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뒤만 돌아보지 않았어도 (창 19:17~26)

  • 잡초 잡초
  • 313
  • 0

첨부 1


- 설교 : 백장흔 목사 (한우리교회)

진화론자들은 인간이 본래 원숭이가 점점 진화되어 사람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진화론자의 아들이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아버지가 하는 말이 사람이 진화된 증거가 분명하다.  사람의 꽁무니를 보면 꽁지 달렸던 자리가 분명히 있다 라고 합니다.  이 말을 들은 아들이 하는 말 아버지는 어느 동물원에서 오셨어요? 라고 물었다고 합니다.  사람은 원숭이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자기의 형상대로 지으셨습니다.  그런데 앞을 보고 살라고 눈이 앞에 있습니다.  뒤로 걷는 것보다 앞으로 걷는 게 편하게 되었습니다.  자동차 고급스런 고속전철을 타도 뒤로 가면 매우 피곤합니다.  사람은 앞을 보고 살도록 지으셨습니다.  그런데 뒤로 가려고 하기 때문에 피곤하게 되는 것입니다.  복된 삶을 사는 사람들은 항상 오늘이나 어제를 생각하고 사는 게 아니라  미래를 즉 앞을 생각하고 뛰고 노력하고 일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믿는 기독교도 그러합니다.  이 세상에서 복 받고 잘되는 것만을 추구하는 게 아니라 영원한 하늘나라를 바라보면서 준비하고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우리는 앞을 보고 살아야 합니다.  뒤를 볼 때가 물론 있습니다.  이는 앞으로 더 힘있게 가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왜 뒤를 바라보면서 잘못되어야 합니까? 뒤를 돌아보다가 패가 망신한 사람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바로 믿음 좋은 아브라함을 삼촌으로 두었던 롯의 처 이야기입니다.

창세기를 보면 아담이후 노아의 이야기 다음으로 아브라함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아브라함의 이야기 가운데 등장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의 조카 롯입니다.  롯을 보면 가정에 문제가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1) 극단적인 이기주의 가정이었습니다.

이기주의자들은 다른 이들을 배려하지 않습니다.  창조 이후 인간들은 이기주의 심리를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기주의가 무엇입니까? 무엇보다도 나는 손해 볼 수 없다는 생각으로 사는 사람입니다. 다른 이들이 해를 당해도 나는 손해 보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사는 사람입니다.  자기를 돌보아 준 삼촌에 대하여 전혀 관심을 가지지 않았습니다.  독일의 작가이며 컨설턴트인 요제프 가르쉬너라는 이는 이기주의자가 되는 기술이라는 책을 저술하였는데 그의 이론에 의하면 1단계 나는 누구인가?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확실히 안다.  그 과정에서 다른 이들의 중요한 것에 대하여는 모두 놓아버린다.  2단계는 인생이 무언가 바꾸려면 자신의 행동을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  3단계는 자신만의 인생계획을 만든다.  4단계 계획을 충실히 이행하는데 가로놓은 장애물을 인식한다.  5단계는 스스로 늘 재충전하고 영감을 줄 수 있는 기술을 배운다.  그러면 다른 사람들을 간섭하는데 좀더 자유로울 것이다.  6단계 자신에 대한 믿음이 모든 두려움보다 훨씬 더 강해질 때까지 날마다 훈련한다.  7단계 내 생각과 행동을 스스로 콘트롤한다.  그래야 성공과 실패에서 무엇인가를 배울 수 있다는 것입니다.

분쟁의 원인이 어디에서 옵니까? 이기주의에서 옵니다.  남을 위해 주는 곳에서는 문제가 생길 리 없습니다.  나만 위해 달라 나를 알아 달라.  여기에서 복잡해집니다.  가정에서 부부가 행복하게 삽니다.  원인은 서로가 위해 주는 것입니다.  당신 위주로 살아갑니다.  반대로 나 중심으로 고집해보세요.  그 집은 불행해집니다.

어떤 남자가 두 여자를 거느리고 살았답니다.  한 여자는 젊습니다.  남자가 자기 집에 올 때마다 흰 머리카락을 뽑습니다.  왜 친구들 보기에 부끄럽다는 것입니다.  다른 여자는 나이가 많습니다.  그는 자기 남편을 만나면 검은 머리털을 뽑습니다.  이유인즉 자기는 늙게 보이는데 남편만 젊게 보이는 게 친구들 보기에 부끄러워서 그런답니다.  얼마 후에 보니 남편의 머리카락이 없습니다.  두 여자의 이기주의가 남편을 대머리로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오늘날 이기주의가 주변을 복잡하게 만들어 갑니다.  영국 속담에 하루동안 행복하려면 이발을 하라.  일주일동안 행복하려면 여행을 하라. 한 달 동안 행복하려면 집을 사라.  일년동안 행복하려면 결혼을 하라. 그런데 일생동안 행복하려면 이웃을 섬겨라.  그럼에도 왜 섬기지 못합니까? 이기심 때문입니다.  롯의 가정이 그러했습니다.

