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송년] 또 한번의 기회를 주소서 (눅 13:6-9)

  • 잡초 잡초
  • 444
  • 0

첨부 1


- 설교 : 임경택 목사

흥분된 한해를 시작 한지가 엊그제 같은데 2004년 마지막 주일을 맞았습니다.
금요일이면 이제 송구영신 예배를 드리게 됩니다. 이렇게 시간이 빠르게 지나가는 것을 보면서 두려운 마음이 밀려옵니다.
여러분, 우리의 시간들은 우리의 것이 아님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금보다 귀한 시간. 시간이란? 언제나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법. 우리의 지난 인생은 우연이 아니라 우리의 삶의 흔적들의 모음들입니다. 언젠가 하나님 앞에 설 때 계산해야 할 것들이기에 더욱 두려운 것입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에는 목적이 있습니다. 기대치가 있습니다. 그 기대들 때문에 땀흘리고, 투자하고, 희생합니다.

세상에는 기대한 만큼 결과를 얻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노력한 만큼 얻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믿는 사람이나 안 믿는 사람이나 . . . 어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좋은 것을 주실 줄로 믿고 심지도 않고, 노력하지도 않고 있다가 망신을 당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성경은 게으른 자를 가장 악하게 봅니다. 열심히 공부해서 의사가 되기도, 교수가 되기도 합니다. 이것은 당연한 원리입니다.

또 어떤 사람은 기대하지 않았지만 기대 이상으로 잘 되는 사람도 있습니다. 너무 가난해서 초등학교도 나오지 못한 링컨이 미국의 대통령이 되는 일, 구두 수선공 무디가 미국에서 가장 위대한 전도자가 되는 일. 열명의 형들이 있었지만 왕따 당하던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되는 일, 요셉을 총리대신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것입니다. 역사 속에는 이런 은총의 사람들이 꼭 있습니다. 다니엘, 다윗, 베드로 . . . .
그런 반면에 어떤 사람은 기대를 했지만 기대와는 전혀 상관없는 결과를 얻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그런 비유가 있습니다.

본문에 주인이 포도밭에 무화과나무를 심었습니다. 포도원에는 포도나무만 있는 곳인데 주인은 한 무화과나무를 심었습니다. 무화과나무가 잘 자라면 보통 3-4m 정도 높이가 됩니다. 제가 전에 목회하던 교회 앞마당에는 무화과나무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잘 압니다. 그 나무의 열매는 정상적으로 자라면 3년째 가서야 열립니다. 그리고 잘 자란 나무에서는 일 년에 3번까지 열매를 딸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주인은 몇 년 후에 좋은 열매가 많이 맺을 것을 기대했습니다. 그리고 한 종에게 맡겼습니다. 포도원 주인은 포도원지기에게 포도나무 못지않게 그 무화과나무에 더 정성을 쏟을 것을 당부했습니다. 포도원지기는 주인의 뜻을 받들어 무화과나무에 정성을 쏟았습니다. 첫 해에는 잘 자랐습니다. 그 기대도 변함이 없었습니다. 그 다음해에도 잎이 무성할 정도로 자라야 할 만큼 자랐습니다. 주인과 포도지기는 정성을 쏟은 만큼 무화과나무가 잘 자라기 때문에 흐뭇해했습니다.

삼년째 되던 해에는 군침이 돌았습니다. 그 열매를 먹을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입니다. 그런데 또 작년처럼 잎만 무성한 것입니다. 포도원지기는 실망이 너무 컸습니다. 정성을 쏟아 부었는데 말입니다. 기대가 너무 컸었는데 . . . . 주인은 배신감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포도원지기를 불러 그 나무를 찍어버리라고 지시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포도원지기는 주인에게 한 해만 더 기회를 달라고 애원합니다. “한해만 참아주소서 구덩이를 파고 거름을 주고 정성을 다해보겠습니다. 그렇게 하고도 열매가 맺히지 않으면 그때 찍어버리십시요”하고 . . .

