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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수를 바라보자 (히 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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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이하준 목사 (효자교회)

삶의 목표가 있는가?

인생에는 크게 두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분명한 목표가 있는 인생’과 ‘분명한 목표가 없는 인생’입니다. 분명한 목표가 없는 인생을 우리는 ‘때우기 식 인생’이라고 부릅니다. 무슨 뜻이냐?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며 사는 인생이 아니라 그날그날 대충 때우며 살아가는 인생이기 때문입니다.

전에 한 번 이야기 한 적이 있지만 제가 군목으로 섬길 때 두 가지 종류의 군인을 보았습니다. 한 종류는 2년여의 군 생활 기간을 잘 이용할 줄 아는 군인들입니다. 그들은 입대할 때 나름대로 목적을 세우고 들어옵니다. 군 생활 동안 내 인생의 진로를 확정하자, 체력과 용기를 키우자, 신앙생활을 한 번 열심히 해보자 등등. 그래서 이들은 군 생활이 비록 어렵지만 이 목적을 이루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며 2년여를 충실하게 보냅니다. 그런데 또 한 부류의 군인들은 그야말로 군 생활을 때우며 보냅니다. 이들의 특징은 다음과 같습니다. 주로 달력에 매일매일 체크를 한다. 뭘 시켜도 열심히 하지 않고 대충대충 시간 때우기 식으로 한다. 국방부 시계는 거꾸로 매달아도 돌아간다면서 인생 다 산 사람처럼 시간 가기만 기다린다. 여러분, 어떤 인생이 되기 원합니까? 목적이 없는 사람 중 대표적인 경우가 바로 길거리에서 방황하는 분들 아닙니까? 하루하루 끼니 때우는 것으로 만족하고 그날 밤 어디서 잘까 이것만 해결되면 끝나는 줄 아는 것입니다. 세상에 이렇게 불쌍한 인생이 어디 있습니까? 우리는 어떤 인생이 되어야 할까요? 두 말할 나위 없이 인생에는 목적이 분명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제대로 된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올바른 인생의 목표

그런데 이렇게 인생의 목표를 가지고 사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이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그 목적의 내용입니다. 즉 그 인생의 목적이 올바른가 잘못 되었는가 하는 것이지요. 우리가 아무리 인생의 목표를 잘 세워도 바르지 못한 목표를 세운다면 아무 의미도 없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십시오. 2절에 보면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고 했습니다. 우리가 왜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하는가? 그것은 예수님이야말로 가장 귀하고 고상한 인생의 목표를 가지고 그것을 실천하며 살아가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계속해서 2절 뒷부분을 봅니다.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무슨 말입니까? 예수님은 인생의 목표를 어디에 두었는가? 눈앞에 두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근시안적인 사람들은 눈앞의 일만 봅니다. 그래서 인생의 목표를 세워봐야 기껏 내일, 한 달 뒤, 1년 뒤 정도밖에 모릅니다. 그리고 눈앞에 있는 성공과 편안함을 위해 살아갑니다. 만약 예수님이 그런 분이었다면 그 분은 결코 십자가를 질 수 없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어디를 보았습니까? 분명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보았다고 했습니다. 저 앞에 있는 즐거움, 즉 십자가의 고난 저 뒤편에 있는 참다운 영광과 즐거움을 보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눈앞에 있는 십자가가 비록 힘들도 고난의 길이지만 그 십자가를 잘 참고 십자가의 부끄러움조차 개의치 않고 이겨낼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인생의 탁월함입니다. 그리고 성경은 오늘 우리도 그런 인생을 살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피곤하여 낙심하거든

계속해서 3절 말씀을 봅니다.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치 않기 위하여 죄인들의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자를 생각하라.” 우리가 인생을 살며 주님처럼 저 높고 먼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를 향해 달려가더라도 그 길이 어디 쉽습니까? 참 어렵습니다. 분명히 이 십자가 뒤에, 이 고난 뒤에 영원한 즐거움이 있다는 것을 알지만 그 십자가가 너무 무겁고 그 가시밭길이 너무 힘듭니다. 그래서 우리는 때론 피곤하고 낙심하고 좌절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은 우리에게 분명히 말씀합니다.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치 않으려면 죄인들의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자를 생각하라.” 예수님만큼 참은 분이 어디 있습니까? 죄인들이 자기를 거역하고,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 죄인들을 살리려고 낮고 낮은 인간으로 오셨는데 그 죄인들은 도리어 배반하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소리칩니다. 그토록 믿고 따랐던 제자들도 주님을 배반하고 부인하고 다 도망합니다. 얼마나 억울하고 속상한 일입니까? 얼마나 낙심하고 절망할 일입니까? 그런데도 주님은 참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힘들고 낙심되고 피곤할 때 누구를 바라보라는 것입니까? 바로 앞서 가신 예수님을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걸어가신 그 십자가의 길, 그 가시밭길을 바라보고 주님 가셨으니 나도 따라 갑니다 고백하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산 사람들이 누굽니까? 바로 본문 바로 앞장인 11장 ‘믿음장’에 나온 사람들입니다. 11장 4절부터 보세요. ‘믿음으로 아벨은..’ ‘믿음으로 에녹은..’(5절) ‘믿음으로 아브라함은..’(8절) ‘이삭은’ ‘야곱은’ ‘요셉은’ ‘모세는’ ‘라합은’ 이 모든 사람들의 공통점은 환란과 고통을 당했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이들은 예수님처럼 눈앞의 환란과 고통을 보지 않고 그 뒤에 있는 참 즐거움과 상급을 보고 나아갔습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12:1은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허다하게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다고 말씀한 것입니다. 이들이 증인입니다. 정말 그렇게 살면 형통하고 그렇게 살면 문제가 해결됩니까? 의심하지 마세요. 걱정하지 마세요. 11장 믿음장에 나온 모든 믿음의 사람들이 다 증인입니다. 확실합니다.

여러분, 요즈음 피곤한 일 있습니까? 낙심할 일이 많습니까? 절망되고 너무 힘이 듭니까? 저도 그런 일이 많습니다. 하지만 피곤하여 낙심될 때, 절망하여 넘어질 때 우리 주님을 바라보십시오.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예수님 말입니다. 나보다 먼저 그 길을 가신 예수님을 바라보며 예수님처럼 당장 내 눈 앞에 닥친 고통과 환란만 바라보며 두려워하고 힘들어하지 말고 그 고통과 환란 뒤에 감추어진 미래를 바라보며 내 인생의 목표를 거기에 두시기 바랍니다. 거기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습니다. 세상 누구도 줄 수 없는 영원한 상급과 기쁨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바라보십시오. 그 분이 여러분을 어루만지시고 힘주실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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