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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길이 참으십시오 (약 5: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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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박춘수 목사

길이 참으십시오
개인적인 우리의 삶에서 우리들은 저마다 단점들이 있습니다.
저의 경우에 가장 큰 단점 중에 하나가 기다릴줄 모른다는 것입니다. 가끔 쇼핑을 하러갔다가 다투는 경우가 있습니다. 물건을 사러 갔으면 저는 거의 첫 번 아니면 두 번째 물건을 보고 결정을 내립니다. 살 것인지 말것인지 결정을 내리고 빨리 문제를 해결합니다. 옷을 사러가도 한번 두 번 입어보고 더 이상 미련두지 않고 선택을 합니다. 그러나 여자들은 다릅니다. 이것 입어보고 저것 입어보고 이 가게 저 가게 꼼꼼히 따집니다. 그러면 시간을 흘러가고 옆에서 지켜보던 저에게서 인내의 한계를 느낄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기다릴줄 몰라서 평화가 깨어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생활에서 서로에 대하여 잘 기다려줍니까? 때로 나의 생각과 판단에 비추어서 가치없는 것들에도 기다릴줄 알아야 합니다. 살면서 느끼는 것은 일상사에서 서로에 대해서 기다림이상으로 우리가 믿음 생활을 하는데 있어서는 주님과의 관계가 더욱 기다릴줄 알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기다릴줄 아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기다림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초림하시고 재림하시기까지 우리에게 요구되는 가장 중요한 영성은 바로 기다림의 영성입니다. 오랜기간 주님께서 우리를 기다렸다면 이제 믿음의 백성들이 주님을 기다려야 합니다.

왜 주님께서 빨리 재림하시지 않을까요?
성경은 주님이 재림하실때에 대해서 명확하게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그날과 그 때는 오직 하나님 만이 아신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대교회로부터 많은 사람들이 언제 주님이 오시는가? 그 날짜를 조급하게 계산하고 주장하다가 잘못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주님의 재림과 관련된 이단들이 많습니다.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기에 지친 사람들을 유혹하여서 주님이 언제 오신다 하면서 가정도 직장도 포기하게 하고 잘못된 길로 가도록 한 것을 우리가 잘 압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재림의 소망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면서 살라고 하십니다.

현대인들에게 가장 고역이 기다리는 것입니다. 기다림처럼 미련하고 어리석어 보이는 일도 없습니다. 세상에서 모든 삶은 빠른 것이 능력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빨리 달릴 수 있는 엔진과 능력을 갖고 있는 차도 좋은 차라고 합니다. 빨리 정보를 처리할 수 있는 컴퓨터가 좋은 컴퓨터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모든 것은 점점 빠르게 빠르게 몰아가고 있습니다. 빨리 수신할 수 있는 휴대폰이 좋은 것들입니다. 현대사회는 얼마나 빨리 정보를 아는가 하는 것이 능력리요 그것이 돈이 되는 세상입니다.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성도들의 현재의 삶은 어떻게 기다려야 할까요? 재림을 기다리는 성도들에게 주님께서 3가지 본보기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1. 농부같이 길이 참으십시오

7절에서 기다리는 첫 번째 본보기로 농부를 소개합니다.
농부는 어떤 직업보다도 기다림에 익숙한 직업입니다. 인내가 부족한 사람은 절대 농사를 지을 수 없습니다. 씨앗을 심고 하루만에 거두는 일은 없습니다. 아무리 미미한 식물일지라도 씨를 뿌리고 최소한 한달이상 때로는 6개월이상을 기다려야 합니다. 가령 인삼과 같은 농사를 짓는 경우에는 상품가치가 있는 상품을 내놓기 위해서는 6년이상을 기다려야 하기도 합니다.

농부는 씨앗과 소출을 위해서 철저하게 기다려야 합니다. 서두른다고 빨리 열매를 맺는 것도 아니고 소출을 얻는 것도 아닙니다. 많은 경우에 농부는 햇빛을 기다리고 바람을 기다리고 비를 기다려야 합니다. 농부는 파종한 씨앗들이 열매를 맺기까지 철저하게 기다려야 합니다. 그래서 요즘같은 속도를 강조하는 산업과 과학화되는 사회에서 농사는 젊은 사람들에게 인기가 없습니다.

