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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나이 매우 늙었더라! (눅 2:3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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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장빈 목사

# 1
우리는 지난주일 시므온이란 분을 만났었습니다. 평생 경건하게 살면서, 예루살렘을 지키며, 오직 그리스도가 오시기만을 기다렸던 분, 그의 기다림이 얼마나 간절했든지,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않을 것>이라는 성령의 약속까지 받아냈던 분, 시므온이었는데요, 그 분이 이렇게 기다릴 수 있었던 것은, 그 분 가슴 속에 주님이 꼭 오시어야 한다는 간절한 기다림과, 주님은 반드시 오신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해서 누가 선생님은 그를 <기다리는 자 시므온>이라 소개하셨던 것입니다.

오래 참고 기다리던 시므온, 그 날도 그리스도를 대망하며 성전에 나가 기도하는 중이었습니다. 그 때 아기 예수님을 안고 요셉과 마리아가 성전으로 왔습니다. 아기 예수님의 할례 예식 때문이었지요. 그 순간 첫 눈에 그 분이 그리스도이심을 알아본 시므온, 얼른 아기 예수님을 자기 품에 받아 안고는, 하나님을 찬양하며 이렇게 외쳤었지요.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시니이다!>

지난 시간에 받은 하나님의 말씀, 누가복음 2장 32절의 말씀을 우리 다시 읽으며 가슴에 새겨 볼까요? / 2:32 / (읽기) /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 아멘!> 그렇습니다. 우리 주님, 영광과 빛으로 오십니다. 해서 지난 시간에 우린, 오직 내 안을 하늘의 광으로 채워 이방을 비추는 빛이 되겠다고 다짐했었습니다. 주님 오심을 기다리는 절기, 기쁜 성탄을 대망하며 우리 서로 확증하며 덕담 나누기!

<영광으로 채워 빛이 되시기 바랍니다. 아멘!>

# 2
바로 그 때였습니다. 지금 아기 예수님의 할례식이 한창 진행되는 중인데, 또 한  사람이 그 성전으로 들어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누가 선생님은 이 분을 소개하면서 아주 적나라한 표현들을 사용합니다. 누가복음 2장 36절 이하인데요, 눈으로 따라오실까요? <또 아셀 지파 바누엘의 딸 안나라 하는 선지자가 있어 나이 매우 늙었더라! 그가 출가한 후 일곱 해 동안 남편과 함께 살다가 과부 된지 팔십 사년이라!>

이 소개문 가운데 충격으로 다가오는 대목 둘이 있으니, 하나는 <나이 매우 늙었다!>는 대목이요, 다른 하나는 <과부 된지 팔십 사년이라!>는 대목입니다. 아니, 다른 사람도 아닌 하나님의 선지자를 소개하는 장면인데, 그냥 경륜과 지혜를 겸비한 여자 선지자라 하시든지, 영성이 풍부하고 경험이 많은 예언자라 하시든지 하면 될 일이지, 꼭 나이 매우 늙었다고 해야 하며, 거기에 과부 된지 84년이라는 말까지 꼭꼭 짚어 그렇게 적어야 하느냐? 하는 반문이 생기는 것 사실입니다. 요즘 같았으면 아마 이렇게 항의했을 것입니다. <그건 프라이버시에 해당합니다! 인신공격입니다!>

왜 그러셨을까? 그 누구 보다 합리적인 분 누가, 유대 세계와 헬라 세계를 넘다들며 온 세상을 품고도 남음이 있는 넉넉한 믿음과 국제적 감각을 지녔던 분 누가, 그런 누가 선생님이 왜 이렇게 하신 걸까? 무슨 뜻이 담긴 걸까? 궁금해지는데요, 그랬습니다. 오늘의 주인공 <안나> 여선지를 이렇게 소개한 배경엔 엄청난 뜻이 담겨 있었습니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적어 놓은 것 아니라는 뜻입니다. 해서 오늘 우리는 <나이 매우 늙은> 여자 선지자, <과부 된지 84년이나 된> 여자 선지자, <안나>를 다시 만나려고 합니다. 그 분을 만나서 다시 오시는 예수님을 대망하는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배우려고 합니다.

