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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탄절] 구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뇨 (마 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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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김성철 목사

마태복음 2:1~12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뇨. 우리가 동방에서그의 별을 보고 긍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마태복음 2:2)

‘크리스마스’란 말은 ‘Christ’ 와 ‘Mass(미사)’ 라는 용어에서 합성된 말입니다. 그러므로 ‘크리스마스’는 “그리스도의 미사”란 말로 “예수님의 탄생을 기념하는 예배”를 뜻합니다. 크리스마스는 기원 후 336년 서방교회에서 12월 25일로 지키는 데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심은 역사의 중심적인 사건입니다. 그러므로 이 예수님의 탄생을 기점으로 기원전(B.C.= before Christ)과 기원 후( A.D.= Anno Domini ; in the year of our Lord ; 그리스도의 기원)로 나누어 표시하게 되었습니다.

성경에 보면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은, 예언자 미가의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미5:2)는 말씀과 같이 예언자들의 말씀이 성취된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 그리스도의 탄일의 역사는 하나님께서 인류와 세계를 구원하시기 위한 직접적이고 적극적인 행동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마리아의 잉태는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의 역사에 의한 것(마1:18-20)이라고 기록했습니다. 또한 예수 탄일의 역사는 하나님의 영광이 우리 인류역사에 드러나는 사건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허다한 천군 천사들이 예수 탄일의 날, 예수 오심의 역사에 대하여 “하나님을 찬송하여 가로되,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눅2:13-14)라고 찬송했습니다. 그리스도의 탄일은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구원의 기쁜 소식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의 오심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하늘의 기쁨과 하나님의 평강 안에 거하는 구원의 역사를 소유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금년에도 변함없이 크리스마스의 날은 찾아오고 있습니다. 경기침체로 크리스마스의 흥취가 예전 같지 않다고 하지만 각종 백화점과 쇼핑센타에는 네온사인의 찬란한 불빛을 밝히고 손님을 부르고 있습니다. 거리에는 크리스마스의 캐롤이 넘치고 있습니다. 이유 없는 흥분과 들뜬 분위기는 우리를 감각적인 향흥의 시간으로 유혹하고 있습니다.

크리스마스의 축제가 이 세상 구석구석에서 하나님의 뜻과는 거리가 먼 흥취와 향락의 날로 되어가고 있습니다. 어느 때 보다도 타락과 죄악의 날로 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세상 속에서 우리는 성탄의 참된 기쁨과 하나님의 평강과 영광을 찾아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기쁜 소식을 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구원의 은총을 보아야 하겠습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예수님 탄일의 때에 아기 예수께 경배하기 위하여 예루살렘에 찾아와 “왕으로 오신 이가 어디 계시냐”는 동방박사들의 질문을 들어야 합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에게 구주로 오신 그 예수님이 지금 어디 계시냐?” 는 질문입니다.
첫번 크리스마스의 날 예수님은 여인숙의 마구간에 계셨습니다. 그 마구간에서 태어나신 아기 예수님을 축하하는 사람들과 함께 계셨고, 그들의 마음속에 예수님이 계셨습니다. 예수님과 했던 그들에게는 구원의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신 하나님의 기쁨과 평강과 영광이 넘쳤던 것입니다.

금년 크리스마스를 맞이하면서, 누가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참되게 경배하며, 그 주님과 함께 하는 크리스마스의 축복자입니까? 그것은 처음 크리스마스 때에 왕으로 오신 예수님과 함께 했던 사람들과 같은 사람들입니다. 그럼 그들은 누구였습니까?

목자들입니다.
당시 목자들은 가난하고 비천한 생활을 했습니다. 그들은 평범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부지런하고 소박하면서 진실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태어나실 때 양을 지키기 위해 깨어있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계시에 반응할 수 있는 순수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천사는 이런 사람들에게 나타나 하나님의 계시를 전했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탄일의 소식을 전해 준 것입니다.