농부가 왜 기다릴 수 있는 것입니까?
이렇게 농부가 기다릴 수 있는 것은 열매의 가치를 알기 때문입니다. 비록 현재의 삶에서 기다림은 힘들지만 열매는 기다려서 얻을만한 가치가 있기 때문입니다. 비록 인내하는 것은 고통스럽지만 그 열매는 단 것입니다. 농부가 기다릴 수 있는 것은 바로 때가 되어서 거둘 소출의 열매가 있기 때문입니다. 7절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라고 합니다.
우리의 삶에서 기다림의 가치가 있는 것은 바로 주님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오시면 우리의 삶에서 모든 행복이 완성되어집니다.

여러분 그리스도인들은 농부와 같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 앞에서 영적인 농부인 것입니다.하나님 아버지는 우리가 이땅에서 추수의 열매를 거둘 것을 원하십니다. 우리가 이땅에서 거두고 맺어야 할 열매가 무엇입니까? 바로 성령의 열매입니다. 갈5:2-23에 보면“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이런 열매가 금방 주렁 주렁 열리지 않습니다. 시간이 필요하고 많은 인내와 기다림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이런 열매를 맺기까지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마음을 굳게 하셔야 합니다.
8절에 "너희가 길이참고 마음을 굳게 하라“고 합니다. 여기 마음을 굳게해야 추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생각하여 보십시오. 농부가 한해의 농사를 짓고 열매를 거둘때까지 기다림 속에 많은 어려움들이 있습니다. 때로는 바람이 너무 불어서 걱정도 해야 하고 너무 비가와서도 근심도 합니다. 때로는 너무 비가 오지 않아서 걱정도 해야 합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많은 병들이 식물을 해라는 어려움도 있고 생각지 않은 문제의 복병들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농부들은 마음을 굳게 해야 농사를 지을 수 있습니다.

영적인 농부인 그리스도인들의 삶에 열매를 맺기 위해서 정말 중요한 것은 마음을 굳게 해야 합니다. 흔들리지말고 마음을 굳게 해야 합니다.
영적인 열매를 거두는 영적농부로서 우리의 삶에 가장 경계해야 할 마음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원망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원망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원망의 이유가 무엇입니까? 마음이 굳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대개 원망하는 것은 기대가 있고 바라기 때문에 원망합니다. 남을 원망하고 하나님을 원망하는 것은 자기 삶에 대해서 무책임한 자세입니다.

요즘 배추값이 폭락되어서 배추농사를 지은 분들이 너무 손해가 많습니다. 티이부이에 경상도 봉화에서 배추농사를 짓던 농부들이 몇천평되는 밭에서 배추한포기 팔지 못하고 그 배추를 트랙터로 갈아엎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 농부에게 인터뷰를 요청했습니다. ‘이렇게 배추밭은 갈아엎는 심정이 어떻습니가? “ 그러자 그분이 말씀합니다. ”누구를 원망하겠습니까? 내년을 다시 기약해야죠“라고 하면서 현실의 어려움을 이기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만일 그가 원망하고 패배주의에 빠져서 농사 때려치우고 매일 술만 마시면서 세상 원망하고 하늘을 원망한다면 그의 생애는 결국 실패하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매사를 믿음으로 기다려야 합니다. 비록 현실에 고난이 있어도 기다려야 합니다. 비록 고통스러운 문제가 있을지라도 믿음으로 기다려야 합니다. 가을에 들판의 벼나 과일나무의 과일들은 햇빛도 받아야 하고 비도 맞아야 하고 바람도 쏘여야 하고 적당하게 고난이 있어야 단련되고 성숙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농부를 통해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영적인 자세가 무엇입니까?
추수를 기다리면서 쉬지 않고 열심히 일하면서 기다린다는 사실입니다. 고난당하고 원망할만한 일을 당한다 할지라도 그리스도인들은 영적인 농부로서 영적인 일들을 쉬지 않기를 바랍니다. 우리나라에 과거 농사짓기 어렵다고 너도 나도 도시로 가버렷습니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나라의 농사의 실패의 원인입니다. 젊을수록 일해야 합니다.

종종 영적일꾼으로서 고난이 있고 어려움이 찾아오면 ‘이제 이 일을 하지 않을거야’라고 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우리의 신앙의 열매는 사용하면서 일하면서 맺어지는 법입니다. 내가 언제 가장 배우는지 아십니까? 가르침을 받을때가 아니라 남을 내가 가르치는 교사가 될 때입니다. 내가 언제 가장 찬양을 잘 부르는지 아십니까? 내가 남이 부르는 찬양을 들을때가 아니고 내가 찬양부를때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바로 그 일이 고통스럽고 어렵지만 준비하면서 은혜를 받고 준비하면서 자신을 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주님의 일꾼으로서 영적인 농부의 자세를 갖고 어려움이 있어도 원망하지 말고 그 자리에서 인내하면서 일아시기를 바랍니다.