# 3
<안나>라는 이름은 히브리식 이름인 <한나>의 헬라어식 표기로, 이름 뜻은 은총입니다. 그녀의 존재 자체가 은혜요 은총이란 뜻이지요. 또한 그녀를 가리켜 <아셀 지파 바누엘의 딸로서 선지자>라고 소개합니다. 여기서 세 가지 사실이 중요한데요, 첫째 <안나>는 아셀 지파 출신이요, 둘째 <안나>는 바누엘의 딸이요, 셋째 <안나>는 선지자라는 겁니다. 하나씩 풀어봅니다.

먼저 <아셀>은 야곱의 열두 아들 가운데 여덟 번째 아들로 첩 실바의 소생이었으며, 그 이름 뜻은 <기쁨>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안나>는 기쁨의 가문에서 태어난 은총의 딸이었던 겁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기쁨의 가정 이루시고, 은총의 자녀들로 키워 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둘째 그녀의 아버지 이름이 <바누엘>이었다고 합니다. <바누엘>은 히브리식 이름인 <브니엘>의 헬라어식 표기로, 역시 야곱을 연상케 하는 이름이지요. 하나님의 얼굴을 보고서도 죽지 않고 오히려 복을 받았다는 뜻인데요, 그러므로 여기까지 종합하면 <안나>는 기쁨의 문중에서 태어난 은총의 딸로서, 하나님의 얼굴을 뵙고서도 죽지 아니하고 오히려 복을 받은 딸이라는 뜻입니다.

셋째, 성경은 그녀를 선지자라 소개합니다. <아셀 지파 바누엘의 딸로서 선지자>그런데요, 이 대목이 정말 놀라운 선언입니다.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선지자가 사라진지 이미 300년이나 지났기 때문입니다. 그랬습니다. 저들이 기억하는 구약 시대의 마지막 선지자는 말라기였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누가 선생님이 말라기 선지자 이후 300년 만에 다시 선지자가 등장했다고 선언하는 장면입니다. 문제는 아기 예수님을 영접한 그 선지자가 유대인들의 기대와 통념에 전혀 맞지 않는 인물이었다는 데 있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남자 중에서 선지자가 나올 것을 기다렸습니다. 아니 선지자는 당연히 남자여야 했습니다. 또한 유대인들은 장자 가문에서 선지자가 나올 것을 기대했습니다. 300년 만에 보내실 선지자가 열둘 가운데 여덟 번째 아들, 그것도 첩의 아들인 아셀 지파에서 나올 줄은 몰랐습니다. 또한 저들은 젊은 선지자를 기다렸습니다. 나이 매우 늙은 선지자, 그것도 여자 선지자는 저들의 기대와 통념 속엔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저들의 통념을 깨시고 오히려 나이 매우 많은 여자, <안나>를 말라기 이후 첫 선지자로 보내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 <안나>로 하여금 아기 예수님을 영접하게 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리스도는 우리의 통념 속에 오시지 않습니다. 가장 강해야 하고, 가장 잘 나야 하고, 여자가 아닌 남자여야 하고, 늙은이가 아닌 젊은이이어야 하고, 세속적으로 좋은 가문이어야 하고, 인간적 능력도 많아야 하고, 등등, 이런 기대와 통념 속에 우리 주님은 오시지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 주님은 우리의 집단적 통념으로 인해 소외당한 사람들, 그 누구도 관심을 주지 않은 외로운 인생들, 나이 매우 많아 자꾸만 저리 가라고 핀잔을 듣는 인생들 속에 오십니다. 이것이 나이 매우 늙은 여선지 <안나>를 통해서 주시는 성탄의 또 하나의 의미입니다.

