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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아이성아 웬일이니? (수 7:1-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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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 박재신 목사 
본문 / 수 7:1-12
제목 / 아이성아 왠일이니 .... ? (아이성 전투에서 패배한 이유)

  아내가 목양실로 와서 제게 퀴즈를 내겠다며 “당근이 빨간색인데 갑자기 무와 같이 하얗게 되었어요 이유가 무엇일까요?” 라고 말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당근이 빨간색인데 어떻게 갑자기 하얗게 됐을까요? 그래서 모른다고 했더니 당근이 헌혈을 했기 때문이랍니다. 
  나를 한 번 웃겨보겠다고 한 것입니다. “당근이 헌혈을 했다” 참 기발한 발상입니다.
 
  이 시간 저도 여러분들에게 질문하나 하겠습니다.
  비행기와 독수리가 충돌하면 누가 이길까요?
  정답은 "승자 없음"입니다. 양쪽 다 문제가 생기니까요?
  새들이 제트 비행기 엔진으로 빨려 들어가는 현상을 `조류충돌' (Bird Strike)라고 합니다. 이 조류 충돌로 항공사들은 매년 막대한 피해를 보고 있다고 합니다. 참새 한 마리가 비행기 엔진에 빨려 들어가면 최소 14-24억원의 수리비가 들어간다고 합니다.
  첨단 과학의 산물인 거대한 비행기가 조그마한 새 한 마리 때문에 항공사고에 대책 없이 노출돼 있는 것입니다.

  가나안 땅으로 진격해들어 가던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 있던 여리고 성이 거대한 비행기라면 아이 성은 참으로 보잘 것 없는 작은 새 한 마리에 지나지 않습니다. 아이 성 사람들은 철통같은 성읍 여리고가 완전히 무너지는 것과 함락당하는 것을 보고 대단히 놀랬을 것입니다. 

  아이 성은 여리고 성 보다 훨씬 더 작고 약한 성이었기 때문입니다.
  수 7:3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여호수아에게로 돌아와서 그에게 이르되 백성을 다 올라가게 말고 이 삼천 명만 올라가서 아이를 치게 하소서 그들은 소수니 모든 백성을 그리로 보내어 수고롭게 마소서 하므로 .....”

  아이 성을 정탐하고 돌아온 정탐꾼들의 보고에 의하면 아이 성은 소수의 주민들이 살고 있는 아주 작은 성이었던 것이 틀림 없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모든 백성이 번거롭게 다 움직일 것이 아니라 2-3천명만 올라가서 싸우면 아주 넉넉히 이길 것으로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가벼운 마음으로 2-3천의 군사가 아이 성을 치기 위해 올라갔습니다.
  수 7:4-5절을 읽겠습니다.
  백성 중 삼천 명쯤 그리로 올라갔다가 아이 사람 앞에서 도망하니 아이 사람이 그들의 삼십육 인쯤 죽이고 성문 앞에서부터 스바림까지 쫓아와서 내려가는 비탈에서 쳤으므로 백성의 마음이 녹아 물같이 된지라
  그런데 전쟁의 결과는 전혀 예상 밖이었습니다.
  이스라엘 군대는 어이없게도 완전히 패배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36명의 사망자를 내고 퇴각하였고 백성들은 비탄에 빠졌습니다. 너무나도 실망하여 7:5절에 보면 “마음이 녹아 물처럼 되었다” 라고 하였습니다.
 
  여러분 웬일일까요?
  숫자적으로 보나 영적으로 보나 어떤 면에서든지 승리해야 할 아이 성 전투에서 어이없게 싸움 한 번 제대로 못해보고 36인의 전사자만 내고 도망쳐 와야 했던 이유가 무엇일까요? 성경은 아이 성 군대의 수가 많다거나 그 성의 군대가 강해서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이유가 어디 있습니까?
  이스라엘 자체에 있습니다.  본문에서 아이 성 전투에서 패배한 이유를 찾아보겠습니다.