누가복음 2장 10절에서 17절의 말씀을 보면 천사가 목자들에게 나타나, “무서워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인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고 알려 주었습니다. 천사의 전하는 말을 들은 목자들은 베들레헴까지 가서 주께서 우리에게 알리신 바 이 이루어진 일을 보자 하고, 찾아가서 직접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찬송하였습니다.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은 목자들과 같은 사람들에게 함께 계십니다. 나의 환경이 비천하고 불행할지라도 실망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에게 계십니다. 세속 속에 잠들지 않고 순수하고 진실 되며 진리의 생활에 깨어있는 사람들 가운데 계십니다. 하나님의 계시에 예민히 반응할 수 있는 사람들 가운데 계십니다.
빈방이 없어 예수님께 마구간을 내어준 여인숙 주인과 투숙객들은 예수님으로부터 가장 가까이 있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예수님이 계신 자리에 함께 하지 못했습니다. 크리스마스의 기쁨과 평강의 축복을 가지지 못했습니다. 여인숙 주인은 오로지 호적하기 위해 베들레헴에 몰려든 돈 많은 투숙객들만 보았습니다. 그는 가난하고 초라한 목수 요셉과 마리아에게서 태어난 인류의 구세주를 바로 볼 수 없었습니다. 수입의 대목을 보기에 혈안이 되어 예수님의 탄일의 자리에 함께 하지 못했습니다.

또한 투숙객들은 오래간만에 고향 친지들과 만나 회포를 풀며, 밤새도록 먹고 마시며 취함으로 가까이 계신 아기 예수의 자리에 함께 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세속의 일상성에 빠져 깨어있지 못하거나 하나님의 계시에 둔감한 생활은 예수님과 함께 하는 자리를 잃어버리게 합니다.
무엇 때문에 그렇게도 바빠야 합니까? 무엇이 우리의 참된 모습을 잃어버리게 하고 있습니까? 무엇이 우리의 마음을 가두어 두고 있습니까? 목자들과 같이 구주 예수님과 함께 하는 축복자의 삶을 간직하시기를 바랍니다.

동방의 박사들입니다.

아기 예수의 탄일을 영광스럽게 한 사람들은 동방에서 온 박사들이었습니다. 이들은 동방에서부터 별을 보고 찾아온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오래 전 그들의 역사 가운데 히브리 포로들이 전해주었던 메시아 곧 인류를 구원할 자가 오시리라는 약속을 믿고 연구하며 기다린 사람들이었습니다. 캄캄한 밤에도 하늘의 반짝이는 별을 바라보았습니다. 인류의 희망을 바라보며 그 희망의 별을 찾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은 희망의 별을 발견했습니다. 이들은 별을 보기만 하는 공상가들이 아니었습니다. 예물은 준비하고 낙타를 타고 별을 보고 따라가는 행동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예루살렘에 와 아기예수를 찾았습니다. 아기예수를 만나보고 그들의 최고의 선물인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드리고 경배했습니다. 이들은 먼 거리에 있으면서도 예수님이 계신곳을 찾고 그 자리에 함께 했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하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이들은 탄일의 기쁨과 평강의 축복을 가진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예루살렘에는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있었습니다. 대제사장들은 예배를 집전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그 시대에는 헤롯이 자기 임의로 임명하여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특권층으로 전락한 무리들에 불과했습니다. 그들은 부활을 믿지 않는 사두개인들이 주축을 이루었습니다.
서기관들은 성경에 통달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옷단에까지 성경귀절을 써 붙이고 다녔습니다. 그들은 랍비라고 불리었고 율법사라고 불리기도 했습니다.

동방박사들이 헤롯왕을 찾아와서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서 나겠느냐”고 물을 때,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미가서의 말씀을 근거로 유대 베들레헴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예수님을 찾아가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지식으로 아는 자들이었지 믿거나 따르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입으로 선생 노릇하기를 좋아했으나 가르치는 대로 행동하지 않고, 영적으로 드리는 기쁨과 진실한 예배를 잃어버린 사람들입니다. 그들의 힘과 권위를 손상시키는데 대해서는 예민하면서도 진리를 위한 희생에 전혀 무심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자기 것을 가지고 희생하는 것이 아니라 남의 것으로 자기생색을 내는 무리들입니다. 말씀을 알면서도 실행하거나 따라가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여러분,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아기 예수께서 태어난 가까운 곳에 있으면서도 그 탄일의 기쁨과 평강의 축복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구원역사와 거리가 먼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우리가 이러한 모습 가운데 있지 않는가 자문해 보아야 합니다. 예수 탄일의 크리스마스의 축제의 자리에 있음에도 동방박사들과 같은 감격과 기쁨, 그리고 드림과 헌신의 복된 모습을 가지고 있지 못한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의 우주적 사건인 성탄의 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아야 합니다. 성탄의 기쁨이 우리의 것이 되며, 가장 귀한 예물을 드리는 동방박사들의 헌신의 기쁨이 우리의 것이 되어야 합니다. 대제사장들과 서기관의 모습에서 벗어나야 크리스마스의 참된 경배자가 됩니다.

