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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세상을 본 받는 그리스도인 (롬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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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김동호 목사 (숭의교회)

산부인과 의사를 하고 계시는 집사님으로부터 아주 재미있는 이야기 하나를 들었습니다. 산모 중에는 자연 분만을 하지 못해 수술을 받는 산모들이 있는데, 어느 날 수술을 받아야하는 산모에게 마취를 하기 위하여 심호흡을 하라고 이야기를 했답니다. 그랬더니 그 산모가 너무 긴장을 했는지 입으로 심호흡을 하지 않고 말로 ‘심호흡’ ‘심호흡’ 하더랍니다.

그 집사님은 긴장하여 말로 심호흡 심호흡을 외치는 산모를 보면서 예수를 믿는다고 하는 우리들의 모습을 보는 것 같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심호흡을 하라 하시면 행동으로 심호흡을 해야 하는데 우리는 마치 말로만 심호흡을 외치는 사람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였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많이 웃으면서도 참으로 깊이 생각해 봐야 할만한 이야기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야고보서 2장 26절에 보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도 입으로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은 행함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세상에 행함으로 구원을 얻을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혹시 있다고 하여도 하나님은 행함으로 사람을 구원하시지는 않으실 것입니다.

율법을 행함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것이 율법주의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식과 법이 아닙니다. 자식이 물에 빠져 죽게 되었는데 계명을 들이대면서 계명을 지키면 살려주고 계명을 지키지 않으면 살려주지 못하겠다고 말하는 부모가 어디 있겠습니까? 사람도 못하고 안 할 일을 하나님이 하시겠습니까? 물에서 건져놓고 계명을 줄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계명을 먼저 주고 건질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율법을 지킴으로 구원을 얻는다고 하는 율법주의는 기독교의 명백한 이단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구원을 위한 전제와 기준으로 율법을 주신 것이 아닙니다. 한계가 있고 불완전한 우리 인간들은 그 하나님의 율법을 다 지켜 행할 수 없습니다. 힘쓰고 노력하다가도 넘어지고 실족하고 실수하는 것이 우리 인간들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율법을 지켜 행하기 위하여 힘쓰고 노력하고 기도하여야만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법을 좇아 살기 위하여 발버둥 쳐야만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고 원하시는 것은 그 발버둥질 입니다.

그와 같은 발버둥질은 우리의 삶에 참 유익한 것입니다. 율법을 지켜 행하면 하나님이 약속해 주신 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노력하다가 실수하고 실족하게 되면 그것을 통하여 자신의 한계와 부족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자신이 의인이 아니라 죄인인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로마서 3장 20절에도 보면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자신이 죄인인 것을 깨닫는 것처럼 귀한 것은 없습니다. 자신이 죄인인 것을 깨닫고 절망하게 될 때 우리는 실존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를 붙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죄인인 줄을 모르게 되면 절대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를 실존적으로 붙들 수 없습니다.

율법을 행함으로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니라고, 함부로 율법을 무시하거나 폐기하면 죄를 깨닫지 못하게 되고, 죄를 깨닫지 못하게 되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날 수 없게 됩니다. 그래서 성경은 율법을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몽학선생(蒙學先生)이라고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갈3:24)

율법을 지켜 행함을 놓고 볼 때 우리 기독교에는 두 종류의 이단이 있습니다. 하나는 앞에서 말씀을 드린 율법을 행함으로 구원을 얻는다고 주장하는 율법주의입니다. 또 다른 이단은 율법을 행함으로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 것이니, 믿음으로 구원을 얻은 사람은 율법과 행함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살아도 된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주장을 하는 이단 중에 구원파가 있습니다. 그럴듯해 보이나 율법을 행함으로 구원을 얻는다고 하는 이단과 마찬가지로 성경적으로 볼 때 아주 위험한 이단입니다. 우리는 그와 같은 이단을 ‘값싼 은혜주의’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율법을 사랑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며 그 말씀을 따라 살려고 하는 자를 무조건 율법주의자로 매도하고, 행함이 없는 믿음의 삶을 사는 사람은, 율법을 부정함으로 본래부터 율법대로 살고 싶어 하지 않는 자신들의 원죄적인 본능을 합리화하며 살아가게 됩니다.