# 4

이쯤 오니 <안나>라는 이름의 여선지가 어떤 분인지 궁금해집니다. 그 분은 어떻게 참고 기다렸을까? 무엇을 어떻게 했기에 그 잘난 남정네들, 그 잘난 젊은이들, 다 물리치고 예수님 할례식의 증인으로 설 수 있었을까? 우린 어찌해야 다시 오시는 아기 예수님을 만날 수 있는 것일까? 이런 질문들을 가슴에 안고 이제 여선지 <안나>를 좀 더 깊이 만나보겠습니다.

첫째, <안나>는 성전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2:37 / (읽기) / 거기 과부 된지 팔십 사년이라는 표현에 대해 오해가 있습니다만, 헬라어 원어 성경에 따르면, 과부 된 후 84년이 흘렀다는 뜻이 아니라, 과부가 되어 여든 네 살이 되도록 성전을 떠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그러고 보니 <안나>의 인생은 결코 행복한 삶이었다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오히려 비극적인 인생이라 해야 할 것입니다. 26절에 보니, <안나>는 결혼 한지 7년 만에 남편과 사별했다고 합니다. <출가한 후 일곱 해 동안 남편과 살다가!> 그런데 그녀의 지금 나이 84세라 합니다. 당시 여성이 결혼하는 나이가 평균 15세였으니, 그녀가 열일곱에 결혼했다고 가정해도, 남편 잃은 후 최소한 60년을 홀로 살았다는 뜻이 됩니다. 7년 같이 살고 60년을 혼자 살았던 여인의 이름, 그녀는 <안나>였습니다.

문제는 당시 여성들에겐 남편을 잃는다는 것이 모든 것을 잃는 것과 같았습니다. 자기 혼자 삶을 꾸려갈 아무런 대책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해서 형님이 돌아가시면 동생이 그 부인을 책임지게 하는 <형사취수 제도>까지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안나>는 또 다른 남편에게 의지하는 대신 나의 주님만을 의지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인간 남편 대신 우리 주님을 신랑 삼고, <주 나의 신랑 나 주의 신부>를 노래하며, 그렇게 평생을 살기로 작정한 것입니다. 해서 그녀는 성전을 떠나지 않았던 것입니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20대 초반의 젊은 나이에 남편이란 존재가 보장해 주고 또한 가져다주는 그 모든 것을 포기한다는 것, 정말 쉽지 않았습니다. 주변에 어정거리는 뭇 남성들의 유혹도 물리쳐야 했습니다. 재혼하라 하시는 가내 어르신들이 압력도 이겨내야 했습니다. 그 무엇 보다 힘든 일은 먹고 사는 일이었습니다. 정말 먹고 사는 일이 만만치 않았습니다. 해서 홀로 된 후 그녀는 헤아릴 수도 없이 수많은 밤을 번민하고 갈등하며 하얗게 지새우곤 했습니다.

그러나 <안나>에게는 주님이 계셨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존귀한 분을 나의 신랑으로 선택했으니, 그 보다 못한 것에는 더 이상 미련을 두지 않기로 한 것입니다. 그랬습니다. 그녀에겐 오직 한 분, 예수 그리스도만 계셨습니다. 하여 마침내 그녀는 살아생전에 아기 예수님을 만나는 복을 누렸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성전을 떠나지 마시기 바랍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주님의 성전을 떠나지 마시기 바랍니다. 여기 성전에서 아기 예수님의 오심을 기다리시기 바랍니다. 세상 그 어느 곳 보다 소중한 곳이 바로 성전입니다. 세상 그 어느 곳 보다 자주 들러야 하는 곳이 성전입니다.

여러분,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대림절기입니다. 그 어느 계절 보다 경건하게 기도하며 지내야 하는 절기입니다. 그런데도 밤이면 밤마다 이런 저런 핑계로 술집만 전전하는 인생, 결코 잘 되지 않습니다. 가장 안타까운 인생, 오늘 밤 우리 주님, 여기 성전에 오시는데, 그 시간에 술집에서 노니는 인생들입니다.