  2) 롯의 가정은 은혜를 몰랐습니다. 

성숙한 사람은 적은 것에도 감사합니다.  왜 은혜를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무엇을 받았느냐 보다는 얼마나 감사한가를 깨닫는 게 중요합니다.  큰 은혜와 축복을 받아도 깨닫지 못하고 감사하지 못하면 불행한 결과가 생깁니다.  롯은 삼촌 아브라함의 도움으로 살아 왔습니다.  삼촌에 대하여 고마운 마음을 가졌어야 했습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비슷하게 좋은 것에 대하여 감사하는 대신 잘못된 것에 대하여서만 불평을 합니다.

기억할 것은 쉽게 잊고 잊어야 할 것은 오랫동안 기억하고 삽니다.  좋았던 일, 행복했던 일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힘든 수술을 하려고 수술대 위에 올라가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불안하다고 합니다.  그때 무엇을 생각하는고 하면 자기 생애에서 가장 좋았던 때 가장 좋은 사람을 기억하고 있으라고 합니다.  연기하는 사람이 웃고 행복한 표정을 어떻게 갖느냐 자기 자신이 가장 좋았던 것을 기억하면 좋았던 행복의 장면을 연기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은혜를 알고 감사하는 사람이 복된 사람입니다.  은혜를 알면 겸손해집니다.  예전 나이 드신 어른 목사님들이 설교할 때에 익은 곡식을 고개를 숙이고 덜된 사람은 교만하다는 것입니다.  은혜를 받고 깨달은 사람은 교만하지 않습니다.  은혜를 아는 사람은 감사하게 됩니다.  감사하는 사람이 됩시다.  감사는 할수록 좋고 행복입니다.

자기를 도와주었던 삼촌입니다.  재산 분배 시에 선택의 우선권은 롯이 가지고 좋은 땅에서 살았습니다.  잃어버린 자기 재산만이 아니라 생명까지 구해 주었습니다.  그돌라오멜과 주변의 나라 연합군에 의하여 포로가 되었을 때 아브라함이 구해 주었습니다.  여러분 영적으로 문제가 있습니까? 은혜를 알고 감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가정에서 부부가 행복하고 복되게 살려면 서로에게 고마운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아내를 지켜봅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얼굴에 주름살이 늘어납니다.  그것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해야 합니까? 젊은 시절에는 그렇게 착하고 예쁘고 고았는데 나를 위해 일생동안 희생하고 고생하면서 살아주다가 저렇게 주름살이 늘어만 가는 구나 참으로 고마운 사람이다.
힘을 잃어 가는 남편을 바라보던 아내가 참으로 고맙다.  우리 가족들을 위해 일생동안 뛰고 달려오다가 이제는 힘을 잃어 가는 구나.  이런 마음으로 살아간다면 그 집은 행복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대하여 감사하고 서로가 고마운 마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유대의 한 여자가 자녀들을 너무나 훌륭하게 키웠습니다.  그 비결이 무엇인가 알고 싶어서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그 비결은 간단합니다.  어머니는 자녀들에게 딱 세 마디를 해주고 그대로 실천하고 살아라 그랬답니다.  첫째, 모든 일에 감사하고 살아라.  큰일에도 물론 감사하지만 작은 일에도 감사하라.  항상 감사하라.  그저 감사하고 살아라.  둘째는 원망하는 사람과는 가깝게 하지 말라.  놀지도 말아라.  원망도 습관입니다.  잘못된 습관을 가진 사람과 가깝게 하지 말라는 겁니다. 그것도 오염됩니다.  전염됩니다.  셋째는 감사하는 사람과 친하게 지내라.  이 세 마디를 듣고 그대로 실천하였는데 자녀들이 다 성공적으로 잘 되더라는 겁니다.  가정에 감사가 없다는 것은 가정을 지옥으로 만들 각오가 되어 있는 사람입니다.