율법과 행함을 무시하고 부정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서 나타나는 가장 보편적이고도 중요한 사실은 자기가 죄인인 줄을 모른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법아래서 말씀대로 살려고 하는 자는 자신의 한계와 자신의 죄인 됨을 알지만, 하나님의 법을 부정하고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하지 않는 자는 자신의 한계와 자신의 죄인 됨을 결코 알 수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그는 절대로 하나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속죄의 은총을 실존적으로 만날 수 없습니다.

율법주의와 값싼 은혜주의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자신의 죄와 한계를 알지 못하고 자기 의에 빠져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결국 입으로만 주여 주여 하는 자가 되고 실존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와 예수님의 십자가를 만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요즘 우리 한국교회는 값싼 은혜주의에 빠져 있는 것이 아닌가하는 염려가 있습니다. 그냥 열심히 교회를 다니고 봉사하고 헌금하는 것은 여전히 잘 하고 있지만 예수를 믿기 때문에 하나님의 식과 법대로 살아야만 한다는 것에 대하여 아주 약해져 있습니다.

옛날의 크리스천들은 행동하는 크리스천들이었습니다. 때문에 기독교인이라고 하면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에게도 기본적으로 인정을 받았습니다. 사람들은 예수 믿는 사람이라고 하면 우선 정직하고 성실하고 바르며 착할 것이라는 선입견을 가졌었습니다. 저는 그와 같은 선입견이 우리 한국 교회의 부흥과 성장의 엔진 중에 하나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와 인식은 우연히 하루아침에 이루어 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입으로만 주여 주여 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과 뜻대로 살기 위하여 피나는 노력을 하여 얻어진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한국의 기독교가 값싼 은혜주의로 빠지면서부터 더 이상 기독교인들은 행함에 관심을 갖지 않게 되었습니다. 더 이상 믿지 않는 사람들보다 더 정직하지도 않고, 착하지도 않고, 성실하지도 않고, 바르지도 않게 되었습니다. 믿는다고 교회는 열심히 다니지만, 하나님의 법과 식과 길에 관심이 없음으로 사는 식은 기독교식이 되지 아니하고 세상 식이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크리스천이란 본래 예수님을 본 받는 삶을 사는 사람들인데, 크리스천이라고 하는 이름은 있으나 실제는 예수님을 본 받는 삶을 사는 사람들이 아니라 세상을 본 받는 삶을 사는 사람들이 되고 말았습니다. 주일 날 교회 다니는 것 외에는 세상 사람과 별로 다를 것이 없는 삶을 사는 사람이 많아지게 되고 말았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크리스천과 넌 크리스천의 차이는 ‘주일 날 교회를 다니느냐 안 다니느냐?’에서 나는 것이 아니라 ‘누가 더 정직하냐?’ ‘누가 더 깨끗하냐?’ ‘누가 더 착하고 성실하냐?’에서 나야하지 않겠습니까? 물론 크리스천이라고 다 정직하고 넌 크리스천이라고 다 부정직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평균적으로 볼 때, 보편적으로 볼 때 그래야만 하지 않겠습니까?