1.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

포도원에 무화과나무를 심었다고 했습니다. 포도원에다 무화과를 심었다는 것은 주인의 넘치는 배려입니다. 이것은 주인의 특별 배려로 포도원에 심겨지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보통은혜가 아닙니다. 포도원에는 포도나무가 있습니다. 무화과나무는 포도나무의 잎보다 커서 자리도 많이 차지합니다. 그 잎사귀는 아주 넓어서 포도원의 그늘이 지게하기 때문에 다른 포도나무가 열매를 맺는데 지장을 초래하는 나무입니다. 그리고 포도원의 모든 기운을 다 빨아먹습니다. 그런데도 왜 무화과나무를 포도원에 심어주셨는지 주인의 배려를 생각하면 이해할 길이 없습니다.
왜, 관상수로 쓸려고요? 무화과나무는 쭉쭉 뻗는 나무도 아니고 이상하게 옆으로 위로 자리를 얼마나 차지하는지 모릅니다. 나무에 멋도 없습니다. 그러면 땔감용으로 심었겠습니까? 땔감용을 그 귀한 포도원에 심는 어리석은 사람이 있겠습니까? 그러면 꽃을 보기 위해서 심었겠습니까? 물론 무화과나무는 그 열매가 꽃입니다. 그 열매를 보기 위해서 심었단 말입니까? 아닙니다. 그러나 그 못생긴 열매를 보기 위해서 심는 사람은 없습니다.

무화과는 열매를 따먹는 나무입니다. 무화과나무 열매가 잘 익었을 때에는 그 맛이 꿀같습니다. 그 열매 속이 당도가 아주 달고 꿀처럼 말랑말랑하게 익습니다. 껍질까지 바로 입속으로 들어갑니다. 얼마나 단지 모릅니다. 무화과는 농약을 칠 필요 없습니다. 벌레가 먹지 않는 과일입니다. 주인은 그 열매를 기대한 것입니다. 그 열매가 없다면 무화과나무는 ‘무화과’나무가 아닙니다. 그런데 본문의 무화과나무가 그렇게 나무에 열매가 없었던 것입니다.
주인은 당장 찍어버린 것이 아닙니다. 3년이나 기다려 주었습니다. 기다려주십니다. 참아주십니다. 단순히 시간만 가도록 기다려 주시는 것이 아니라 물도 주고 거름도 주고 가꾸면서 기다려 주십니다. 사랑을 부어 주시면서 기다려 주십니다. 열매 맺기 까지 . . . 참을 수 있을 데 까지 기다려 주십니다.

무화과나무는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한번도 열매를 맺지 못했지만 아직도 무화과나무가 잘리지 않고 그 포도원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끊임없이 농부는 거름을 주었습니다. 정성을 다했습니다. 그것도 삼년씩이나 열매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우리는 아마 이 무화과나무 같은 하나님의 배려,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 일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그 은혜를 늘 잊지 말고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그와 같이 하나님은 우리에게도 그렇게 . . . 멸망의 자식, 마귀의 자식을 하나님의 자녀로 . . . 종자개량을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궁전에 살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 수 있는 특권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을 먹고, 하나님의 자비를 머금고 날마다 하나님의 궁전의 문화속에서 살게 하셨습니다. 별다른 열매를 맺지 못했지만 참아 주셨습니다. 지금까지 . . . 그 하나님의 사랑을 포도원 주인의 사랑에 견주겠습니까? 그러므로 그 은혜는 보통 은혜가 아닙니다.

(찬양)지금까지 지내온 것 주의 크신 은혜라 한이 없는 주의 사랑 어찌 이루 말하랴? 자나 깨나 주의 손이 항상 살펴 주시고 모든 일을 주안에서 형통하게 하시네

우리는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 . .

2. 어떤 열매를 맺었습니까?

