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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겨자씨와 천국 (막 4:3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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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김흥규 목사

<하나님 나라 = 더불어 사는 나라 + 이미 시작된 나라>
꿀벌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꿀벌을 기를 때 절대로 한 마리만 기를 수는 없고 여러 마리를 단체로 길러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꿀벌 한 마리를 기르기 위하여 최적의 온도를 맞추고 충분한 물과 먹이를 주는 등, 최고의 서식 환경을 만들어 준다고 해도 불과 이틀이나 사흘 밖에 살지 못하고 곧 죽어버린다는 것입니다. 꿀벌은 항상 여러 마리를 공동으로 기를 때에만 생존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도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일찍이 말했는데 우리는 다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존재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홀로 할 수 없는 일도 여럿이 힘과 지혜를 합치면 해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더불어 사는 공동체가 교회인 것입니다. 교인 한 사람이 아무리 기도를 많이 하고 아무리 영성이 탁월하고 아무리 봉사를 많이 한다고 할지라도 홀로서는 아무 힘도 쓸 수 없습니다. 온 교우들이 마음과 뜻을 합칠 때 우리 교회가 하나님 기뻐하시는 교회가 될 줄로 믿습니다. 

우리는 지난 주일부터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살펴보고 있는데 하나님 나라도 우리 다함께 만들어나가는 공동의 나라인 것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하나님 나라는 우리가 죽어서 가게될 초월적이고 종말론적인 나라만이 아니고 지금 여기에서 우리 가운데 이미 시작된 내재적인 나라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강조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이 주인이 되셔서 통치하는 나라에 다름 아닙니다. 여러분이 예수님을 개인적인 구주로 모시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면 그 어디나 하늘 나라가 될 것입니다. 때문에 찬송가 495장 3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높은 산이 거친 들이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 나라."

옳습니다.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고 하나님이 우리의 삶을 통치하도록 만드는 곳은 그 어디나 하늘 나라가 될 수 있습니다. 이제 중요한 것은 2천년 전에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심으로 하늘 나라는 우리의 삶 한 가운데 이미 시작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그렇다면 하나님의 나라는 어떤 모습일까요? 지난 주에 우리는 '스스로 자라는 씨의 비유'를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가 소리없이 번져나가는 생명력과 성장력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작디작은 겨자씨 한 알에서 천국을 보신 예수님>
오늘 예수님은 지난 주에 살펴본 그 비유 말씀 바로 뒤에서 계속해서 '겨자씨의 비유'를 말씀하고 계십니다. 겨자씨의 비유는 마가복음 뿐 만 아니라 마태와 누가에도 나오는 말씀입니다(마 13: 31-31; 눅 13: 18-19 참조). 수십 개가 넘는 예수님의 비유 중에 공관 복음서에 다 나오는 비유는 다섯 개 정도인데 그 중에 하나가 바로 '겨자씨의 비유'인 것입니다. 어떤 학자에 따르면 외경인 도마복음에도 이 비유가 들어있다고 합니다. 아무튼 예수님의 비유 중에 아주 중요한 비유였기 때문에 '겨자씨의 비유'가 이렇게 여러 곳에 출현한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겨자씨의 비유'를 통해서 주님께서 말씀하시려는 의도는 무엇이었을까요? 이 물음에 답하기 위해서 우리는 본문을 아주 세밀하게 관찰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 본문 30-32절 말씀을 다시 한번 읽어봅시다.

"또 가라사대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어떻게 비하며 또 무슨 비유로 나타낼꼬 겨자씨 한 알과 같으니 땅에 심길 때에는 땅 위의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심긴 후에는 자라서 모든 나물보다 커지며 큰 가지를 내니 공중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 만큼 되느니라."

여러분, 이게 무슨 말씀입니까? 이 짧은 비유의 요점은 아주 단순합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공중의 온갖 새들이 깃들일 수 있을 만큼 큰 가지를 가진 나무로 자라나는 겨자씨 한 알과 같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나라는 아주 작은 겨자씨 한 알이 큰 나무로 자라나는 이치와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에 성지 순례를 다녀오신 분들은 겨자씨가 얼마나 작은지 잘 아실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겨자씨를 씨앗 중에 가장 작은 씨앗으로 여긴다고 합니다. 겨자씨는 길이가 1-2cm 정도되는 씨꼬뚜리 속에 들어가 있는 아주 작은 씨앗들인데 지름이 겨우 1-2mm 밖에 안 되는 흑갈색 씨앗입니다. 이 겨자씨는 매우면서도 향기가 있어서 조미료나 약용으로 쓰여진다고 합니다. 겨자는 1년초 혹은 2년초였는데 최고 1-2m까지 자라난다고 합니다. 이렇게 작은 겨자씨가 자라나서 여러 새들이 깃들일 만큼 큰 나무가 된다는 사실에서 주님은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보셨던 것입니다.

