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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천국을 소망하는 삶 (계 21: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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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자 : 박영준 목사

여러분의 소망은 무엇입니까?
여러분의 삶의 에너지는 무엇입니까?
무엇이 여러분을 살아있게 합니까?
무엇이 여러분을 살았으나 죽은 자가 아니라 생명 그 자체로 존재하게 합니까?
그것이 없다면 우리는 중요한 것을 잃은 것입니다.
그것이 없다면 우리는 지금 잘못 믿고 있고 잘못살고 있습니다.

만약 있더라도 본질적인 것이 아니면 그것은 허무하게 끝나고 말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니라.”(요일 2:15,16)
다 지나가고 허무하게 떨어지고 마는 것을, 우리가 소원으로 삼고 간다면 그 또한 무의미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가장 최종적이요 온전한 소망은, 예수 그리스도요, 그분으로 인한 천국입니다.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고 우리가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힘이 되고 능력이 되는 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와 천국입니다.
그분의 나라는 우리의 존재 이유요 가치입니다.
그분으로 인해 내가 얻을 그 천국을 믿고 바라본다면 우리는 모든 것을 이길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세상의 비전과 꿈의 성취에 모든 것을 거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 꿈이 있느냐 없느냐 성취했느냐 못했느냐에 따라 그 삶의 내용과 질을 말하곤 합니다.
물론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천국입니다.
하나님 나라입니다.
이 세상의 것이 채워지지 않는다 해도 내 앞에 천국이 있다면 그 확신이 있다면 우리는 그것으로 인해 살아갈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이 천국에 대한 믿음과 소망 가운데 살아가고 있습니까?
이것을 확인하십시오.
그리고 이 소망을 온전히 붙잡으십시오.

1. 천국에 대한 몇 가지 오해가 있습니다.

저는 얼마 전부터 천국에 대한 말씀을 보고 묵상하고 연구하면서 우리가 얼마나 이 천국에 대한 믿음과 확신 가운데 살아가고 있는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얼마나 천국을 내 삶 가운데 밀접하게 두고 살아가는 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런데 이 천국이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너무나 먼 나라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우리의 관심을 한번 보세요.
온통 먹고 마시고 거할 곳을 찾아 움직이고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이 천국이 불신을 받고 있고 많은 오해를 받고 있습니까?
보세요.

1) 사람들은 이 지구상이 천국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 세상이 천국이 되고 여기서 행복을 누리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칼럼니스트인 [시드니 헤리스]는 “현대인들은 천국에서 보다 이 세상에서의 행복을 더 원하고 있다.....현대인들은 천국에 대한 희망을 이 세상에서의 행복한 삶에 대한 희망으로 대체했다”고 했습니다.
세상에서누리는 삶의 쾌락과 재미를 통해 유토피아를 꿈꾸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성경에서의 천국에 대해서는 진부한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이 세상의 사람들은 과학과 기술이 발전해 가면 무병장수와 최고의 안락함을 가지는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큰 오해입니다.

2) 천국은 없다고 사람들은 말합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천국은 없다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만 믿고 보이는 세계가 모든 것이라고 생각하기에 믿지 않는 것입니다.
지극히 현실적이기 때문입니다.
대다수의 불신자들은 천국과 지옥을 믿지 않습니다.
그것은 인간을 두렵게 하고 혹은 성실하게 살게 하려고 하는 교훈적인 것일 뿐이라고 합니다.
과연 그럴까요?

2. 천국은 이런 곳입니다.

