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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자기의 들보를 보는 사람 (마 7:1-5 (성례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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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박근호 목사 (숭의교회)

우리 교회는 매 주일, 예배할 때마다, 온 교우들이 한 목소리로 구(求)하는 기도가 있습니다. 저는 우리가 구하는 많은 기도 중에 우리가 꼭 구해야할 기도가 무엇일까 할 때, 그것은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는 기도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를 드리면서 “나라가 임하시오며”라고 기도합니다. 우리가 구하는 그 나라는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나라”입니다(마 6, 10).

예수님은 우리의 이 기도가, 형식적인 입술의 기도가 아닌, 진실한 삶의 기도가 되기를 企待하십니다. 저와 여러분이, 우리 교회가, 이 기도에 대하여 진실하다면 우리 삶 속에서도 이루어지는 하나님 나라를 사는 ‘삶의 응답’을 받게 될 것입니다.

아시는 대로,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복음의 핵심은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그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라고 가르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삶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하나님의 나라’를 어떻게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을까요? ‘내 안에 있는 하나님의 나라’는 ‘이런 나라’입니다 하고 보여 줄 수 있는 하나님의 나라가 무엇입니까? 저와 여러분 안에 있는 ‘하나님의 나라’는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는 나라인 것 같습니까?(눅 17, 20-21)

인터넷 통신이 발달되면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개인 이 메일 주소를 가지고 있거나 미니 홈 페이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메일 주소를 이용하여 우리는 많은 정보를 주고받습니다. 서로에게 유익한 정보를 주고받는 좋은 도구가 되기도 하지만, 때로 상대방에게 심각한 被害를 주는 도구가 될 때도 있습니다. 이미, 우리가 쓰고 있는 인터넷 통신은 유익한 도구이기 보다는, 폐해가 더 큰 위험한 도구가 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인터넷 통신 자체가 나쁜 것이다 그렇게 말할 수는 없습니다. 문제는, 인터넷 통신을 잘못 사용하는 자들의 그릇된 마음들이 문제입니다. 저는 인터넷 메일을 열 때마다, 제가 꼭 읽어야 할 편지들을 읽기 전에, 먼저 제가 읽지 말아야 할 스펨메일을 삭제하는 일부터 합니다. 가끔씩은 스펨메일로 분류된 편지들 중에도 제게 꼭 필요한 편지들이 섞여 있긴 하지만, 대부분은 쓸데없는 것들이 더 많습니다.

그러면서도 한 편으로 늘 생각하는 것이 있습니다. 남과 자신에게 유익한 글과 정보를 주는 사람도 있는가 하면, 서로에게 폐해를 줄 수밖에 없는 스펨메일을 만드는 사람들은 도대체 어떤 사람들인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또 스펨메일을 만드는 어리석은 사람도 있겠지만, 그 스펨메일을 받고, 지혜 없이 그것에 영향을 받아서, 몸과 마음과 삶이 병든 지혜롭지 못한 사람들도 생각합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문화선교연구원에서 발행하는 문화매거진 ꡔ오늘ꡕ이라는 잡지가 있습니다. 그 잡지에서 그리스도인들이 해야 할 ‘오늘의 금식’이라는 글이 실린 적이 있습니다. 그 글의 요지는, 오늘을 사는 그리스도인들에게 필요한 금식은 ‘文化禁食’이라는 겁니다.

눈만 돌려도, 한 발짝만 옮겨도 쉽게 접할 수 있는 수많은 문화매체들이 우리 주변에 많습니다. TV, 비디오, 영화, 책, 인터넷, 다양한 만남의 장들, 수많은 문화매체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문화적인 것이라고 해서 다 수용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 문화적 것들 중에는, 먹어서는 안 될 禁食해야할 文化들이 더 많다는 겁니다. 그러기에 금식할 문화를 분별할 줄 아는 지혜와 결단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1.
하나님의 나라의 삶을 살아야 할 그리스도인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삶을 살지 못하게 하는 스펨메일들이 너무 많습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가 쉽게 노출되어 있는 해악(害惡)한 스펨메일 ‘한 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자신의 눈 속에 있는 들보는 보지 않고, 남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보고 ‘남’을 심판하고, 정죄하고, 판단하는 은근(우아)하게 감춰진 우리의 ‘입버릇과 마음’입니다. 이것은 전염성도 매우 강합니다.

