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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감사로 드리는 제사 (시 50: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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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이윤형 목사 

속담에 “원수는 돌에 새기고 은혜는 물에 새긴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나쁜 감정은 오래 가지고 있고, 은혜는 쉽게 잊어버린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은혜는 돌에 새기고 원수는 물에 새기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감사하는 자에게 약속된 축복은 무엇인가?
첫째, “환난에서 구원해 주신다”고 했습니다.

본문 14절에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라고 했습니다. 본문 23절에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고 했습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를 하나님께서 기억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둘째,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신다”라고 하셨습니다.
본문 23절에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지으신 목적이 인간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감사의 삶이야말로 인간의 인간된 본분의 삶이 되는 것입니다. 자식이 부모에게 감사하는 삶이 효도의 삶이요, 백성이 나라에 감사하는 삶이 충성의 삶이고 부부간에 감사하는 삶이 사랑의 삶입니다. 그러므로 감사하는 삶이 경건의 삶이요, 그것이 곧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삶이 되는 것입니다.

셋째, 축복은 존귀케 되는 축복입니다.
본문 23절에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광범위합니다. 영육간의 구원입니다. 인간의 궁극적인 구원은 영혼이 구원받는 영적구원입니다. 그러나 병든 자가 질병에서 구원 받는 것도 구원이요, 실패한 자가 재기하는 것도 실패에서의 구원입니다. 이 하나님의 구원이 어디서 오는가? 본문은 감사의 삶에서 온다고 했습니다.

마가복음 14장의 마리아는 옥합을 깨뜨려 예수님의 발에 붓고,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 되는 곳에서는 이 여자의 행한 일도 말하여 저를 기념하라”고 하셨습니다(막14:9). 올바른 감사는 이렇게 사람을 존귀하게 합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이 감사할 수 있는가?


Ⅰ. 은혜를 잊지 않는 사람이 감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네가 먹어서 배불리고, 아름다운 집을 짓고 거하게 되며, 또 네 우양이 번성하며 네 은금이 증식되며, 네 소유가 다 풍부하게 될 때에 두렵건데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하노라”고 했습니다.

우양이 번성하고, 은금이 증식되고 배부르고 아름다운 집에서 살 때 하나님을 잊어버리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습니다. 이것이 인간의 교만입니다. 고통이 오고, 환난이 닥치고, 실패가 오고 질병이 찾아 올 때 하나님을 원망하기는 쉽습니다. 그러나 아이들이 공부를 잘하고, 반듯하게 잘 자라줄 때, 이것이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의 축복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까? 내 자식이 똑똑하고 머리가 좋아서 공부잘한다고 생각하는 것 아닙니까? 아니면, 일류선생한테 괴외 공부시켜서, 학군이 좋고, 학교가 좋아서 공부잘한다고 생각하진 않습니까?

신명기 8장 17~18절의 말씀에 “또 두렵건데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내 능과 내 손의 힘으로 내가 이 재물을 얻었다 할까하노라,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을 주셨음이라”고 했습니다.

내가 사업해서 성공한 것이 내가 돈버는 재주가 뛰어나서 성공한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내가 직장에서 진급하고, 승진하는 것이 내 능력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내 자동차가 사고 없이 잘 굴러다니는 것이 내 운전 기술이 좋아서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그가 내게 재물 얻을 능을 주셨음이라” - 축복의 근원이 하나님이시라는 말씀입니다.

6.25사변 때 대전 근교에서 포로가 된 딘 소장은, 전쟁 중에 목숨을 걸고, 그를 숨겨주고 보살펴준 무주의 어떤 촌부를, 포로교환으로 석방된 후 다시 찾아가서 그분들의 은혜를 치하하고 그들의 자녀를 미국으로 데려가서 평생 교육을 책임지는 보은의 은전을 베풀었습니다. 이렇게 그가 은혜를 알고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었기에, 하나님께서 환난 날에 그를 구원하여 주신 것입니다.

감사는 해도 그만, 하지 않아도 그만이 아닙니다. 언제나 권리에 책임이 따르는 것처럼 은혜 입은 사람은 반드시 감사로 보답해야합니다.


Ⅱ. 생각하는 사람이 감사할 수 있습니다.

영어로 “뎅큐”는 “씽크”에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감사는 은혜를 기억하는 사람에게서 나옵니다. 그러므로 자기 욕심만 채우는 사람에게서는 감사가 있을 수 없습니다. 감사는 은혜를 아는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편 103편 2절에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 모든 은덕을 잊지 말지어다”라고 했습니다. 다윗은 “저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네 생명을 파멸에서 구속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 씌우시며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케하사, 네 청춘으로 독수리같이 새롭게 하시는 도다”라고 했습니다(시103:3).

그 첫 번째 감사가 무엇인가? “저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입니다.

모든 병을 고쳐주시고, 생명을 파멸에서 구속하시고, 인자와 긍휼을 베풀어주시고, 내 소원을 만족케 해주시는 은혜도 감사하지만 역시 우리에게 가장 귀한 은혜는 “내 모든 죄악을 사하여 주신”은혜가 아니겠는가?

우리는 죄에서 구속받은 이 은혜 하나만으로도 평생을 감사해도 못 갚을 사랑의 빚진 자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 은혜위에 가정을, 자녀를, 일터를, 건강을 - 마지막 때에 섬길 수 있는 좋은 교회를 .... 복되고 아름다운 조국을, - 너무도 많이 너무도 풍성히 축복하셨습니다. 주신은혜 감사하고, 받은 은혜 감사하고, 장차 우리에게 부어주실 은혜에 감사하고, 감사하는 성도님 되시길 바랍니다.


Ⅲ. 희생할 수 있는 사람이 감사할 수 있습니다.

본문 14절에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라고 했습니다.

제사(sacriqice)는 희생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감사로 제사를 드린다는 말은 “나를 희생하여 감사한다”는 뜻입니다. 감사에는 자기희생이 따르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야고보사도는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너희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 하라, 더웁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고 했습니다.

선을 행함에는 자기희생이 필요합니다. 성경은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절기를 지키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모든 물산과 네 손을 댄 모든 일에 복 주실 것을 인하여 너는 온전히 즐거워할지니라, - 네 하나님 여호와의 택하신 곳에서 여호와께 보이되 공수로 여호와께 보이지 말고 각 사람이 네 하나님 여호와의 주신 복을 따라 그 힘대로 물건을 드릴지니라”고 했습니다(신16:15~17).

감사의 계절이 돌아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고 했습니다(고후9:7). 받은 분복을 따라, 믿음의 분량 따라,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성도님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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