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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믿음의 증거를 가지라 (행 17: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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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김성철 목사

“이는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 이에 저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만한 증거를 주셨음이니라 하시니라”(사도행전 17:31)

이 세상의 사람들 가운데 가장 큰 축복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신앙의 삶이 바로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신앙의 사람이 아닌 사람은 없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무엇인가를 믿고 있고, 그 믿는 것을 위하여 살고 있습니다.
신학자 폴 틸리히는 신앙을 ‘관심(concern)'이란 말로 설명했습니다. 모든 사람은 관심을 가지고 살고 그 관심에 사로잡혀 산다는 것입니다. 사상가는 사상에, 예술인은 예술에, 명예를 추구하는 사람은 명예에, 물질을 추구하는 사람은 물질에 관심을 갖게 되고 그 관심에 사로잡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폴틸리히는 그 관심은 그 사람에게 신앙의 대상이며 그 관심에 사로잡힌 것이 그 사람에게 있어 신앙이라고 했습니다.

폴 틸리히는 이러한 평범한 관심에서 그 평범한 관심을 뛰어넘는 '궁극적인 관심'(ultimate concern)을 말했습니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궁극적인 관심을 향하게 되어 있는데, 이 궁극적인 관심을 하나님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 궁극적인 관심에 사로잡힌 것을 인간이 가져야 할 절대적 신앙으로 말했습니다.

우리 인간은 무엇인가를 믿고 그것을 위해 살기 때문에 종교적 존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궁극적 관심인 하나님에 대한 나의 관심이 무엇인지, 그리고 내가 궁극적 관심인 하나님께 어떻게 사로잡혀 있는가를 질문해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궁극적 관심에 사로잡힌 자신의 신앙이 무엇인지를 입증할 수 있는 증거를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나는 무엇을 믿고 무엇에 사로잡혀 무엇을 위하여 사느냐를 질문해 보아야 합니다. 이 질문에 대답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이 대답은 내가 믿는 하나님에 대한 증거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믿음에 대한 분명한 증거를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나를 사로잡는 믿음이 있다는 자기확신과 함께 그 확신에 대해 입증할 수 있는 자기증거를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믿음은 믿음에 대한 증거를 보여주는 행위를 동반합니다. 그 사람의 믿음이 무엇이냐 하는 것은 그 사람의 드러내는 믿음의 행위 곧 믿음의 모습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바울은 아덴에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아덴에서 바울은 그가 가지고 있는 믿음을 증거했습니다. 우리들은 이러한 바울의 모습에서 확신하는 믿음의 증거를 보아야 합니다. 그럼 바울이 보여준 그의 믿음의 증거는 무엇입니까?

거룩한 분노입니다.

믿음을 가진 사람은 거룩한 분노를 경험하고 그 분노를 드러냅니다. 본문 16절의 바울이 ‘온 성에 우상이 가득한 것을 보고 마음이 분하여’라는 말씀의 ‘마음이 분하여’의 원문직역은 ‘그의 속에 있는 그의 영이 분노로 타오르고 있었다’입니다. 그러므로 이 분노는 우리 안에서 성령이 분노하시는 그 분노와 함께 하는 거룩한 분노입니다. 그러므로 이 분노는 그 사람의 믿음을 증거 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아덴에서 온 성에 우상이 가득한 것을 보고 분노했습니다. 아덴은 기원전 5세기경에 정치, 경제, 철학, 문학, 예술 등 문화 전반에 걸쳐 찬란한 업적을 이룬 도시였습니다. 바울은 아덴의 찬란한 문화나 도시의 아름다운 건축물의 예술적 가치를 보고 탄복하기보다는 아덴에 가득한 우상을 보고 분노했습니다.

그의 분노는 하나님을 예배해야할 인간이 하나님을 예배하지 못하고 인간이 만든 우상을 섬기는 데에 분노했습니다. 바울의 분노는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죄에 대한 분노이며, 거짓신앙에 대한 분노이고, 그것을 조성하는 사단에 대한 분노였습니다. 바울의 분노는 아버지 하나님을 잃어버리고 사는 인간을 바라볼 때에 안타까움과 함께 느끼는 아픔의 분노였습니다.

바울이 살던 당시 아덴에는 이만 오천 내지 삼 만개의 우상들이 있었습니다. 바울은 이런 아덴의 우상숭배의 죄를 보고 영적인 분노를 느낀 것입니다. 그들이 최고의 학문과 문화의 생활을 자랑할 지라도 그들을 지배하고 있는 영적 무지함과 그들을 그렇게 만든 사단의 역사를 보고 분노했던 것입니다.

