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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아름다운 성숙을 위하여⑦ - 임술을 제어할 줄 아십시오 (약 3: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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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이덱재 목사 (빛과소금교회)

오늘 본문의 <3:1>은 선생이 되지 말라는 것은 문자 그대로 선생이 되지 말라는 말이 아닙니다. 말을 삼가야 한다는 멧세지의 은유적 표현입니다.

말의 실수를 하지 않는 것이 좋은 것인데, 선생은 말을 많이 할 수 밖에 없고 그러다보니 말 실수를 하기 마련인지라,
“성숙한 사람이 되려면, 말실수를 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 멧세지를 은유적으로 선생이 되지 말라고 한 것입니다. 

<2절>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말에 실수가 없는 자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 몸도 굴레 씌우리라”
눈은 천금같고 몸은 해삼처럼 방바닥에 퍼져 있고 싶은데 일어나야 하는 시간에 일어날 수 있는 것, 피곤에 지쳐서 그냥 해삼처럼 퍼져있고 싶은 몸을 일으켜서 일할 수 있는 것, 이렇게 몸을 제어하는 것보다 말에 실수가 없는 사람이 더 온전한, 성숙한 사람입니다.

세 치 혀를 다스릴 줄 아는 사람은 자신의 온 몸을 다스릴 줄 아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영적으로 성숙한 사람의 지표 중의 하나가 혀를 잘 다스릴 줄 아는 것입니다.

청교도 설교가였던 시들로우 백스터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우리 안에 있는 증거는, 우리의 혀가 알지 못하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알고 있는 말을 하는 우리의 혀를 잘 다스리는 것이다.”

사람은 말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평균적으로 사람은 하루의 1/5을 말하며 지내고 30번의 대화를 한다고 합니다. 남자는 하루에 2만 단어를 말하고 여자는 하루에 3만 단어를 말한다고 합니다.

신체의 자유를 속박하는 감옥 자체가 인간에게는 고통이지만, 그러나 여러분 감옥 중에서도 제일 고통스러운 형벌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독방입니다. 하루 종일 아무하고도 말할 기회를 안주는 것이 인간이 겪는 제일 큰 고통입니다.

인간은 말을 안하고 살 수는 없는데, 문제는 말을 잘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말 한 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는 속담을 다 알지만, 우리 모두는 요 놈의 주둥아리 때문에, 말 한 마디 때문에 천 냥을 물어내야 하는 경험들이 한 두 번은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도 야고보는 성숙한 사람의 중요한 표지가 입술을 잘 제어하여 말을 잘 하는 것임을 밝힙니다. 우리가 우리 입술을 잘 다스려야 하는 이유, 사도 야고보는 여섯 가지 비유로써 세 가지 이유를 제시합니다. 각 이유마다 두 개씩의 비유를 들어서 깨우칩니다.

첫째로, 혀는 내 인생의 방향을 결정해 줍니다. 앞으로의 여러분의 인생이 어떤 길로 가게 될지 알고 싶습니까? 오늘 내가 어떤 이야기를 좋아하고 무엇에 대하여 가장 많이 이야기하는 지를 살펴 보십시오. 우리가 무엇을 말할지를 결정하지만, 거꾸로 우리의 말이 우리들 모습도 결정합니다.

야고보는 혀는 우리 신체에서 아주 작은 부분이지만, 그러나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을 가르쳐 줍니다. 말의 재갈과 배의 키를 비유로 들어서 혀가 우리 인생의 방향을 결정해 줌을 깨우쳐 줍니다.

종마의 무게는 보통 1,000kg, 1톤 내외입니다. 이 말을 제어하는 재갈은 그 1,000분의 1인 1kg이 못 됩니다. 그러나 1,000kg의 말이 1kg의 재갈에 의하여 기수의 마음대로 조정이 됩니다.

배를 생각해 보십시오. 몇 만 톤, 몇 십만 톤하는 배의 방향을 잡아주는 것은 작은 키입니다. 말의 재갈처럼, 배의 키처럼, 혀가 내 인생의 방향을 결정합니다.

