를 주님은 들어 주십니다.
의심하지 말고, 믿고 구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둘째, 고난의 원인을 바로 찾으며 기도해야 합니다.

요나는 왜 바다에 빠졌습니까?
배에 탄 사람들 선장, 사공, 배에 탄 무리들이 요나를 바다에 던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요나는 ‘그 못된 놈들이 나를 바다에 던졌기 때문에 내가 이 모양이 되었습니다.’ 하지 않았습니다.
3절을 보세요.

주께서 나를 깊음 속 바다 가운데에 던지셨으므로 큰 물이 나를 둘렀고 주의 파도와 큰 물결이 다 내 위에 넘쳤나이다

‘주님께서 나를 바다 가운데 던지셨습니다.’ 하였습니다.

주님께서 하시는 일이라면 여러분, 거기에는 어떤 목적이 있습니다.
주님께서 하시는 일이라면 여러분,  거기에는 주님의 사랑이 숨어 있습니다.
주님께서 하시는 일이라면 여러분, 거기에는 주님의 보살핌이 있습니다.
주님께서 하시는 일이라면 여러분, 거기에는 고난의 끝이 있습니다.

요나는 ‘파도와 큰 물결이 다 내 위에 넘쳤나이다’ 하지 않았습니다.
“주의 파도와 큰 물결이 다 내 위에 넘쳤나이다” 고 하셨습니다.
“주의 파도”라고 하였습니다.
“주의 파도”라는 말은 ‘주님께서 일으키신 파도’ 이런 뜻입니다.

1장 9절을 보세요. 배에 탄 무리들을 요나를 보고 ‘당신은 누구요? 어떤 사람이요?’ 물었을 때 요나가 무엇이라고 대답합니까?

그가 대답하되 나는 히브리 사람이요 바다와 육지를 지으신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로다 하고 

요나는 하나님이 바다와 육지를 지으셨다는 사실을 믿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자기가 겪은 파도에 대해 “주의 파도”라고 말할 수 있었습니다.

“주의 파도,” 이 말에는 또 ‘주님의 명령에 순종해서 일어난 파도’ 이런 뜻도 있습니다.
‘무생물인 파도도 주님의 명령에 따라 이렇게 일어나는데 피조물 가운데 으뜸인 사람이, 그 가운데에서도 선지자로 택함 받은 내가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해서 도망을 치려고 했으니 이런 고생을 하는 것은 당연하다.‘라는 참회의 고백이 숨어 있습니다.

요나는 주님께서 왜 자기를 깊음 속 바다에 던지셨다고 했습니까?

8절을 보세요.

  거짓되고 헛된 것을 숭상하는 모든 자는 자기에게 베푸신 은혜를 버렸사오나

여기 “거짓되고 헛된 것을 숭상하는 모든 자” 가운데는 다시스로 도망치던 과거의 요나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자기에게 베푸신 은혜를 버렸사오나” 이것은 철저하게 요나 자신의 이야기입니다.
자기를 구원해 주신 은혜를 버렸습니다.
자기를 택해주신 은혜를 버렸습니다.
자기에게 베풀어주신 사랑을 버렸습니다.
사명을 주신 은혜를 버렸습니다.
“자기에게 베푸신 은혜를 버렸사오나” 이 말이 “주님께 바쳐야 할 충성을 저버립니다” 이렇게 되어 있는 사본도 있습니다.

오늘 나에게, 또 우리 민족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이 8절의 고백입니다
.‘우리는. 나는, 거짓되고 헛된 것을 숭상하였습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은혜를 버렸습니다!’
요나는 물고기 뱃속에 들어간 이유를 이렇게 자신에게서 찾았습니다.
‘내가 니느웨로 가라는 명령에 불순종해서 다시스로 가려고 했기 때문에 이런 어려움을 겪게 되었습니다.’ 하였습니다.

내가 이렇게 어려움을 겪는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는 주님께서 나를 깨닫게 하기 위해, 주님께서 나를 바른 길로 가려고 하시기 위해, 주님께서  나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주님께서 나를 버리지 않고 다시 쓰려고 하기 때문에 이런 어려움을 겪게 하시는 것임을 아시기 바랍니다.

우리나라가 이렇게 어려움을 겪는 것은 지도층의 무능과 무책임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는 또 한 가지, 주님께서 이 민족을 깨우치시기 위해서, 주님께서 이 민족을 바른 길로 가려고 하시기 위해서, 주님께서 이 민족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주님께서 이 민족을 버리지 않고 다시 쓰려고 하기 때문에 이런 어려움을 겪게 하시는 것임을 아시기 바랍니다.

셋째, 고난이 심할수록 더욱 열심히 기도해야합니다.

