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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주님의 손길이 닿는 곳마다 (눅 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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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이양수 목사

  예수님이 사셨던 시기의 유대나라는 총독이 통치하고 있었는데 이때는 유대인에 대한 탄압정치가 가중되고 있었습니다. 유대총독의 최대 권한은 세금 징세권이었는데 정당한 납세가 이루어지지 못했습니다. 총독은 군사권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총독에게는 다섯 개의 천인대가 있었는데 넷은 총독이 머무르는 가이사랴에, 하나는 예루살렘에 배치하고 있었습니다. 또 사법권도 가지고 있어서 정치범에 대한 사형집행을 행할 수 있었습니다. 그 외의 직권은 유대자치 기관인 산헤드린 이라는 최고법정에 위탁되어 있었습니다. 산헤드린은 백성들에게 절대 권력을 행사하고 있었습니다.
  반면에 백성들은 로마 제국과 대토지 소유층에 의해서 착취의 대상이 되어 있었고, 종교에 있어서는 바리새파와 같은 사람들에 의해서 차별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이런 시대적인 배경아래서 일반 민중들의 삶은 비참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먹고 살기 위해서 소농민은 가내 수공업이나 소규모 가축으로 양을 사육하고, 갈릴리에서는 어업으로 생계를 꾸려갔습니다. 이것도 저것도 유지할 수 없는 악조건에서 스스로 소작인이 되거나, 부채 노예가 되거나, 여자의 경우에는 몸을 파는 등 어떤 일이든 해야 했습니다.
 
  그 시대는 너무나 어둡고 어두웠습니다. 그들은 소리쳤을 것입니다.
“어두워요. 칠 흙 같이 어두워요. 모두 캄캄한 어둠뿐. 빛을 주세요. 제발, 빛을 다시 한 번만 주세요.”
“추워요. 너무 추워요. 모두 얼어붙게 만드는 바람이 우리를 휩싸고 있습니다. 저 바람을 멈추게 해주시오. 우리를 저 바람에서 피하게 해 줄 사람이 거기, 거기 아무도 없소?”
“안 보여.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천길 낭떠러지로 떨어질 것 같아요. 여긴 어디야? 어디가 앞이야? 제발 앞이 보이게 해줘요. 누가 내 손을 좀 잡아 주세요.”
  여인들은 소리칩니다.
“아이가 울고 있어요. 배가 고파서 그래요. 이렇게 고통스러울 줄 알았으면 낳지 말 것을... 배가 고파서 이젠 아이가 울지도 못해요. 난 굶어 죽어도 좋지만 이 아이만은... 이 아이만은...”
“빛을... 빛을 주시오. 우리에게 밝고 따뜻한 빛을 주시오. 우리를 꽁꽁 묶고 있는 이 어둠의 사슬을 제발 좀 풀어 주시오. 거기... 거기 누구 없소? 우리를 살려 주시오. 우리를 살려 주시오.”

그리고 마침내 우리 주님은 그 억압과 고난의 현장 속으로 들어오셨습니다.
 
  이사야 선지자와 세례요한은 그렇게 우리 주님이 오실 것을 예언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오심으로 세상과 사람들이 이렇게 변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골짜기가 메워지고 모든 산과 작은 산이 낮아지고 굽은 것이 곧아지고 험한 길이 평탄하여 질 것이요 모든 육체가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보리라”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심으로 골짜기와 같이 깊이 패여 진물이 흐르고 골짜기와 같이 무너져 내린 사람들의 마음에 하나님의 위로로 채워졌습니다. 높은 산과 같이 아무것도 부족함이 없다고 느끼던 사람들의 마음속에 있는 높은 교만을 꺾어버리시고 그들을 겸손케 하셨습니다. 잘못된 사상과 생각으로 우리의 생각이 뒤틀리고 굽어진 것을 우리 주님은 하나님 나라의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바르게 하셨습니다. 돌짝 밭과 같이 거칠고 험한 우리들의 심령 속에서 단단하고 뾰족한 돌과 같은 죄악들을 다 골라내시고 우리의 마음이 부드러운 흙이 되도록 새롭게 경작하여 주셨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신 사랑을 알게 하셨습니다.