마리아와 요셉입니다.

아기 예수의 탄일의 역사에 직접적으로 참여한 사람은 마리아와 요셉입니다. 성서의 증언을 보면 가브리엘 천사가 마리아에게 나타나 이렇게 말했습니다.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지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 무서워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느니라. 네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저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을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위를 저에게 주시리니, 영원히 야곱의 집에 왕 노릇하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 (눅1:26-33)

요셉은 마리아의 일로 염려할 때 마리아의 된 일을 설명해 주는 천사의 말을 듣고 마리아를 데려와 정성껏 돌보았고 아기를 낳기까지 동침치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귀히 여기고 함부로 하지 않는 경외를 보였습니다.
마리아와 요셉은 은혜를 받은 자이며, 그 은혜를 존귀히 여기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인류구원의 역사에 참여하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아기 예수님이 태어나기까지 그 은혜의 역사에 최선을 다한 것입니다.

헤롯은 제사장들 서기관들 그 밖의 많은 정치적 대립자들을 적당히 이용할 줄 아는 고수의 정치가였습니다. 헤롯은 아기 예수의 탄일을 두려움을 가지고 심각히 여겼습니다. 자신의 왕권의 도전자, 곧 정치적 적수가 태어난 것으로 여기고 아기 예수를 죽이고자 하여 두 살 이하의 어린 아기를 학살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를 대적하는 사탄의 하수인이 되었습니다. 그는 아기 예수의 탄일을 축하하는 자리에 있지 못하고 아기예수를 대적하는 자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소중히 여기며 그 은혜 안에 살아가는 사람은 마리아와 요셉처럼 그리스도의 탄일의 기쁨과 평강을 가진 축복자가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존귀히 여기며 살아가는 사람에게 주님은 함께 계십니다. 은혜를 사모하며 그 안에 살아가는 사람은 예수님께서 받으시는 영광을 함께 나누는 사람입니다.
은혜 받은 마리아와 요셉은 동방박사들이 아기 예수께 드리는 최고의 영광에 함께 참여했습니다. 천사들의 찬양을 받는 자가 되었습니다.

유월절 당시 예수님을 태우고 예루살렘에 입성하는 은혜를 입은 어린 나귀새끼는 예수님이 받으시는 영광에 참여했습니다.
그리스도의 대적자가 되지 않도록 하십시다. 하나님의 은혜 안에 살아가며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에 참여하는 탄일의 기쁨을 가지는 축복자가 되십시다.
마태복음 2:3에 보면, 동방박사의 “유대인의 왕으로 곧 구세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 는 물음을 들은 예루살렘 주민들은 소동하였습니다. 그들은 밤낮으로 “오기를 고대하였던 메시아가 오셨대“, ”나도 들었어“ 라고 떠들었지만 아기 예수를 찾고자 하지 않았고, 찾아 경배하지도 않았습니다. 떠들어 대고 동요만 했습니다.

성탄의 소동은 우리시대에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진실히 “구세주이신 예수님은 어디에 계십니까?” 라고 질문해야 합니다. 베들레헴 여인숙 마구간에 계십니다. 그곳을 찾아와 경배하였던 목자들과 동방박사들 그리고 마리아와 요셉에게 함께 계셨습니다.
우리의 비천한 곳에 찾아오셔서 함께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새롭게 만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목자들과 동방박사 그리고 마리아와 요셉과 같은 경배자가 되시길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모신 성탄의 축복자가 되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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