여러분, 과연 천국은 이 세상이 변하여 유토피아가 되는 것일까요?
천국은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기에 믿음이 없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 같이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종교가 위장해 놓은 것일까요?
우리가 소망하고 기다리는 그 천국은 어떤 곳일까요?
(성경에서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는 현재적인 하나님 나라와 미래적인 하나님 나라를 말씀하고 있습니다만, 오늘은 우리가 미래에 갈 하나님 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좌에 계신 그 천국에 대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를 원합니다)
여러분이 알고 있고 상상하고 있는 것을 다 동원해서 생각해 보시고 오늘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 말씀을 통해서 항상 하나님나라, 천국이 여러분의 마음속에 있고, 그것이 최종적인 소망이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1) 천국은 온전한 예배가 있는 나라입니다.
요한계시록 7장에 보면 천상의 예배 모습이 나옵니다.
“이 일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흰옷을 입고 손에 종려나무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양 앞에 서서 큰 소리로 외쳐 가로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양에게 있도다 하니”(계7:9-10)
아름다운 예배의 모습입니다.
이 모습으로 ‘천국은 예배만 드리는 곳이다. 그래서 재미가 없을 것이다.’라고 오해를 합니다.
그러나 예배는 의식만이 아닙니다.
삶 전체가 예배입니다.
천국에서의 삶 전체가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예배이지요.
이 땅에서의 우리의 삶 전체도 예배라는 의식으로 살듯이 말입니다.
그렇다면 그 삶이 얼마나 아름답고 자유하며 복된 것인가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2) 천국은 두려움이 없는 나라입니다.
따라서 울타리와 자물쇠가 필요 없는 나라입니다.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흔히 쓰면서 잘 느끼지 못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이 열쇠의 의미입니다.
왜 열쇠가 만들어 졌나요?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두려움 때문입니다.
이 열쇠와 자물쇠는 두려움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모든 집에 자물쇠를 하고 창살을 붙이고 담을 세우고...........
이것은 이 세상이 얼마나 두려운 세상인가 하는 것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경계가 없고 장금 장치가 없는 곳입니다.
오늘 말씀에 성문이 닫히지 않는다고 합니다.
성곽과 문이 있는 것은 천국 그 자체를 표현해 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말씀이 있습니다.
‘성문이 닫히지 않더라.’
곧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할 사람들만이 들어오는 곳이기에 영광스러운 곳이기에 그곳에는 두려움이 없다는 것입니다.

3) 천국은 어두움이 없는 곳입니다.
  어두움은 태양이 그 자체의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어도 그 즐거움을 숨기고 맙니다.
그래서 한 시인은,
“어두움아, 네가 태양이 주는 
  저 즐거움을 빼앗는구나!
  그것은 우리의 추함을 감추면서
  우리의 죄 성을 더 분출시키기 위한
  너의 음흉함 때문이겠지.
  안식은 너의 숨겨진 음흉함으로 인해
  빼앗기고 말았구나........” 라고 했습니다.

빛을 가리는 것은 생명을 가리는 것입니다.
그것은 결국 공포와 두려움을 낳게 되지요.
어두움은 우리의 유한성을 말해 주는 것입니다.
곧 어두움이 밀려올 때면 우리는 죽음을 향한 한 걸음 더 내 딛는 발걸음이 됩니다.     
하루 사는 것은 하루 죽는 것입니다.
우리의 가장 두려움은 바로 죽음이지요.
그러나 천국은 이 어두움이 없습니다.
공간적, 시간적, 정신적....아니 해와 달의 비침이 필요 없는 곳입니다.
왜냐하면 성부 하나님의 영광과 성자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의 빛이 밝히기 때문입니다.
“그 성은 해나 달의 비췸이 쓸데없으니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비취고 어린 양이 그 등이 되심이라. 성문들을 도무지 낮에 닫지 아니하리니 거기는 밤이 없음이라.”(23.25)
때문에 그곳은 영원한 나라인 것입니다.