예)  우리나라의 고시 3과를 최초로 다 합격한 사람, 청렴한 개혁가로서 무소속으로 대통령 후보로 나왔어도 100만표 이상을 얻은 사람, 그래서 많은 사람으로부터 차기 대통령감이라고 지지를 받았던 사람이었는데 말 한 마디 때문에 그 명성이 하루 아침에 떨어지고 이젠 아무도 그를 더 이상 주목하지 않게 된 사람이 있습니다. 청렴한 정치가, 장래가 총망되던 정치가로서의 전도가 양양하던 그의 인생은 방향을 상실하게 되었고 그의 명성은 거짓말 한 마디 때문에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입술을 아무렇게나 놀리는 사람은 그 인생이 아무렇게나 흘러갑니다. 이렇게 말했다가 저렇게 말했다가 하는 사람의 인생은 우왕좌왕하며 정신이 없습니다. 가만히 있었으면 중간이라도 갔을텐데 괜히 아는 척 했다가 오히려 창피를 당하는 경우도 많고 일을 더 힘들게 하는 경우도 왕왕 많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 인생의 방향을 바꾸고 싶으면 먼저 말하는 방식을 바꾸십시오.

둘째로, 혀는 나의 모든 소유를 파멸시킬 수 있습니다. 5절 하반부에서는 혀를 불에 비유합니다. 또 8절에서는 혀를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 독사의 독에 비유합니다.

혀는 사소한 것처럼 보이지만, 모든 것을 순식간에 태워 없애 버릴 수 있는 불과 같은 것이며, 직경 1mm짜리 이빨자국 두 개 밖에 내지 않지만, 순식간에 사람의 생명을 앗아갈 수 있는 뱀의 독처럼 파괴적인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1983년에 호주에서 산불이 일어났는데, 하룻 밤 사이에 반경 1,000km 에 달하는 지역의 땅과 가축을 모두 불태워버렸습니다. 이렇게 엄청난 불의 시작은 등산객 하나가 잘못 버린 성냥불 하나 때문이었습니다.

1871년 10월 8일 저녁 8시30분에 미국 시카고의 오릴리 헛간에서 불이 일어났었는데 이 불은 17,500채의 가옥과 건물을 불태웠으며, 10만명이 넘는 이재민을 발생했으며, 300명 가량이 죽었으며 4억달러(5천억원)의 재산 피해를 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부주의한 말 한 마디 때문에 그들의 결혼, 경력, 평판, 명성 우정을 파괴시킵니다.

2차 세계대전의 도화선이 된 것은 선동적인 말 몇 마디 때문이었습니다. 부부간의 다툼이 일어나는 경우를 보십시오. 많은 경우가 공격적인 말 한 마디, 인격 모독적인 말 한 마디에서부터 시작되지 않습니까?

우리는 우리의 말로 다른 사람을 저격할 수도 있고 다른 사람의 인격을 암살할 수도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우리의 말 한 마디 때문에, 공들에 쌓아놓은 좋은 것들을 하루 아침에 무너뜨리게 할 수도 있습니다.

명심보감에는 이렇게 기록하였습니다. “ 입과 혀는 화와 근심의 문이요, 몸을 죽이는 도끼와 같다 ”

혀는 내 인생의 모든 소유를 무너뜨릴 수 있음을 기억하십시오.

셋째로, 혀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드러내 줍니다. 나의 진짜 성품이 무엇인지, 내 인격이 어떠한지 내 입술의 말이 나타내줍니다.

사도 야고보는 이렇게 내 존재의 정체를 밝혀주는 혀의 기능을 나무와 샘으로 비유합니다. 콩 심은 데 콩나고 팥심은 데 팥나듯이, 무화과나무는 무화과를 열매맺고 포도나무는 포도나무을 맺습니다. 물 근원이 짜면 짠 물을 내는 샘이 되고 물 근원이 달면 단 물을 내는 샘이 됩니다.

혀는 간사한 것입니다. 사도 야고보도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면서 이야기하듯이, 어떻게 한 입으로 찬송과 저주가 함께 나는지, 내 형제들아 세상에 이런 일이... 있구나 이래서는 안되는 데, 이런 모순된 일이 왕왕 있음을 망측하게 생각합니다.

