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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신년]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시 12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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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박재신 목사
 
  2005년 새해 첫 주가 되었습니다. 오늘도 주님의 말씀이 들려지기를 바랍니다. 한 해를 살아갈 은혜의 말씀이 여러분의 마음에 들려지기를 바랍니다.
  시편 121편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기 위해 성전으로 올라가며 불렀던 노래 중에 하나입니다. 이 시는 누가 썼는지 알려지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 포로 생활에서 해방되어 본국 유다로 돌아올 때 쓰여 졌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즉 험난한 여행 중에 무사히 예루살렘에 도착하여 멀고 험한 길을 무사하게 인도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부른 노래입니다. 

  이 시는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라는 질문으로 시작합니다.
  이 질문은 우리 모두의 질문입니다.
  인생이 살아가는 동안 진정한 도움이 어디에서 올까요?

  사람들은 인생이 자신의 도움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선배를 찾고 스승을 찾습니다. 때로는 이웃을 향하여 도움을 구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진정한 도움은 이 세상에서 오지 않습니다. 성경은 사 2:22절에서 “너희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그의 호흡은 코에 있나니 수에 칠 가치가 어디 있느뇨” 라고 했습니다.
  아무리 힘 있고 권세 있어서 나를 도와줄 수있을 것 같아 보여서 내가 그 사람을 의지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그 사람의 그 코를 막으시면 그의 힘이 어디에서 나오겠습니까? 그래서 수에 칠 가치도 없는 존재가 인생이기 때문에 그것을 의지하지 말라고 한 것입니다.

  술에 만취한 사람이 가로등 밑에서 열심히 무엇인가를 찾고 있었습니다.
  마침 길을 지나가던 사람이 “무엇을 잃어버렸기에 그렇게 열심히 찾고 있습니까?” 라고 물었습니다.
  “지갑을 잃어버렸습니다.” 술 취한 사람이 대답하였습니다.
  “여기서 잃어버렸습니까?” 라고 묻자 그는 “아니 저쪽입니다.”
  “그럼 왜 여기서 찾고 계십니까?” 라고 의아하게 물었습니다. 그러자 술 취한 그 사람이 대답하였습니다.
  “그곳은 가로등이 없어서 깜깜하지 않습니까? 환한데서 찾아야 찾을 수가 있지 않겠습니까?” 하더랍니다.
  남의 얘기 아닙니다. 우리에게 참된 도움이 어디에서 오는지 모르고 살면 그것이 술 취한 사람 꼴이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진정 우리의 도움은 어디에서 올까요?
  시인은 자신이 던진 질문에 대하여 또 스스로 대답합니다.
  2절에 보면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라고 말입니다. 이것은 시인 자신이 겪은 인생 행로에서 깨달은 중요한 사실인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깨닫는 다는 것은 복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묵상하고 하나님께 기도하면 인생의 진정한 도움이 바로 하나님에게서 공급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러한 사실을 깨닫지 못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무시하고 박대하며 살아갑니다. 그러한 결과가 자신의 영원한 운명에 얼마나 엄청난 불행을 같다 줄지도 모른 채 말입니다.

  어떤 사람이 S대 법대를 졸업하고 일찍 미국에 들어가 명성도 얻고 돈도 많이 벌어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그런데 60세에 말기 암으로 자리에 눕게 되었습니다. 사회적인 지위가 있으므로 많은 사람이 문병을 왔는데 하나같이 그에게 “힘을 내십시오”라고 했습니다. 이런 소식을 전해들은 목사님은 그를 찾아가 “힘의 도우심을 받으십시오”라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그가 무슨 뜻이냐고 물었습니다.
  목사님은 그에게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한 구원에 관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분은 예수님을 영접했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 분은 후일 이런 간증을 했습니다.
  “모두가 다 나에게 ‘힘을 내라’고 하는데 내가 어떻게 이 몸으로 힘을 낼 수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목사님만 내게 ‘힘의 도움을 받으라’고 하셨습니다. 그것은 나에게 가장 기쁘고 힘이 되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힘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리석은 사람들은 마음에 하나님이 없다고 장담하면서 계속 악을 행하고 세상만 의지하고 세상에서 도움을 구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들은 비록 악한 자들이 잘되고 성공하는 것을 보더라도 그것이 참된 행복이 아니며 진정한 행복과 도움은 하나님에게서 라는 사실을 깨닫고 믿습니다. 