그래도 사업상, 그래도 의리상, 그래도 접대 상, 그래도, 그래도, 아니오, 그렇지 않습니다. 누가 나에게 술집 가자하거든 이렇게 한 마디만 해 주시기 바랍니다. 단 한 마디면 됩니다. <사탄아 물러가라!> 그럼요, 크리스천 보고 술집 가자하는 사람, 사탄입니다. 여러분, 절대로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지 마시고, 술집 대신 무조건 교회로 달려와 기도하고 찬송하면서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시기 바랍니다. 대림절기에 술집 가는 인생 보다 교회 나와 기도하는 인생이 백배나 천배나 만 배나 더 잘 될 줄로 확실히 믿습니다. 이 믿음 가지고, 저를 따라 한번 외치며 연습하고 가겠습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사탄아 물러가라!>

둘째, <안나>는 주야로 금식하며 기도함으로 섬겼습니다.

2:27 / (다시 읽기) / 그런데요, <안나>에게 한 가지 문제가 있었으니, 기다리고 기다려도 주님이 오시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혼자 된지 10년, 20년, 아니 30년이 지나도, 그 분은 오시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왜 오시지 않는 걸까? 내 기다림이 잘못된 건가? 이쯤에서 포기해야 하나? 이만큼 했으면 이제 건너 마을 김 서방하고 편한 길 갈까? 별별 생각이 그녀를 괴롭혔습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쯤 되면 나 자신이 초연해 질 줄 알았는데, 유혹은 여전히 유혹이었고, 먹고 사는 문제는 역시 문제였습니다. 모든 것이 만만치 않았습니다. 정말 하루하루 힘겨운 기다림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죽으면 죽었지, 난 주님을 포기할 수 없어, 그리곤 또 하루를 기다렸습니다. 그렇게 기다리기, 60년째에 접어든 것입니다.

여기서 우린 기다림의 미덕을 배우게 됩니다. 그녀는 현명했습니다. 인생이란 그 자체가 기다림이란 사실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정말입니다. 우리네 인생이란 기다림의 연속입니다. <기다림 속에 태어나, 기다림 속을 살다가, 기다림을 안고 세상을 떠나는 존재, 우리 인간입니다.> 해서 누군가 기다릴 대상이 있음은 오히려 축복입니다. 여러분, 기다릴 대상과 기다릴 수 있는 마음 주심은 오히려 축복인 줄 알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왜냐하면 아무 것도, 그 누구도, 기다릴 것이 없는 인생, 이미 죽은 인생이요, 더 이상 존재의 의미를 찾지 못하는 인생입니다. 

다시 37절 말씀을 보실까요? 누가복음 2장 37절 말씀을 공동번역 성경은 이렇게 풀어줍니다. <과부가 되어 여든 네 살이 되도록 성전을 떠나지 않고 밤낮없이 단식과 기도로써 하나님을 섬겨 왔다!> / 여기서 우리는 기다리는 자에게 필요한 것이 두 가지 있으니, 기도와 섬김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기다리는 자에게 가장 필요한 것, 기도와 섬김입니다. 금식하며 기도하면 더 좋습니다. 금식하며 섬기면 더 좋습니다. 우리가 명심할 것은 기도하며 섬기지 않는 자, 주님을 만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기도와 섬김이 만난다는 사실입니다. 성경은 나이 매우 늙은 여선지 <안나>가 나이 여든넷이 되도록 기도하며 섬겼다고 전해줍니다. 그렇습니다. 기도는 섬김으로 완성된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섬김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기도는 기도가 아닙니다. 기도가 아니니 응답을 받지 못하는 것, 당연합니다. 뒤집으면, 내 기도가 응답 받지 못하는 경우, 섬김이 부족할 때가 많다는 점입니다.