예) 야채 가게에 어느 여자가 상추를 사러 왔습니다. “상추 반근만 주세요” 일하는 점원이 안으로 들어가서 주인에게 “웬 푸대자루가 상추 반근만 달라는데요” 하는데 바로 뒤에 그 여자가 따라 들어왔습니다. 그러자 이 점원이 다시 말합니다. “그리고 나머지 상추 반근은 이 아름다운 여인이 달라는데요”

혀는 간사한 것입니다. 한 입으로 찬송과 저주를 같이내는 교활한 모습을 보이지만, 그러나 혀는 결국 그가 어떤 사람인지를 보여 주고야 맙니다.

<잠26:23-26> “온유한 입술에 악한 마음은 낮은 은을 입힌 토기니라 감정있는 자는 입술로는 꾸미고 속에는 궤휼을 품나니 그 말이 좋을지라도 믿지 말 것은 그 마음에 일곱 가지 가증한 것이 있음이라 궤휼로 그 감정을 감출지라도 그 악이 회중 앞에 드러나리라”

예) 입 큰 개구리

교회도 처음 오면 다들 고상한 척 말을 우아하게 하지요? 그러다 노래방에 한번 갖다 오고, 몇 달 지나면, 본색을 드러내고야 맙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명확히 가르쳐 주셨습니다. <눅6:45> “선한 사람은 마음의 쌓은 선에서 선을 내고 악한 자는 그 쌓은 악에서 악을 내나니 이는 마음의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니라”

입술은 결국 내 마음의 색깔이 어떠함을 나타내줍니다. 정신분석학자 지그몬트 프로이드가 무심결에 튀어 나온 말이 그 사람의 무의식적인 욕구를 나타내는 말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이런 말을 프로이드의 실언(Freudian Slip)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는 프로이드가 맨 처음 발견한 것이 아니고 2,000년 전에 예수님께서 일찌감치 가르쳐 주셨습니다. 우리의 안에 있는 것이 입술을 통해서 보여집니다. 마치 의사가 환자의 상태를 진단하기 위하여 “아”해 보라고 하듯이내가 어떤 사람인지, 내 마음이 어떤 상태인지 혀는 그대로 보여줍니다.

그러므로 만약 우리의 언어생활, 혀에 문제가 있다면 그것은 우리가 “요놈의 오도방정같은 주둥아리”가 문제가 아니라 그보다 훨씬 심각합니다. 혀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문제입니다.

언어가 거친 사람은 분노를 안고 있는 사람입니다.
부정적인 언어습관을 가진 사람은 마음에 두려움이 있는 사람입니다.
과장되게 이야기하는 좋아하는 사람은 그 마음이 궁핍하기 때문입니다.

자랑을 늘어놓기 좋아하는 사람은 그 마음이 안정감이 약하기 때문입니다. 
음란한 이야기를 늘어놓는 사람은 그 마음이 청결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항상 비판적인 말을 하는 사람은 그 마음에 비통함이 있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을 헐뜯는 사람은 그 마음이 열등감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의 말을 듣지 않고 자기 말만 하려는 사람은 그 마음이 조급하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항상 다른 사람을 격려하는 사람은 자신의 마음이 행복하기 때문입니다.
부드럽게 말하는 사람은 그 마음이 안정적이기 때문입니다.
진실되게 이야기하는 사람은 그 마음이 담대하기 때문입니다.
마음에 사랑이 많은 사람이 위로의 말을 잘 건네줍니다.
겸손한 사람이 과장하지 않고 사실을 말합니다.
마음이 여유가 있는 사람이 말하기 앞서 다른 사람의 말을 잘 듣습니다.

혀는 작은 것이지만, 내 인생의 방향을 결정해 주고, 내 소유를 순식간에 파멸시킬 수도 있으며 그리고 내 인격이 어떠한 지를 보여주는, 막중하게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그러므로 혀를 잘 다스리기를 사모하십시오.

그러면,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가 말을 안하고 살 수는 없고 어떻게 혀를 잘 다스릴 수 있겠습니까?

