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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칠 년을 며칠 같이 (창 29: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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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김기홍 목사 (아름다운교회)

성탄절이 며칠 안 남았습니다. 다른 나라들 같으면 난리일 텐데 여기는 안 그렇지요? 술 마시고 놀며 퇴폐적으로 나가지 않는 것은 좋아요. 하지만 너무 조용한 것은 경제와도 관련이 됩니다. 성탄절은 인류 역사상 중요한 전환점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이 삭막한 세상에 들어오기 시작한 날입니다. 그 사랑이 세상에 새로운 생명을 일으킵니다.

야곱과 라헬의 사랑 이야기는 성탄절의 사랑을 예시해주고 있습니다. 야곱은 라헬을 사랑했습니다. 그래서 기나긴 7년을 종살이 하겠다고 자청합니다. 외삼촌 라반은 정직하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의 종입니다. 그의 아들들은 늦게 일어나고 놀았지만 야곱은 새벽에 일어납니다. 하루 종일 허리가 휘어져라 일합니다. 3D 직종도 그렇게 험한 게 없어요.

그러나 야곱은 그 노동이 기쁘기만 했어요. 7년이 며칠처럼 빠르게 지나갑니다. 라헬을 얻고도 7년을 더 일하라고 합니다. 그래도 여전히 기쁨으로 합니다. 웬만한 사람이라면 아내를 얻은 뒤에는 열심히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열심히 했습니다. 그만큼 아내에 대한 사랑이 넘쳐났어요. 하나님이 그런 마음을 주지 않으면 될 수 없는 일이지요.

1. 하나님이 주신 최고의 선물, 사랑

모든 게 다 있다고 해 보세요. 높은 사람이고 좋은 집에 좋은 차에 돈도 한없이 많습니다. 옆에서 수종드는 사람들도 여럿입니다. 그런데 사랑하는 사람이 없어요. 나를 사랑하는 사람도 없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도 없어요. 그러면 삶이 어떻게 될까요? 천하의 모든 것이 다 있어도 사랑이 없다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삶은 사막처럼 느껴질 것입니다.

그러기에 심리학에서는 사람이 정상인가 아닌가를 알기 위해 항상 사랑에 대해서 묻습니다. 누구든 사랑하는 사람이나 사랑해주는 사람 또는 둘 다 있으면 정상적입니다. 아무리 삶이 힘들어도 사랑이 있는 사람은 자살하지 않습니다. 사랑에는 생명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생명력이 강한 사람은 반드시 사랑도 강합니다. 사랑은 삶의 힘을 줍니다.

이 세상에서 생명이 짧듯 사랑도 그렇습니다. 사실상 세상은 사랑에 굶주려있습니다. 사랑할 대상, 사랑해줄 사람을 찾습니다. 그래서 서로 생명의 힘을 주고받으려고 합니다. 교회 와서도 그 사랑을 찾습니다. 사랑해주기 바랍니다.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실망하면서 역시 사랑할 대상을 찾지요. “세상 모두 사랑 없어 냉냉함을 아느뇨.” 찬송대로입니다.

1930년 영국의 방공호에서 황태자와 한 미국의 이혼녀가 만납니다. 급히 들어가다가 우연히 만난 것입니다. 그리하여 세기의 연애가 시작됩니다. 6년 뒤에 그는 에드워드 6세로 즉위합니다. 총각인 그는 이혼녀와 결혼하기로 결심합니다. 왕실 전체가 반대하고 온 영국이 반대했습니다. 6개월 뒤에 결혼하려고 그는 왕위와 함께 모든 걸 포기합니다.

그가 받은 미움은 무서운 것이었어요. 영국정부는 그에게 2년간 국외 추방을 명합니다. 그는 온 세계의 미움을 받으며 심프슨과 결혼합니다. 결혼식에 참석한 사람은 거의 없었어요. 그는 개의치 않고 아내를 사랑하여 35년간의 행복한 삶을 삽니다. 그가 죽을 때가 되어서야 결혼은 왕실의 인정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심프슨은 공작부인이 됩니다.

