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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승리를 휘날리며 (엡 6: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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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이양수 목사

  사람은 자신이 처한 환경이 어떤 것인가에 따라서 삶을 생각하고 느끼는 것에도 차이가 있습니다. 결혼 전 청춘남녀에게 삶은 장미빛 꿈결과도 같은 것입니다. 그러나 결혼하고 나면 이젠 모든 것이 현실이 됩니다. 죽을 날만 기다리던 환자에게 장기기증자가 나타나면 그 사람은 이 세상을 아름다운 세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웃에게 돈을 빌려주었다가 사기당한 사람에게 이 세상은 못된 놈들이 득실거리는 믿을 수 없는 암흑의 세계일뿐입니다. 여러분은 이 세상을 어떻게 느끼십니까?

  사도바울은 적어도 오늘 본문 말씀에 비추어 본다면 이 세상을 영적인 전쟁터라고 이해했습니다. 이 세상은 아름다운 노을이 지는 가을의 풍경이 아닙니다. 우리의 머리 위로 불화살과 총알과 포탄이 날아다니는 무서운 전쟁터입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은 그것을 방어하기위해서 헬멧과 방패를 가지지 않으면 안 되는 심각한 전쟁터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마 이것이 잘 이해되지 않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을 한 번 해보세요. 제가 얼마 전 본 영화 중에 "그린 마일"(Green mile)이라는 영화를 보았습니다. 사형수만 수용되어 있는 그 곳에 존 커피라는 흑인 한 사람이 잡혀옵니다. 그 흑인은 어떤 농부의 어린 두 딸을 죽였다는 혐의로 인해서 사형이 선고됩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것은 누명이었습니다. 그 흑인에게는 아주 특별한 능력이 있었는데 사람의 과거를 볼 수 있는 능력과 사람의 육체와 마음속에 있는 질병을 치유할 수 있는 능력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은 다른 사람들 속에 있는 죄악과 아픔들을 보면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거기에 나오는 명대사입니다. 존 커피는 자기의 생을 마감하려고 하면서 말합니다. : “인생을 논할 친구가 없어서 지쳤고, 사람들의 추악한 작태에 특히 지쳤고, 매일 세상 속에서 듣고 느끼는 고통들에 지쳤어요”

  저는 존 커피라는 사람이 단순히 그 흑인 사형수가 인간이 아닌 예수님처럼 느껴졌습니다. 왜냐하면 존 커피는 사람들의 아픔을 보면서 눈물을 흘립니다. 그는 사람들을 치료해줍니다. 그리고 자신이 모든 벙과 누명을 뒤집어 쓰고 죽음을 선택합니다. 
  만약 우리에게 그 사람이 가진 것과 똑같은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보세요. 만약 우리에게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볼 수 있는 마술 안경이 있다고 생각해보세요. 저는 그 안경을 쓰지 않을 것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죄악들이 다 보일 텐데 어떻게 그것을 쓰고 있을 수가 있겠어요?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다른 사람을 미워하고 저주하는 말들이 공중에서 총알처럼 날아다니는 것을 어떻게 바라볼 수가 있겠어요? 이미 저질러진 죄악뿐만 아니라 지금도 교묘하게 계획되고 있는 전쟁과 테러와 사기와 살인과 강도짓들을 다 볼 수 있다면 얼마나 괴로울까요?
 
  이런 것들을 생각하면 이 세상은 우리가 볼 수가 없어서 그렇지 분명 전쟁터와 같습니다. 아마도 우리처럼 평범한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영적인 눈을 가지고 이 세상을 바라보고 있었던 사도바울에게는 보였던 모양입니다. 사도바울은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어 가는 복음의 사역을 방해하는 마귀의 간계를 꿰뚫어 보고 있었습니다. 그는 사탄과 그 영향력 아래 있는 악한 영들과 세상의 통치자들과 권세들의 실체를 바라보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우리에게 대적 마귀를 대적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고 합니다. 진리의 허리띠, 의의 호심경, 평안의 복음의 신발, 믿음의 방패, 구원의 투구, 성령의 검을 소유하라고 합니다.

