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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경이 지금도 소중한 이유 (시 146: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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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곽주환 목사

요즈음에는 위성항법장치(GPS)가 잘 되어 있어서 길 찾기가 쉬워졌다. 내가 여기에서 서울역을 찾아가야 되겠다고 목적지를 정해 놓으면 길을 정확하게 안내해 준다. 여기에서 좌회전하시고, 백미터 앞에서 지하도로 내려가시고, 참으로 친절하다. 정확한 안내를 받으려면 계속해서 최근에 나온 자료로 바꿔 줘야 한다. 몇 년 전에 바뀌지 않은 것으로 운전을 하며 목적지를 향하여 가고 있었다. 새로운 만들어진 가양대교를 건너서 가는데 화면에는 아무런 길도 없이 한강 위를 건너가고 있는 것 처럼 나오고 있었다.

지도는 새롭게 바뀌어야 된다. 새로운 지도를 가져야 바르게 찾아갈 수 있다. 만일 내가 지금부터 20년 전의 지도를 지금도 사용한다면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이 되고 만다. 이 시대를 사는 미련한 사람이 되고 말 것이다. 그러기에 지도를 새롭게 계속해서 만들어가야 한다.

그렇다면 성경은 어떤가? 성경은 적어도 지금부터 약 1500년 전에 완성된 책이다. 요즘같으면 십년 전의 지도를 갖고도 길을 찾기 어렵고, 그 지도를 사용한다면 미련한 사람이 되는데, 지금부터 1500년 전에 완성된 책을 갖고서 이 시대를 사는 것이 미련해 보이지는 않는가? 답답한 사람처럼 보이지 않는가? 그렇다고 성경의 내용이 바뀌는 것도 아니고, 바뀐다면 새롭게 번역한 표현만 바뀔 뿐이지 내용 자체가 바뀌지 않는다. 또한 바뀐다면 성경의 이름만 바뀔 뿐이다. 열린성경, 아가페 성경, 톰슨성경, 청바지성경, 등 표지와 성경의 이름만 바뀔 뿐이지 성경 내용 자체가 바뀌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어떤 이유에서 지금도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책이 되었는가? 가장 중요한 이유는 성경은 곧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이다. 말씀은 말 속에 들어있는 숨이다. 말 속에 들어있는 생명력이다. 말 속에 하나님의 생명력이 담겨져 있기 때문에 성경은 지금도 우리에게 유효한 책이다. 성경에 보면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구약성경에는 이러한 표현이 3803회가 나온다. 성경은 사람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쓰고, 사람이 자기의 생각을 기록하면서 어떻게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예수께서 가라사대”라는 표현을 쓸 수 있겠는가? 디모데후서에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되었다”고 표현하고 있다.

이같이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유대인들에게만 주어지는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다. 과거에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다. 성경에 표현된 하나님의 말씀은 누구에게든지 적용된다. 나라에 상관없이, 인종에 상관없이, 언어에 상관없이, 빈부에 상관없이 누구에게든지 적용되는 말씀이다.

또한 성경은 어디에서든지 유효한 하나님의 말씀이다. 서울에서든지, 평양에서든지, 워싱턴에서든지 모스크바에서든지, 이라크에서든지 예루살렘에서든지 어디에서도 유효한 하나님의 말씀이다. 또한 성경은 어느 시대에서도 유효한 하나님의 말씀이다. 지금부터 100년전의 시간이든지, 앞으로 백년의 세월이 흘러도 성경은 그들에게도 역시 똑같이 유효한 하나님의 말씀이다. 분명한 것은 예수님이 오실 때까지 누구에게든지, 어디에서든지, 언제든지 유효한 하나님의 말씀이다.