예수님을 안 믿어도 정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으면 누구나 다 정직해야만 합니다. 거짓말을 하고 거짓된 행동을 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는 또 다른 표현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거짓말을 하고 거짓된 행동을 한다는 것은 이 세상을 하나님이 통치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믿지 못하고 인정하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살다보면 정직하면 손해를 보고 거짓말을 하면 이익을 보는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정말로 믿는 사람이라면 불꽃같은 눈으로 자신과 세상을 감찰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지 못하고 거짓말과 거짓된 행동을 하며 살 수는 없다고 생각을 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절대로 거짓말을 하고 거짓된 행동을 하는 사람의 삶을 그대로 내 버려두실 리가 없다 생각할 것입니다. 정말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정말로 하나님 앞에서 사는 사람이라면 그는 늘 정직해야만 할 것입니다. 잠언 14장 2절에 보면 ‘정직하게 행하는 자는 여호와를 경외하여도 패역하게 행하는 자는 여호와를 경멸히 여기느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정직하게 사는 것이 곧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요, 정직하지 못하게 거짓말을 하며 사는 것은 하나님을 경멸하는 것이라고 하나님은 성경을 통하여 우리들에게 말씀해 주시고 계십니다.

잠언 23장 16절에 보면 ‘만일 네 입술이 정직을 말하면 내 속이 유쾌하리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들이 정직하게 사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자랑스러워 하십니다. 때문에 하나님은 정직한 자를 축복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악한 자의 집은 망하겠고 정직한 자의 장막은 흥하리라’(잠 14:11)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정직한 자의 기도를 들어주셔서(잠 15:8) 그의 길이 대로가 될 것이라고 말씀해 주십니다.(잠 15:19)

거짓은 후진의 논리이고, 정직은 선진의 논리입니다. 거짓은 사탄의 논리이고, 정직은 하나님의 논리입니다. 사탄은 ‘정직하면 못 산다’라고 이야기하고, 하나님은 ‘정직하지 않으면 못 산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 입니다. 사람과 하나님 앞에 무엇을 가지고 우리가 하나님을 진정으로 믿고 사는 사람임을 나타낼 수 있겠습니까? 정직함으로 우리의 믿음을 하나님과 사람 앞에 나타낼 수 있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옛날 우리 믿음의 선배들이 ‘예수 믿는 사람들은 정직해’라는 말을 들을 수 있었듯이 다시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이 세상 사람으로부터 신용을 얻게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인 우리들이 거룩하고 순결한 삶을 살아주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레위기 19장 2절에 보면 ‘너희는 거룩 하라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 이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레위기에는 성결과 거룩에 대한 말씀이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정한 것이고 이것은 부정한 것이다’는 식의 말씀이 많습니다. 이것은 먹어도 되고, 저것은 먹으면 안 된다는 식의 말씀이 많이 있습니다. 그와 같은 말씀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핵심은 하나님의 자녀는 아무렇게나 살아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요즘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와 세대는 순결을 지키기가 너무나 어려운 세상입니다. 정신적인 순결은 물론이거니와 육적인 순결도 지키기가 어려운 세상입니다. 성(性)이 최고의 오락이 되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고린도전서 6장 18절에 보면 ‘음행을 피하라 사람이 범하는 죄마다 몸 밖에 있거니와 음행하는 자는 자기 몸에게 죄를 범 하느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음행과 간음을 몸 안의 죄라고 정의하심으로 세상의 그 어떤 죄 보다도 중하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그리고 세상의 그 어떤 것보다 우리의 몸을 중히 여기십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몸은 성령이 거하시는 하나님의 전이기 때문입니다.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 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고전 6:19)

성적인 타락은 사탄의 가장 중요한 무기와 전략 중의 하나입니다. 이와 같은 사탄의 전략과 무기에 믿지 않는 사람들은 물론이고 요즘 우리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까지도 무차별적으로 공격을 당하고 있습니다.

야고보서 4장 4절에 ‘간음하는 여자들이여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게 하는 것이니라’는 말씀이 있고 유다서 1장 7절에 ‘소돔과 고모라와 그 이웃 도시들도 저희와 같은 모양으로 간음을 행하며 다른 색을 따라가다가 영원한 불의 형벌을 받음으로 거울이 되었느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세계에서 성적으로 가장 타락한 나라 중에 하나가 부끄럽게도 우리나라입니다. 정말 우리나라는 소돔과 고모라 화 되어가고 있습니다. 때문에 예수를 잘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도 얼마나 쉽게 이 성적인 유혹에 빠지는지 모릅니다.