  1. 죄 때문입니다.
  여호수아는 아이 성에서 패배한 이유를 알 수 없어서 날이 저물도록 하나님이 법궤 앞에 엎드려 있었습니다. 그러나 성경 기자는 아이 성 사건을 다루기 전에 서론적으로 이 부분에 대해서 설명하고 들어갑니다.
  7:1절을 보겠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바친 물건을 인하여 범죄하였으니 이는 유다 지파 세라의 증손 삽디의 손자 갈미의 아들 아간이 바친 물건을 취하였음이라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진노하시니라”
죄 때문입니다. 죄 때문에 하나님이 진노하셔서 돕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아간이라는 한 사람이 하나님의 명령을 불순하였습니다. 여리고 성을 정복했을 때 하나님이 명령하신 명령을 아간이라는 사람이 저 버렸습니다.

  구체적으로 아간의 지은 죄가 무엇입니까?
  아간은 여리고성을 점령할 때 군인이었습니다. 그 성에 점령군으로 들어가서 하나님이 심판을 행하였습니다. 수 6:21절에 보면 여리고 성의 남녀노소 다 진멸하라고 했습니다.
  “성중에 있는 것을 다 멸하되 남녀 노유와 우양과 나귀를 칼날로 멸하니라”
  하나님은 여리고 성을 무섭게 심판하셨습니다.
  짐승까지 그리고 그 성의 물건들까지 단 한 개도 취하지 말고 다 죽이고 불태우라고 했습니다. 이유는 그들의 더러운 죄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아간이 하나님의 심판의 대행자로서 여리고성에 들어갔다가 탐심이 생겼습니다.
  수 7:21절에 보면 아간이 고백하기를 “내가 노략한 물건 중에 시날 산의 아름다운 외투 한 벌과 은 이백 세겔과 오십 세겔 중의 금덩이 하나를 보고 탐내어 취하였나이다 보소서 이제 그 물건들을 내 장막 가운데 땅 속에 감추었는데 은은 그 밑에 있나이다” 라고 했습니다.
  “아름다운 외투 한 벌과 황금 덩어리 한 개 ”에 욕심이 생겨서 그것을 가져다가 자기 장막에 감추었습니다. 감쪽같이 해치웠습니다. 아무도 보는 이 없고 들키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보시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다음번 아이 성 전투에서 그 죄를 문제 삼으셨습니다.

  ① 아간의 행위는 하나님을 무시한 행위입니다. 
  죄는 결국 하나님을 무시하는 데서부터 시작 합니다. 하나님이 모르실거라는 생각, 그리고 하나님이 심판을 무시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은밀하게 자기 장막에 가져다가 숨겼습니다.

  ② 그 결과
  결국 하나님이 돕지 않으셨습니다. 죄가 있으면 결코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습니다. 시 66:18절에 보면 “내가 내 마음에 죄악을 품으면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리라” 라고 했습니다.
  아이 성 전투에서 하나님의 도우심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즉 너희들끼리 잘해보라는 식으로 하나님이 전혀 개입하지 않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스라엘 자손들도 하나님께 묻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여리고 성을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겼으니 이번에도 하나님이 어떻게 싸울까요? 하고 하나님의 방법을 물어야 했을 것입니다.
  아간의 죄가 사람들의 마음을 강퍅하게 만들어서 하나님께 묻고자 하는 마음을 막았던 것입니다.
  이렇게 죄가 마음에 들어오면 하나님과 관계가 스스로 멀어지게 되어집니다.
  아이 성을 무너뜨리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죄를 버려야 합니다.
  수 7:13절을 보면 “너는 일어나서 백성을 성결케 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스스로 성결케 하여 내일을 기다리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에 이스라엘아 너의 중에 바친 물건이 있나니 네가 그 바친 물건을 너의 중에서 제하기 전에는 너의 대적을 당치 못하리라” 라고 했습니다.
  죄를 제거하지 않으면 승리하지 못한 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호수아는 수 7:24절에서 죄를 뽑아내는 작업을 합니다.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세라의 아들 아간을 잡고 그 은과 외투와 금덩이와 그 아들들과 딸들과 소들과 나귀들과 양들과 장막과 무릇 그에게 속한 모든 것을 이끌고 아골 골짜기로 가서 여호수아가 가로되 네가 어찌하여 우리를 괴롭게 하였느뇨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를 괴롭게 하시리라 하니 온 이스라엘이 그를 돌로 치고 그것들도 돌로 치고 불사르고 그 위에 돌무더기를 크게 쌓았더니 오늘날까지 있더라 여호와께서 그 극렬한 분노를 그치시니 그러므로 그 곳 이름을 오늘날까지 아골 골짜기라 부르더라”
  아간 한 사람 때문에 36명의 이스라엘 장정들이 죽었고 그리고 이제는 자신의 죄 때문에 아들 딸 까지 다 죽임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죄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를 교훈하고 있습니다.
  아무렇지도 않게 짓는 죄가 우리가 속한 사회와 자신의 가정에 얼마나 악한 영향을 주는지 안다면 오늘 우리는 은밀한 죄와 드러난 모든 악한 죄를 두려워하고 멀리해야 하며 기왕에 죄 가운데 있는 자는 떨며 회개하고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을 믿고 의지해야 합니다. 그러면 아이 성도 무너집니다.
 
