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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여리고를 함락하라 (수 6: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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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조병우 목사 (김천제일교회)

우리는 누구를 부러워할 때 그 사람의 전부를 부러워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한 부분만을 부러워합니다. 무슨 말씀인고 하면 우리가 부자를 부러워할 때 그 사람이 가진 돈을 부러워하는 것이지 그 사람의 인격이나 외모를 부러워하는 것이 아닙니다. 반면 아름다운 배우를 부러워하는 것은 그 사람이 가진 외모를 부러워하는 것이지 그 사람이 가진 삶의 불행한 요소까지 부러워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누구를 좋아한다고 할 때 그 사람의 전부를 사랑하기가 어렵습니다. 그 사람이 가진 성공이나 그 사람이 가진 장점들을 좋아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참 사랑은 그가 가진 전부를 사랑하는 것이고 그가 가진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가령 부모가 자식을 사랑할 때에 자식의 성격이나 자식의 외모나 자식의 재능들도 다 수용하고 이해하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실 때에는 우리의 전부를 사랑하십니다.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의 장점만 사랑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약점도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장점만 사용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약점도 사용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약한 자를 들어서 강한 자를 부끄럽게 하시는 분이시고 미련한 자를 들어서 지혜로운 자를 부끄럽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이 말씀을 우리에게 적용하면 이렇게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내가 가진 모든 것들이 하나님께 쓰임이 되지 못하고 내 혼자만의 삶의 도구가 되면 다 약점이 됩니다. 심지어 내가 가진 장점도 하나님이 쓰시지 않으시면 다 약점이 되는 것입니다. 반대로 내가 가진 모든 것들이 하나님이 쓰시면 다 장점이 되어지게 됩니다. 사람들이 다 부끄럽게 여기는 것조차 하나님의 손에 붙잡히면 장점이 되는 것입니다.

장점과 약점은 누가 사용하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지 그 자체에 있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세상을 놀라게 할 만한 지식을 가진 사람도 악한 사람에게 붙잡히면 그 지식이 악한 도구가 될 수 있고 지극히 평범한 사람도 하나님이 쓰시면 한 민족을 구원하는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사람의 재능과 소유를 가지고 인간의 능력을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하나님의 손에 붙잡혀 있느냐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오늘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 40년을 마치고 요단을 건너서 가나안을 점령하는 사건을 기록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을 향해 나아가는 일에 처음으로 만난 장벽이 바로 여리고 성이었습니다. 엄청난 여리고 성은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길목에 있었기 때문에 여리고 성의 전투는 가장 중요한 전투였습니다. 이 전투는 성도의 영적 전투의 성격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1. 여호수아가 아침에 일찍 일어나니라 고 했습니다.
아침이라는 말과 일찍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성도가 영적으로 승리하기 위해 반드시 기억해야 할 단어는 바로 이 말입니다. 성경에 일찍이라는 부사 앞에는 거의 전부 아침이라는 명사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나중이 없습니다. 나중이라는 말은 하나님의 일을 하지 않겠다는 것과 같습니다. 언제나 하나님께는 먼저 라야 합니다.

영적으로 승리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먼저 그 일을 가장 우선적인 일로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내 할 일을 한 뒤에 주의 일을 하려 한다면 그것은 주의 일이 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치 않다고 했습니다. 주의 일을 잘하는 방법은 주의 일을 중심에 두는 것입니다. 중심에 두지 않는 일을 주의 일이 될 수 없습니다.

주의 일을 먼저 한다는 말이나 주의 일을 중심에 둔다는 말은 주의 일은 주님을 보면서 한다는 뜻입니다. 사람을 보며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보고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정에서 하는 일도 주님을 바라보면서 하면 주의 일이 되는 것이고 주의 일을 하면서도 자기가 중심이 된 일은 주의 일이 아닙니다.

영적으로 승리하려면 무엇보다 삶의 의식에 전환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삶에서 하나님을 앞세우지 않으면 그 삶은 아무리 오래 믿어도 결국 반복의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반복의 삶이란 하루의 삶이나 일 년의 삶이 별로 차이가 없는 것을 말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지난 광야 40년은 반복의 삶이었습니다. 성경은 그 반복의 삶의 성격을 심판의 삶이라고 했고 죽음의 삶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삶이 하나님 안에서 의식의 전환이 이루어지면 어제와는 전혀 새로운 삶이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날 새벽은 완전히 새로운 날이 된 것입니다. 새로운 역사가 시작이 되는 시간이었습니다. 성경은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했습니다. 성도에게 승리란 남을 이기기 전에 내 삶의 새로운 변화를 말하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의 말씀을 앞세우고 그 말씀을 따라가는 삶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여리고를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없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이스라엘이 승리의 비결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해서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 있는 언약궤를 따라서 여리고 성을 돌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승리를 위해서 한 일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하루에 한 번씩 일곱째 날은 일곱 번을 여리고 성을 돈 것입니다.

