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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그대로 두소서 (눅 13: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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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김광일 목사 (벧엘감리교회)

지난 번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 사건 때의 일입니다. 30년 동안 믿음 생활을 해 온 69세의 김창제 집사는 교회의 기도모임에 가기 위해 전철을 탔다가 변을 당했습니다. 그는 출입문이 굳게 닫혀 나갈 수 없는 상황에서 불타고 있는 전동차에 갇혀 있었습니다. 부인 석태순 집사는 남편인 김집사로부터 걸려온 핸드폰을 받았는데 웅성거리는 소리만 들릴 뿐이었습니다. 곧 다시 전화가 연결되었는데 차분한 남편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나 하늘나라로 먼저 올라가네. 할렐루야 아멘”. 그 말을 남기고는 전화가 끊겼습니다. 전화 통화된 지 다섯 시간 후 그의 부인은 성경책을 가슴에 꼭 품은 채 눈을 감은 남편의 시신을 병원에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예고 없이 찾아옵니다. 김 집사와 같이 갑작스런 재난을 당하여 세상을 떠나게 될 수 있습니다. 사실 삶과 죽음 사이는 그리 멀지 않습니다. 우리가 살았다고는 하지만 사실은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살아있는 날 동안 단 하루라도 무의미하게 보내서는 안됩니다. 자기 삶에 후회 없이 살아야 합니다.
본문은 삼 년을 두고 무화과나무에 열매를 찾으러 온 주인이 계속해서 열매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를 보고 아예 찍어버리려 하였습니다. 이때 과원지기는 “그대로 두소서 내가 두루 파고 거름을 주어 열매를 맺도록 해보겠다” 고 심판의 유예를 요청합니다. 여기의 주인은 하나님이요, 과원지기는 예수님이십니다. 오늘도 예수님은 잘못되어진 우리의 삶을 심판하려는 하나님을 향해 “그대로 두소서” 하며 하나님께 심판의 유예를 요청하고 계십니다. 그렇다면 우리를 향한 주님의 “그대로 두소서” 라는 말씀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첫째로 우리가 회개하기를 원하십니다

1954년 빌리그래함 목사가 영국 런던에서 부흥회를 인도할 때 일입니다. 어느 부인이 설교를 잘 듣기 위해서 일부러 제일 앞자리에 앉았는데 옆에 있는 두 남자가 계속해서 목사님이 말씀을 할 때마다 이러니 저러니 하면서 비방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부인은 두 남자 때문에 말씀을 제대로 들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설교가 진행되면서 그렇게 비방하던 그들의 말소리가 점점 줄어들더니 나중에는 열심히 설교를 듣는 것이었습니다. 어느 덧 설교가 끝나고 빌리그래함 목사는 마지막으로 이제부터 예수를 믿기로 결심한 사람이 있으면 앞으로 나오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러자 뜻밖에도 옆에 비방하던 남자가 벌떡 일어섰습니다. 그리고 자기 옆 사람에게, “나는 지금 나가려고 하는데 당신은 나갈 마음이 없소?” 라고 물어보는 것이었습니다. 옆에 있는 사람은 몹시 당황했습니다. 우물쭈물하다가 “예, 저도 나가지요” 라고 말하고는 속주머니에서 돈지갑을 꺼내 부인에게 주면서 말했습니다. “저는 소매치기입니다. 조금 전 부인의 지갑을 도둑질했습니다. 그러나 말씀을 들으면서 제가 진정 죄인임을 깨달았습니다. 이제 회개하러 나가면서 부인에게 지갑을 돌려드립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그는 즉각적으로 회개에 합당한 모습을 보인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지금 우리들이 죄악의 길에서 분명한 결단을 내리고 속히 돌이켜 회개하는 자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 앞에 회개할 제목을 찾으시기 바랍니다. 특히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이 열매맺지 못했음을 회개하기 원하십니다. 교회는 다니나 하나님이 생명의 주이신 것을 고백하지 못했음을 회개해야 합니다. 아직도 머뭇거리면서 하나님의 말씀만이 참된 생명의 양식이 됨에도 육의 양식으로 채우려는 죄를 회개하여야 합니다. 말로만 주여, 주여 하고 행동으로는 오히려 하나님을 욕되게 하던 부끄러운 지난날의 삶을 회개해야 합니다. 맡은바 사명을 위해 희생하며 봉사해야 함에도 자신의 유익만을 위해 신앙생활하고 자신의 편의만을 생각하고 행동했었던 일들을 모두 회개하여야 합니다.

