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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있을 곳이 없는 사관(눅 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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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김정호 목사

  지금 아시아에서 불고 있는 한류열풍은 새로운 문화의 흐름과 함께 불황에 빠진 한국경제에도 큰 보탬을 주고 있습니다(영상). 배용준씨가 처음 일본을 방문했을 때만해도 사람들은 지나가는 바람인줄만 알았는데, 얼마 전의 재방문을 통해 그것은 폭풍임이 판명되었습니다. 조센징이라고 깔보았던 그들이, '욘사마를 보니 이제 죽어도 좋다'라고 말하는 일본여자들로 인해 한일외교사를 다시 써야할 지경이라고 합니다. 지금 배용준씨의 인기는 미사여구가 필요 없습니다. 일본인들의 한국에 대한 관심은 우리말을 배우게 하고 한국 여행에 나서고, 심지어 한국인과 결혼을 꿈꾸는 사람들이 늘고 있습니다. 도대체 무엇이 이러한 열풍을 몰고 오게 했단 말입니까? 그의 인기비결을 생각해보니 성공한 사람들처럼 남다른 몇 가지 요소들이 있었습니다.

  첫째로 그는 마음의 연인이기 때문입니다. 일본은 일찍부터 성개방으로 인해 순수한 사랑에 대한 환상을 갖기 어려웠는데, 한 여자를 진실하게 사랑하는 '겨울연가'를 통해 잊어졌던 옛 사랑이 되살아났던 것입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한 것처럼 젊은이로부터 할머니까지 열광할 수밖에 없는 것은 이제 그의 트레드 마크가 된 해맑은 미소와 부드러운 이미지는 현실에서는 만날 수 없고 다만 막연하게 꿈꾸어 왔던 드라마 속의 준상이를 현실에서 만났기 때문입니다. 배용준씨는 작품의 인물처럼 현실에서도 팬들을 '가족'처럼 사랑하고 있습니다. 기자들이 무슨 질문을 해도, '아직 가족들(팬들)에게 말하지 않았다'하면서 답을 거절하고, 경호원들의 제지에도 불구하고 팬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며 배려하는 모습에 그들이 감격하는 것은 일본에서는 아직 그런 스타를 만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스스로 자신의 인기비결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다만 하루하루를 진실하고 성실하게 살았습니다.' 이러한 진실한 바탕 위에 예의와 친절함 그리고 부드러운 미소는 모든 이의 연인이 될 수 있는 조건이 되었던 것입니다.

  두 번째는 자연스러운 그의 매력 때문입니다. 그는 깔끔하면서도 편안한 느낌을 주는 오직 그만의 내추럴한 매력을 갖고 있습니다. 요즘사람들은 나이를 불문하고 요란하고 섹시한 코디를 좋아하지만 진정한 멋은 가장 자연스러움 속에 있지 않습니까? 지나친 노출보다는 적당하게 신비감이 들게 하는 자연스러운 은은함이 사람을 끌게 합니다. 은은함이란 밋밋한 잔잔함을 넘어서 부드럽고 따뜻한 인간미와 함께 청순하고 순결한 매력을 말합니다. 부드러운 것이 강한 것을 이긴다고 가볍게 쓰다듬고 문질러주는 것이 강하게 두드리는 것보다 몇 배의 효과가 크듯이 외적인 카리스마보다도 더 강하게 어필하는 그만의 독특한 마력에 사람들은 정신을 잃고 있는 것입니다.

  셋째는 철저한 자기관리가 그런 인기를 가능하게 했습니다.
  '나는 할 줄 아는 것이 연기밖에 없다'라는 그의 말에 누구나 고개를 연신 끄덕입니다. 보통 다른 연예인들은 조금 인기가 있으면 다른 영역으로 외도를 많이 하는데 답답할 정도로 그는 연기라는 한 우물만 판 것입니다. 그는 지난 십여 년 동안 단막극을 포함하여 드라마 몇 편과 단 한 편의 영화에만 출연했을 뿐입니다. 한 작품이 끝나면 충분한 휴식기간을 가지면서 다음 작품을 신중하게 준비했던 것입니다. 돈이 되는 유명 토크프로나 오락프로에도 출연하지 않고 오직 작품으로 자신을 보여주는 고집 있는 배우였습니다. 감독들이 OK 사인을 내려도 스스로 '한 번 더 찍겠다'고 자청하는 노력하는 배우였습니다. 무엇보다도 오랫동안 잡음이 나지 않은 사생활은 돈보다도 주관을 먼저 생각하는 그의 철학과 연기만큼 자신을 더 철저하게 관리하고 절제해온 것이 오늘의 그러한 열광을 얻게 한 것입니다.