<7,8절>에 보면, “여러 종류의 새며 벌레와 해물은 다 길들므로 사람에게 길들었거니와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혀를 길들이는 것, 말이 안 통하는 동물을 훈련시키는 것보다 어려운 것임을 기억하십시오.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면, 사람의 힘과 지혜로는, 사람의 결심으로는 아무리 “웅변은 은, 침묵은 금”이라고 외치고 되뇌이어도 사람의 힘으로는 혀가 길들여지지 않습니다. 입술을 제어하기 위하여는 초자연적인 도움이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입술을 잘 제어하기 위하여 첫째로,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십시오. 그러므로 기도하십시오. 내 스스로 입술을 제어할 수 없음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십시오.

<시141:3>의 시편 기자처럼 “여호와여 내 잎에 파숫꾼을 세우시고 내 입술의 문을 지키소서” 기도하십시오.

둘째로, 말하기 전에 생각하는 습관을 개발하십시오. <잠15:28> “의인의 마음은 대답할 말을 깊이 생각하여도 악인의 입은 악을 쏟느니라” 당신의 느낌을 쏟아붓지 말고 마음 안에서 소화된 생각을 말하는 습관을 연습하십시오.

입이 근질근질할 때는 말하지 말아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앗쌀하게 쏟아 부었을 때는, 이미 잘 못 말한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무언가에 도취해서, 다른 사람들이 치켜 세워 주니까 자랑스럽게 떠벌렸을 때에는 이미 어리석음을 다 쏟아낸 것입니다.

셋째로, 입술을 잘 다스리기 위하여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마음을 다스리기를 사모하십시오. 사람의 혀는 혀 자체만 다스리려고 해서 결코 다스려지지 않습니다. 마음의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하는지라, 마음이 잘 다스려지면 다스려질수록, 혀도 더욱 잘 길들여집니다.

마음을 잘 다스리는 주제에 대하여는 다음 주에 자세히 말씀드리겠습니다. 기대하시라 개봉박두!!  오늘은 이 한 가지는 새겨 두십시오.

여러분, 당신은 당신의 마음을 스스로 다스릴 수 있습니까? 스스로 다스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분은 아직도 자기 자신을 잘 모르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소크라테스에게 먼저 가서 배우고 올 필요가 있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속으로 굉장히 불쾌하게 느껴지는 사람은...내 마음은 많이 치유를 받아야 되는구나 생각하시면 맞습니다.

사람의 마음은 사람의 힘으로 다스려지는 종류가 아닙니다. 마치 말의 재갈과 배의 키가 기수와 항해사의 강한 팔에 의하여 통제되듯이, 사람의 마음은 영적인 힘에 의하여 다스려집니다.

사람의 마음이 온유하게 아름답게 다스려지는 것은 그리스도께 전적으로 맡겨질 때입니다. 우리의 마음을 주 예수 그리스도께 온전히 맡길 때에 그리스도께서는 성령님을 보내 주셔서 우리에게 새 마음을 주십니다. 이전의 천방지축같은 마음을 조금 고쳐서, 땜질해서, 기워서 조심해서 사용해라 하는 것이 아니라, 대책없이 흘러가는 옛 마음은 처분하고 성령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마음과 새 영을 주십니다.

<겔36:26>의 예언을 보십시오.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누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새 마음을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새 마음을 받습니까? 예수님을 그리스도, 주님으로 모셔 들이십시오. 당신의 마음을 예수님께서 다스려 주시도록 전적으로 맡기십시오.

“예수님, 제 힘과 의지로는 안됩니다. 제 마음은 부패하고 나도 모르게 흘러가기 잘하는 연약한 죄인입니다. 예수님께서 저의 주인이 되어 주셔서 제 마음을 다스려 주십시오. 제 마음을 예수님께 온전히 드립니다” 이렇게 기도해 보십시오. 이렇게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셔 들이십시오.


그것이 당신이 새 마음을 얻어 입술을 제어할 줄 알게 되는 것뿐만이 아니라, 삶의 모든 면에서 영적 성숙을 이루는, 아름다우신 예수님을 닮아가는 거룩한 시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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