<겨자씨 비유의 비밀: '대조,' '성장,' '포용'>
그렇다면 이 '겨자씨의 비유'와 '하나님의 나라'가 도대체 어떤 연관이 있습니까? '겨자씨의 비유'에서 우리는 세 가지 중요한 주제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대조,' '성장,' 그리고 '포용'입니다.

⑴ 대조: 땅 위의 모든 씨보다 작은 겨자씨 한 알 대(對) 큰 공중의 온갖 새들이 깃들일 만큼 커지는 나무

하나님의 나라는 지극히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해서 큰 것이 됩니다.
여러분, 이 비유에서 먼저 겨자씨가 땅에 심겨지기 전과 후를 대조해보십시오. '땅에 심길 때에는 땅 위의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었지만 심긴 후에는 '모든 나물보다 커지며 큰 가지를 내 공중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 만큼 큰 나무'가 됩니다. 작은 겨자씨가 큰 나무가 되는 것, 두 가지 극명하게 달라진 모습을 대조시켜놓은 것, 여기에 하나님 나라의 비밀이 숨겨져 있습니다!

우리가 생각하기에 하나님의 나라는 엄청난 힘과 크기를 가진 나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마치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고 했던 로마 제국이나 엄청난 군사력과 경제력을 가진 오늘의 미국과 같이 압도적인 힘을 가진 나라로 연상하기 쉬운 것입니다. 모든 경쟁력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고 그 힘의 크기에서 그 누구도 당해낼 수 없는 무적의 나라, 군사 경제적인 제국, 이런 나라가 하나님의 나라일 것이라고 생각하기 쉬운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나라는 지극히 작은 씨앗, 본문 31절의 말씀대로 한다면 '세상에 있는 어떤 씨보다도 더 작은 씨,' 즉 겨자씨 한 알로부터 출발한다는 것입니다. 작은 것은 아름답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하나님은 지극히 작은 겨자씨 한 알에서부터 하나님 나라의 시작을 보셨던 것이지요! 

미국 필라델피아의 어떤 교회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이야기입니다. 어떤 교회의 주일 학교 어린이들의 숫자가 급증해서 어린 여자 아이 하나가 소외되었습니다. 교실이 너무 비좁은데다가 학생 숫자도 많아지자 선생님들이나 친구들이 이 아이에게 관심을 기울이지 못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 때부터 이 소녀는 페니, 우리나라로 하면 1원짜리 동전을 한 푼 두 푼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주일 학교 교실을 더 많이 가진 교회 건물을 지었으면 하는 소원으로 동전 수집을 시작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동전을 모은 지 2년 만에 이 소녀는 갑자기 죽고 말았습니다. 그 2 년 동안 교회 사람들은 이 소녀에 대해서 여전히 무관심했습니다.

그런데 소녀의 유품을 정리하던 가족들이 소녀의 침대 옆에 있던 지갑에서 페니 57개와 조그만 종이 쪽지 한 장을 발견했습니다. 그 종이 쪽지에 소녀는 교회가 더 큰 주일 학교 교실을 짓는데 도움이 되고 싶어서 페니를 모으고 있다고 적어 놓았습니다. 이 소식이 이 교회의 담임 목사님에게 알려졌습니다. 목사님은 주일 예배 시간에 이 소녀 이야기를 하면서 아무래도 주일학교 교실을 늘려야 하겠다고 말씀했습니다.

이 소녀의 이야기가 많은 교인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습니다. 특히 이 이야기를 듣던 교인 중에 부동산 중개업자 한 분이 은혜를 받고서는 자기 땅을 선뜻 기증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자기 땅을 꼭 57 페니만 받겠다고 해서 소녀가 땅을 산 것처럼 만들었습니다.