존경하는 여러분, 지금은 놀러 갈 때가 아닙니다. 지금은 잘 잘 때가 아닙니다. 지금은 돈만 벌 때도 아닙니다. 우리 주님의 오심을 대망하는 절기, 지금은 오직 기도하며 섬길 때입니다. 여러분, 기도하고 섬겨 주시기 바랍니다. 기도함으로 섬겨 주시기 바랍니다. 금식 기도하는 심정으로 나에게 맡기신 사랑하는 당신을 좀 섬겨 주시기 바랍니다. 남편은 아내를, 아내는 남편을 주님 섬기듯 섬겨 주시기 바랍니다. 부모는 자식을, 자식은 부모를, 내 몸처럼 사랑하며 섬겨 주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주의 사랑으로 서울을 섬기고, 나라와 민족을 섬기고, 온 세상을 섬겨 주시기 바랍니다. 기도하며 섬기는 자에게 우리 주님 다시 오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나에게 건강 주심은 섬김으로 기도를 완성하라 하시는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우리 주님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오셨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친히 무릎 끓고 머리 숙여 제자들을 발을 씻어 주셨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선 나부터 섬기기를 싫어한다는 데 있습니다. <나는 기도만 할 테니 섬기는 일은 박 집사가 해라! 내가 왜 널 섬겨야 하니? 내가 누군데, 자네가 날 섬겨야지! 나이를 보나, 직분으로 보나, 잘 생긴 것으로 보아도, 그럼 자네가 날 섬겨야지!> 별별 이유를 가져다 대면서 섬기지 않으려고 합니다.

아니, 기도도 하지 않고, 섬기지도 않고, 그럼 무엇으로 주님을 영접하려고 하십니까? 기도도 하지 않고 섬기지도 않는 성도, 성도 맞습니까? 그 뒷감당을 어떻게 하시려고, 무슨 배짱으로 기도도 하지 않으시고 섬기지도 않으시는 겁니까? 아니 되옵니다. 정말 아니 되옵니다. 그러다가 큰 일 나십니다.

<아이고, 목사님, 섬김과 봉사, 그건 젊었을 때 하는 거죠, 이 나이 되면 어려워요! 목사님도 조금 있으면 이해하실 거예요.> 이렇게 말씀하시는 분들이 더러 계십니다. 지금 <안나>의 나이가 몇이라고요? 여든 넷, 성경은 분명히 말합니다. <안나는 여든 네 살이 되도록 성전을 떠나지 않았고, 밤낮없이 금식하며 기도함으로 하나님을 섬겼다고 말입니다.> 오늘 정년이 되셔서 원로장로님으로 추대되는 두 분, 은옥성 장로님, 강중기 장로님, 안나 선지자를 기준으로 하자면, 이제 14년 남으셨습니다. 부디 나이 매우 많아 늙도록 건강하시고, 성전을 떠나지 마시고, 금식하며 기도하며 주님만 섬겨 주시기 바랍니다.

정말입니다. 섬김은 나이로 하는 것 아닙니다. 섬김은 직분으로 하는 것 아닙니다. 섬김은 돈으로 하는 것 아닙니다. 오직 섬김은 기도로 하는 것, 여러분, 이제 얼마 남지 않은 대림절기, 부디 거룩한 제단 마다 나와 기도하시고, 이 참에 한번 사랑하는 당신을 제대로 섬겨 보시기 바랍니다. 하여 기도와 섬김 속에 다시 오시는 주님을 영접하여, 천국 가정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셋째, <안나>는 감사하고 말하였습니다.

2:28 / (읽기) / 거기 <감사하고>라는 단어와 맨 뒤 <말하니라!>라는 단어에 동그라미, 표시하시고요, 기억하십니다. <안나>는 먼저 <성전에 나아와서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그런데 감사의 단을 쌓고자 성전에 나왔더니 거기 아기 예수님이 계셨던 것입니다. 믿음 없는 분들은, <안나> 참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정말 믿음 없는 분 맞습니다. <안나>가 운이 좋아서 예수님을 만난 것 아닙니다. 그녀는 날마다 성전에 나와 하나님께 감사의 단을 쌓았던 인물입니다. 그래서 언제 오시든지 주님 오시기만 하면 그녀는 주님을 만나기로 예정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성전에서 드리는 예배가 소중한 법, 그 날도 <안나>는 감사의 제단을 쌓으려고 여느 때와 같이 성전에 오는 길이었습니다. 그런데 도착해 보니, 요셉과 마리아, 그리고 시므온과 함께 아기 예수님이 거기 계셨던 것입니다.