이런 거룩한 분노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우리의 믿음의 증거가 되어야 합니다. 죄에 대하여 분노할 줄 아는 믿음이어야 합니다. 예배 받으실 하나님을 섬기지 아니하고 우상을 숭배하는 것을 보고 분노할 줄 알아야 합니다. 사단의 역사를 보고 분노할 수 있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저는 2001년 6월 농촌교회목회자들과 함께 일본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일본 센다이공항에서 내려서 세시간 정도 떨어진 야마가타현의 도자와 촌을 견학하였습니다.
도자와 촌은 7000명의 중하류층의 일본인들이 살고 있는 조그만 농촌이었습니다. 청소년관에 머물면서 그 곳 지역의 유치원과 초등학교, 그리고 중학교의 교육시설을 둘러보았습니다. 그들의 교육은 최첨단 기재를 사용하며 구조적으로도 훌륭한 교육의 수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특히 초등학교는 한 교실당 12명 정도의 학생들이 이상적인 교육을 받는 것이 저에게는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산업시설은 그 지역 농작물인 특산물을 이용한 특수생산 농민들의 노동력을 이용한 산업육성은 그 농촌을 부요하게 했습니다. 환경은 경제적 부요와 자연을 그대로 보존하는 아름답고 쾌적한 환경이었으며, 공원은 야간에도 사용할 수 있는 필드와 야외 음악당 같은 이상적인 시설들로 조성되어 있었습니다. 복지시설로는 지나칠 만큼 이상적인 첨단시설을 갖춘 양로원과 지적장애인 센터의 장애자들을 위한 시설은 과히 이상적이었습니다. 관공서는 부지런하고 바쁘며 친절하고 짜임새 있는 지방자치제의 이상을 실현하고 있었습니다. 도자와 촌의 촌장의 배려, 그 농촌의 행정기관의 돌봄은 우리의 관료주의와는 다른 것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놀라운 것은 이 농촌도시가 우상들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일본에는 팔백만개의 신의 있다는 말대로 귀신들을 섬기는 우상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아덴을 향하여 “너희를 보니 범사에 종교성이 많도다”고 한 바울의 말과 같이 어디를 가나 신을 섬기는 신사와 우상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제가 다른 목사님과 함께 민박한 집은 25년 이상을 팽이버섯을 재배하는 집으로 주인은 농업대학 출신으로 미국잡지 타임지의 표지인물로 선정된 팽이버섯재배 전문가였습니다. 그러나 그 집의 거실에는 일본의 천왕과 조상들의 귀신을 섬기고, 그리고 잡다한 우상들을 모아두는 신전이 가득한 것을 보았습니다.

각 가정에서 민박을 마치고 합숙소로 돌아온 목사님들은 모두가 무릎을 꿇고 일본에 그리스도의 복음이 증거 되기를 바라며 손에 손을 잡고 소리내어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목사님들은 일본 농촌의 경제적 성장, 최첨단 교육, 복지문화생활에 탄복하기보다는 그들의 잘못된 신앙에 분노한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거룩한 분노를 가지고 있는 믿음의 증거를 가진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 자랑, 하나님 사랑입니다

바울은 아덴의 사람들에게 하나님에 대하여 전했고 그 하나님의 사랑을 증거했습니다. 신앙은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것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 하나님을 자랑하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아덴은 고대 최대의 철학 도시였습니다. 소크라테스도 이곳 출신이었습니다. 그곳에는 에피큐로스 학파와 스토아 학파의 철학자들이 있었습니다. 에피큐로스 학파는 ‘쾌락’을 인생의 최고의 목표로 삼았습니다. 그 쾌락은 육체적 쾌락이기보다는 마음의 평정을 통한 쾌락이었습니다. 종교적으로 이들은 자연신론에 가깝고 신을 인정하나 인간과 별개의 것으로 보았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들은 신을 떠나 점차 육체적인 쾌락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흘러갔습니다.
스토아 학파는 엄격한 금욕주의를 주장했습니다. 이들은 이성을 강조하여 청빈과 자연에 따른 생활을 하였고 만민 평등사상을 주장했습니다. 이들은 종교적으로 범신론을 주장했습니다.