  3) 사위들이 롯의 말을 농담으로 여겼습니다.(16절)

소돔 성이 망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중에도 이 집에는 하나님의 사자가 찾아왔습니다.  얼마 후에 이 성이 불로 심판을 받는다 라고 말해주었습니다.  그 말을 농담으로 들었다고 하였습니다.  장인 어른이 말하는데 그 말을 듣고 농담이시지 그랬습니다.  여러분들은 이 일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세요.  누가 잘못되었습니까? 사위들입니까? 말한 롯 입니까? 시대적인 잘못입니까? 믿어야 하는 거 아닙니까? 그런데 왜 안 믿었습니까? 불신 시대적인 사고 속에서 사는 때입니다.  정부를 국민들이 안 믿으려고 합니다.  왜 그러죠.  믿을만한 사람들이 아니라는 겁니다.  고급 승용차를 타고 고향에 오신 국회의원이 빗길에 사고가 나서 의원님이 죽었습니다.  그것을 본 농부가 시체를 묻어 주었습니다.  지역구당에서 기다리다가 사고차량을 보고 정황을 살핍니다.  농부를 만납니다.  경위를 설명하는데 빗길에 사정없이 달려오다가 차가 사고가 나고 의원이 죽은 것 같아서 그 자리에 묻어버렸습니다.  아니 시체가 어떻게 되었는데요.  모르겠어.  살아있다고 본인이 말은 하였지만 어떻게 그것을 믿을 수가 있어야지요.  저는 그대로 묻어 버렸어요.  그랬다는 말입니다.  믿을 수 없는 국회라는 풍자적인 말입니다.  국회뿐입니까? 자녀가 부모를 믿지 아니 합니다.  부모의 신뢰성이 문제입니다.  오죽하면 자녀들이 부모의 말을 듣지 않고 농담으로 여겼겠습니까? 자녀 교육의 실패입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뒤만을 바라보지 않았어야 했습니다.  이 가정의 비극이 이기주의, 은혜 망각, 가정의 권위문제, 자녀들의 불신풍조, 이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위를 바라본 것입니다.  뒤를 바라보지 말라는 교훈입니다.  뒤는 바라보지 맙시다. 
무슨 말입니까?

첫째, 세상에 대하여 미련을 갖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런 말 들어본 일이 있을 것입니다.  박수 칠 때 떠나라.  장수드라마 전원일기 제목이었다고 합니다.  인기 있는 영화나 연극을 보면 멋있는 것은 역시 절정에서 끝나는 데 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미련을 속히 버리라는 말입니다.  잘 성숙한 과일을 따지 아니하면 낙과가 되어 상품가치를 상실하게 되는 겁니다.  익었으면 익은 겁니다.  더 둘 이유가 없습니다.  우리는 저 천국을 향해 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너무나 현실적이고 세속적입니다.  이 세상에 그렇게 많은 미련을 가지고 있을 필요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왜 자꾸 뒤를 바라보면서 미련을 갖고 있습니까? 세상 사람들이 왜 신앙인들이 자꾸 축복이라는 말을 계속하느냐 질문합니다.  기복신앙이라고 비난합니다.  왜 기복입니까? 미래가 아닌 축복이라는 그 내용들이 현세적이기 때문입니다.  예수의 축복은 마음에 있고 영적인 것에 있다고 하셨습니다.  누가 그럽니다.  기독교가 미쳐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미친 사람의 특색을 아시지요.  부끄러운 줄을 모릅니다.  그래서 옷을 자꾸 벗으려고 합니다.  남자가 탕 목욕하는 자리에서 옷을 벗는다.  이는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남자가 여자 목욕탕에 들어가 옷을 벗는 것은 미친 사람입니다.  요즈음 예술이라는 미명으로 마구 옷을 벗고 있습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는 사람들이 부끄러운 줄 모르고 옷을 벗어버렸습니다.

미친 사람들은 소리를 잘 지릅니다.  제정신이 아닌 사람들의 목소리가 너무 큽니다.  정신 차려야 합니다.  제자리로 돌아와야 합니다.  자기 할 일을 알고 할 줄 알아야 합니다.  오늘에 미쳐 있기에 문제가 걸려 있습니다.  왜 뒤를 바라보았습니까?

둘째,  욕심을 버리지 못해서 그렇게 되었습니다.