성경은 분명히 말씀하고 있다.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선지자 예레미야 시대에 여호야김은 하나님의 말씀을 불살라 없애려고 하였다. 그러나 그의 노력은 허사가 되고 말았다. 초대 교회 때 로마 황제들 중에도 성경을 없애려는 사람이 얼마나 많이 있었는가? 디오클레시안이라는 황제는 성경을 갖고 다니는 사람들에게 저주와 피의 위협을 가했다. 많은 사람들이 성경 때문에 순교를 당했다. 그리고 그 황제는 자기의 공적을 기리는 공적비를 세웠는데 이렇게 라틴어로 기록하였다. “그리스도인이란 이름이 멸절되다.” 그 당시에는 성경을 갖고 있기만 하면 사형에 처하게 되었다. 그러나 10년도 되지 않아 콘스탄틴이 황제가 되어 “내가 그리스도인”임을 선언하였다.
불란서의 무신론자 볼테르는 오만하게 “1세기만 지나면 지구상에 성경은 한 권도 없을 것이다”라고 말했지만 그가 죽은 후에 그의 집은 성경을 찍어내는 성서공회가 되었다. 볼테르는 죽었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굳건히 서 있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하나님의 말씀은 영영히 서리라.”

구 소련에서의 일이다. 어느 목사가 기차 안에서 무신론자와 한참 동안 변론을 했다. 목사는 성경을 펴서 읽어 주었지만 그 무신론자는 성경을 빼앗아 창문을 열고 밖으로 내던져 버렸다. 그리고 수년 후, 그 목사의 서재에 누군가가 문을 두드린 것이다. 무슨 일로 왔느냐고 물으니 세례를 받기를 원한다고 했다. 목사님은 허락을 하면서 어디서 왔는지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게 되었는지를 물었다. 세례를 받으러온 낯선 여행객은 "저희 동네에는 예수를 믿는 이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밭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기차가 지나가면서 웬 물건이 날아와 가슴에 부딪히고는 떨어졌지요." 그것은 성경이었고 농부는 그날부터 성경을 읽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영접했으나 세례 줄 사람이 없어 수소문하여 여기까지 왔다는 것이다. 그 성경은 바로 그 목사가 무신론자에게 빼앗긴 성경이었고 그 무신론자가 내던진 성경이 바로 이 농부를 주님 앞으로 인도해낸 것이다.

성경이 기차간에서 버려지고 사라지고 없어진 것 같지만 성경은 농부의 마음에 다시 살아났다. 성경이 이 시대의 과학문명에서 시대에 뒤 떨어진 것 같이 켸켸 묵은 소리 같지만 성경은 곧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어딘가에서 다시 마음을 움직이는 역사가 일어나고 있다. 그러기에 성경은 지금 이 시대에도 유효한 하나님의 말씀이다. 본문의 말씀을 보라. “여호와는 천지와 바다와 그 중의 만물을 지으시며 영원히 진실함을 지키신다.” 성경은 시대를 초월하여 유효한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러면 어떤 의미에서 성경이 우리에게 유효한 하나님의 말씀인가? 여기에 분명한 대답이 있다. 성경은 우리의 삶에서 방향을 잡아주기 때문이다. 속도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방향이 중요하다. 이 시대는 속도를 강조한다. 컴퓨터의 가격도 속도에 따라 차이가 많이 난다. 일반 철도하고 고속철하고 속도에 따라서 가격의 차이가 난다. 속도가 경쟁력이다. 속도가 곧 돈이다. 피자 집에서도 30분 만에 배달해 주지 않으면 공짜로 준다고 한다. 햄버거 가게에서도 주문한지 1분만에 나오지 않으면 아이스크림을 공짜로 준다고 한다. 속도가 곧 경쟁력이다.
그러나 방향이 잘못되면 빠른 속도가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방향이 잘못되면 속도가 빠를수록 문제는 더 커진다. 특별히 우리가 사는 이 시대는 속도의 경쟁이 중요하기 때문에 바른 방향을 잡아주는 것이 있어야 한다. 성경은 인생의 방향을 잡아주는 나침반이다. 성경은 시대의 방향을 잡아주는 나침반이다.