지난 일년동안 어떤 열매를 맺었습니까? 지난 송구영신 예배 때 여러분들, 하나님 앞에서 어떤 계획으로, 어떤 결심으로 시작을 했습니까?
그리스도인이 맺어야 할 열매가 크게 두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내적인 열매입니다. 또 하나는 외적인 열매입니다.

1) 내적인 열매는

거룩한 삶의 열매가 있어야 합니다. 베드로전서 1:16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거룩이란 말은 구별되게 살라는 말입니다. 세상과 구별되라는 것입니다.

(1) 회개의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거룩의 열매의 첫 단계는 회개의 열매입니다. 예수님은 공생애 초기에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마3:2, 4:17)고 외치셨습니다. 회개 없는 바리새인들을 독사의 새끼들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교인이 되었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회개한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는가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회개치 않고 교회 일 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만약에 그렇게 하는 경우 주의 일을 방해하는 자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의 일은 회개하고 죄 사함 받은 빚진 자들이 겸손히 순종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회개하고 일하는 사람들은 맡겨 주신 일을 감지덕지하여 감사함으로 일합니다. 그러나 회개하지 않은 사람들은 감사보다 불평이 앞섭니다. 핑계가 앞섭니다. 그런 사람들은 오히려 하나님의 일에 방해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회개의 열매가 얼마나 중요한지 아십니까? 이것은 믿음의 열매 이전에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어떤 봉사 이전에 우선되어야 하는 필수 과목인 것입니다. 이 과정을 거친 사람만이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2) 온전한 주일성수 생활의 열매입니다.
엿새 동안 열심히 일하고 하나님이 복 주시기 위해 구별해 놓으신 날을 온전히 구별하여 하나님께 예배해야 합니다. 이 날은 엿새째 되는 날과 연속된 날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따라 구별된 날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날을 ‘일요일’이 아니라 ‘주일’ 이라고 부릅니다. 여러분 시간을 구별하시기 바랍니다.

(3) 온전한 십일조 생활의 열매입니다.
성도는 물질을 구별해야 합니다. 십일조는 우리의 것을 뺏는 것이 아니라 복을 주시는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아직도 하나님의 뜻을 구별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십일조를 통해서 우리의 것을 뺏는 줄로 알고 있습니다. 어린 아이 같은 자입니다.
말라기 3:8- 십일조를 구별새서 드리는 자에게 곡간에 복을 쌓아 주시고, 황충을 금하여 너희 토지소산을 멸하지 않게 하시고, 열매가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다가 망한 사람은 역사 속에 없습니다. 미국에서 신문에 광고를 내기를 십일조를 드리다가 실패했다든지 손해를 본 사람이 있으면 신고해 달라고 했는데 한 건도 들어오지 않았다고 합니다.

(4) 말씀대로 순종하는 생활의 열매입니다.
말씀은 성도의 생활의 법도입니다. 성도가 말씀을 떠나 살면 기차가 레일을 벗어나는 것과 같습니다. 그 말씀은 성도를 복되게 하시려고 주신 방편입니다. 그렇습니다. 순종은 제사보다 낫다고 했습니다.

(5) 전도의 열매입니다.
전도는 예수님의 마지막으로 분부입니다.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믿음이 좋은 것 같은데 이 전도의 열매가 없으면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지난 한해는 태신자 전도를 통해서 많은 성도들이 전도에 동참하는 역사가 있었습니다. 내년에는 더욱 많은 열매를 기대하고 전도하시기를 바랍니다. 전도하면 자신이 교회는 부흥이 되고 부흥된 교회에 나오는 성도들의 가정도 복을 받게 될 줄 믿습니다.

(6) 성령의 열매입니다.
갈라디아서에 5장에 보면 성령의 열매가 나옵니다. 갈5:22-23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그런데 ‘오직 성령의 열매는’ 열매가 복수가 아니라 단수로 사용되었습니다. 성령의 열매에는 9가지 열매가 나오지만 실제로는 한 열매나 마찬가지입니다. 사랑, 기쁨,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 이것은 마치 한 포도송이 안에 여러개의 알맹이가 달린 것과 같습니다. 이것은 따로 따로가 아니고 하나입니다. 열리게 되면 사랑의 열매만 열리는 것 아니고 9가지가 함께 열리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의 성품을 말합니다.