  2. 자만 때문입니다.
  잠 21:4절에 보면 “눈이 높은 것과 마음이 교만한 것과 악인의 형통한 것은 다 죄니라” 라고 했습니다. 눈이 높은 것이 바로 자만입니다. 스스로 높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자만하게 되면 상대방을 얕잡아 봅니다.
  3절에 그들은 소수니... 라고 했습니다. 아이 성을 탐지하고 돌아온 정탐꾼들이 하는 말을 보면 이스라엘이 얼마나 자만에 들떠 있어서 신중하지 못하게 생각하고 있는지 잘 알 수 있습니다.  사람이 자만하게 되면 잘못된 판단을 내립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자만 때문에 잘 못 판단한 것이 무엇입니까?

  수 8:25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죄를 회개하고 다시 싸워서 승리한 다음의 이야기입니다.
  “그 날에 아이 사람의 전부가 죽었으니 남녀가 일만 이천이라”
  그러니까 아이 성 전체 주민의 숫자는 12,000입니다. 정탐꾼들이 성실하게 보고 하지 않는 것을 봅니다. 적어도 전쟁을 위해서 정탐했다면 그 주민들의 숫자를 정확하게 보고했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 정도의 숫자가 있음에도 깔보고 12,000명을 단순히 소수라고 보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생각에 아이성 주민들이 12,000명이라도 그들에 비하며 이스라엘은 다수였습니다.
  다수라는 것 때문에 승리할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수가 많아서 승리하는 줄알았습니다. 그러나 수가 많아서 승리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에는 전쟁의 승패가 군대의 숫자에 의해서 좌우되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삼상 17:47절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로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붙이시리라” 라고 했습니다.
  자만에 빠져 상대방을 깔보고 얕잡아 보는 마음은 결코 신앙인이 취하여야할 태도가 아닙니다. 
  잠 18:12절에 의하면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니라” 라고 했습니다.