조종사가 비행학교에서 훈련을 받을 때 교관은 늘 이렇게 강조한다고 한다. “비행기 조종석에 앉아서는 절대로 자신의 감각을 믿지 말라. 특히 악천후 속에서 비행할 때나 고도가 높아질 때 공중의 한복판에서 항로를 이탈했을 때 더욱더 자신을 믿지 말라. 그때는 계기판을 믿어라.” 어떤 조종사가 훈련을 마치고 비행을 하게 되었다. 그는 비행 감각에 대해서는 자신만만해했다. 훈련을 통해서 이미 비행 감각을 키웠기 때문이다. 어느 날 비행하며 가다가 좋지 않은 일기를 만났다. 앞뒤를 분간할 수 없는 짙은 안개 속에 갇히고 말았다. 이 조종사는 자신의 비행 지식을 총동원하였지만 점점 더 오리무중이었다. 방향조차 찾을 수가 없었다. 그때 비행학교 훈련 교관의 말이 떠올랐다. “계기판을 보아라. 계기판을 믿고 따라가라.” 자신이 느끼던 것과 계기판의 기록은 판이했다. 이 조종사은 계기판을 보면서 방향과 고도를 잡고 침착하게 조종을 해서 곧 그 상황을 벗어날 수 있었다.

인생길을 가는 동안 악천후와 같은 상황을 만날 때가 허다하다. 그럴 때 내 지식과 내 감각은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런 익숙한 경험이 그 문제를 더 심한 구렁텅이로 빠뜨릴지도 모른다. 우리 인생길에 계기판은 내가 아니다. 우리 인생의 바른 계기판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지금 당신이 어려움 속에서 악천후를 맞고 있다면 과거의 경험을 되살리기 전에,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물어보기 전에 골방에 들어가 계기판의 치수를 설명해줄 그분께 간절히 물어보라. 그리고 그대로 따르라.

이같이 성경은 가장 불확실한 시대에 확실한 장소로 여행하도록 방향을 가르쳐주는 나침반이요, 계기판이다. 나침반은 언제나 북극성을 향하여 가르치는데 성경은 결국 무엇을 가르치는가? 성경은 결국 어디를 향하도록 우리의 방향을 잡아주는가? 대답은 간단하다. 성경은 예수님을 향하는 길을 가르쳐준다. 예수님에게 인생의 근본적인 대답이 있기 때문이다.

요한복음 20: 31 말씀에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 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성경은 우리 시대에 방향을 잡아주는 계기판이요, 나침반이다. 성경은 예수에게로 인도하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예수님이 모든 문제의 해결자이시다. 예수님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실 수 있는 구세주이시다. 예수님은 억눌린 사람들을 위해 심판하신고, 주린 자에게 먹을 것을 주신다. 갇힌 자들에게 자유를 주시는 분이시다. 인생의 근본적인 문제의 해결은 예수님에게 있다.

시대가 엄청나게 빠르게 변화한다. 그러나 변하지 않는 영원한 진리가 있다. “시온아 여호와는 영원히 다스리시고 네 하나님은 대대로 통치하시리로다.” 어떤 변화가 있다고 할지라도 시대는 하나님의 손에 붙잡혀 있다. 주님의 손에 붙잡혀 있다. 우리는 방향을 바로 잡아야 한다. 성경은 인생의 방향을 바로 잡게 해 준다.

오래 전 아프리카의 흑인 노예들을 가득 태운 노예선이 미국을 향해 떠났다. 배 밑창에 갇혀 있던 흑인들은 반란을 일으켜 탈출하기로 결정하고 일제히 갑판으로 뛰어 올라왔다. 그리고는 모든 백인들을 바다에 던져 넣고 모든 기물을 파괴 하였다. 선장실에 있던 나침반 마저 부숴버린 이들은 이제는 자유하게 되었다고 기뻐 하였다. 그러나 나침반이 없는 그 배는 방향을 잃어 버리고 파도에 견디지 못해서 결국 파선 당하고 말았다.

세상에 많은 사람들이 어디에 구속되는 것을 싫어한다.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구속받는 것도 싫어한다. 자기의 생각이 자유롭기를 원한다. 그러나 우리가 가슴에 담고 살아야할 것이 있다. 자유가 좋다고 하여 나침반까지 버리면 결국은 우리 모두가 죽는다.
세상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어느 것에도 구속받지 않는 자유를 원한다. 그러나 방향을 가르키는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면 우리는 결국 죽게 된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예수에게로 인도되어 주님 주시는 참된 생명이 가득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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