4) 천국에는 어떠한 고통도 죽음도 없는 곳입니다.
실패의 고통, 벼의 고통, 관계의 깨어짐으로 오는 어두움의 고통.....
어떠한 고통도 존재하지 않는 곳이 천국입니다.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 이러라”(계21:4)

5) 천국은 상상할 수 없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오늘 말씀에 보면 이 아름다운 나라에 대해서 세상 사람들이 가장 귀하다고 생각하는 보석들을 예로 들어서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열 두 보석으로 되어진 건물들과 황금길,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 강과 생명나무 열매........”(본문 21.22)
이것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진짜 그러한 재료로 되어진 공간일까요?
실제로도 그렇거니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상징입니다.
인간이 설명할 수 있는 가장 귀하고 아름다운 것을 표현할 때 보석 말고 무엇이겠습니까?
그래서 보석으로 하나님 나라의 아름다움을 표현한 것입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보석보다 더 귀한, 생전 듣도 보도 못한 진구한 것으로 가득한 곳이 천국인 것을 믿습니다.         

3. 천국은 감춰진 비밀이 있습니다.

이것이 성경에서 말씀해주는 천국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여기에  한계가 있습니다.
우리가 들을 수 있고, 우리가 느낄 수 있고,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그 이상의 어떤 표현도 없기에 거기에 하나님의 비밀이, 천국의 비밀이 감춰질 수  밖에 없습니다.
그 이상의 표현으로 나아가면 우리는 들을 수도 느낄 수도 이해할 수도 없습니다.

이 지구가 돌아가는 소리는 엄청나게 크다고 합니다.
여러분은 지구가 돌아가는 소리를 들을 수 있나요?

  지구와 태양의 거리 : 약 1억5천만km
  지구가 태양을 한바퀴 도는 기간 : 365일
  지구의 공전 속도 : 초당 약 30km

지구와 태양간의 거리는 약 1억 5천만 km로 지구가 태양을 한바퀴 도는데 365일 걸리므로 계산을 하면 지구의 공전 속도가 초당 약 30km입니다.
이것은 지구상 가장 빠른 전투기인 초음속 전투기보다(초속 약 345미터 이상 달릴 때 소리 속도를 넘는다하여 초음속이라 한다)88배나 빠른 속도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엄청난 속도입니까?

빚의 소리를 들을 수 있나요? 
분명 흐름이 있기에 나름의 소리를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전혀 느끼지 못하고 그 돌아가는 소리, 흐르는 소리를 듣지 못하며 살고 있습니다.
단지 우리는 지식을 알고 있을 뿐입니다.

중국을 비롯해 세계를 여행하고 ‘여행기’를 쓴 [마르코스 폴러]가 임종을 맞이했을 때, 그의 친구들이 그의 영혼이 평안히 잠들게 해 주기 위해 그의 책에 기록한 믿을 수 없는 황당한 이야기에 대해서는 취소하도록 권고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나는 내가 본 것의 절반도 다 표현할 수 없네”라고 했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을 들어내실 때 하나님의 나라를 나타내실 때 우리가 이해 할 수 있는 것을 통해서 보이실 수밖에 없으십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한계가 아니라 우리 인간의 한계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사람이 되어 오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의 언어와 문자를 통해서 주셨습니다.
우리가 알 수 있는 비유와 상징들을 통해서 우리에게 천국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그러한 우리가 하나님의 세계를 우리의 지식으로 우리의 경험으로 다 알려고 하고 그 안에서 판단하려고 하니 문제입니다.

4. 천국은 믿음으로 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겸손함과 믿음으로 하나님 나라에 대한 말씀을 믿고 소망하며 나아가야 합니다.
[C.S 루이스]는 그의 ‘나니아’(Narnia)전집 가운데 한 권에서 천국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C.S 루이스]의 '나니아'(Narnia)전집
“일해야 하는 때는 지났다. 휴가가 시작되는 것이다. 꿈은 끝났다. 지금은 아침이다. 이 세상에서의 그들의 평생은 .... 겉표지나 제목이 적힌 맨 앞장에 불과했다. 이제 드디어 세상 누구도 읽어보지 못한 위대한 이야기의 제 1장이 펼쳐질 것이다. 그것은 영원히 계속되며, 모든 장들은 그 앞의 것들보다 더 훌륭하다.”
이 세상에서의 평생의 삶은 책의 겉표지나 제목이 적힌 맨 앞장에 불과했다고 합니다.