  이렇게 대단한 배용준이라고 하더라도 그의 인기와 젊음과 생명이 언제까지 갈까요? 싱가포르에서는 기절한 여인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 길지는 않을 것입니다. 언젠가는 그 열기가 식어 팬들은 다른 사람을 요구하고 열광할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이고 인기입니다. 그러나 조용히 2000년 전에 베들레헴에 초라하게 탄생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능력은 영원합니다(영상). 오늘의 성도와 교회가 그 증거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된 노래, 글, 사람, 건물, 단체, 재산이 얼마입니까? 그 누구도 계산하거나 헤아릴 수 없습니다. 오늘 이렇게 추운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뻐하기 위하여 우리 모두는 성탄 주일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우리의 영원한 구원과 천국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더욱 사랑하고 열광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금년 성탄주일과 성탄절에 아기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껏 경배하고 찬양합시다. 만나고 교제합시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지내는 최고의 성탄절과 축제의 인생이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1. 가이사 아구스도

  본문 1-2절 "이 때에 가이사 아구스도가 영을 내려 천하로 다 호적하라 하였으니 이 호적은 구레뇨가 수리아 총독 되었을 때에 첫번 한 것이라"

  예수께서 베들레헴에 태어나시게 된 정치적 상황입니다. 가이사 아구스도는 B. C. 27 ~ A. D 14까지 로마의 황제로 있었습니다. 그는 탁월한 통치 능력과 현명하고 훌륭한 행정능력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는 점령지에 대한 정책의 일환으로 점령지의 지방 자치를 부분적으로 허용하기도 하며 점령지의 문화와 종교, 생활 풍습 등을 인정해 주기도 하고 심지어는 그 나라의 법률까지도 로마법에 비추어 무리가 크게 없는 한 인정해 주기도 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술, 문화, 건축 등을 장려하기도 했으며 그 자신이 또한 위대한 건축가이기도 하였습니다. 탁월한 정치 지도자이며 행정가인 그가 자기에게 속한 나라들이 무질서하다는 것을 알고는 로마에 속한 모든 나라들로 하여금 인구 조사를 실시하도록 명령했습니다. 황제의 명령은 세금 징수를 목적으로 인구 조사를 하였습니다. 이 기록부에는 성명, 직업, 재산, 친척관계를 기록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인구 조사는 예수의 탄생을 세계 역사의 맥락 속에 넣어 하나님이 그의 섭리를 달성하기 위해서 지상의 통치자를 이용하신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누구보다도 몇 수 높으신 분이십니다.

  어떤 사람이 우리 인생을 긴 야간 열차에 비유를 했습니다. 그 속에는 지금 막 태어난 갓난아기로부터 백발이 성성한 노인에 이르기까지 각색의 사람들이 타고 있습니다. 그런데 종소리가 들릴 때마다 자기 나이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이 정해진 정거장에 내려야 합니다. 여기서 잠시 열차 안에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살펴봅시다.

  첫 번째 사람은 열차 안에서 부지런히 일해서 많은 돈을 벌었습니다. 그에게도 어느 날 종소리가 울리기 시작했습니다. 이 사람은 내리지 않겠다고 발버둥을 치면서 외쳤습니다. "이 돈 보따리를 다 줄 테니 내리지 않을 수 없느냐?" 그러나 그 사람은 결국 빈 몸으로 쓸쓸하게 홀로 열차에서 내리게 되었습니다.

  두 번째 승객은 사상가였습니다. 그러나 그를 위한 종소리가 울려 퍼졌을 때 그도 어쩔 수 없이 열차에서 내리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그가 남긴 글을 통해서 오랫동안 그를 기억했습니다.

  세 번째 사람은 열차 안을 분주히 돌아다니면서 가난한 사람들, 병든 사람들을 열심으로 도왔습니다. 결국은 과로로 쓰러져서 젊은 나이로 열차에서 내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몇몇 사람들은 그의 삶을 본받기 위해서 그가 하던 일을 계속해서 행하기도 했습니다.

  네 번째 승객은 자기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안타까운 목소리로 호소합니다. "여러분! 여러분들도 언젠가는 이 열차에서 내려야 합니다. 그러나 절망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마지막을 알리는 종소리가 아닙니다. 오히려 영원한 세계를 향하여 새롭게 출발하는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입니다!"