  그리고 오늘 말씀은 이 모든 하나님의 전신갑주 뒤에 곧 바로 나오는 말씀입니다. 왜 사도바울은 사단과 맞서 싸우기 위해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언급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오늘 말씀을 더 추가하고 있는 것일까요? 하나님의 전신갑주에 대한 말씀 뒤에 나오는 말씀을 요약하면 18절은 기도, 19절은 중보기도와 전도가 겹쳐있습니다. 다시 두 가지로 요약하면 기도와 전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 사도바울은 전신갑주에 대한 말씀 뒤에 기도와 전도에 대한 말씀을 주실까요?

  저는 이 말씀을 이렇게 생각해 보았습니다. 아무리 하나님의 전신갑주로 무장되었다고 할지라도 그 무기들을 구체적으로,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은 성령 안에서 기도하는 기도의 능력에서부터 나온다는 것입니다. 내가 아무리 좋은 무기를 가졌지만 그 무기를 사용할 수 없다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성령님은 기도 속에서 우리가 영적인 무기를 사용할 수 있는 지혜와 힘을 주십니다. 사단은 진리의 허리띠도, 의의 호심경도, 믿음의 방패도, 구원에 대한 사실도, 심지어는 하나님의 말씀도 무서워하지 않습니다. 사단이 무서워하는 것은 이 모든 것을 강력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고, 실제로 그것들이 사용될 때 나타나는 기도의 능력을 무서워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청년 여러분! 나는 교회도 잘 나오고 하나님의 말씀도 잘 듣고 믿음으로 살려고 하는데 세상 속에서 믿음의 실패를 맛보고 있습니까? 어쩌면 우리들은 영적 무기들이 쌓여 있지만 그것을 휘둘러 사용할 수 있는 힘이 없는 것은 아닐까요? 여러분! 그렇다면 하나님께 구하십시오. 이 영적인 무기들을 사용할 수 있는 능력과 지혜와 힘을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하나님의 도움을 요청하십시오.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십시오.

  또 한 가지 바울은 에베소 교인들에게 중보기도를 부탁하면서 그것은 복음 전도를 위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사도 바울의 최종 목적은 여기에 있었습니다. 사단이 하는 가장 나쁜 일이 무엇일까요?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생각하지 못하게 하고, 예수님을 믿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사탄과 악한 영들은 오늘도 사람들의 마음을 미혹해서 자기의 최종목적지인 영원한 불못(지옥)에 빠지게 합니다.
  사도바울의 말씀은 분명합니다. 왜 지금까지 사단을 대적하라고 했을까요? 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고 했을까요? 왜 성령 안에서 기도하라고 했을까요? 왜 나를 위해서 복음의 비밀을 담대하게 외칠 수 있게 기도 해달라고 했을까요?
  사단은 복음과 하나님의 나라의 사역을 방해하기 때문입니다. 사도바울은 가장 신령한 영적인 싸움의 최종 목적지를 전도로 귀결시키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여러분의 최종 관심은 무엇입니까? 믿음의 사람, 기도의 사람, 헌신의 사람 사도 바울은 죄악과 멸망의 구렁텅이에 빠진 사람을 구원하는 것이 자신의 유일한 소망이었습니다. 사도바울의 마음속에서 울려 퍼진 메아리는 그것이었습니다. “저 사람을 저기에 두면 안 되는데... 저기에서 끄집어냈어야 하는데.. 그 때 거기에서 데리고 나왔어야 하는데...”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의 마지막 장면을 보면 동생은 총알이 빗발치는 전쟁터에서 사랑했던 형을 데리고 나오지 못해서 회한의 눈물을 흘리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습니다. 우리가 이 눈물과 아픔을 반복하지 않으려면 아무리 어려운 일이 있어도, 어떤 절박한 사연이 있어도 그 사람을 멸망에서 영생의 자리로 데리고 나와야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아무리 우겨도, 아무리 고집을 피워도 그 사람을 구해야 합니다. 그 사람이 나를 무식하다고 욕해도, 나를 핍박해도 우리는 그 사람의 손목을 이끌고 나와야 합니다. 사탄은 쉽게 그 사람을 죄악과 불신가운데서 내어주지 않으려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십자가 위에서 사탄의 권세를 이미 깨뜨리고 우리에게 승리를 약속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계십니다. 그 분을 믿고 나가면 우리는 승리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사탄의 권세를 결박하고 그 영혼을 건질 수 있습니다. 그 한 사람을 구원하기위해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십시오. 그 한 사람을 구하기 위해서 항상 성령 안에서 이렇게 기도하십시오. “내게 말씀을 주사 나로 입을 열어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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