이 아홉가지를 언제 다 맺는가? 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 비결은 간단합니다.
이 모든 것을 완벽하게 갖춘 인격의 대표적인 모델은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을 닮으면 되는 것입니다. 바울은 엡4:13-15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즉, 모든 일에, 모든 생각과 말과 행동이 그리스도에게까지 자라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리스도의 인격을 닮아가란 말입니다. 그리스도를 닮은 인격의 열매를 맺으라는 말입니다.

2) 사명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소금의 역할을 하지 않으면 밖에 버리워 사람들의 발에 밟히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이란 다른 사람들에게 소금이 되고 빛이 되어야 합니다. 선한 영향, 좋은 영향을 끼쳐야만 하는 것입니다. 만약 그런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면 소금은 고사하고, 빛은 고사하고 길바닥에 깔린 모래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초대교회 그리스도인들은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했습니다. 한국의 그리스도인의 비율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지만 그 영향력은 놀라웠습니다. 행24:5 “우리가 보니 이 사람은 염병이라 천하에 퍼진 유대인을 다 소요케 하는 자요 나사렛 이단의 괴수라” 한 사람의 그리스도인의 영향력이 커서 전염병이 온 동네를 다 휩쓰는 것 같은 힘을 발휘했던 것입니다. 행17:6은 “천하를 어지럽게 하던 이 사람들”이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명심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우리가 세상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면 우리가 세상의 영향을 받게 된다는 것 말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그리스도인들 때문에 땅만 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가 부흥하고 각 기관이 부흥해야 하는 사명이 있습니다. 그 길은 기도의 불을 끄지 않는 것입니다. 새벽마다 기도하는 일 저녁마다 기도의 성도들이 줄을 잇는 일입니다.

3. 또 한번의 기회를 주소서

본문의 무화과나무는 열매를 맺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무화과나무는 살아 있습니다. 찍혀지지 않았습니다. 포도원지기가 1년만 더 기다려 달라고 애원했기 때문입니다. 이제 이 무화과나무의 운명은 1년 동안 포도원지기가 얼마나 잘 돌보는 하는 것에 달려 있고, 얼마나 나무의 사명을 다 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우리의 이야기입니다. 열매없이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 이제 더 이상 기회가 없는 우리에게 예수님은 애원하십니다. ‘아버지 제가 십자가를 대신 질 테니 저들이 믿을 수 있는 기회를 주십시오. 저들을 변화시키겠으니 1년만 참아 주소서. . .’ 예수님이 그 십자가로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길을 마련하셨습니다.

또 다시 1년의 생명을 연장 받은 우리들입니다. 우리는 셋방살이 하는 사람들이 2년마다 한번씩 주인과 재계약을 합니다. 요즘은 전세값이 점점 오릅니다. 2년이 돌아오는 것이 두렵습니다. 우리는 이런 셋방을 계약하는 마음으로 살아야 할 것입니다. 해마다 . . .
우리는 신용불량자가 신용회복을 위해 목숨을 거는 마음을 가져야 할 줄로 믿습니다. 사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신용 불량자이거든요.
“이것이 마지막 기회이다.”라고 생각하며 살아가는 사람은 이전에 맺지 못했던 열매를 반드시 맺게 될 줄 확신합니다.
앞으로 5일이 지나면 2005년을 다시 맞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기회를 주십니다. 일할 기회를 주시고 땀흘릴 기회를 주십니다. 봉사할 기회를 주시고 충성할 기회를 주십니다. 기회를 선용하는 성도들이 됩시다. 모든 일에 때가 있고 기회가 있습니다. 기회는 언제나 주어지지 않습니다. 아직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는 힘을 주셨을 때 주님 위하여 힘쓰시기 바랍니다. 일 할 수없는 밤이 속히 올 수 있습니다.