  1912년 영국은 거대한 배 한 척을 만들었습니다.
  길이 2백59m에 무게가 46,300백 톤이나 되는 초호화 여객선입니다. 그 배에 타이태닉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타이태닉이란 이름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하늘과 땅 사이에서 태어났다는 거인신족(巨人神族) 타이탄의 이름을 따서 지은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 배를 “하나님도 침몰시킬 수 없는 배” 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타이타닉호는 첫 항해에 나선 4월14일 북극해 뉴펀들랜드 해역에서 빙산에 부딪쳐 침몰하고 말았습니다.
  승선자 2,208명 중 사망자는 무려 1,513명.“최고의 배”가 일으킨 “최대의 참사” 였습니다.
  영화 “타이타닉”을 보면 선장의 교만이 그대로 드러납니다. 선장은 빙산이 떠 다니는 북극해의 바다를 항해하면서 “전속력으로 항해하라.모든 신문들이 타이태닉호를 세계에서 가장 빠른 배로 기록할 것이다” 라고 명령을 내립니다. 그러나 선장의 교만은 몇 시간 후 나타난 빙산 앞에서 산산이 부서지고 말았습니다.
  인간의 자만과 교만이 빚어낸 대 참사였습니다.
  교만한 것이 죄입니다.
  오늘날 아이 성과 같은 문제를 만나서 실패하고 좌절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단 한번에 성공할 것 같았는데 결과가 그렇지 못해서 슬퍼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겸손해야 합니다.
  어린아이 앞에서 겸손하면 그들에게서 존경을 받게 될 것입니다.
  직장 상사가 부하 직원 앞에서 겸손하면 부하 직원들이 존경하게 될 것입니다. 사장님이 직원들 앞에서 겸손하면 그들의 헌신적인 사랑을 받게 될 것입니다.
  무엇 보다고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십시오.
  벧전 5:6절에 보면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높이실 때 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일본의 수상을 지낸 다나카 씨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초등학교 출신인 다나카 전 수상이 동경대 출신이 많은 대장성 장관으로 임명되었을 때, 앨리트 관료 집단의 본산인 대장성에서는 노골적인 불만이 표출되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취임식을 하게 되었을 때 그는 취임사에서 이렇게 했습니다.
  "여러분은 천하가 알아주는 수재들이고 나는 초등학교밖에 나오지 못한 사람입니다. 더구나 대장성 일에 대해서는 깜깜합니다. 그러니 대장성 일은 여러분이 하십시오. 나는 책임만 지겠습니다."
  대장성 직원 모두를 리더로 인정해주는 순간 그들의 마음 문이 활막 열렸습니다.
  겸손 그것은 상대에 대한 존중이고 그리고 스스로 책임지는 자세입니다.
  어떤 사람이 이런 글을 썼습니다.
  “산꼭대기에 있든지 계곡 아래 있든지 간에 진정한 위대함은 어디를 가든지 섬기는 데 있다.”
 
  겸손이란 섬기는 것이며 자신의 약함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의학박사로 현재 심신증 연구에 몰두하고 있는 일본인 가와무라 노리유키라는 사람이 쓴 책에서 "약한 나를 인정하면 인생이 즐겁다"라고 주자하였습니다.
  "자신의 약점을 인정하는 사람에게는 스트레스가 잘 쌓이지 않으며, 자신의 약점을 인정하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스트레스가 쌓이기 쉽다"는 것입니다.
  능력의 한계를 느꼈을 때,'할 수 없다.'고 스스로 인정하는 것, 즉 자신의 약점을 인정하는 것이 건강 생활에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뇌에 있는 보상계(reward system)와 벌계(punishment system)라는 신경영역이 있는데, 보상계는 사람이 살아가면서"괘감"을 느끼는 신경영역이고, 벌계는"불쾌감"을 느끼는 신경영역이라고 합니다.
  보상계가 자극을 받으면 인간의 몸은 좋은 영향을 받아 건강해지고, 벌계가 자극을 받으면 인간의 몸은 나쁜 영향을 받아 스트레스가 쌓이며 심할 경우 병에 걸린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약한 나를 인정"하는 것은 보상계를 자극하는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이고 약한 자신을 인정하지 않고 무턱대고 열심히 하는 것은 벌계를 자극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고전1:27)"라고 말씀합니다.
  약한 자신을 인정하고 하나님을 의지하십시오.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는 것 그것이 겸손입니다. 겸손할 때 사람은 진정한 행복을 누리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아이 성이 수가 많아서 진 것이 아닙니다. 그들의 군대가 강해서가 아닙니다. 이유는 딱 두 가지입니다.  죄 때문이며 교만 때문입니다.
  죄 때문에 교만해졌습니다. 죄는 우리를 망하게 하는 올무요 함정입니다.  은밀한 죄를 회개하여야 합니다. 고 하나나 앞에서 겸손할 때 하나님이 도우십니다. 남모르는 죄를 회개하고 겸손하게 하나님의 도우심을 기다립시다. 그래야 아이 성을 이길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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