확신에 찬 그의 음성은 사람들에게 많은 용기를 주었습니다. 지금도 인생의 열차는 계속 달리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과연 어떠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까?

  인간의 모든 것은 제한적이고 짧습니다. 결코 영원하지 못합니다. 인간이 기대하는 것만큼 길거나 만족할 수 없습니다. 인간의 생명, 권력, 건강, 사람, 환경, 모든 것은 반드시 끝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하고 겸손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대항하거나 이용하는 어리석은 삶이 아닌 하나님께 순종하고 충성하는 청지기적인 삶을 살아야 합니다. 누가 하나님을 대항하고 거역을 하겠습니까? 우리 모두 남은 생애 예수 그리스도 앞에 겸손하고 그 분께 헌신하고 충성하는 복된 생애가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2. 고향으로

  본문 3-4절 "모든 사람이 호적하러 각각 고향으로 돌아가매 요셉도 다윗의 집 족속인 고로 갈릴리 나사렛 동네에서 유대를 향하여 베들레헴이라 하는 다윗의 동네로"

  인구 조사는 각 사람의 고향에서 실시되는 것이 관례였습니다(영상). 이렇게 많은 불편을 감수하며 자기의 고향까지 가서 호적을 하는 것은 유대의 호적 제도를 따른 것이었습니다. 로마의 호적제도는 자신이 현재 거주하고 있는 지역에서 인적 사항만을 기록하는 훨씬 더 간편하고 손쉬운 방법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유대인들이 로마의 손쉬운 호적제도를 따르지 않고 굳이 번거롭게 많은 어려움을 감수하면서 자신들의 호적제도를 따르는 것은 자신들의 독자적인 방법과 의사에 의해 행해지는 것임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최소한의 민족적 자존심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다윗의 집 족속, 다윗의 동네"라고 한 것은 예수께서 육신상으로 다윗의 후손임을 강조함과 아울러 다윗 왕가의 후손이자 만왕의 왕으로 오실 예수께서 초라한 시골민의 가정에서 태어남을 부각시키려는 의도를 내포합니다. 다윗은 약 삼천년 전 베들레헴에서 태어났고, 그가 양떼를 돌보던 곳도 이 마을 근처의 언덕이었습니다. 베들레헴의 뜻은 '떡집'이고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가 출생한 곳입니다. 그러나 진정한 의미에서의 고향은 하나님 나라입니다.

  고향은 모든 것의 함축어입니다. 고향은 귀한 것, 중요한 것, 아름다운 것의 근원입니다. 고향에서 멀어지면 원형이 변질되고 고향을 잃으면 생명력이 소멸됩니다. 변덕스럽고 거칠어진 이방의 언어가 범람하고 있습니다. 떠돌이들의 즉흥적 행위가 현실이나 사실이라는 이름으로 인정과 수용을 강요합니다. 그래 돌이킬 수 있는 길을 가로막고 새로워지려는 바람을 희석하고 인간으로 설자리를 흔들어 유랑을 정당화하고 가속화하고 있습니다. 오랜 방황으로 비틀거린 발걸음은 고향을 향한 꿈 때문이었습니다. 어디를 향해도 마음 담을 곳이 없으니 어디에도 고향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마음 깊은 곳에 항상 그리운 것은 어머니의 포근함이며, 님의 숨결에 서린 감미로움이며, 파란하늘과 시냇물 흐르는 초원을 함께 노래할 친구들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행복을 상황에서 찾지만 상황은 또 다시 더 나은 상황을 요구하기 때문에 상황에서의 행복은 없다고 탄식합니다. 그래서 '욕심은 끝이 없다'는 말로 설명됩니다. 행복은 사람과의 만남에서 생명을 갖습니다. 그립고 사랑하는 사람이 있기에 눈물과 따뜻함과 고마움이 우리를 감동지게 하여 우리의 삶을 아름답게 하는 것이라 믿습니다. 그런 곳을 있어야할 고향이라 그리며 우리는 그런 곳을 현실로 드러내려 애씁니다.