어린 시절 롯의 처에 대하여 주일학교 선생님이 하시던 말씀이 생각납니다.  롯의 처가 남편으로부터 여보 집을 나가야 된다고 했어.  알아서 적당하게 준비하고 갑시다.  그랬다는 겁니다.  알았어요.  그리고 보따리를 쌌습니다.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 결혼반지 이것만은 가지고 가야 돼.  아니 이것도 중요한 거야.  또 보따리에 넣었습니다.  그리고 나옵니다.  급히 나오는데 아차 그것 두고 왔구나.  아까운 것인데 그러면서 뒤를 바라보다가 즉시 소금기둥이 되었다는 겁니다.  맞습니다. 자기들이 목숨을 구한 것만으로도 만족했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욕심을 부리지 맙시다.  뒤를 바라보지 맙시다.  주어진 것으로 만족하고 앞을 바라보며 전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절에서 중이 속세와 인연을 끊는데 거쳐야 할 맨 첫 의식이 삭발입니다.  그것을 배코치기라고 합니다.  삭발하면 예비 승이 되는 겁니다.  예비 승이 지켜야 할 십계를 준행 할 것을 세 번 확인 받고 배코치기를 시작합니다.  사미 십계란 1) 살생을 하지 않는다.  2) 도둑질하지 않는다.  3) 음행하지 아니한다.  4) 망언하지 아니한다.  5) 술을 마시지 아니한다. 6) 몸치장을 하지 아니한다.  7) 가무는 듣지도 보지도 아니한다.  8) 안락한 자리에 앉지도 아니한다.  9) 때아닌 밥을 먹지 아니한다.  10) 재물을 모으지 아니한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철저한 금욕의식에 의하여 겸손하게 욕심을 버리는 일을 위해 수련을 하는 것입니다.  디모데후서 4:10절에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다”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골로새서 4:14절에서 “사랑을 받는 누가와 또 데마가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고 하였고, 빌레몬서 1:24절에서 “나의 동역자 마가, 아리스다고, 데마, 누가가 문안하느니라” 하였습니다.  이러한 데마가 왜 바울을 떠났습니까? 욕심 때문입니다.  뒤를 바라보는 욕심을 버려야 합니다.  가룟 유다가 왜 배신자가 되었습니까? 뒤를 바라보는 욕심 때문이었습니다.  탐욕은 자기 자신만 해롭게 하는 게 아니라 다른 이에게 해를 줍니다.  하나님께서 인간들에게 주신 십계명이 있는데 그것을 범하게 되는 기본적인 죄가 탐욕이라고 합니다.  탐욕 때문에 사람을 죽입니다.  탐욕이 간음합니다.  도적질 하게 합니다.  병중에 무서운 게 탐욕이라고 합니다.  이것이 부모를 공경하지 못하게 합니다.  문호 단테는 탐욕은 꺾을 수 없는 원수라고 지적하였습니다.  탐욕을 버립시다.  그리고 앞만 보고 달리고 달립시다.

셋째,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었어야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뒤를 바라보면 죽는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왜 뒤를 돌아보았습니까? 말씀을 믿지 아니하였기 때문입니다.  아담이 범죄한 것도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하고 싶은 대로 하려고 하였기에 따먹었습니다.  믿어야 할 것을 믿지 않는 것이 불행의 씨앗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대로 100% 다 믿어야 합니다. 믿었으면 앞을 보고 갔을 것입니다.  왜 뒤를 바라봅니까? 그래서 어떻게 하겠다는 겁니까? 본인이 죽었습니다.  죽음 앞에는 영화도 명성도 권세도 아무 것도 아닌 것입니다.  그것만이 아닙니다.  딸들과 좋지 못한 관계를 맺어 모압과 암몬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이런 사건은 길거리에서 파는 3류 잡지에서나 볼 수 있는 내용들입니다.  앞날을 생각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을 무시한 결과입니다.  앞을 보세요. 그리고 달리세요.  뒤는 바라볼 이유가 없습니다.  과거를 청산하자는 말을 듣습니다.  과거 청산이란 무엇입니까? 지난날 우리의 조상들이 친일을 했다는 것 하나를 찾아내어 자녀들에게 벌을 주고 관직을 빼앗겠다는 것은 과거 뒤를 돌아보자는 것밖에 다른 이유가 될 수 없습니다.  앞으로 가기에도 시간이 모자랍니다.  앞을 봅시다.  미래를 생각하고 계획합시다.

미국 기독교계 탁월한 지도자 죤 맥스웰(Jhon Maxwell)은 성공하는 사람과 실패하는 사람의 차이점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성공하는 사람은 삶의 목적이 있고 비전이 있더라.  성공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현재만 보고 지금만 보는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콘웰 박사도 같은 말을 했습니다.  성공한 사람은 삶을 출발할 때 분명한 목표를 가지고 뛰었으며, 다음은 마음에 열화 같은 소원을 가지고 있었으며, 셋째는 그들은 뒤로 물러서지 않은 굳은 결의의 기도를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지나간 시간들은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흘러간 물로는 역사의 물레방아를 돌릴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내가 잘한 것이 많다고 해도 뒤를 바라보면 비극입니다.  잘못했어도 뒤만 바라보지 아니하면 되는 것입니다.  앞을 바라봅시다.  미래를 보고 달려갑시다.  ~ 아멘 ~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