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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탄절] 그 이름, 임마누엘 (사 7: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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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김흥규 목사

<이름이 중요합니다>
저는 아이들의 이름을 잘 짓는 편입니다. 고등학교 다닐 때부터 조카아이들 이름 몇 개를 직접 지어 준 적이 있고, 그 후에도 여러 명의 이름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고등학교 다닐 때 이름을 지어준 조카들은 이제 어른이 다 되어서 장가 갈 나이가 되었습니다. 제가 이름을 지어준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만족해하는 편입니다.

제가 이름을 짓는 방법은 제 스스로 독창적으로 짓기 보다 책을 읽다가 너무 좋은 이름이 있을 경우, 그 이름을 기억해두었다가 지어주는 식입니다. 이름을 짓되 제 나름대로의 기준이 있는데 우선 부르기가 쉬워야 합니다. 발음하기가 편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둘째, 듣기에 예쁜 이름이어야 하고, 셋째, 한문이든 한글이든 그 의미가 깊고 좋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세월이 갈수록 좋은 이름을 찾기가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좋은 이름은 사람들이 어떻게나 잘 아는지 이미 다 미리 갖다 지어놓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인터넷 홈페이지를 만드는데도 부르기 쉽고 기억하기 쉬운 도메인 네임은 다 갖다 써놓아서 좋은 도메인 네임 만들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이름은 참 중요합니다. 사람의 이름도 중요하지만 가게 이름, 식당 이름, 회사 이름, 그리고 'brand name,' 즉 '상표 이름' 또한 얼마나 중요합니까.

어떤 음식점이 잘된다 싶으면 약아빠진 사람들은 즉시 유사 이름을 가진 식당을 만듭니다. 예를 들면 「장충동 족발집」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식당 상호입니다. 그러나 너나 할 것 없이 「장충동 왕족발집」이라고 이름을 붙여놓아서 누가 진짜배기인지 알 수 없을 정도가 되어버렸습니다. 아무리 자기들이 「元朝 장충동 왕족발집」이라고 해도 사람들은 잘 믿지 않습니다.

회사 이름도 마찬가지입니다. 「삼성」이나 「현대」,「LG」등은 세계적으로 알려진 이름들입니다. 아마 스포츠 레저 산업의 대명사로 알려진 「NIKE」상표를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제가 어떤 책을 읽어보니까 이「NIKE」라는 상표 이름 하나의 값어치가 70억 달러정도나 된다고 합니다! 「COCA COLA」라는 상표 이름은 「NIKE」의 10배 정도가 된다고 하니 무려 700억 달러나 됩니다! 이름 값을 한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좋은 이름, 유명한 이름은 개인 생활뿐만 아니라 비즈니스를 하는데도 아주 중요해졌습니다.

미국 캔사스 주에 가면 「부활의 교회」(The Church of the Resurrection)라는 연합감리교회가 있습니다. 1990년에 아담 해밀톤(Adam Hamilton)이라는 목사님이 개척한 교회입니다. 처음에는 목사님 가족들만 겨우 네 명이 모여서 예배를 드렸는데 지금은 만 명이 넘는 큰 교회가 된 아주 유명한 교회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 교회가 유명해진 이유 중에 하나는 처음 교회를 개척했을 때 예배 처소를 구하지 못해 장의사(葬儀社) 집에 있는 작은 채플을 빌려서 예배를 드렸기 때문입니다. 죽은 사람들의 시신이 가득한 장의사 집, 장례식이 끊어지지 않는 장의사 집 채플에서 개척 예배를 시작했던 것이지요! 그래서 교회 이름도 「부활의 교회」로 지었던 것입니다. '장의사'와 '부활,' 얼마나 잘 어울리는 이름입니까?

저는 우리 내리교회라는 이름도 참 정감 넘치는 좋은 이름이라고 생각합니다. 한문으로 하면 속 '내'(內) 자와 마을 '리'(里) 자가 합해서 만들어진 이름입니다. 순 우리말로 하면 '안골,' 혹은 '안마을'이라는 이름이지요. 아마 전국에 '內里'라는 이름을 가진 마을이 굉장히 많을 것입니다. 실제로 '내리교회'라는 이름을 가진 교회들 역시 더러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우리 내리 교회는 한국의 모교회인 까닭에 굳이 '인천 내리교회'라고 인천이라는 지역명을 앞에 붙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다른 내리교회도 있으니까 그 내리교회들과 구분하기 위하여 '인천'이라는 이름을 붙여주면 좋겠다고도 생각할 수 있지만 우리 교회가 가장 먼저 세워진 내리교회이니까 굳이 '인천 내리교회'라고 하지 않고 '내리교회'라고만 해도 사람들이 다 알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 때문입니다.

실제로 「광림교회」나 「영락교회」라는 이름도 부지기수로 많지만 가장 먼저 세워진 「서울 광림교회」나 「서울 영락교회」는 앞에 '서울'이라는 말을 붙이지 않고 그냥 「광림교회」, 「영락교회」라고 해도 사람들이 다 알지 않습니까? 어쨌든지 간에 우리 내리교회는 모교회요, 세계적인 교회요, 우주적인 교회인 까닭에 앞에 인천이라는 지명을 넣지 않고 그냥 「내리교회」라고 부르는 것이 훨씬 좋을 것 같습니다.