우리가 해야 할 금식은, 밥을 굶는 금식이 아닙니다. 남의 눈 속에 있는 티를 쉽게 드러내고, 심판하고, 정죄하고, 판단하는 조심성 없는 ‘입버릇과 마음’의 금식을 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이 禁食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우리 교회가 늘 기도하는 것처럼, 하늘의 뜻을 이 땅에서 이루는 교회가 되기 위해서, 무엇보다도 더 힘써서 실천해야 할 禁食도 바로 이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우리 교회에, 정말로 이 禁食을 선포하고 싶습니다.

본문을 통해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는 먼저, 자신의 눈 속에 있는 ‘들보’를 보는 사람들 안에서 존재한다고 말씀합니다. 다시 말하면, 남의 눈 속에 있는 티를 ‘티’로 보지 않는 자들 속에 하나님의 나라가 존재한다는 겁니다. 留意해서 보면 예수님의 이 말씀은, 매우 逆說的인 복음이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은 결코, 남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빼내 주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못 본 척 하라는 말씀도 아닙니다. 먼저 자신의 눈 속에 들어 있는 ‘들보’를 빼내라는 겁니다. 이 優先順位 속에 바로, 福音이 담겨 있습니다. 곧 ‘하나님의 나라’는 優先順位의 문제라는 겁니다.

“남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보고 남을 심판하지 말라. 어찌하여 너는 남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네 눈 속에는 들보가 있는데, 어떻게 남에게 말하기를 ‘네 눈에서 티를 빼내 줄테니 가만히 있거라’ 할 수 있겠느냐? 위선자야,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그래야, 네 눈이 잘 보여서, 남의 눈에 있는 티를 빼 줄 수 있을 것이다”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이 말씀에서, 하나님의 나라는 언제나 바른 우선순위 속에서 이루어지는 ‘나라’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그 바른 우선순위를 통해서, 나와 형제의, 아픔과 상처, 허물과 문제가, 治癒되고, 回復되는 나라라는 겁니다. 오히려, 상처가 더 깊어지고, 갈등이 점점 더 깊어지고, 문제가 더 증폭되는 나라는 하나님의 나라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나와 너’의 치유가 일어나는 곳에 임하는 나라입니다. 우리 삶 속에 있는 아픔과 절망이 回復되어, 그것이 도리어 우리의 기쁨이 되고, 企待로 바뀌는 변화 속에서 이루어지는 나라입니다.

2.
남의 아픔, 병, 삶의 문제를 치유하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가 보면, 그런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한 가지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病을 가지고 있는 患者’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이라는겁니다. 그런 사람이 환자의 病을 고치더라는 겁니다. 최근에, 저는 우리 교회에 출석하시는 집사님 한 분을 통해서 名醫란, 바로 그 집사님과 같은 분을 하는 말이구하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 집사님을 통해서, 어떤 사람이 명의가 될 수 있는가에 대한 답을 얻었습니다.

그 집사님이 제게 말로 가르쳐 주신 것이 아니라, 말 없는 그 분의 삶의 태도에서 배운 答이 있습니다. 그 답은, 名醫는 患者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겁니다. 아 ~, 그래서 名醫가 될 수 있는 거구나 하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名醫는, 患者가 오면 어디가 어떻게 아픈지, 그가 아픈 病根이 무엇인지를 찾으려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의학적인 지식과 임상경험과 온갖 지혜를 다 동원해서 환자의 병(根)을 찾으려고 애를 씁니다.

검진을 통해서 환자의 病根을 찾기라도 하면, 마치 매우 값진 진주를 구하는 장사가 진주를 발견한 것과 같이 기뻐하고 행복해 합니다. 그 이유는 한 가지 입니다. 患者의 生命을 귀하게 여기고,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그를 治療하기 위함입니다. 名醫는 결코 자신이 발견한 患者의 病 때문에, 患者를 絶望케 하는 법이 없습니다. 오히려 절망적인 상황에 있는 그 환자에게 지금 보다 더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도록, 치료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합니다. 그를 고쳐주려고 혼신의 힘을 다합니다.

