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새로운 출발을 위하여 (마 25:14-30)

  • 잡초 잡초
  • 244
  • 0

첨부 1


- 설교 : 유상현 목사

체코슬로바키아에『프란쯔 카프카』라고 하는 유명한 유대인 작가가 있었습니다.

그의 작품 가운데, 문 밖에서 일생 동안 문이 열리기를 가다리다가 죽은 사람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 사람은 문지기가 서 있는 문 앞에서 어떡하든지 이 문안에 들어가려고 일생 동안 애를 씁니다. 어떻게 하면 저 문지기를 피해서 문안으로 들어갈 수 있을까 하고 애를 쓰다가 끝내 그 문 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문 밖에서 죽어 가게 됩니다.

그는 죽어 가면서 그 문지기에게 말하기를 “왜 당신은 나를 그 문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도록 그토록 문을 이렇게 지키고 있는 것입니까?”라고 묻습니다.

그때 문지기는 정색을 하면서 하는 말이 “아닙니다. 이 문은 당신을 위한 문입니다. 당신을 돕기 위해서 내가 여기 서 있습니다.”라고 합니다.

그 사람은 다시 묻기를 “그런데 왜 당신은 내가 들어가려는 문 앞에 막아 서 있습니까?”라고 하자 문지기가 대답하기를 “아닙니다. 당신을 위해서 즐거운 마음으로 문을 열어 드리기 위해서 여기서 서 있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한 번도 이 문을 열어 달라고 요청한 일이 없었습니다.”라고 합니다.

그는 문 밖에서 문에 들어오려는 것처럼 보였지만 한 번도 문을 열어 달라고 요청하지도 못하고 그 문 앞에서 죽어 갔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 앞에는 기회의 문이 열려져 있습니다. 축복의 문이 있는데 한 번도 열어 보려고 하지도 아니하고 그 문 앞에서 서성거리며 주저 하다가 성공의 때를 놓치고, 축복의 때를 상실하고 삶을 소모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기도에 대한 말을 많이 들어서 잘 알고 있기에 기도해야겠다고 말은 많이 하면서도 기도한 번 진실하게, 그리고 간절하게 하지 못하고 살고 있지 않습니까?

말씀의 능력과 위대함을 알면서도 성경 한번 읽어보지 못하고 한 해를 보내고 있지는 않습니까?

오늘 봉독한 본문의 내용은 달란트 비유입니다.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가면서 종들에게 능력에 따라서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한 달란트씩 각각 맡겼습니다.

그리고 오랜 후에 돌아와서 계산을 하는데 다섯 달란트 받았던 종은 열심히 일을 해서 다섯 달란트의 이득을 남겨 주인 앞에 내 놓았습니다. 두 달란트 받았던 종도 두 달란트의 이득을 주인 앞에 내 놓았습니다. 그 때 주인은 기뻐하면서“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 할지어다.”라고 하며 칭찬했습니다. 그러나 한 달란트 받았던 종은 그 한 달란트를 땅 속에 묻어 두었다가 한 달란트를 가지고 와서 하는 말이“당신의 것을 가지고 왔습니다. 두려워서 이 돈을 땅 속에 묻어 두었다가 가지고 왔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 때 주인은 그 한 달란트 받았던 종을 책망하시면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종에게 주시면서“이 무익한 종은 바깥 어두운 데로 내어 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고 했습니다.

이 비유는 달란트의 양의 문제, 값의 문제가 아니라 주어진 기회와 시간을 선용하는 것에 대한 교훈입니다. 얼마나 이득을 남겼느냐 하는 그것보다도 주어진 기회와 시간을 어떻게 활용했느냐? 어떻게 선용했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우리는 지금 2004년이라는 년 호의 종착역에 도착할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시간”이란 말에 대하여 헬라어에서는 두 가지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크로노스(Χρόνος)라는 말입니다.

크로노스(Χρόνος)란 흐르는 시간을 의미합니다. 연대로 보는 시간관념입니다. 1년이 지나고 2년이 되고, 3년이 되었다고 하는 것은 모두 크로노스(Χρόνος)의 시간 개념입니다.

둘째는 카이로스(Καιρός)라는 말입니다.

카이로스(Καιρός)란 순간순간의 질적인 시간을 의미합니다. 의미 있는 시간, 가치 있는 시간, 보람있는 시간, 기쁨의 시간, 감격의 시간은 모두 카이로스(Καιρός)의 시간 개념입니다. 때문에“하나님의 집에서의 하루가 세상의 천 날보다 낫다.”고 하는 말은 세상의 천 날보다도 성전에서의 하루 곧, 카이로스의 시간은 크로노스의 시간 천년을 지내는 것보다도 더 값있고 의미 있는 시간이라는 말입니다.