무한하신 하나님, 그 분 안에서의 새로운 세상은 어떠할까요?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믿음입니다.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증거인 하나님에 대한 믿음, 그 분의 말씀과 나라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바라볼 때 비로소 우리는 표지 뒤에 있는 천국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바라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믿음을 선물로 주셨다는 점에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우리의 이성으로만 모든 것을 보고 생각하고 그 범위 안에서 살아가야 한다면 우리는 절망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성으로 볼 때 우리 개인과 이 세상은 희망이 없습니다.
미래학자들이 하는 이야기가 무엇입니까?
‘세상의 미래는 불확실하다’
이것이 정답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 세상을 넘어 천국을 두시고 그 만드신 세상과 일들을 믿음의 눈으로 볼 수 있고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신 것에 대해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어느 목사님의 박사학위 논문 첫 페이지에 감사의 글을 보니 이렇게 적어 놓으셨더군요.
“끝으로 제 처음과 마지막까지 모든 것을 지키시며 함께 하신 하나님, 당신을 믿고 안 것이 자다가도 몇 번이고 감사를 외치고 싶습니다.”

이것은 저의 고백이기도 합니다.
우리에게 믿음을 주시고 그 믿음을 통해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저 천국을 바라보며 소망 가운데 살아갈 수 있게 된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요.
믿음은 우리로 저 천국을 바라보고 그곳을 향하여 가게 합니다.
그리고 그 천국에 대한 바른 이해와 깨달음과 믿음을 가지고 그 삶을 사모할 때 그것이 삶의 에너지가 되지요. 힘이 됩니다.

신앙생활에 대한 이해와 경험이 없는 사람은 신앙생활은 정말 재미없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주일에 야외로 나들이도 갈 수도 없고, 여행도 갈 수 없고 교회에 가서 예배만 드리고, 교회에 가서 하루 종일 일하다가 그 아까운 주말을 다 보낸다......’뭐 이렇게 생각들 합니다.
그러나 신앙생활의 진수를 맛본 사람, 곧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만난 사람들,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한 사람들은 교회에서의 하루가 다른 고에서의 천 날 보다 낫습니다.

시 84편에서 시인이 고백하지 않습니까?
“주의 궁정에서 한 날이 다른 곳에서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거함보다 내 하나님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시 84:10)

천국에 대한 믿음이 있는 사람은 그날을 시모하며 갑니다.
그곳을 바라보며 갑니다.
히 11:13절에 보면 믿음의 조상들에 대한 표현이 나옵니다.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바라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로라 증거하였으니 이같이 말하는 자들은 본향 찾는 것을 나타냄이라. 저희가 나온바 본향을 생각 하였더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이 저희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아니하시고 저희를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히11:13-16)

아브라함을 비롯하여 우리의 믿음의 조상들은 바로 이 천국의 소망 때문에 이 땅에 매이지 않고 본향, 천국을 향하여 발걸음을 옮길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내 마음에 천국이 있을 때 우리는 오늘을 사는 것이 아니라, 내일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현실을 사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살게 됩니다.
우리의 삶의 차원이 달라지고, 깊이가 달라지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디를 보고 있습니까? 어디를 향하여 오늘 걷고 있습니까?
천국에 대한 의식을 깨우십시오.
여러분의 마음속에 영원한 고향인 하나님 나라, 그 나라가 새겨지고 그 나라를 바라보면서 걸어가는 하루하루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천국은 있습니다.
우리 마음뿐 아니라 저 하늘나라에 대한 믿음과 소망 가운데서 사랑하며 가십시다.
우리의 삶의 가장 큰 힘은 천국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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