여리고 성을 하루에 한 바퀴씩 6일 동안을 돌고 일곱째 되는 날은 일곱 바퀴를 도는 프로그램은 하나님이 주신 말씀이었습니다. 이 하나님의 계획에 대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이유를 몰랐습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순종이라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순종은 하나님이 예비하신 은혜를 내 것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영적 승리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있습니다. 제사장은 여호와의 궤를 메고 백성들은 그 뒤를 따라서 여리고 성을 돌았습니다. 여기에 돈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승리를 주실 때에는 언제나 순종의 방법을 사용하십니다. 그것이 여리고든 아말렉이든 혹은 미디안이든 순종을 통해서 이기게 하셨습니다.

순종은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우리가 어떤 경우에도 순종보다 더 귀한 방법이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십자가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순종을 통해서 죄를 이기셨고 사망의 권세를 이기셨고 우리를 여리고 성과 비교할 수 없는 사탄의 진을 무너뜨리고 승리하셨기 때문입니다. 영적 승리는 순종을 통해서만 가능한 것입니다.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순종은 두 가지에 대한 갈등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순종하기 전에는 잘 이해되지 않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순종을 방해하는 것이 다른 환경에 있는 것이 아니고 자기 자신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순종에 실패하는 것은 자기 자신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시키시는 일은 내가 힘이 없어 실패하는 일은 없습니다.

바꾸어 말하면 하나님이 시키시는 일은 너무 단순하고 쉽기 때문에 오히려 순종하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나만 장군은 요단강에 가서 일곱 번 목욕하라고 했을 때 그 명령이 너무 어려워 할 수 없기 때문이 아니라 너무 단순하기 때문에 순종하지 않으려고 한 것입니다. 순종은 결국 내가 하나님과 나 자신과의 관계를 바로 세우는 원리를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순종은 내가 지금 하나님을 내 자신보다도 더 믿고 있느냐 하는 것에 대한 검증입니다. 때문에 순종은 바로 믿음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바로 그 믿음이 순종을 통해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순종을 가로막는 것은 바로 상황이 아니라 하나님께 대한 불신앙에 있습니다. 실패에는 언제나 순종하지 않기 때문에 나타나는 결과인 것입니다. 성도는 항상 내가 이 일에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내게 순종하기를 원하시는 것을 깨닫고 그 일에 순종하는 사람은 언제나 승리의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3.순종을 방해하는 것이 바로 욕심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여리고 성을 함락한 다음 지켜야 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 내용이 바로 여리고 성을 함락한 다음 어떤 것도 개인이 가져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7장에 들어서면서 바로 나오는 이야기가 아간의 이야기입니다. 아간이 몰래 숨겨놓은 물건으로 인하여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셨다고 했습니다.

결국 이스라엘은 아간의 불순종으로 인하여 승리 뒤에 비참한 패배의 쓴잔을 마시게 되었습니다. 항상 순종을 방해하는 것은 욕심 때문입니다. 사울 임금도 욕심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게 되었고 가롯 유다도 욕심 때문에 예수님을 불의한 세력에 판 것입니다. 사람이 욕심을 버리지 않으면 욕심은 우리 속에서 항상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게 만듭니다. 이것으로 인하여 받은 은혜와 복을 잃게 됩니다.

성도가 알아야 할 것은 말씀을 순종할 때에 욕심이 그 순종 안에 틈타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욕심이 순종 가운데 들어오게 되면 순종이 변질이 되어서 순종이 복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욕심 때문에 그 자신이 심판의 자리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순종하려고 할 때 정말 욕심이 그 순종 가운데 찾아오기 쉽습니다. 그래서 순종이라는 상황 안에 욕심을 감추기 쉬운 것입니다. 성도는 이것을 조심해야 합니다. 성도가 순종할 때에 겉으로는 환경과 싸워야 하고 속으로는 욕심과 싸워야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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