성도의 삶은 얼마나 오랜 시간을 살았느냐 하는 것보다 얼마나 값있고 의미 있는 순간순간을 보냈느냐 하는 것입니다.

한 달란트 받았던 종은 크로노스(Χρόνος)의 시간을 카이로스(Καιρός)의 시간으로 바꾸지 못했기 때문에 책망을 받았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한해를 결산하고 대망의 한해를 맞이해야 할 중요한 시점에 서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2004년 송년주일에“새로운 출발을 위하여”라는 제목의 설교를 통하여 저와 여러분의 신앙을 점검하는 시간을 갖기 원합니다.

본문에 나타난“어떤 사람”은 그리스도 자신을 의미하고, “그 종들”은 성도들을 의미합니다. 그리고“달란트”는 재능, 은사, 직분을 의미합니다. “오랜 후에 그 종들의 주인이 돌아왔다.”고 함은 주의 재림을 뜻합니다. “저희와 계산함”은 행위에 대한 심판 곧 계산(결산)을 의미합니다.

우리도 이 시간에 받은 은혜를 계산하고, 받은 축복을 계산하며, 받은 은사와 직분에 대하여 계산을 해야 함은 새로운 출발을 하기 위함입니다.

1. 새로운 출발을 위하여 받은 것을 계산해야 합니다.

본문 20절에“다섯 달란트 받았던 자는… 와서 가로되 주여 내게 다섯 달란트를 주셨는데…”라고 했습니다. 22절에도“두 달란트 받았던 자도 와서 가로되 주여 내게 두 달란트를 주셨는데…”라고 했습니다. 24절에도“한 달란트 받았던 자”라고 했습니다.

여기서“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한 달란트”는 주인이 타국으로 떠나면서 종들에게 맡긴 원금을 뜻합니다. 이들은 모두 주인으로부터 각각 재능대로“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한 달란트”를 받은 바 있습니다(15절).

그러므로 그 원금은 모두 주인의 것입니다(14절). 때문에 계산을 할 때에는 그 받은 것을 표준 하여 계산해야 합니다. 아무 것도 받지 못한 사람은 없습니다. 모두 각각 그 재능대로 받았습니다. 그 받은 내용은 다르지만 받지 못한 사람은 없습니다. 그 받은 것을 계산해야 합니다. 내가 주께로 부터 받은 것이 무엇이었는지 부터 계산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나의 것이 아니라 우리 인생의 주인되신 주님께서 우리에게 맡겨 놓은 주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리가 그렇게 해야 함은 2005년이라는 새로운 년 호를 받아 새로운 출발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2. 새로운 출발을 위하여 장사한 것을 계산해야 합니다.

본문 16절에“다섯 달란트 받은 자는 바로 가서 그것으로 장사하여”라고 했습니다. 17절에도“두 달란트 받은 자도 그 같이 하여”라고 했습니다.

주인께로 부터 받은 원금을 장사 밑천으로 삼아 바로 가서 그것으로 장사했습니다. 이것은 원금에 대한 선용입니다. 그것은 각각 장사하기에 충분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장사하기에 충분한 시간과 환경이 주어졌습니다. 그러므로 그 장사한 것을 계산해야 합니다. 그런데 한 달란트 받았던 종은 그 달란트로 장사하지 아니하고 땅에 묻어 두었으니 계산할 것이 없었습니다.

혹시 받은 달란트를 땅에 묻어 놓고 장사하지 아니하는 분이 계십니까? 받은 달란트를 선용하지 않고 묻어 두고 계시지는 않습니까? 캐내어 장사해야 합니다. 선용해야 합니다. 계산 할 때가 다가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육신의 일이든지, 영적인 일이든지 내게 있는 것을 잘 선용하면 됩니다. 주님은 최고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최선을 요구하십니다. 때문에 주님은 몇 달란트를 받았느냐? 고 묻기보다는 어떻게 장사했느냐? 를 묻고 계십니다. 아직도 기회의 문, 축복의 문은 열려 있습니다. 부지런히 장사하여 장사한 것을 계산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새로운 출발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3. 새로운 출발을 위하여 남긴 것을 계산해야 합니다.

본문 16절에“다섯 달란트를 남기고”했습니다. 17절에도“두 달란트 받은 자도 그 같이하여 두 달란트를 남겼으되…”라고 했습니다. 또 20절에“다섯 달란트 받았던 자는 다섯 달란트를 더 가지고 와서 가로되 주여 내게 다섯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다섯 달란트를 남겼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여기서“남겼다.”는 말은 장사의 결과 계산된 이익을 뜻합니다. 얼마를 남겼든지 남긴 것을 가지고 와서 계산을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 남긴 것을 기준으로 하여 상급이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그 주인은 다섯 달란트 남긴 자와 두 달란트 남긴 자에게 동일한 말씀으로 위로하고 축복하십니다.