이런 사건은 도저히 일어날 수 없어요. 영국 왕이 되는 것부터 수십억명 중에 하나이지요. 그 상황에서 처녀도 아니고 아이를 둘이나 낳은 30대 중반 여인을 얻으려고 모든 걸 버리는 사람이 있을까요? 주위 모든 사람이 눈물로 말립니다. 나라를 위해서라도 포기할 것입니다. 그런데도 별로 가치 없어 보이는 여자 하나를 위해서 왕위를 포기합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희생이 역사에 일어납니다. 인간이 아닌 하나님께서 자기가 만든 피조물을 사랑해서 하나님 자리를 버리십니다. 왕의 자리는 저리 가라입니다. 그리고 사람이 되어 이 땅에 오십니다. 나 한 사람 얻기 위해 7년이 아니라 33년을 중노동을 하십니다. 모든 멸시 천대를 자신의 몸에 짊어집니다. 그리고는 나를 위해 목숨까지 줍니다.

그뿐 아닙니다. 나를 얻고도 계속 내 속에서 나를 위해 일하십니다. 이 사랑을 느끼면 모든 게 달라집니다. 심프슨은 35년 뒤에나 공작부인이 되고 왕실에 받아들여집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리스도를 받는 즉시 왕 같은 제사장이 됩니다. 그러나 이 사랑을 깨닫지 못한다면 아무 것도 달라지지 않습니다. 이 놀라운 사랑을 느끼면서부터 신자가 됩니다.

2. 사랑 중에 최고가 내게 부어졌다

다시 심프슨에게로 돌아가 봅시다. 에드워드6세가 왕위를 버리고 올 때 자신이 얼마나 사랑을 받고 있는지 알게 됩니다. 때때로 삶이 고달프고 낙심되어도 자신이 받은 하늘같은 사랑을 생각해보면 불평할 수 없어요. 왕위를 얻으려고 모두를 버리는 데 그는 정 반대였습니다. 온 영국이 비난해도 온 세상이 미워해도 심프슨은 당당하기만 합니다.

사랑을 믿고 사랑을 느끼면 강해집니다. 남들에겐 7년의 중노동이 며칠의 즐거운 삶이됩니다. 심프슨은 행복하기로 결심합니다. “그가 치른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나는 노력합니다. 나는 행복해야만 합니다.” 어찌 보면 억지 같지요? 실제로 두 사람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결혼 생활을 했습니다. 마지막에는 온 영국이 받아들이는 부부가 됩니다.

야곱과 라헬은 어떤가요? 멋진 총각 야곱이 나를 위해 7년이나 종의 생활을 했다! 당시 풍습은 부인의 아버지에게 지참금을 주었습니다. 돈 없는 사람은 일을 해서 갚았지요. 7년은 엄청난 것입니다. 대개가 일이 년이고 길어야 3년입니다. 그러나 야곱은 라헬을 그렇게 귀하게 보았어요. 3년을 두 번 하고도 또 한 해를 더했어요. 최고가였습니다.

그러니 라헬이 얼마나 당당하겠습니까! 나는 이렇게 비싼 사람이다! 이러한 자부심이 그녀를 더욱 아름답게 만듭니다. 그래서 언니보다 다른 부인들보다 당당하게 살아갑니다. “남편이 나를, 나만을 사랑한다!” 그렇습니다.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종노릇 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라헬만을 위해서 그렇게 했습니다. 라헬은 야곱에게 목숨보다도 소중했어요.

라헬은 야곱의 정체를 알게 됩니다. 한 민족 이스라엘을 일으키도록 하나님으로부터 선택된 인물입니다. 그에게는 아브라함과 이삭의 축복이 있습니다. 생각이 없는 여자라면 그런 말을 듣고도 웃어넘길 겁니다. 하지만 라헬은 그러한 영적 사실을 자기 것으로 삼았습니다. 그래서 자식들을 신앙으로 기릅니다. 그렇게 이스라엘의 조상으로 성장해갑니다.

마찬가지의 일이 우리 신자들에게 일어납니다.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아십니까? 심프슨처럼 예수께서 하늘 왕의 자리를 포기하고 내려오셨습니다. 평생을 나를 위해 종노릇하고 나를 구하기 위해 자기 목숨을 내어줍니다. 에드워드 6세의 희생은 저리가라입니다. 라헬이 남편으로 인해서 그렇게 큰 자부심을 누렸습니다. 그 자부심이 그녀를 세웠어요.

그렇다면 우리의 자부심은 말로 다 할 수 없지요. 그 놀라운 사랑이 희생으로 증명되었어요.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우리는 그와 함께 그가 주신 사랑으로 새 세상을 만들어갑니다. 예수의 사랑은 배반당하고 멸시와 천대로 갚아졌습니다. 그러나 사랑은 그런 데 눌리지 않아요. 태양이 자기를 받지 않는다고 속상해합니까? 그저 비치고 밝혀줄 뿐입니다.