집사님이, 며칠 전에 외국에서 사업하고 계시는 집사님 한 분을 검진하면서, 위내시경과 조직검사를 통해서 아주 미세한 암세포를 찾았습니다. 그런데, 다행스럽게 이 단계에서는 거의 발견하지 못하는 암세포를 발견한 겁니다. 보통 지금 발견한 암세포보다 1년이나 혹 늦으면 2년 쯤 뒤에야 발견할 수 있는 암 세포를 조기에 발견한 것입니다.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정확한 검진을 통해서 암세포를 발견한 집사님의 뛰어난 의술이 아닙니다. 그것보다는 환자의 몸 속에 자라기 시작한 암세포를 발견하고 기뻐하시는 名醫 집사님의 그 ‘마음’을 전해드리고 싶은 겁니다. 검사결과가 나온 직후 집사님께서 저에게 전화를 주셨습니다. 검사받은 집사님께 검사결과를 알려주기로 약속한 하루 전날이었는데, 얼마나 기쁘셨으면 저에게 그 검진결과를 먼저 알려주셨겠습니까!

집사님의 검진결과 전화를 받으면서 얼마나 감동을 받았는지 모릅니다. 차분하게 말씀하시는 그 음성 속에는, 주체하지 못하는 집사님의 기쁨과 감격이 담겨 있다는 것을 直感할 수 있었습니다. 기쁨을 감추지 못하시고, 행복해 하시는 모습이 눈에 선했습니다. 저는 그 때, ‘바로 저 모습이, 名醫들이 가지고 있는 아름다움이구나’ 혼잣소리로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 전화를 받고, 제가 하루 동안 참느라 무진 애를 썼습니다(집사님께 소식을 전하고 싶은 마음 간절했지만…의학적인 정확한 소견과 진단 결과를 직접 들으시는 것이 더 낫기 때문에…).

아마 모르긴 해도, 제 생각에는 집사님이 의사로 평생 사역하시는 동안, 이번 검진이 그 어느 때보다도 더 행복하고 기뻤던 일 중의 하나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집사님이 조기에 암세포를 발견한 기쁨은, 다른 기쁨이 아니지요. 환자를 사랑하는 마음 때문입니다. 암세포를 조기에 발견한 그 기쁨은 조금 늦었으면 생명의 잃어버릴 수도 있는 집사님의 생명을 살릴 수 있게 되었다는 생명 사랑의 기쁨이 아니겠습니까….

우리는 어떻습니까? 혹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라도 발견하면 어떻습니까?

우리가 분명히 알 것은, 혹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라도 발견했을 때에는, 그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마음이 없다면, 그의 문제나 아픔에 대하여 아예 처음부터 말을 하지 않는 것이 유익합니다. 그를 사랑하는 마음 없이 그 문제를 벌리기만 하면 치료도 못할 일을 상처만 내는 격입니다. 문제를 가진 형제를 사랑하는 마음없이는, 그 사람의 문제나 아픔을 치유할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마음 없이 형제의 눈에 있는 티를 보고 말하는 것은,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그 형제와 주변의 많은 사람들을 병들게 합니다.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그것을 악화시키는 결과만 초래합니다. 문제가 있는 형제를 사랑하는 마음이 없으면, 우리는 그의 문제에 대하여 말하지 말아야 합니다. 거기에는 하나님의 나라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3.
우리 안에서/ 이 땅에서/ 현존하는 우리의 삶 속에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나라는/ 아무런 문제도 없는 완벽한 나라가 아닙니다. 오히려 많은 문제가 있는 나라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는, 마치 어떤 사람이 자기 밭에 좋은 씨를 뿌렸는데, 그가 잠자는 동안에 원수들이 와서 가라지를 덧뿌리고 간 밭과 같다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이 말씀은, 우리 안에서 이루어져 가고 있는 하나님의 나라에는, 실제적인 수많은 문제와 갈등들이 共存하고 있는 나라라는 겁니다.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 안에 있는 문제를 어떻게 푸느냐 하는 문제해결의 방식입니다. 그 방법에 따라서, 우리 안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느냐 그렇지 않느냐가 결정됩니다. 즉, 하나님의 나라는 ‘思考方式’의 나라인 동시에, 나아가서는 그 ‘思考方式’을 넘어서는 ‘삶의 方式’의 나라라는 겁니다.

열 분의 목사님이 중심이 되어, 완주군의 폐교된 시골 초등학교를 고쳐서 설립한 세인고등학교라는 代案學校가 있습니다. 세인고등학교가 가지고 있는 특징이 있는데, 그 특징은 세 가지 입학조건을 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첫째 조건은, 중학교 성적이 최하위권인 학생, 두 번째 조건은, 학교생활을 하면서 정신적인 상처를 입은 경험이 있는 학생,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 조건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한 번 해보겠다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는 학생입니다.