<이름 중에 최고의 이름, '임마누엘'>
지금까지 이름에 대해서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장황하게 말씀드렸습니다. 이것은 이름 중에 최고의 이름인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대해서 말씀드리려고 그랬던 것입니다. 본문 14절 말씀을 보세요.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로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임마누엘이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인데 바로 이 예언의 말씀이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통하여 이루어졌던 것입니다. 마 1: 22-3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이 모든 일의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 [이사야]로 하신 말씀을 이루여 하심이니 가라사대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본문 말씀의 배경은 이렇습니다. 이사야 시대에 유다 왕 아하스는 주변 강대국들에게 큰 위협을 받고 있었습니다. 특히 북쪽으로부터 아람 왕 르신과 이스라엘 왕 베가가 서로 동맹을 맺고 유다 왕국을 쳐들어오게 된 것입니다(왕하 16장 참조). 이와 같은 위기 앞에 아하스 왕은 하나님을 신뢰하기 보다 앗수르 제국의 디글랏 빌레셀 왕을 더 믿고 의지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의지하기 보다 앗수르의 군사력을 더 의지했던 아하스 왕에게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임마누엘의 확신을 주시려고 했습니다. '임마누엘,' 하나님께서 어떤 강대국들의 위협 한 가운데에서도 유다 민족과 함께 계시겠다고 약속 하셨던 것이지요. 16절 말씀 그대로 아하스 왕이 미워하는 두 왕, 즉 아람 왕 르신과 이스라엘 왕 베가의 땅이 황무지가 될 것이라고 약속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에도 불구하고 불행하게도 아하스 왕은 하나님의 임마누엘 약속을 믿지 못했으며 앗수르 제국의 군사력을 더 의지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보다 눈앞에 금방 보이는 힘을 더 의지했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또 다시 아하스 왕과 비슷한 상황에 빠져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난 아기 예수님을 통하여 '임마누엘,' 즉 우리와 함께 계시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예수님 자신이 '임마누엘'이 되셨습니다! 하나님이 예수님을 통하여 우리와 함께 계시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임마누엘의 하나님보다 세상을 더 의지합니다. 우리는 임마누엘 예수님의 탄생 앞에 또 다른 아하스가 될 위기에 처한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들은 아기 예수님이 '임마누엘,' 즉 '하나님이 아기 예수님을 통하여 우리와 함께 계심'을 믿으십니까? 사실 성경을 찾아보면 예수님에 대한 이름은 무려 백 개 이상이나 됩니다. 그 많은 이름들 중에 가장 아름다운 이름이 '임마누엘'이라는 이름입니다. '임마누엘,' 'GOD WITH US,'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 이 얼마나 좋은 이름입니까?

<임마누엘의 세 차원>
'임마누엘,'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여기서 우리는 어떤 부분을 강조하는 가에 따라 세 가지 단어를 나누어볼 수 있습니다. 첫째로, '하나님'이라는 말이고, 둘째로, '우리와'라고 하는 말이며, 셋째로, '함께 계시다'라는 말입니다.

①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우리가 몸이 아플 때 부모님이 옆에 계시면 큰 힘과 위로가 됩니다. 우리가 외로울 때 좋은 친구가 함께 있으면 참 좋습니다. 어둡고 무서운 밤길을 거닐 때 동행하는 사람이 있을 때 얼마나 용기가 됩니까? 비록 사람이 아닌 개 한 마리가 옆에 함께 걸어가도 얼마나 큰 의지가 됩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신다, 이 보다 더 좋은 것이 또 어디에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하여 우리 곁에 함께 계신다! 임마누엘의 하나님, 이 보다 더 용기가 되고 위로가 되고 소망이 되는 말이 세상에 또 어디에 있겠습니까?

우리 감리교회의 창시자 존 웨슬리는 1791년 3월 2일, 88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웨슬리가 세상을 떠나기 바로 전 날 저녁에 둘러 서 있던 분들에게 했던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모든 것 중에 가장 좋은 것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는 것이다"--"The best of all is God is with us." 웨슬리는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하여 임마누엘이 되신다는 사실을 인생에서 가장 좋은 일이라고 고백했던 것입니다!

옳습니다. 여러분의 부모님이, 아내가, 남편이, 사랑하는 친구나 애인이 옆에 함께 있는 것도 좋은 것이거늘,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계시다는 것, 얼마나 좋은 일입니까? 여러분이 어떤 형편에 있든지 아기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이 여러분과 함께 계시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②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하나님은 함께 계시되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말이 '우리'라는 말입니다. '나'라는 말이 아니라 '우리'라는 말입니다. 기독교는 개인적인 종교가 아니라 사회적인 종교입니다. 더불어 사는 것을 강조하는 종교가 기독교입니다. 하나님은 나와 함께 계실 뿐만 아니라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우리가 잘났든 못났든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우리가 부자든 가난하든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우리가 남자든 여자든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우리가 백인이든 흑인이든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우리가 어떤 배경, 어떤 개성, 어떤 문화, 어떤 언어를 가졌다고 할지라도 항상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어떤 미국 교회에서 견진성사(堅振聖事, Confirmation) 과정이 다 끝난 뒤 가족 친지들을 초청해 놓고서는 수료식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 때 교사가 학생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질문을 던지게 되었습니다. 롬 8: 38-9절에 있는 말씀을 암송하는 차례였던 것입니다.