  2000년 전 고통 속에 있던 유대사람들이 메시야를 간절히 기다리듯 우리도 오늘 주님의 강림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오늘 정치는 어지럽습니다. 나라를 위해서 일하라고 그들을 뽑았지만 정치는 나라를 안정시키지 못하고 있습니다. 경제는 더 어렵습니다. 실직자가 늘어나고, 파산한 기업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더 이상 칠 바닥이 없다고 절망하고 있습니다.
  가정은 깨어지고, 이혼하는 가정이 늘어나고, 그 깨어진 가정 속에서 아이들은 돌봄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마음은 더 황폐하여 거짓이 정의를 삼키려 하고 있습니다. 정직하게 땀 흘려 성공을 이루지 않고 부정한 방법으로 목적만 이루면 된다는 마음의 장애를 사람들이 앓고 있습니다.
  우리는 오늘 메시야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정치적인 메시야만을 기다려서는 안 됩니다. 뛰어난 리더십을 가진 사람이 이 나라를 통치하면 이 나라가 안정될 것이라고 단순하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경제의 메시야만을 가다려서는 안됩니다. 정말로 어려운 지금의 경제의 숨통을 트이게 할 경제 전문가만을 기다려서는 안 됩니다. 사회의 메시야만을 기다려서도 안 됩니다. 
  여러분은 우리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고 있습니까? 그 주님께서 내 삶의 어떤 문제 가운데 오시기를 기다리고 있나요? 가정의 경제, 자녀들의 문제, 내 건강의 문제, 내 직업의 문제... 내가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든지 우리 주님을 내 삶의 어떤 한 부분의 주님으로 인정해서는 안 됩니다. 내 영혼과 내 모든 삶, 모든 형편의 주인으로 그 분을 기다리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기다리는 메시야는 우리 인생의 일부분의 역할을 감당하는 그런 불완전한 메시야가 아니라 우리의 모든 것의 주인 되신 만왕의 왕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님이 이 땅에 임함으로 골짜기가 메워지고 높은 산이 낮아지고 굽은 것이 평탄해졌듯이 우리의 문제가 어디에 있든지, 우리의 아픔이 어느 곳에 있든지 모든 것을 다스리고 치유할 수 있는 우리 주님이 내 맘 가운데 오신다면 내 삶의 문제는 해결될 수 있습니다. 나의 고통이 무엇이든 육신이 되신 그 분의 말씀이 내 아픔 가운데 임하면 아무리 깊은 골짜기와 같은 내 아픔도 메워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내게 임한다면 절망으로 무너진 나의 마음에 새살이 돋아날 수 있습니다.

  대림절은 메시야를 희망하는 시간입니다. 우리를 치유하고 구원함으로 하나 되게 하실 그 분을 희망하는 시간입니다. 요즘은 고난의 때입니다. 개인도, 가정도, 교회도, 사회도 그리고 세계도 고난을 헤쳐 나갈 수 있는 하나님의 재림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기다리는 비결은 가난한 마음입니다. 우리가 아무 것도 아닌 것에 대한 무력하고도 구제될 가망조차 없음에 대한 인식...
  우리는 하나님을 기다리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나 어느 곳으로 오실지, 어떤 시각에 오실지, 어떤 계절에 오실지, 어떤 방법으로 오실지는 그 분께 맡겨버려야 합니다..

  우리 주님은 주님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는 우리들에게 오실 것입니다. 내가 주님을 가장 필요로 할 때 주님은 가장 적절한 방법으로 내 마음에 임하실 것입니다.


(기도회)

1. 병든 자들을 위한 기도
육신의 질병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소아병동의 그 고사리 같은 어린 아이들, 병원에 입원해 있는 수많은 환자들, 한 가닥 남은 소망의 빛줄기를 붙잡고 기도하는 아픈 사람들... 그들은 왜 아프고 우리는 건강할까요? 우리가 그들 보다 의롭기 때문일까요?
  라이나 마리아 릴케는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지금 이 세상 어딘가에서 울고 있는 사람,
까닭도 없이 이 세상에 울고 있는 사람은,
나를 위해 울고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 어딘가를 걷고 있는 사람,
까닭도 없이 이 세상을 걷고 있는 사람은,
나를 향해 걷고 있는 것입니다.