  여러분의 고향은 어디입니까? 고향은 언제 떠났습니까? 얼마나 그립습니까? 어떠한 아름다운 추억을 가지고 있습니까? 언젠가는 고향에 가서 살 계획은 없습니까? 고향의 교회와 복음화를 위해서 더욱 기도하고 공헌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진정하고 영원한 고향은 하늘나라입니다. 우리 모두는 천국 시민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대한민국 시민권을 반납하고 천국 시민으로 영원히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이 땅 위에서 가정과 교회와 사명을 위하여 충성을 다 하다가 사망과 애통과 곡하는 것과 아픈 것이 없는 영원한 고향 하나님 나라에 가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성육신 하신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 받았습니다. 영원한 고향을 바라보고 충성을 다하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3. 구유에 뉘위신 예수님

  본문 5-7절 "그 정혼한 마리아와 함께 호적하러 올라가니 마리아가 이미 잉태되었더라 거기 있을 그 때에 해산할 날이 차서 맏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

  요셉이 나사렛에서 베들레헴까지 여행하는 것은 결코 힘든 일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해산이 임박한 마리아가 약 144km를 걸어간다는 것은 힘들고 위험한 일이었습니다. 이러한 상태로 베들레헴에 갔을 때 이들이 머무를 수 있는 사관이 없었습니다. 사관은 여관이나 객실을 의미합니다. 숙소나 다락방을 포함한 숙박소를 의미합니다. 사관이 없어서 예수님을 구유에 뉘었습니다. 메시야이신 예수께서 비천한 신분으로 보잘 것 없이 너무나도 초라하게 이 세상에 오셨음을 단적으로 말해줍니다. 구유는 세상 구세주의 비천한 탄생을 당시 세계의 주관자신 아구스도의 영광과 대조시키며 아무데도 머리둘 곳이 없는 하나님의 아들이자 인자하신 예수의 겸손과 고난을 상징합니다. 어둠과 욕심으로 인하여 예수 그리스도께 자리를 내어 드리지 못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알 수 없는 목적을 위하여 이해도 안 되는 과정들을 겪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속성은, 이루시고 성취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 안에서 선한 일을 시작하신 그분은 당신의 목적을 위하여 일하심을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도망가거나 이해하지 못하여 투덜거릴지라도 말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라 식언치 않으시며 하나님은 그분의 때에 오십니다. 나의 계산에 하나님을 가두려 하지 마십시오. 그분의 시간을 기다리십시오. 하나님은 결코 서두르지 않으십니다. 우리의 고통의 무게와 눈물의 양을 계수하고 계십니다.

  일본의 신학자 고스케 고야마는 "시속 3마일의 하나님"이라는 책을 썼습니다. 그 책에서 말하는 '3마일의 하나님이'라는 뜻은 무엇일까요? 사람이 보통 걷는 속도가 3마일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우리가 걷는 속도로 천천히 역사하신다는 뜻입니다. 결코 서두르시지 않으신다는 말이겠죠.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너무 답답하여 견디다 못해 쓰러질 정도로 천천히 일하십니다. 더디 움직이는 맷돌이 단단한 곡식들을 더 잘게 부수는 것입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은 잘게 부셔져 고운 가루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불완전하고 미숙하고 철없는 우리들을 수술하여 온전케 하시기를 원하십니다. 허리를 꺾어 알곡 되게 하십니다. 고난을 도구로 하여 우리를 부수고 깨뜨리십니다. 고난의 목적과 이유는 나중에야 말씀하십니다. 다만 우리가 붙들어야 할 것은 하나님은 사랑이시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좋은 것을 우리에게 주시는 분이시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언제나 옳으시며 선하시다는 말씀입니다.

  오늘 우리의 삶과 마음에 예수님의 자리가 있습니까? 어쩌면 내가 원하고 좋아하는 것들로 이미 꽉 채워져 있어서 예수님의 자리는 없는지 모릅니다. 마음 밖에 계신 예수님은 아닙니까? 아직도 구유에 누워 계신 예수님은 아닙니까? 이제 우리의 마음을 엽시다.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드리고 헌신합시다.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주인으로 모시고 삽시다. 예수께서 나와 가정과 교회에 주인이 되시도록 모든 열쇠를 그분께 드립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일하시고 주관하시는 성탄절과 인생이 됩시다.

  사랑하는 번동가족 여러분!
  오늘은 성탄주일입니다. 인간의 모든 것은 끝납니다. 권력도 고향도 끝납니다. 욕심을 비우고 예수님을 영접하고 예수님께 헌신합시다. 성탄의 은혜와 축복이 여러분과 가정과 교회와 나라와 세계 가운데 충만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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