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내 앞을 가로막을 때 (수 3:1~13)

  • 잡초 잡초
  • 379
  • 0

첨부 1


- 설교 : 박세종 목사

할렐루야!
새해가 10여일 남았습니다.
새로운 각오와 결단으로 2005년도를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은 무슨 결심을 하셨습니까?
어떤 각오를 다지셨습니까?

신앙인들이 삶의 목표를 세우면 언제나 그 앞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을 보세요!
출애굽을 할 때에는 홍해바다가 앞을 떡 하니 가로막았습니다.
40년간 광야에서 그 지긋지긋한 텐트 생활을 마치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곳으로 들어가려는데 이제 정말 다 왔는데 그 앞에는 요단강 물과 여리고 성 사람들이 그들의 앞을 가로막고 있었습니다.
어떻게 해야 우리 인생의 앞길을 가로막는 요 장애물들을 이길 수가 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좋은 것으로 우리 앞에 다 준비해 놓으셨습니다. 분명하게 약속하셨습니다. 이제 그 약속이 눈으로 보면 보이고 손만 뻗어도 잡을 수가 있습니다. 이 하나님이 주시려는 축복을 가로막고 있는 이 난관을 믿음의 사람! 여호수아는 어떻게 극복하였을까요?
여호수아의 모습을 통하여 내 인생의 앞길을 가로막으려는 수많은 장애물들을 이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첫째로는> 부지런해야 합니다.
1절을 보세요.
"여호수아가 아침에 일찍이 일어났다" 하였습니다.
이 "일찍이 일어났다" 말이 매우 여러 번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6:12, 7:16, 8:10에도 나옵니다.
여호수아서 1장에 보면 여호수아를 향한 하나님의 약속이 나옵니다.
뭐라고 하셨습니까?
여호수아야!
너희 발바닥으로 밟는 곳을 내가 다 너희에게 주겠다.
분명합니다.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 땅을 허락하셨습니다.
우리에게도 하나님은 약속하셨습니다.
위로는 하나님 나라의 신령한 복을 주리라.
아래로는 꾸어줄지언정 꾸러 다니지 않는 기름진 복을 주리라
네 자손이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난 백성이 되리라
현재보다 천 배나 되는 복을 쏟아 부어 주리로다.
이 하나님의 약속을 믿으시면 아멘!
하나님께서 약속해 주셨으니 이제 이 약속이 성취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려면 그 속에 나의… 쏟아 부어야 합니다.
땀을! 눈물을! 핏방울을 쏟아내는 모습을 여호수아에게는 "아침에 일찍이 일어났다"로 표현한 것입니다.
사실 사람의 본성은 부지런하기보다는 게으른 것을 좋아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학생들은 공부하기보다는 노는 것을 좋아합니다.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는 것보다는 그저 대강 대강 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롬 1장에서는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며 하나님의 영광에 이룰 수 없다 하였습니다.
심지어 사도바울 까지도 원하는바 선을 행치 않고 원치 않는 바 악을 행한다고 할 정도입니다.
그러나 기억하세요!
하나님은 게으른 자의 하나님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부지런한 사람은 축복하신 다는 것입니다.
성경 어디를 찾아봐도 게으른 사람이 잘된다는 말은 한 곳도 없습니다.
게으른 사람의 결과를 볼까요?
잠 19:15 "게으른 사람은 깊이 잠들어 주릴 것이다"
잠 12:24 "부지런한 자의 손은 사람을 다스리게 되어도 게으른 자는 부림을 받느니라"
잠 18:9 "자기 일을 게을리 하는 자는 패가하는 자의 형제니라"
마 25:26에서는 어두운데 쫓겨나서 슬피 울며 이를 가는 사람을 가리켜서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 하였습니다.
롬 12:11에서는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으라" 하였던 것입니다.
복을 받기 원하시면 아멘! 오른손 높이 들고 아멘!
그럼 열의가 있어야 합니다.
열의가 무엇입니까?
열렬한 마음.
불같이 타오르는 뜨거운 정신입니다.
소극적이고, 타율적이 아니라
적극적이고 진취적인 기상을 가지고 씩씩하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잊지 마세요!
인생의 대업은 모두가 정열의 소산입니다.
정성을 다해 주어진 사명을 수행하는 것입니다.
정성의 반대되는 말이 무엇입니까?
그저 대강 대강 아무렇게나 하는 것입니다.

오늘 당회 때에 새로운 임원들에게 임명장을 나누어 드리는 순서가 있습니다.
만일 그 임명장에 쓰여진 내 이름이 그냥 정성 없이 대강 대강 쓰여졌다면 받으시는 마음이 어떡하겠어요. 연말이 되면 모든 성도들께서 기도제목을 적어서 저에게 주시죠.
그 기도제목을 쓰실 때 그냥 연필이나 아무렇게 쓱쓱 쓰셨다면 1. 건강축복, 2. 자녀축복 3. 남편출세 그런 기도제목은 읽으면서도 애착이 가질 않습니다.
글자 하나를 써도 성의껏 써야 합니다.
말 한마디를 해도 성의 있게 말해야 문제가 풀려 나갑니다.
기술자들이 정성을 들여서 물건을 만들어야 좋은 제품이 나오는 거예요.! 그래서 그 물건! 제품 속에 자기의 혼을 쏟아 부으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런 물건은 세계 어디에 내어놓아도 우수제품으로 인정받아서 세계의 시장이 넓어지고, 우리민족이 강건해 지는 것입니다.
선진국과 후진국의 차이점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열심히, 부지런한 사람, 정성을 다하는 사람이 대접받는 사회가 바로 선진국입니다.
빈둥 빈둥 놀면 푸대접받는 사회, 그게 올바른 사회입니다.