2. 선지자들같이 참으십시오

10절을 보십시오.
여기 야고보서 기자는 인내의 본보기로 선지자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러분 성경에 많은 선지자들이 있었습니다. 선지자란 하나님의 뜻을 대언하는 하나님의 일꾼입니다. 성경에 보면 이사야 에레미야 에스겔 다니엘같이 많은 선지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엿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고난을 받았습니다. 이상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선지자들은 인정하고 높이기보다는 오히려 핍박하고 심지어는 죽이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참았습니다.

여러분 신약에 오신 선지자의 완성이신 우리 주님도 그렇습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얼마나 옳은 말씀 바른 섬김을 통해서 사람들을 섬겼습니까? 그러나 사람들은 배척했습니다. 심지어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습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주님의  많은 말씀과 사건 중에서 가장 기억되는 사건이 겟세마네동산에서 있었습니다. 예루살렘에 가면 감람산이 있고 그 감람산 밑자락에 겟세마네동산이 있습니다. 성지순례를 가서 주님께서 기도하셨던 그 곳이라고 하는 곳에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주님께서 밤새도록 땀방욱이 핏방울이 되도록 기도하였습니다. 할 수 있으면 이 잔을 내게서 지나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하지 마옵이소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면서 간절하게 기도햇습니다. 다음날 새벽에 가롯유다가 예수님을 잡으려고 무장한 사람들과 함께 옵니다. 예수님을 잡으려고 그들이 손을 대자 베드로가 손을 펴서 검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의 귀를 쳐서 떨어뜨립니다. 그때 주님께서 말씀합니다. “이 검을 도로 집에 꽂으라 검을 가지는 자는 다 검으로 망하느니라‘고 하십니다.

그러면서 주님이 말씀합니다. ‘너는 내가 내 아버지께 구하여 지금 열두영 더되는 천사를 보내시게 할 수 없는줄로 아느냐“고 하십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천군천사를 보내어 예수님을 또 선지자를 또 주님의 백성들을 구하지 않습니까? 고난 속에 하나님의 뜻이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십자가를 통하여 구원의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졌습니다. 우리의 삶의 많은 고난을 통해서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에게 고난을 허용하십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그리스도인으로서 경건하게 살고자 할때 우리에게도 핍박과 고난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신실하게 따르는 주님의 사람들의 표지는 고난받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그렇게 그리스도인을 핍박하고 고난을 가하는 사람들이 교회 밖에 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죄와 사탄은 세상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때로 교회 안에서 가장 가까운 우리의 주변인들로부터도 그런 일들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때로는 믿음의 사람들을 핍박하고 고난을 강하는 가해자가 나일 수 도 있습니다. 나의 믿음없으므로인해서 미성숙한 인격으로 이해서 마귀의 유혹에 넘어가서 그렇게 우리가 행할수 잇는 연약함들이 우리 모두에게도 있을 수 잇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애매한 고난이 있을지라도 성경에서는 참으라고 합니다.그렇게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이유는 바로 주님께서 갚아주시기 때문입니다. 비록 그 당시에는 힘들도 어렵지만 주님을 생각하면서 참고 기다리면 주님께서 때가 되면 높여주시고 상급으로 갚아주시기 때문입니다.

교회 생활을 하면서 우리는 고난을 피해가고 싶어하고 상처를 받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알야 할 것은 우리가 상처받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됩니다. 고난받기를 두려워해서는 안됩니다. 남에게 상처를 받고 그 상처를 치유받은 경험이 있는 사람만이 남을 도와줄 수 있습니다. 믿음 안에서 고난받은 사람만이 믿음의 성숙함을 경험하기 때문입니다.
더욱 궁극적으로 왜 우리가 상처받고 왜 우리가 고난받아야 합니까?
바로 그것이 주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말씀대로 삶을 사는데 있어서 현실의 어려움 속에서도 그 말씀의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이라면 우리는 고난이 있고 상처가 있지만 그대로 살아야 할 언약의 백성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고난 속에 믿음을 지키고 인내하고 이긴 사람들을 우리는 인정합니다. 그런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은 높여주십니다.

3. 욥같이 참으십시오.