이 아름다운 소식이 신문 방송을 타고 필라델피아 전역에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수많은 사람들이 모금 운동에 참여해서 큰 교회 건물이 지어졌습니다. 이 교회는 현재 3,300명이 앉을 수 있는 성전과 수많은 교실이 딸린 아름다운 건물을 갖게 되었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이 소녀의 감동적인 이야기 때문에 템플 대학교(Temple University)와 선한 사마리아인 병원(Good Samaritan Hospital)이 생겨났다는 사실입니다. 지금도 이 템플 대학교의 한 방의 벽에는 57페니를 모은 소녀의 사진이 걸려 있다고 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나라는 큰 것에 있지 않습니다. 지극히 작은 것에서부터 하나님 나라는 소리없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처녀의 태속에 들어갈 만큼 낮아지시고 작아지셔서 이 땅에 오심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시작되지 않았습니까?

그러므로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는 지극히 작은 것 하나를 소홀히 여기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나라는 겨자씨 한 알과 같은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들이 말씀을 듣고 깨달아 가정에서나 교회에서나 직장에서나 또 길거리에서나 작은 봉사 하나, 작은 사랑 하나를 실천하게 될 때 바로 거기에서부터 거대한 하나님 나라는 시작되는 것입니다!

  ⑵ 성장: 썩어짐으로 얻어지는 자라남

하나님의 나라는 희생을 통하여 자라나는 나라입니다. 
성장의 불가피성, 여기에 하나님 나라의 특징이 있습니다. 여러분 32절 말씀을 주목하여 보십시오. "심긴 후에는 자라서 모든 나물보다 커지며 큰 가지를 내니." 여기서 중요한 말이 '자라서(grows up),' '모든 나물보다 커지며(becomes the greatest of all shrubs),' '큰 가지를 내니'(puts forth large branches)라는 말입니다. 모두 놀랄만한 성장을 나타내는 동사들입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성장은 거저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씨가 심겨져 썩어 없어질 때 일어납니다. 희생을 통하여 성장된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요 12: 24에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썩어져 죽게 될 때 많은 열매를 맺는다는 것입니다. 희생이 성장의 전제 조건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겨자씨 한 알이 공중의 여러 새들이 깃들일 수 있을 만큼 큰 나무가 되는 것은 썩어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작은 겨자씨가 큰 나무가 되는 비결은 겨자씨의 썩어짐, 즉 희생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성장은 반드시 희생의 댓가를 치러야만 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아주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되어서 점점 자라나고 퍼지는 특징이 있습니다.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는 미미한 것이라고 할지라도 희생이 뒤따를 때 그것은 반드시 성장하고 확산됩니다. 여러분이 생활 속에 보이는 작은 봉사, 작은 희생이 하나님 나라를 점점 확장시키는 비결이 된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요즈음 한국은 수능 부정 문제 때문에 사회가 시끄럽습니다. 광주 지역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 광범위한 부정행위가 있었던 것으로 보도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인천 지역에서도 수능 대리 시험이 있었다고 합니다. 부정 행위를 한 것은 분명 잘못한 것이지만 국민들은 학생들이 이렇게 할 수밖에 없도록 만든 교육 현실에 대해서 더 많이 개탄하는 것 같습니다. 

이와 같은 조직적인 부정 행위가 대학 입시 위주, 성적 중심의 교육이 만들어 낸 결과라고 보는 것이지요. 분명히 이번 수능 파동은 한국 사회의 구조적 모순과 함수 관계가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명문 대학, 일류 대학을 나와야지 만 더 성공할 수 있다는 학벌주의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여러분, 하나님 나라는 큰 것과 관련되어 있지 않고 아주 작은 것과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주목하십시오. 무엇보다도 희생을 통하여 자라나가고 퍼져나가는 나라인 것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 나라는 힘의 경쟁에서 이김으로 커지는 나라가 아닙니다. 자기부터 먼저 썩어지고 작아지고 낮아지고 섬김으로서 널리 퍼져나가는 나라인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군사력과 경제력이 지배하는 제국주의가 아닙니다. 힘의 경쟁이 지배하는 약육강식(弱肉强食)의 나라가 아닙니다. 정반대로 아주 낮고 천하고 작고 겸손한 것으로부터 시작되는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1등 하는 사람만이 가는 나라가 아니라 2등, 3등, 꼴찌 하는 사람도 갈 수 있는 겸손한 나라인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지극히 작은 겨자씨 한 알이 썩어져서 자기를 희생함으로서 시작되는 나라인 것을 잊지 마십시오!   