요나서 2장에는 요나가 지금 얼마나 심한 고통을 겪는지 잘 알려주는 말들이 여러 군데에 들어 있습니다.

2절 뒷부분을 보세요. “내가 스올의 뱃속에서 부르짖었더니”라고 하였습니다.
스올이라는 말은 음부, 죽은 자들이 사는 곳, 악마들이 사는 곳,(눅8: 31 계9: 1~2) 무덤, 지옥, 이렇게 여러 가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3절을 보세요. 그냥 바다 가운데 던졌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깊음 속 바다 가운데에 던지셨으므로”라고 하였습니다.

4절을 보세요. 내가 주의 목전에서 쫓겨났다고 했습니다.
주님 앞에서 쫓겨나는 것이 얼마나 두려운 일입니까?
다윗은 그의 참회시인 시편 51편의 11절에서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간구하고 있습니다.

5절의 물이 나의 영혼까지 둘렀다, 바다 풀이 내 머리를 감쌌다, 6절의 내가 산의 뿌리까지 내려갔다, 땅이 그 빗장으로 나를 오래도록 막았다, 모두 지금 요나가 겪고 있는 고난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잘 알려주는 말들입니다.

우리는 고난이 심하면 기도를 포기하기 쉽습니다.
‘나는 지금 기도할 힘조차 없습니다.’ 하지요.
바로 그 때 더 열심히 기도해야 합니다.

요나는 심한 고난 가운데에서도 기도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심한 고통 가운데에서도 기도했습니다.
“아버지여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23: 34)라고 기도하셨습니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마27: 46)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눅23: 46) 기도하셨습니다.

7절을 보세요. “내 영혼이 내 속에서 피곤할 때에” 몸이 피곤한 것보다 더 무서운 것은 영혼이 피곤한 것입니다.
이런 것을 흔히 탈진이라고 하지요.
영혼이 피곤하면 정말 기도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요나는 영혼이 피곤할 때 여호와를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심한 어려움 가운데에서 드리는 기도를 강하게 기억하시며 급하게 받아 주십니다.

2절 뒷부분을 다시 보세요.
“내가 스올의 뱃속에서 부르짖었더니” 그 다음에 무엇이라고 되어 있습니까?

  주께서 내 음성을 들으셨나이다

6절을 다시 보세요.
“내가 산의 뿌리까지 내려갔사오며 땅이 그 빗장으로 나를 오래도록 막았사오나” 그 다음에 무엇이라고 되어 있습니까?

  나의 하나님 여호와 주께서 내 생명을 구덩이에서 건지셨나이다

7절을 다시 보세요.
“내 영혼이 내 속에서 피곤할 때에 내가 여호와를 생각하였더니” 그 다음에 무엇이라고 되어 있습니까?

  내 기도가 주께 이르렀사오며 주의 성전에 미쳤나이다

여러분 스올의 뱃속에 있습니까?
주님께 부르짖으시기 바랍니다.(2절)
주님께서 나를 쫓아냈다고 여겨지십니까?
주의 성전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4절)
땅이 빗장으로 여러분을 오래도록 막고 있습니까?
그 구덩이에서 건져달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6절)
여러분의 영혼이 여러분 속에서 피곤하십니까?
여호와를 생각하시기 바랍니다.(7절)

주님께서 그 음성을 들으실 것입니다.
주님께서 건져주실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가 주께 이를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가 하늘에 있는 주의 성전 보좌에 미칠 것입니다.

요나는 하나님께서 들어주실 것을 믿고 기도했고, 고난의 원인을 자기에게서 찾으며 기도했고, 심한 고난 가운데에서 기도했습니다.
어떻게 되었습니까?
여호와께서 그 물고기에게 말씀하시어서 그 물고기가 요나를 육지에 토해 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들어주실 것을 믿고 기도하면, 이 어려움의 원인을 나에게서 찾고 기도하면, 심한 고난 가운데에서도 쉬지 말고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나를, 우리를, 우리나라를 이 물고기 뱃속에서 나오게 하실 줄로 믿습니다!

물고기가 요나를 토해 내는데 바다 가운데에 토해 냈으면 요나는 다시 죽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물고기가 요나를 육지 가까운데 토해 냈으면 요나는 헤엄쳐 나오느라고 많은 수고를 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물고기는 요나를 육지에 안전하게 토해 냈습니다.