여러분, 할 수만 있는 대로 주의 전에 주자 오셔서 감사의 단을 쌓으시기 바랍니다. 우리 주님, 감사하는 마음에 다시 오십니다. 부디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제발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그 무엇과도 감사를 바꾸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무엇 때문에 감사를 빼앗기지도 마시기 바랍니다. 오직 감사함으로 고마운 당신에게 성탄 카드도 보내시고, 성탄 선물도 하시고, 하여 감사로 주님을 기다리시기 바랍니다.

<제 곁에 계셔 너무나 감사합니다.>

그런데 우리를 더욱 놀라운 일은, 84세가 되신 여 선지자 안나, 모든 사람에게 달려가 아기 예수님의 이야기를 전했다는 점입니다. 거기 38절의 맨 마지막 구절, <이 아기에 대하여 말하니라!>는 표현, 헬라어로 미완료 시제인데요, 무슨 뜻인가? 내가 만난 예수님에 대하여 한번 말하고 그만 둔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한 일년 전도하다 그만 시들해 진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장로 직분 받기 전까지만 전도한 것도 아니라는 뜻입니다. 나에게 말할 힘을 주시는 한, 그녀는 예수님에 대하여 말하고 또 말하고, 계속해서 말했다는 겁니다.

여러분, 금년 한 해, 나는 내 입으로 무슨 말을 가장 많이 했습니까? 내 가족들에게 주로 무슨 말을 하셨습니까? 내가 만나는 이들에게 무슨 말을 하셨습니까? 금년 한 해, 내가 한 말 가운데 예수님에 관한 말은 얼마나 됩니까? 여러분, 다른 이야기는 안 하셔도 됩니다. 그건 온갖 대중 매체들이 다 알아서 잘 합니다. 나 보다 훨씬 똑똑한 컴퓨터가 온갖 정보를 다 가져다 줍니다. 우리가 입을 열어 해야 할 말, 오직 아기 예수님에 관한 말인 줄로 압니다. 하나님의 말씀만 말하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의 복음만 전하시기 바랍니다. 아직도 예수님을 모르는 이들에게 가서 어서 예수님에 대하여 말하시기 바랍니다.

중요한 것 한 가지, 전도는 감사로 하는 것입니다. 감사하면 전도할 수 있습니다. <감사하고 말하니라!> 그러므로 나이 탓할 것 없습니다. 능력 탓할 것 없습니다. 돈이 없다고? 나이가 어리다고? 나는 바쁘다고? 지금 내 형편이 말이 아니라고? 아니오, 그 어떤 핑계도 통하지 않습니다. 핑계 대는 인생, 평생 핑계만 대다가 끝납니다.

아니오, 그냥 가서 전하시기 바랍니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내가 만난 예수님에 대하여 전하시기 바랍니다. 무슨 일을 당하든지, 오직 예수님의 복음만을 전하시기 바랍니다. 죽는 한이 있어도 예수님에 대한 말씀만 하시기 바랍니다. 하여, 나이 많아 매우 늙도록 오직 주님과 동행하시고, 하나님 부르시는 그 날까지 강건하게 행복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원로장로로 추대되시는 두 분의 장로님, 그리고 그 뒤를 이어 새롭게 장로로 임직 받으시는 두 분의 권사님, 나이 매우 늙도록 만사형통하시어, 우리 동광 가족들에게 축복의 통로가 되실 것을 믿으며, 꼭 그렇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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