이제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라고 말씀하시는 주님의 은혜에 힘입어 회개할 기회를 얻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기회가 주어질 때 회개하지 않으면 이보다 훨씬 더 순식간에 회개할 여유를 갖지 못한 채 죽을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회개는 늦추어져서 안됩니다. 우리가 사는 날 동안 계속되어야 합니다. 지금 이 순간에 여기에서 회개해야 합니다. 그리할 때 우리는 망하지 않습니다. 회개의 기회가 항상 끝없이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언제 어느 때에 죽음의 그림자가 우리에게 찾아 올 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이사야 55장 6절 말씀처럼 하나님을 만날만한 때에 가까이 계실 그 때에 찾아야 합니다. 그리고 지금도 우리들이 회개하기를 기다리시기에, 하나님께 “그대로 두소서” 하는 주님의 음성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우리가 열매 맺기를 원하십니다.

3년이 되어도 열매 맺지 못하고 잎만 무성한 채로 땅만 차지하고 있는 무화과나무는 포도원의 방해물이 되기 시작합니다. 사실 무화과나무는 바깥에 있던 나무가 포도원에 옮겨 심어졌습니다. 전적인 주인의 은혜입니다. 그리고 3년 동안 주인과 과원지기의 극진한 보살핌 가운데 있었습니다. 이러한 주인의 돌봄이 없었다면 주인은 무화과나무에 대해 아무 것도 요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신학자 윌리엄 버클레이는 예수님은 우리에게 “당신은 다른 사람을 얼마나 괴롭혔습니까?” 라고 묻지 않고, “당신은 얼마나 선한 일을 하였습니까?” 를 묻는다고 하였습니다. 신앙생활 하는 성도들 가운데,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살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우리에게 물으시는 것은 “우리가 있는 그 자리에서 무슨 일을 하였느냐?” 하는 것입니다.

2차 대전 당시, 프랑스에서 나치에 저항했던 저항운동가인 레지스탕스들이 감옥에서 처형당할 때, 저항운동에 참여한 적이 없으면서 잡혀온 한 사나이가 불평합니다. “나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단 말이요. 나는 독립운동가가 아니란 말입니다. 죽는 것이 억울합니다.” 이때 처형을 기다리고 있던 한 저항운동가가 그 사람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은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는 것, 그것이 바로 당신이 죽어 마땅한 점이오. 전쟁은 5년 동안이나 계속되었소. 수백만 명의 무고한 사람들이 무참히 피를 흘렸고 수많은 도시들이 파괴당했소. 조국과 민족은 멸망 직전에 놓여 있소. 그런데도 도대체 당신은 왜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단 말이오!”

본문의 주인은 무화과나무에게 ‘얼마나 자랐느냐?’ 를 묻지 않았습니다. 열매를 요구했습니다. 왜냐하면 열매로 나무를 평가하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17장 16절에 주님은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신앙생활은 그냥 하는 게 아니라 좋은 결과를 위해 해야 합니다. 아무리 여러분이 자신의 신앙을 자랑하여도 열매가 없다면 잎만 무성한 무화과나무이며 땅만 허비하고 있는 못된 나무인 것입니다. 주님은 여러분을 사랑하셔서 좋은 땅인 우리 교회를 허락하셨습니다. 포도원에 옮겨 심어진 무화과나무를 향한 주인의 기대처럼 하나님은 여러분들이 열매 맺기를 기대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열매 맺지 못하여 주인이신 하나님을 실망시켜 드리지 말고 모두 좋은 열매를 맺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셋째로 우리가 책임지기를 원하십니다