“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자랑의 면류관이 무엇이냐? 그의 강림하실 때 우리 주 예수 앞에 너희가 아니냐! 너희는 우리의 영광이요 기쁨이니라.”(데전2:19) 바울의 이 고백 속에 예수가 원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는 나를 원했어요. 나는 예수에게 라헬이요 심프슨이었습니다. 영광이요 기쁨이었습니다. 그와 함께 나는 세상을 품고 사랑해 바꿉니다.

3. 그 사랑을 표현해 더 크게 하라

야곱의 사랑, 국왕의 사랑과 비교가 안 되는 엄청난 사랑을 받은 우리입니다. 사랑은 실제적인 힘입니다. 받았다면 내 안에 있어요. 성령으로 확실하게 있어요. 세상에 없는 하나님의 사랑이 내 안에 부어졌어요. 그것이 나와야 합니다. 믿음으로 그것을 사용하세요. 지금 내가 왜 이러는가? 정신을 차리고 라헬처럼 심프슨처럼 가슴을 펴고 미소를 띠세요.

생각해 보세요. 사랑을 받은 라헬이 더 행복한가요, 라헬을 얻기 위해 7년이나 중노동하는 야곱인가요? 7년이 그에게는 며칠처럼 느껴졌어요. 심프슨을 얻기 위해 왕 자리를 버린 에드워드는 자신의 삶이 완성되는 느낌을 가졌답니다. 예수도 날 위해 죽으심으로 부활의 능력을 받습니다. 그래서 그 힘으로 만유의 주인이 되어 사랑으로 지배하십니다.

독일의 유명한 작곡가 멘델스존이 있습니다. 그의 할아버지 모세 멘델스존은 잘 생기지 못했어요. 체구도 작고 기이한 장애자였어요. 쉬운말로 꼽추였습니다. 어느 날 그가 함부르크의 한 상인의 집을 방문합니다. 거기서 그의 아름다운 딸 프룸체를 봅니다. 첫눈에 그는 절망적인 사랑에 빠집니다. 하지만 푸룸체는 그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어요.

일을 다 마치고 그는 용기를 내어 프룸체의 방에 갑니다. 천상의 미를 가진 여인은 쳐다보지도 않았어요. 그는 깊은 슬픔을 느낍니다. 그러나 사랑은 신비한 힘을 줍니다. 그가 물었어요. “당신은 결혼할 배우자를 하나님이 정해준다는 말을 믿나요?” 프룸체는 창밖으로 고개를 돌린 채 차갑게 대답합니다. “그래요. 그러는 당신은 그 말을 믿나요?”

“그렇습니다. 한 남자가 세상에 태어날 때 하나님은 신부가 될 여자를 정해주지요. 저도 그랬어요. 그런데 이렇게 덧붙이셨어요. ‘하지만 네 아내는 곱사등이일 것이다.’ 저는 소리쳤어요. ‘안 됩니다. 하나님. 여인이 꼽추가 되는 것은 비극입니다. 차라리 저를 그렇게 하시고 내 신부에게는 아름다움을 주십시오.’ 그래서 지금 내 모습이 된 것입니다.”

순간 프룸체는 고개를 돌려 그의 눈을 바라봅니다. 그 순수한 눈빛에서 희미한 기억이 떠오르는 듯 했어요. 사랑을 본 것이지요. 다가가 가만히 그의 손을 잡습니다. 훗날 프룸체는 그의 헌신적인 아내가 됩니다. 이 기적 같은 실화는 사랑은 표현해야 한다는 교훈을 줍니다. 혹시 되돌려 받지 못해도 주는 순간 나는 그만큼 풍성해지고 커집니다.

우리는 성령으로부터 하늘같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부은바 됨이니.”(롬5:5) 외쳐보세요. “하나님의 사랑이 내 안에 있다. 보이는 모든 것을 사랑하자.” 사랑 안 준다 불평 마세요. 자신은 그보다 훨씬 큰 사람입니다. 사랑은 칠년의 세월도 며칠처럼 만듭니다.

“가는 곳마다 사랑을 전파하세요. 먼저 자녀를 배우자를 사랑하세요. 다음엔 옆 사람을 사랑하세요. 누구건 당신을 만나면 더 나아지고 행복해지게 하세요. 하나님 사랑이 당신을 통해 표현되게 하세요. 눈에 미소에 그리고 따듯한 말 한마디에 하나님 사랑을 표현하세요.” 테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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