기억하세요!
하나님은 부지런한 손을 축복하여 주십니다.
행한 대로 갚아 주시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눈에서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마에서는 핏방울이 흘러 내렸던 것입니다.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서"
여호수아의 부지런한 모습이 하나님의 축복을 이루는 것입니다.
부지런하십니다.
열심을 품으십시다.
"벼락부자란 단어는 내 사전엔 없다"
하나님은 일한 대로 갚아 주신다.
소망의 성도들이여!
열심을 품고 사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축복이 그 위에 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두 번째로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가야 합니다.
뉴욕도 차로 5시간 정도를 가면 "넛치 컨트리"라는 옛날에 주로 네덜란드 사람이 모여 사는 동네가 나옵니다. 이곳에 가면 "재현된 성막"이라 성막을 모형으로 만든 곳이 있습니다.
1층 벽에 붙어 있는 "불기둥"의 사진도 그곳에서 사온 사진을 액자에 넣어서 걸어 논 것입니다.
40년 동안 광야 생활하는 동안 이것이 낮에는 구름기둥이 되었다가 밤에는 다시 불기둥으로 바뀌었습니다.
낮에 잠시 쉬다가도 이 기둥이 움직이면 백성들도 그 기둥을 따라 갔습니다.
자다가도 불기둥이 움직이면 모든 사람이 다 깨어서 이 기둥을 따라 나아갔습니다.
불편한 것도 불편했겠지만 이 기둥들이 언제 움직일지를 아무도 몰랐다는 것입니다. 예고되질 않았습니다. 막 잠자리에 들었는데 움직이기도 했을 것입니다. 어떤 집에서는 애기가 출산되기도 했을 것입니다. 어떤 가정에서는 결혼식이 거행되기도 했을 것이고 화장실에 있었던 분은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이런 모습을 생각하노라면 성경을 읽다가도 저 혼자 웃음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그런데도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 기둥을 따라갔고 따라갔더니 또 한가지 중요한 사실이 나옵니다. 기다리고 있다는 거예요.
3:2이하로 보세요.
"삼일 후에 유사들이 진중으로 두루 다니며 백성에게 명하여 가로되 너희는 레위 사람 제사장들이 여깁니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언약궤 메는 것을 보거든 너희 곳을 떠나 그 뒤를 쫓으라 그러나 너희와 그 사이 상거가 이천 규빗쯤 되게 하되"
한 규빗은 팔꿈치에서 손끝까지의 길이입니다.
그러니 이천 규빗이라면 대략 800m 쯤 됩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언약궤와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를 800m 쯤 떨어지라 하셨을까요?
그 이유 이렇습니다.
그 정도 떨어져야 앞과 뒤의 모든 백성들이 다 언약궤를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장정만 60만명이라 했습니다.
거기에 부녀자. 어린이까지 다 합치면 적어도 2백만명쯤 되었을 거예요.
그 많은 사람이 다 함께 보려면 다른 사람들이 너무 가까이 있으면 앞에 있는 사람은 언약궤를 볼 수 있어도 뒤에 있는 사람은 볼 수가 없잖아요.
그래서 2천 규빗정도 떨어지라 하신 것입니다.
어쨌든 중요한 사실은 "언약궤를 보고 쫓으라"는 것입니다.
사실 하나님의 뜻대로 쫓아가기란 그리 쉽지만은 않습니다.

오른 뺨을 때리거든 왼뺨을 대라
오리를 가자면 10리를 가 주어라
겉옷을 달라하면 속옷까지도 벗어주라
받는 자보다 주는 자가 복되다

12/15일 제 생일이었습니다.
생일 아침에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전화 건 이유는 다 아시겠죠.
그런데 생일 축하한다는 말이 없어요.
야! 목사의 신분인데도 거! 섭섭합디다.
전화를 끊고는 이렇게 생각은 했죠.
아마도 수술 후유증일거야!
그런데 조금 있다가 아내에게 전화가 왔어요.
여보! 목소리가 달라졌더군요.
미안해요! 아까는 생일 축하한다는 말을 못했네요.
그때는 뭐라고 해야 되나요?
뭘 그런 것 가지고 미안해 하나. 건강이 중요하지!
이렇게 말하는 건 방송 용어 구요.
속으론
아니! 그럴 수 있는거야!
받는 자보다 주는 자가 더 복되다 구요?

인생엔 가는 길이 있습니다.
옳은 길을 정도라 하고
빗나간 길을 사도라고 합니다.
길이 있는 것을 유도라하고
길이 없는 것은 무도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길이 사람들의 손에 의해 무참하게 파괴가 되었습니다.
첫째> 자기만 이로우면 된다는 이기주의!
둘째> 남을 생각하지 않는 욕심!
셋째> 자기의 이름을 높이 드러내려는 명예심! 이 바로 그것입니다.
여러분은 주로 어떤 길에 서 계십니까?
많은 사람이! 주의 길에서 떠납니다. 등록교인 80%가 심지어 아담과 하와.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의 길을 걸어갔던 것처럼 우리도 인생의 길을 걸어가야만 합니다.
불안합니다. 걱정이 됩니다. 염려가 앞을 가로막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그 장애물들은 "나를 쫓으라고"하신 하나님을 바라보질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도바울은 히 12:2에서 "믿음의 주요 우리를 온전케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자 하였습니다"
홍해를 가라 막습니다.
마실 물먹을 것도 없기에 앞을 가로막습니다.
요단강도 나타나고
여리고 성도 앞을 가로막습니다.

그럴 때 하나님을 바라보세요!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따라 가세요.
"나는 가리라 주의 길을 가리라
주님 발자취 따라 나는 가리라"
열심을 품고 주를 따르다가 내 앞에 놓여 있는 모든 환난을 이겨내는 승리의 백성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