얼마 전 타이타닉의 주제가를 부른 셀린 디온이 갑자기 은퇴를 선언했습니다. 폭발적인 가창력으로 세계를 매료시켰고 발매되는 음반마다 수백만 장이 팔리는 세계 최고의 여가수였습니다. 그러한 그녀가 은퇴를 하게된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녀는 12살 때 자기가 부른 노래 테이프를 들고 후원자를 찾아다녔습니다. 그러나 모두가 실력은 인정했지만 아무도 선뜻 그의 후원자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 순간 안젤린이라는 청년이 실망한 그녀에게 격려를 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전 재산을 처분해 그녀의 음반을 만들어주었습니다. 그리고 셀린의 일이라면 무조건 희생적이고 헌신적으로 그녀를 돕습니다. 그러다가 결혼을 하게 되었고, 그녀는 남편의 도움으로 세계적인 가수가 됩니다. 그런 그녀가 은퇴하면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제 남편이 지금 후두암으로 투병중입니다. 남편에겐 저의 손길이 필요합니다. 이제까지 많은 빚을 진 남편 곁에서 그에게 따뜻한 손길을 주고 싶습니다. 저의 성공보다 남편과의 사랑이 저에게는 더욱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는 남편에 대해 책임을 지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준 것입니다.

본문을 보니 주인이 열매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를 찍어버리려 할 때 과원지기가 나타납니다. 그리고 하는 말이 “금년에 그대로 두소서. 내가 두루 파고 거름을 주리라” 고 합니다. 이 말속에서 책임지는 신앙을 찾아보게 됩니다. 스티븐 코비는 ‘성공하는 사람의 일곱 가지 습관’ 이란 자신이 쓴 책에서 성공한 사람들의 습관 중의 첫째가 ‘Proactivity' 라고 말합니다. ‘주도성’ 이라고 번역하는데 그 말은 ‘내가 책임진다’ 는 뜻입니다. 이 과원지기는 열매 없는 실패의 책임을 졌습니다. 열매 없는 책임이 내게 있다고 말합니다. 나무에만 책임이 있는 것이 아니라 내게도 책임이 있다는 택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그 뿐 아니라 책임을 지고 다시 한해동안 땅을 파고 거름을 주고 정성을 다하며 열매 맺기 위해 힘을 다하겠노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우리 각자는 이 과원지기와 같은 책임지는 자세로 하나님의 일을 해야 합니다. 교회가 어려워 질 때, ‘하나님 아버지, 내가 아직도 할 일이 있습니다. 내가 해 보겠습니다’ 라고 과원지기처럼 나서야 합니다. 이런 사람이 있는 한 하나님의 교회는 반드시 세워질 줄로 믿습니다. 언제나 남 탓하고 무화과나무 탓하고 땅 탓하고 주인 탓하는 무책임한 사람들은 아무리 숫자가 많아도 소용없습니다. 우리 교회에도 책임을 지려는 성도들이 많아져야 합니다. 그리할 때 교회는 반드시 부흥될 줄로 믿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기회는 단 한번뿐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본문 9절에 ‘이후에 만일 실과가 열면이어니와 그렇지 않으면 찍어 버리소서’ 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여기에서 ‘이후’ 라는 단어는 ‘우리에게 남아있는 시간’ 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기회는 무한정 있는 것이 아니며, 하나님의 자비 또한 언제까지 계속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교훈하고 있는 것입니다.

“올 한해 어떻게 살아오셨습니까? 다시 주시려는 새로운 한해는 어떻게 살아가시렵니까?”. 또 기회가 있올 것이라고 안일하게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어쩌면 지금의 기회가 우리에게 주신 마지막 기회일 수도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하여 회개하는 마음으로, 책임을 지는 마음으로, 열매를 맺으려는 마음으로 이제 주어진 기회 속에서 최선을 다하는 믿음의 성도들이 다 되어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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