여러분 성경의 많은 인물 중에서 가장 고난의 대표적인 인물로 우리가 꼽을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욥입니다. 욥의 인내는 복된 인내였습니다. 욥의 인내는 우리가 믿음으로 인내할 때 하나님께서 어떻게 복으로 역사하실 것인지를 소망할 수 있게 해줍니다.

구약성경 욥기는 42장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욥이 고난받는데 재물을 다 잃어버립니다. 큰 부자였던 모든 땅의 재물을 다 잃어버립니다. 다음에 10명의 아들 딸을 모두 잃어버립니다. 그리고 욥의 몸에는 악창이 나서 재를 뒤집어쓰고 기왓장으로 긁어야 할 정도로 고통을 겪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의 사랑하는 아내는 욥을 저주하고 사랑하는 친구들도 욥을 정죄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명심할 것은 욥이 고난당하면서 이 모든 일에 범죄하지 않았습니다.입술로조차도 범죄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욥은 이 고난 가운데서도 “주신자도 여호와시오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찌니이다”라고 하면서 하나님을 송축합니다. 이 모든 일에 욥이 어리석게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욥은 인내하면서 고난을 이겼습니다.

문제는 여러분 욥이 왜 고난을 당했습니까?
욥은 의로운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에게 이런 엄청난 고난이 일어났습니다. 문제는 욥이 자신이 왜 이런 고난을 당하는지 몰랐습니다. 하나님과 사탄사이에 일어나는 일을 욥은 몰랐습니다. 그러나 욥은 이유를 모르지만 하나님의 선한뜻을 믿고 무조건 참고 하나님을 기다리면서 이겼습니다.

여러분 욥은 의로운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욥이 고난을 당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사탄의 궤계가 있었습니다. 욥이 신앙생활을 잘하자 그를 시기하였습니다. 그래서 그의 믿음의 진짜여부를 시험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우리가 잘 될 때 우리를 시기하고 우리의 행복을 도둑질하려고 하는 못된 도둑놈이 있습니다. 바로 사탄입니다. 여러분 이 사실을 명심하기를 바랍니다.

특히 불신자가 새롭게 하나님 앞에 돌아와서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신자가 되고 하나님 앞에 열심을 다하면 마귀는 얼마나 질투하는지 모릅니다. 그때 주시는 모든 시련을 믿음으로 잘 이겨내시기 바랍니다.
어떻게 욥이 그 모든 시련 속에서 참을 수 있었을까요?
욥기서23:10에 보면 욥의 신앙고백이 소개됩니다.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고 고백합니다. 욥은 비록 고난 중에 있었지만 하나님께서 나의 가는 길을 아신다고 믿었습니다. 비록 욥은 고난 중에 있었지만 조급함이 없었습니다.

욥은 하나님의 자비하심과 긍휼히 여겨주시는 하나님이심을 믿었습니다. 지금 당장은 비록 고통스럽지만 하나님의 선한 뜻을 믿는 백성들은 결코 조급하지 않습니다. 비록 더딜지라도 하나님께서 반드시 역사하여 주실 것을 믿으면서 비록 더디지만 그 방향으로 가는 것을 알기에 조급하지 않는 것입니다. 어떤 경우라도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비록 현재가 어려워도 미래를 믿음 안에서 희망을 갖고 기다려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기다릴때 우리가 세대를 따라 범죄하면서 부정한 믿음으로 기다리면 안됩니다. 몇 년전에 남북 이산가족상봉 중에 의미있는 재회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결혼하고 막마로 헤어진 어느 남녀의 이야기였습니다. 남편과 헤어진 여인은 배속에 아이를 낳아서 기르면서 홀로 바느질을 하면서 헤어진 남편을 50년을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남편은 재혼을 하여서 이미 아내가 있고 자식들도 있었습니다. 기다림으로 기다렸던 이 여인은 얼마나 실망스러워겠습니까? 얼굴로 본 기쁨도 잠시 헤어지면서 자신의 기다림을 충족시켜주지 못한 남편의 모습을 가슴아파하는 모습을 본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을 기다리는 백성들에게는 이런 상처와 아픔은 없을 것입니다.
주님의 재림을 정결한 신부처럼 기다리면서 살아가는 주님의 백성들에게 주님께서 영광스러운 만남을 허용하실 것입니다. 자비하시고 온전하신 우리 주님의 재림을 우리 모두가 기대하면서 영광스러운 그날을 소망하면서 날마다 농부처럼 선지자처럼 욥처럼 기다림의 믿음으로 우리 모두가 승리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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