⑶ 포용: 모든 새들이 깃들일 만큼 넉넉한 가지

하나님의 나라는 모든 것을 품을 만큼 넉넉한 나라입니다. 
여러분, 본문 32절의 후반부를 보세요. "큰 가지를 내니 공중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 만큼 되느니라." 여기에서 우리가 주목해서 보아야 할 단어는 큰 나무의 '그늘'이라는 말과 새들의 둥지를 마련해주는 '큰 가지'라고 하는 말입니다. '그늘'과 '가지'는 은신처 혹은 보호를 상징합니다. 작디 작은 겨자씨 한 알이 큰 나무로 자라나 그늘을 마련해주고 가지를 내어서 수많은 새들을 보호할 수 있는 은신처를 제공한다는 말씀이지요! 

예수님의 겨자씨 비유는 흔히 구약 성경 단 4: 10-12절(또한 겔 31: 6; 17: 23 참조)을 연상시킨다고 합니다. 우리 다같이 단 4: 10-12절 말씀(구약 1238쪽)을 찾아서 읽어보겠습니다. "내가 침상에서 나의 뇌속으로 받은 이상이 이러하니라 내가 본즉 땅의 중앙에 한 나무가 있는데 고(高)가 높더니 그 나무가 자라서 견고하여지고 그 고는 하늘에 닿았으니 땅끝에서도 보이겠고 그 잎사귀는 아름답고 그 열매는 많아서 만민의 식물이 될만하고 들짐승이 그 그늘에 있으며 공중에 나는 새는 그 가지에 깃들이고 무릇 혈기있는 자가 거기서 식물을 얻더라."

다니엘이 본 '거대한 나무에 대한 환상'은 장차 느부갓네살 왕이 통치하게 될 바벨론 제국의 위용(威容)에 대한 환상이었습니다. 느부갓네살 왕이 다스리게 될 바벨론 제국은 장차 거대한 제국이 되어서 수많은 민족 국가들이 그 그늘아래에서 보호를 받게될 것이라는 말씀이지요.

그러나 여기에서 꼭 주의해야할 아주 중요한 요점이 하나 있습니다. 다니엘이 본 바 바벨론 제국을 상징하는 나무는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나무와는 질적으로 다릅니다. 느부갓네살이 통치하는 제국은 무서운 군사력과 힘을 바탕으로 한 압제적인 나라입니다. 폭압의 나라입니다. 이 '나무,' 즉 '바벨론 제국'에 온갖 '새들,' 즉 '모든 민족 국가들'이 깃들이는 것은 느부갓네살이 휘두르는 철권 통치와 군사력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지 자발적인 기쁨 때문이 아닙니다.

반면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나무, 즉 지극히 작은 겨자씨로부터 생겨난 나무는 군사력이나 경제력과 같이 힘이 지배하는 나라가 아닙니다. 평강의 왕 아기 예수께서 다스리시는 나라, 겸손한 나라, 사랑과 자비의 나라, 모든 약한 것들을 감싸주는 나라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벨론 제국이 상징하는 거대한 나무와 겨자씨가 자라나서 생겨난 나무는 본질적으로 다릅니다! 하나는 힘이 지배하는 나라입니다. 그 무서운 힘의 압제 때문에 어쩔 수없이 머리를 숙이고 어쩔 수 없이 그 보호의 그늘 아래 들어가는 나라입니다. 그러나 또 다른 하나는 힘 때문이 아니라 사랑과 자비와 겸손 때문에 모든 민족 모든 국가를 품게 되는 평화의 나라입니다!

<대강절 기간 동안 지극히 작은 사랑의 실천을 하십시오!>
오늘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나라가 지극히 작은 것으로부터 출발된다는 사실을 믿으십시오. 이 하나님의 나라는 반드시 썩어짐, 즉 희생과 봉사를 통하여 자라나는 나라인 것을 믿으십시오. 그리고 이 하나님의 나라는 힘이 지배하는 강압적인 나라가 아니라 사랑이 지배하는 평화의 나라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여러분들이 사랑과 봉사의 지극히 작은 겨자씨 하나를 이 세상 속에 심게 될 때 하나님의 나라는 이 세상에 소리 없이 시작될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희생과 봉사 때문에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을 품을 만큼 넉넉하고 아름다운 하나님의 나라로 반드시 자라나게 될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의 탄생을 기다리는 대강절 기간 동안에 여러분 모두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는 작은 봉사자들이 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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