본문 21절과 23절에“…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라고 했습니다.

받은 것 가지고 충성하면 됩니다. 주님이 맡긴 것 가지고 충성하면 칭찬과 위로를 받습니다. 작은 것 가지고 충성하면 많은 것 주십니다. 풍족해 집니다. 어렵지만 감당하면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하게 됩니다.

영국의 신학자 토마스 아담스(Thomas Adams)는 “재능이 많은 사람이 그 재능대로 일하지 않으면 그에 대한 죄도 크다”라고 했습니다. 능력 있는 사람이 능력을 발휘하지 않고, 실력 있는 사람이 실력대로 하지 않고, 공부 잘할 수 있는 학생이 공부를 안하여 겨우 낙제만 면한다면 그것도 죄가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재능을 최대한 발휘하여 거기에 대한 평가를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미국의 리더십 권위자인 스티븐 코비 박사가 전 세계의 성자들, 위인들, 성공한 사람들, 또 존경받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 세 가지 공통점을 발견했는데, 그 중의 첫 번째가 자기의 맡은 일에 최선을 다했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마지막에 가서 승리하고, 존경받는 인물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받은 것에 대하여 불만족해하고, 주신 것에 대하여 과소평가하고 장사하지 아니하여 남긴 것이 없는 자에게는 무서운 책망이 따릅니다. 있는 그것마저도 빼앗깁니다. 그는 악하고 게으른 종입니다. 그는 주인을 오해한 자입니다. 그는 무익한 종입니다. 그는 바깥 어두운데 내어 쫓겨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될 것입니다.

어느 대학교 직업 상담소에서 “실패자가 되는 10가지 지름길”이라는 재미있는 글을 발표했습니다.

1. 난 틀렸다고 늘 넋두리를 하라.

2. 자기 자신을 무능한 사람이라고 항상 비난하라.

3. 모든 일에 불평거리를 찾아라.

4. 날마다 없는 것과 부족한 것만 찾아라.

5. 자신이나 다른 사람의 단점을 부지런히 살펴라.

6. 조금만 어렵거나 힘들면 빨리 포기하라.

7. 안 되는 일이 있으면 더 이상 하려고 하지 마라.

8. 쉽게 포기해 버리고 적당히 변명하라.

9. 얼굴은 항상 용기 없고 낙심된 모습을 보여라.

10. 한 번 실패하면 이젠 끝장이라고 믿어라.

그러면 당신은 반드시 실패자가 될 것이다.

뭐든지 쉽게 포기하는 사람, 언어생활이 늘 부정적인 사람, 작은 일에도 쉽게 낙심하는 사람, 이런 사람은 늘 실패의 삶을 살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 때로는 인생길에 바람이 불고 눈보라가 쳐 올 때도 낙심하지 않고 용기를 가지고 도전하는 사람은 승리의 삶을 살게 됩니다.

자신의 삶에 대하여 늘 비관적이고, 부정적이며, 소극적인 사람은 악한 사람입니다. 그 사람은 절대로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없습니다. 교회 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의 직분에 대하여 늘 불평하고 과소평가하며, 지도자에 대하여 원망과 험담을 일삼고 비판적이며 부정적 사고를 가진 사람은 악한 종입니다. 충성된 사람, 착한 사람은 원망할 시간이 없습니다. 불평할 시간이 없습니다. 신세타령할 시간이 없습니다. 그저 감사하며 죽도록 충성합니다. 기쁨으로 나아가 장사하기에 바쁩니다. 언제 오실지 모르는 주인에게 내어놓을 이윤을 남기는데 최선을 다 할 뿐입니다. 한 해 동안 남긴 것은 계산하고 새로운 출발을 해야 합니다.

미국의 남부 지방의 한 가난한 마을의 작은 교회에서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교회는 낡아 지붕에서 비가 새고, 깨어진 창문에서는 바람 소리가 요란했지만, 재정이 어려워서 수리할 엄두도 못 내고 있는 형편이었습니다.

당연히 제직회 회계를 그 누구도 맡으려 들지 않았습니다. 연말이 되어 억지로 한 집사님에게 그 직을 맡겼습니다. 회계를 맡은 집사님은 다음해 연말 결산 전까지는 회계 보고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조건을 붙여 재정부 회계직을 수락했습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그가 교회 살림을 맡은 뒤로는 눈에 띄도록 재정이 넉넉해져서 예배당 수리는 물론 모든 기관의 행사들이 계획한 대로 잘 진행되어갔습니다.