우리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사랑입니다. 사랑을 하고 사랑을 받는다는 것보다 중요한 것이 없다고 할 수 있으리만큼 사랑은 우리에게 소중한 것입니다. 그런데 간음은 우리에게서 그 소중한 사랑을 빼앗아 갑니다. 사람들은 사랑을 위하여 간음을 한다고 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간음은 우리에게서 사랑하는 사람을 빼앗아 갈 뿐 아니라 사랑 자체를 빼앗아 갑니다.

91년도에 처음으로 중국을 여행했었습니다. 북경에 있는 자금성을 관광할 때였습니다. 한국에서 온 여행객 중 하나가 자기 일행에게 ‘중국의 황제는 부인이 3 천 명 이었대.’라고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그러자 같은 일행 하나가 ‘얼마나 행복했을까?’라고 대답을 하였습니다.

저는 자금성을 관광하는 내내 ‘부인이 3 천 명이었던 중국 황제는 과연 행복했었을까?’에 대하여 생각했습니다. 결론은 아니었습니다. 답은 중국 황제는 정말 사랑을 모르는 외로운 사람이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귀하다의 반대말은 흔하다와 천하다 입니다. 흔한 것은 귀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천한 것입니다. 사랑은 귀한 것이기 때문에 흔하지 않습니다. 사랑이 3 천 이라는 것은 그 사랑이 귀한 사랑이 아니라 흔하고 천한 사랑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랑은 귀한 것이기 때문에 하나입니다. 사랑은 하나이기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이 둘이 되면 사랑이 둘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를 둘로 나누게 되어 사랑은 1/2로 줄어들게 됩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백이 되면 사랑은 백이 되는 것이 아니라 1/100로 줄어듭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역설적으로 사랑은 줄어듭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3 천이었던 중국 황제는 1/3,000의 사랑으로 산 사람이었습니다. 한 마디로 그는 외로운 사람이었습니다. 저는 중국의 자금성을 관광하면서 중국의 황제의 외로움과 불행을 깊이 느낄 수 있었습니다.

세상에 가장 행복한 사람은 평생 한 사람만 사랑하며 사는 것입니다. 저는 사랑하는 우리 여러분들이 사랑의 복을 받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과 자녀인 우리들이 당신을 본 받지 않고, 세상을 본 받아 하나님 없는 세상의 사람들과 똑같이 정직하지 못하고 순결하지 못한 것을 마음 아파하십니다. 부끄러워하십니다. 크리스천이란 세상을 본받는 사람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는 사람입니다.

많은 우리 한국 교회와 교인들이 알게 모르게 값싼 은혜주의를 주장하는 구원파 이단에 물들어 있습니다. 위험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행함으로 구원을 얻는 것은 아니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로 죄 씻음을 받고 구원 얻은 사람이라면, 다시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죄로 말미암아 십자가에 못 박지 않기 위하여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믿음은 행동하는 것입니다. 행동하지 않는다는 것은 결국 믿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행함으로 우리의 믿음을 하나님과 세상에 나타내 보이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믿음으로 행해야 할 것들이 수도 없이 많이 있지만 무엇보다도 우선 정직과 순결을 실천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오늘 본문을 통하여 우리들에게 너희들은 이 세상과 세대를 본 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라 말씀하십니다. 우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라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가 하나님께 드려야 하는 영적예배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영(靈)은 몸과 삶과 행함과 분리된 이원론적인 의미의 영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영은 몸과 붙어서 몸이 영이고 영이 몸인 상태로 존재하는 것입니다. 정직하지 못한 세상에서 정직하게 살려고 발버둥질 치는 것이 예배입니다. 순결하지 못한 세상에서 순결을 지키기 위하여 발버둥질 치는 것이 하나님이 받으시고자 하시는 영적예배입니다.

정직과 순결 같은 거룩한 몸부림으로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영적예배를 올리며 사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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