"조지(George), 너를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어놓을 것이 무엇이니?" 조지가 롬 8: 38-9에 있는 말씀 그대로 확신에 차서 대답을 했습니다.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저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조지가 환하게 웃으면서 대답을 마치자, 부모님과 가족들 역시 흐뭇한 미소를 지었습니다.

선생은 그 다음에 메어리(Mary)에게, 피터(Peter)에게, 앤드류(Andrew)에게, 그레이스(Grace)에게 차례로 똑같은 질문을 던졌는데 다들 대답을 또박또박 잘해주었습니다. 전부다 'Confirmation' 클래스를 아주 훌륭하게 이수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마지막으로 레이철(Rachel)이라는 아이 하나가 남게 되었습니다. 이 아이는 'Down's Syndrome'이라는 병을 앓는 정신지체아였습니다. 다른 아이들보다 지능이 떨어지는 아이였던 것이지요. 드디어 이 아이 차례가 되었을 때 선생님과 친구들, 학부모들 전체가 긴장하며 술렁이기 시작했습니다. 과연 지능이 모자라는 이 아이가 롬 8: 38-9절에 있는 그 긴 말씀을 어떻게 다 외울 수 있을 것인가를 의심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드디어 교사가 레이철에게 물었습니다. "레이철, 무엇이 너를 하나님의 사랑으로부터 끊을 수 있을까?" 레이철이 잔잔히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대답했습니다. "Nothing!" 아무것도 자기를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을 것이라고 대답한 것이었습니다. 그 긴 롬 8: 38-9절 말씀을 다 외우지는 못했지만 단 한 마디로 "Nothing!"하고 간단히 대답해버린 것이지요!

그렇습니다. 그 어떤 것도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으로부터 끊어놓을 수 없습니다! 임마누엘,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한 아무 것도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어 놓을 수 없을 것입니다! 

③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임마누엘,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괴로울 때도, 기쁠 때도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외로울 때도, 즐거울 때도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올라갈 때에도, 내려갈 때에도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좋을 때에도, 나쁠 때에도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성공할 때도, 실패할 때도 함께 계십니다. 부할 때에도, 가난할 때에도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세상 사람들이 다 우리를 버릴지라도 주님은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시 139: 7-10절은 말씀합니다. "내가 주의 신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음부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니이다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할지라도 곧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 

옳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지, 졸지도 않으시고 주무시지도 않으신 채 항상 우리와 함께 계시는 분이십니다!(시 121 참조).

시인인 도종환씨가「그때 그 도마뱀은 무슨 표정을 지었을까?」라는 산문집을 낸 적이 있습니다. 일본 도쿄 올림픽 때 스타디움 확장을 위해 지은 지 3년 되는 집을 헐게 되었습니다. 일꾼들이 지붕을 옮기려는데 꼬리 쪽에 못이 박혀서 움직이지 못하는 도마뱀 한 마리를 우연히 발견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도마뱀은 그 때까지 살아서 몸부림을 치고 있었습니다. 3년 전에 인부들이 공사를 할 때 이 도마뱀에 못이 박혔던 것입니다. 

사람들은 3년 동안이나 도마뱀이 못에 박혀서 움직이지 못한 상태에서도 살아남은 사실이 몹시도 궁금했습니다. 그리하여 원인을 알아보기 위하여 즉시 사흘 동안 철거공사를 중단했습니다. 도대체 이 도마뱀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지켜보려고 했던 것이지요. 그랬더니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다른 도마뱀 한 마리가 먹이를 물어다 주는 것이 관찰되었습니다. 바로 항상 함께 있어준 또 다른 도마뱀의 사랑 때문에 기적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도대체 먹이를 날라다 주는 도마뱀이 못에 박힌 도마뱀과 어떤 사이인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알지 못했습니다. 어미와 새끼 사이일 수도 있고, 한 형제 자매일 수도 있고, 부부 사이일 수도 있고, 아니면 친구 사이일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3년 동안이나 못에 박혀 꿈쩍도 하지 못한 채 고통 당하고 있는 도마뱀을 다른 도마뱀이 살려냈다는 사실입니다. 어떻게요? 함께 있어주는 사랑 때문이었던 것입니다! 

<대강절의 표시 임마누엘을 향하여>
오늘 우리는 대강절 세 번째 주일을 맞았습니다. 대강절 기간 동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의 약속이 있습니다.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인데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부른다는 것입니다! 임마누엘, 그 이름보다 귀한 이름은 없습니다. 임마누엘, 그 이름보다 기분 좋은 이름은 없습니다. 임마누엘, 그 이름보다 위로가 되고 용기가 되고 소망이 되는 이름은 없습니다!

임마누엘, 아기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심을 믿으시는 여러분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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