물고기가 요나를 어느 육지에 토해 냈는지 기록이 없지만 저는 니느웨 가까운 곳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3장 3절을 보면 “요나가 여호와의 말씀대로 일어나서 니느웨로 가니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시 배를 타고 갔는지, 걸어갔는지 확실히 알 수 없지만 앞뒤 문맥을 보면 바로 니느웨로 간 것 같습니다.
이 짐작이 맞는다면 요나는 하나님은 요나를 물고기라는 잠수함에 태워 니느웨 가까운 곳으로 보낸 것입니다.
니느웨는 팔레스타인의 북동쪽에 있는데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 들어 있는 사흘 동안 물고기는 북쪽을 향해 헤엄쳐 간 것입니다.

저희 교회도 물고기 뱃속에 들어가 있었던 때가 있었습니다.
1990년대 후반, 얼마나 어려웠습니까?
여러분, 요즘 판교 부근을 지나가면서 보면 강한 내용으로 된 시뻘건 플래카드들이 많이 나붙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 플래카드에는 철거민 문제가 생기면 앞장서는 어느 단체의 이름이 적혀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바로 그 단체가 8, 9년 전, 저희 교회가 수지에 들어오는 것을 그렇게 심하게 방해했습니다.

최근에 필요가 있어서 1998년과 1999년의 목양일지를 자세하게 살펴보았습니다. 일반직장에서는 근무일지, 또는 업무일지라고 부르는 것을 교회에서는 목양일지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 때 참 어려웠었구나!’ 하는 것을 새삼스럽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 때 기록 하나 소개해 볼까요?

1998년 12월 23일 수요일 날씨 맑음
(IMF로 공사가 중단되어 있을 때입니다.)
오후 3시 용인경찰서 정보과 권 아무개 형사 교회 방문
근로자 40여 명이 24일부터 27일까지 시위 집회할 것이라고 통보하다.

하나님께서 그 물고기 뱃속에서 우리를 나오게 하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니느웨로 가야합니다.
교회 부흥이라는 니느웨, 사명 감당이라는 니느웨로 가야합니다.

요나가 두 번째는 순종하고 니느웨에 가서 외쳤는데 아주 간단하게 외쳤습니다.
“사십 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 외쳤습니다.
그 말을 듣고 니느웨에는 대 회개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그렇게 간단한 말을 듣고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 궁금합니다.
그 때 니느웨는 전쟁에서 지고, 전염병이 두 번이나 돌고, 왕고 백성들이 무엇인가 위기감을 느끼고 있었다고 합니다.
일식현상도 있었는데 천문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당시 사람들은 이것 때문에도 심한 불안을 느꼈습니다.
그럴 때 요나가 가서 외쳤기 때문에, 타이밍이 잘 맞았기 때문이라고 분석하는 분들도 있습니
그에 앞서 요나의 회개와 순종을 보고 하나님께서 강하게 역사 하셨기 때문에 그런 일이 일어났을 것입니다.
우리는 요나를 ‘불순종한 선지자’ 이렇게 기억하는데 사실은 ‘니느웨 성을 구원하는데 귀하게 쓰임 받은 선지자’ 이렇게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목양교회라고 하면 사람들은 ‘아, 그 교회당 짓느라고 애쓰는 교회’ 이렇게 말합니다.
이제 교회당, 거의 다 지었습니다. 이제는 ‘아, 놀랍게 성장하는 교회, 사명을 감당하는 교회’ 이렇게 알려져야 합니다.
주보 12면 위에 있는 대로  ‘경건의 모범을 보이는 교회,’ ‘북한선교에 앞장서는 교회,’ ‘이 땅에 기독교문화의 맑은 물이 넘쳐흐르게 하는 교회’ 이렇게 알려져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은 대림절 첫째 주일입니다.
교회에 처음 나오는 분들은 성탄절을 잘 알아도 대림절이라는 절기는 잘 모를 것입니다.
대림절은 예수님의 탄생을 바라보며 소망 가운데 준비하는 절기입니다.
신앙생활을 오래할 수록 성탄절 못지않게 대림절도 중요한 절기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부활절 못지않게 사순절도 중요한 절기라는 것도 알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로마의 통치, 형식만 남은 유대교, 이런 물고기 뱃속에서 메시아의 탄생을 간절하게 기다렸습니다.

지금 우리는 요나서 2장, 요나의 기도를 새롭게 읽어야합니다.

이제 말씀을 맺습니다.

대림절을 맞이하여, 하나님께서 들어주실 것으로 믿으며, 어려움의 원인을 나의 불순종에서 찾으며, 고난이 심할수록 더욱 열심히 기도하여 물고기 뱃속에서 나와, 사명을 감당하는, 나 의 니느웨로 향해 가는, 우리 교회의 니느웨로 향해 가는, 영적 민족, 선교 민족이라는 우리나라의 니느웨로 가는 여러분이 되고, 제가 되고, 목양교회가 되고 이 나라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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