4. 열매를 맺지 않으면

열매맺지 않으면 땅만 버리게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성경에 “한해만 참아주소서 구덩이를 파고 거름을 주고 정성을 다해보겠습니다. 그렇게 하고도 열매가 맺히지 않으면 그때 찍어버리십시요” . . . 그렇게 유예기간을 줬는데도 열매를 맺지 않으면 이제 남은 것은 찍어버린다는 것입니다. 기회를 상실한다는 것입니다.

엘리 제사장의 가문에 하나님 앞에 열매를 맺지 못하니까 하나님의 영광이 떠나버리셨던 것입니다. 삼상4:21 “이가봇”이라 하여 "하나님의 영광이 떠났다"는 무서운 말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의 삶에 하나님의 도우심이, 하나님의 영광이 떠나버리면 그것은 바로 끝입니다. 계시록2: 보면 에베소 교회가 회개치 아니하면 촛대를 옮기겠다고 경고했습니다(계2:5). 축복의 촛대를 옮겨 버립니다.
이제 5일이 남았습니다. 하나님의 경고장이 날아 왔습니다. 남은 인생 적당히 살아서 되겠습니까? 조건부로 일년의 생명을 연장 받은 것입니다. 신앙생활에 새로운 결단과 각오를 가져야 할 줄 믿습니다.

러시아의 문호 도스토엡스키는 그가 스물여덟 살 때에 사형 선고를 받은 일이 있었습니다. 영하 50℃나 되는 추운 겨울날, 그는 형장으로 끌려갑니다. 형장에는 기둥이 세워져 있었고 한 기둥에 세 사람씩 묶었는데 그는 세 번째 기둥의 가운데에 묶였습니다.
사형 집행 예정 시간을 생각하면서 시계를 보니 자신이 이 땅 위에 살아 있을 수 있는 시간이 5분이 남아 있었습니다. 28년간을 살아왔지만 이렇게 단 5분이 금쪽 같이 생각되어지기는 처음이었습니다. 그는 이제 5분밖에 남지 않은 생명을 어디에다 쓸까 하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형장에 같이 끌려온 아는 사람에게 마지막 인사를 한마디씩 하는데 2분, 오늘까지 살아온 생활과 생각을 정리해 보는데 2분, 남은 1분은 오늘까지 내가 살아온 땅과 눈으로 볼 수 있는 대 자연을 마지막 한 번 둘러보는데 쓰기로 생각하였습니다.
이렇게 생각하면서 눈물이 고인 눈으로 옆에 묶여 있는 두 사람에게 최후의 키스를 하고, 남은 가족을 잠깐 생각하고 나니 벌써 2분이 지나버렸습니다. 이제 자신에 대하여 생각하는데 문득 3분 후에 어디로 갈 것인가 하는 생각이 나면서 눈앞이 캄캄해 지고 아찔해졌습니다.
28년간이라는 세월을 한 순간 한 순간 아껴 쓰지 못한 것이 후회가 되었습니다. 이제 다시 한 번 살 수만 있다면 순간마다 값있게 쓰고 싶었으나 돌이킬 수 없는 순간입니다.
그때 탄환을 총에 장탄하는 소리가 철커덕 났습니다. 죽음의 공포가 밀려왔습니다. 바로 그 때 떠들썩한 소리가 나더니 한 병사가 흰 손수건을 흔들면서 달려오고 있었습니다. 황제의 특사령을 가지고 왔던 것입니다. 그래서 도스토에프스키는 그곳에서 풀려나와 시베리아 유배 생활을 하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마지막 5분 동안의 시간을 절실하게 생각했던 그 때를 생각하며 시간을 금쪽같이 소중하게 아끼면서 살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때 그 이후로 세상을 떠나면 어디로 갈 것인가를 한 순간도 뇌리에서 떨쳐본 적이 없었다고 합니다.

성도 여러분 이제 하나님이 주시는 조건부 일년을 어떻게 사시겠습니까?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