이들은 변론을 좋아하고 새로운 학문이나 사상의 들을 거리를 듣기를 즐거워하는 자들입니다. 이들은 바울이 전하는 예수와 부활에 관하여 듣고 바울을 하나의 말쟁이로 취급했습니다.
바울은 아레오바고에서 이들 철학자들에게 그가 믿는 하나님을 자랑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이시며 인간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자랑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그리스도로 오셔서 인간 구원의 역사를 이루신 하나님의 사랑을 자랑한 것입니다.

믿음의 증거는 하나님 자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자랑할 수 있다면 믿음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류를 위해 이루신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는 그 깨달음의 자랑입니다. 하나님의 구원과 사랑과 용서의 언어인 십자가를 자랑하는 것입니다. 이 자랑을 가진 사람이 믿음의 증거를 가진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없는 인간에게는 두 가지 힘이 작용합니다. 하나는 자신의 힘이고 또 하나는 수많은 잡신이나 우상이나 미신의 힘입니다. 물질, 권력, 과학, 문화 예술, 철학등이 고도로 농축되고 발전된 곳일수록 하나님을 더 멀리하는 경향이 있고 오히려 미신과 우상을 더 많이 섬기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아덴은 철학의 도시였습니다. 그리고 화려한 문화를 가진 도시였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 없는 그 도시에는 우상만이 난무했습니다. 심지어는 ‘알지 못하는 신’까지 있었습니다. 하나님 없는 나라이며 그리스도가 없는 나라인 일본이 첨단과학이 있고 인류복지를 만들어 가는 선진국일지라도 우상의 세계가 되어 가고 있는 것이 바로 그런 이유입니다. 고도의 의술 장비를 들여놓고 고사를 지내는 역설적인 현상이 바로 오늘을 사는 우리들의 모습인 것입니다.
하나님을 자랑하는 세상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세상이 되어야만 이 세상은 바로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자랑하는 그 곳에 사단의 농락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을 자랑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자랑하는 믿음의 증거를 가진 그리스도인이 되십시오.

인간의 참된 소망입니다.

바울은 인간의 참된 소망은 하나님의 심판에서 구원을 받는 것임을 증거 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서 영생의 참된 소망을 찾도록 하나님의 심판을 전했고 하나님의 구원을 받도록 회개를 촉구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30-31절 “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허물치 아니 하셨거니와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을 다 명하사 회개하라 하셨으니 이는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 이에 저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음이니라” 고 했습니다.

그리스도는 온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증거와 기준이 되십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 인류에게 하나님의 존재와 뜻을 확실하게 알려 주셨고 구원의 길도 확실하게 알려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이 땅의 사람들은 결단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와 그 복음의 진리를 믿고 회개하고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민족이나 개인은 누구든지 다 구원을 받습니다. 그러나 이 하나님의 구원의 복음진리를 불신하거나 받아들이지 않는 개인이나 민족은 영벌의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정하신 사람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부활의 역사로서 우리에게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습니다. 그런데도, 그리스도 안에서 인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비밀인 예수 그리스도를 깨달으려고 하지 않고 거부하는 사람에게 심판의 날을 작정하고 계신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심판을 심각히 여길 뿐 아니라 이 심판에서 우리를 구원하셔서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허락하신 영생을 확신하는 사람은 믿음의 증거를 가진 사람인 것입니다.

일본 방문 시, 우리일행은 ‘신지시’에 있는 한 교회를 방문했습니다. 그 교회는 95년의 긴 역사를 가지고 있었지만 교인의 수는 6명뿐이었습니다. 도와자 농촌의 지도자인 그 교회장로님께서는 오늘 일본의 교회가 이렇게 된 것은 바로 배금사상이 만든 현실이라고 하셨습니다.
사회의 복지와 아름다운 세상을 건설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명하신 일입니다. 그러나 땅의 천국을 추구하려는 욕망에는 영생의 소망을 잃어버릴 위험이 있습니다.
인간의 참된 소망이 무엇인지를 바로 아는 사람이 믿음의 증거를 가진 그리스도인입니다. 심판과 회개를 전함으로 영생의 구원을 소망하도록, 그 소망을 나누어주고자 했던 바울의 간절한 증거의 모습이 우리들의 믿음의 증거가 되어야 합니다.

믿음의 증거를 가지고 사는 그리스도인이 되십시오. 거룩한 분노를 가질 줄 아는 그리스도인이 되십시오. 하나님을 자랑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자랑하는 인생이 되십시오. 인생의 나그네길에서 영생의 확신과 함께 소망을 가지고, 하나님의 마지막 심판이 있음을 깨닫고 오늘을 책임 있게 살아가는 믿음의 증거를 가진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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