연말이 되어 재정 보고를 하는 자리에서, 그는 먼저 모든 성도들이 올 한 해 동안 십일조를 빠짐없이 잘 드려서 재정이 넉넉하게 된 것을 감사 했습니다.

그러나 실상은 대부분의 교인들이 십일조를 드리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어떤 교인이 구체적으로 회계 보고를 해달라고 요청을 하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저는 목화로 솜을 만드는 제면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올해에는 우리 교인들이 목화솜을 타러 오면, 저는 여러분이 가지고 온 목화 뭉치 중에서 십분의 일을 떼고 나머지 면을 타 주었습니다. 그러니까 그 떼어놓은 십분의 일은 십일조 헌금이 되어 교회의 재정에 들어간 것입니다. 감사합니다.”라고 보고하여 하나님께는 영광을 돌리고 성도들에게는 박수를 받았으며, 교회는 큰 유익을 주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숙명여자대학교의 총장이신 이경숙 박사가 1994년 숙대의 총장으로 취임했을 때, 친구들에게 “당신 불쌍해서 어떻해?” 라고 하는 말을 들을 정도로 그 당시 숙대는 엄청난 위기에 처해 있었다고 합니다. 숙대의 땅은 본래 고종황제가 하사한 것인데 해방 후에 토지 정리를 해 놓지 않아 국유지로 묶여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고종이 하사한 땅문서를 손에 쥐고도 수억 원의 임대료와 벌금까지 쌓여 있었던 것입니다. 이 총장은 취임하자마자 땅 문제를 풀 수 있는 방법을 찾아서 아침 7시부터 밤 10시까지 공무원과 담당자들을 찾아다녔지만 몇 개월이 지나도 문제는 풀리지 않고, 몸은 더 이상 지탱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때, 갈 곳은 기도실뿐이었습니다. 기도실에 가서 얼마나 울며 기도했는지 얼마쯤 지나서 희미한 주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그러면서 “네가 언제 나에게 일할 기회를 주었느냐? 너 혼자 뛰어다니고 너 혼자 다 하지 않았느냐?” 그때 이 총장은 중요한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먼저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고 그 음성에 따라 사람도 만나고 움직여야 했었는데, 순서가 바뀐 것이었습니다. 자신이 먼저 해 놓고 주님보고 따라오라고 손짓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진심으로 회개하고 이렇게 기도했다고 합니다. “하나님, 능력도 체력도 부족해서 저는 기권입니다. 보잘것없지만 제 자신을 산 제물로 드립니다. 하나님께서 숙대의 주인이 되어주십시오.” 그날 이후 숙대의 총장은 하나님이라고 믿고 자신은 심부름하는 청지기가 되기로 작정을 했습니다. 그리고 기도하지 않으면 학교 일을 하지 않겠다고 마음먹고 기도부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이 사람 왜 왔느냐?”는 듯 무시하던 공무원들과 담당자들의 태도가 달라진 것입니다. 결국 그해 12월 31일 땅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제 2의 창학을 선언한 이후에, 기독교 학교가 아닌 일반 대학 정문에 여호수아 1장 9절의 말씀을 새겨 넣게 하셨고, 숙대 역사상 최고 모금액이 2억 원에 그쳤던 것이, 1995년도에 64억이 작정되어 거의 모두가 동참하여 그 동안 11개의 새로운 건물이 완공되고, 4개의 건물이 더 지어지고 있는데, 건물이 지어질 때마다 모자람 없이 건축 대금을 치를 수 있도록 하나님의 선하신 손이 도와 주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건물이 준공될 때마다 헌당 예배를 꼭 드리는 가운데 학교를 크게 성장시켰다고 합니다. 그 분은 지금도 매일 새벽 4시 30분이면 일어나 새벽기도를 나가 학교와 학생들을 위해 기도를 쉬지 않았다고 합니다.

2004년이라는 연호는 저와 여러분의 생애에 또 다시 오지 않습니다. 때문에 2005년을 맞이하여 새로운 출발을 하기 위하여 개인의 삶을 계산하고, 가정의 삶을 계산하며, 교회에서의 신앙과 직분을 계산해야 합니다.

주님께로부터 받은 원금을 표준 하여 장사한 것을 계산하고, 장사하여 남긴 것을 계산해야 합니다. 계산의 결과 악하고 게으른 종이 아니라 착하고 충성된 종, 더 많은 것을 맡아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하는 종이라는 칭찬을 받게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아  멘 -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