이 입학조건에서 나타나는 세인고등학교의 특징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한 마디로 말하면, 일반교육에서 낙오된 문제 학생들을 키워서, (세계를 품고 남을 도와 줄 수 있는) 希望的인 이 시대의 인물로 키우겠다는 교육철학을 가진 학교임을 알 수 있습니다. 당연히, 그런 교육철학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문제학생들에 대한 교육방식이 다릅니다. 그들의 배움의 방식도 다릅니다. 바로 그 다른 교육의 방식과 다른 배움의 방식 속에서, 낙오되었던 그들이 대안적인 이 시대의 인물로 성공적으로 자라나고 있는 겁니다.

우리 교회는,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서도 이루는 교회가 되기 위한 꿈을 가지고 설립한 교회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아무런 문제도 없는 사람들이 모여서 시작한 교회는 더더구나 아닙니다. 우리 교회 역시 여느 교회에서 볼 수 있는 온갖 문제, 갈등, 아픔이 있는 교회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보다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은, 우리 안에 잠재되어 있는 수많은 문제와 갈등들을 어떻게 푸느냐 하는 겁니다.

개척한 지, 3년 이 되어가면서, 전에는 보이지 않던 문제들이 하나 둘씩 드러나고 있습니다. 남의 눈 속에 있는 티가 보이기 시작한 때가 되었습니다. 같이 살다보면, 왜 남의 눈 속에 들어 있는 티가 보이지 않겠습니까? 눈의 티가 없는 사람, 우리 중에 누가 있겠습니까? 만일 우리가 형제의 눈 속에 있는 더러운 티를 보았을 때, 어떻게 해야 우리 안에서 이루어질 하나님의 나라 빼앗기지 않을까요?

저는 문제와 갈등이 있는 우리 안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잃어버리지 않는 방법이 무엇인가를 이 말씀 속에서 찾아보았습니다. 그것은, 내가 발견한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의 문제를 ‘나와 그의 문제만’으로 생각하고, 제 삼자에게 더 확대시키지 않고, 그와 직접 그 문제를 푸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형제의 실수나 약점, 눈의 티를 그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다른 사람이나, 제3자에게 확산시키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 앞에 저 자신도 부끄럽지만, “남의 눈에 있는 티를 빼내기 전에, 먼저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를 빼내어라”는 말씀의 의미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발견한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가 있다면, 티가 있는 그 사람과 그것을 발견한 내가 직접 당사자가 되어서, 그 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겁니다.

그러나 우리는 내가 알고 있는 형제의 눈에 있는 티를 ‘나와 그’의 문제로 풀지 않고, 그와는 아무 상관도 없는 다른 사람에게, 그 문제를 확산시킬 때가 많습니다. 바로 그것이, 그를 심판하고 정죄하고 판단하는 교만한 행위가 되는 겁니다. 문제는, 그런 자리에는 ‘하나님의 나라’가 없다는 사실입니다. 거기에는 치유도 없고, 회복도 없고, 서로의 아픔과 상처를 더 크게 만드는 것 밖에 없습니다.

목회하는 저도, 때로 교우들에게 본의 아니게 아픈 상처를 주기도 합니다. 그런가 하면, 제 자신도 알지 못하는 수많은 스펨메일들로 인하여 목회적인 간접적인 상처를 받기도 합니다. 그 유익함이 무엇이겠습니까? 주님은, 그렇게 하지 말라고 우리에게 명령하십니다.

저는, 이 말씀 앞에 다시 제 자신을 세우면서, 간절한 소원을 하나님께 아룁니다. “하나님 아버지, 이 말씀이 평생토록 저를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보고 심판하고, 정죄하고, 판단하고자하는 그 마음에서 자신을 지키는 생명의 말씀이 되게 해 주십시오.” "하나님, 아버지 평생토록 남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끄집어 내어 비판하고, 심판하고, 정죄하고, 판단하는 일을 금식하는 목사 되게해 주십시오. 도리어 그를 긍휼히 여기고 자비를 베푸는 마음으로 목회하게 해 주십시오." 기도합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우리 높은뜻 숭의교회는 문제가 없는 교회가 되기 위해서 노력하기보다는,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문제가 있을 때, 그 문제를 하나님 나라의 방식대로 푸는 교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말씀이, 우리 안에 있는 갈등과 문제를 복음적으로 풀어내는 저와 여러분의 삶의 방식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 마음과 결심으로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성찬을 받기를 원합니다. 이 성찬을 함께 먹고 마실 때, 우리 안에 있는 아픔과 성처들이 치유되고, 용서되고, 회복되는 성찬의 사건이 우리교회와 저와 여러분의 것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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