  릴케의 통찰력이 옳은 것이라면 오늘 아픔을 겪고 있는 병든 자들은 어쩌면 나의 죄와 아픔을 대신 짊어지고 아파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아픈 몸을 가지고 기도하고 있지만 그 기도는 자신을 위한 기도가 아니라 어쩌면 우리를 위한 기도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나를 위한 기도가 아니라 그들을 위한 기도를. 병중에 있는 우리 성도들을 위해서 기도해 주십시오.
(방보옥 권사님, 김광철 목사님, 이성룡 장로님, 조복녀 권사님, 그 외에 모든 아픈 성도들... )

2. 상처받고 고통 받는 자들을 위한 기도
  경제적으로 어려워서 고통 받는 성도들이 많이 있습니다. 회사가 어려워져서 당장 끼니 걱정을 해야 하는 성도들, 돈이 없어서 자녀들을 교육할 수가 없고, 자녀들의 암담한 미래를 지켜보아야만 하는 부모들이 있습니다. 어쩔 수 없이 헤어져야만 했고, 집을 나가버렸고, 내게 맡겨진 아이들과 함께 살아가야하는 아버지, 어머니들이 있습니다. 아이들은 돌봄을 받지 못해서 가출을 하고, 자꾸만 삐뚤어져가지만 혼자서 감당할 수 없어서 괴로워하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신앙생활 하면서 낙심한 자들이 있고, 우리 자신의 부족함으로 인해서 그들이 받은 상처도 있습니다. 
  상처받은 그들의 마음이 위로받게 하시고, 주님의 말씀이 닿은 곳마다 회복되고 소생되게 하시옵소서.

3. 소망을 잃어버린 자들을 위한 기도
  우리 곁에는 소망을 잃어버리고 절망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서 추운 겨울을 지내야 하는 노숙자들. 자녀들도 없이 홀로 살아가는 할아버지, 할머니들. 장애인들과 사회의 돌봄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
부모에 의해서 버려진 아이들. 자식들에 의해 버려진 부모들. 굶주림에 고통 받고 있는 북한 동포들과 기아에 허덕이는 제3세계의 빈곤층들.   
  직업을 구하지 못한 이들과 실의에 빠진 젊은이들과 이 땅에 정의를 구현하려는 이들... 그들은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했지만 우리는 그들을 외면해 왔습니다. 그러한 이기적인 나를 방어해 왔습니다. 우리의 죄악을 용서하여 주시고 그들 모두에게 필요한 위로와 힘을 주옵소서.

4. 전쟁의 고통 가운데 있는 자들을 위한 기도
  이 세상의 곳곳에서 전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사람의 생명보다 귀한 것은 아무것도 없는데 사람들은 때로는 사상 때문에, 때로는 종교 때문에, 때로는 자기 나라의 이익 때문에 사람들을 죽이고 있습니다. 어른들의 무지와 완악함 때문에 아무 것도 모르는 어린 아이들이 희생되고 있습니다. 그들은 이유도 모르는 죽음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전쟁과 테러, 이라크에서의 전쟁과 테러.
  이제는 그 땅이 전쟁을 그치고 하시고, 평화와 화해가 그 땅 가운데 임하게 하소서. 

(촛불나누기)
  “이 시간에는 우리 다함께 촛불을 나누겠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의 빛으로 오셨습니다. 그래서 어둡고 추운 이 땅과 사람들의 마음에 참 빛을 비추어 주셨습니다. 우리는 오늘 이 땅의 어두운 곳을 위하여 기도했습니다. 주님의 손길이 닿은 곳마다, 주님의 말씀이 닿는 곳마다 새롭게 회복되고 고쳐질 것을 믿으면서 촛불을 나누겠습니다. 촛불 나누기는 예수님으로부터 시작된 밝은 빛이 세상의 어두운 곳을 밝히는 의미가 있습니다. 세상과 우리 마음의 어둔 곳들이 주님의 빛으로 인해 밝혀지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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