  어떤 무신론자가 길에서 큰소리로 외쳤습니다.
  “이 세상에 하나님은 없습니다. 만약 있다면 내 손에 장을 지지겠습니다.  만약 하나님이 있다면 벼락을 치던지 바윗돌을 떨어뜨리던지 해서 당장 나를 죽여 보십시오.”  그러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벼락도 치지 않았고 바윗돌도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 사람은 더 의기양양해서 둘러선 사람들에게 “자 보십시오. 하나님은 없습니다” 라며 떠들었습니다. 그때 조용히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할머니 한 분이 그 사람 곁으로 다가갔습니다.
  “여보슈 젊은이!”
  “왜 그러세유 할머니”
  “댁은 아들이 있수”
  “그럼요 아들이 있죠”
  “그러면 댁은 아들이 당장 죽여 달라고 바락 바락 악을 쓰며 소리치면 당장 죽이겠소? 하나님도 마찬가지요 하나님이 어떻게 벼락을 치고 바윗돌을 떨어트려 아들을 죽일 수 있겠소”
  무신론자는 더 이상 할말을 잃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이 무신론자처럼 하나님이 없다고 외친다고 해서 안 계신 하나님이 아닙니다. 오늘도 살아계셔서 역사하시고 성도들을 도우시는 분이십니다.

  1. 왜 하나님이 우리의 진정한 도움이십니까?

  시인은 왜 하나님만이 우리의 진정한 도움이신가에 대해서 말합니다.
  그는 천지를 지으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어떤 분으로 인식하는가하는 문제는 대단히 중요합니다. 이 세상에는 신으로 호칭되어지는 헛된 신들이 많습니다. 그들은 창조주가 아닙니다.
  오직 창조주만이 인생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성경은 가장 앞절에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지으셨다는 선언으로 시작합니다. 그분은 천지를 지으신 분이시기에 완벽하게 우리를 도우실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자동차를 몰고 가다가 고장이 났습니다.
  그는 고쳐 보려고 엔진 뚜껑을 열고 이리저리 살폈지만 도무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얼마 후 지나가던 차 한 대가 멈추어서 서더니 노신사가 한 분이 내려왔습니다. 그는 “젊은이 그 차를 내가 좀 도와주겠네” 라고 말하고 엔진을 살폈습니다. 단번에 아주 작은 고장이 있는 것을 발견하고 아주 간단히 차를 고쳐주었습니다.
  알고 보니 그 노신사는 그 차를 설계하고 제작한 자동차 공장의 사장이었습니다. 자신이 설계하고 만들었기에 운전수를 도울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우주와 인간의 설계자이시고 제작자이십니다. 그러기에 인간의 문제를 가장 잘 아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아실 뿐 아니라 그것을 교정하고 수리하실 수 있는 능력을 소유하고 계신 것입니다.

  우주 만물을 지으시고 만드신 자만이 사람들을 도우실 수 있는 분입니다. 우상과 헛된 신은 인간의 도움이 될 수 없습니다. 왜냐면 그들은 우주를 창조하거나 인간을 지은 참신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렘 10:10-11절에서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오직 여호와는 참 하나님이시요 사시는 하나님이시요 영원한 왕이시라 그 진노하심에 땅이 진동하며 그 분노하심을 열방이 능히 당치 못하느니라 너희는 이같이 그들에게 이르기를 천지를 짓지 아니한 신들은 땅 위에서, 이 하늘 아래서 망하리라 하라”
 
  2. 어떻게 우리를 도우실까요?

  ① 진치고 도우십니다.
  돕는 다는 원어는 『아자르』 라는 말입니다. 뜻은 “둘러싸다”입니다. 단순히 부축하고 거들어주는 정도가 아닙니다. 완전히 빙 둘러 진치고 완벽하게 보호해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 34:7절에 보면 “여호와의 사자가 주를 경외하는 자를 둘러 진치고 저희를 건지시는 도다” 라고 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본 장에서는 1-8절까지 하나님이 지켜준다는 말이 6번이나 반복적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여기서 지키시는 이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솨마르』 인데 “가시로 울타리를 치다” “보초를 서다” 라는 뜻이 있는 단어입니다. 외부로부터 공격을 막기 위해 가시로 울타리를 치고 보초가 경계를 서듯 세심하고 완벽하게 주의를 기울여 보호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를 완벽하게 둘러 진치고 보호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② 쉬지 않고 도우십니다.
  3-4절에 보면 “너로 실족지 않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자가 졸지 아니하시리로다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자는 졸지도 주무시지도 안니하시로다” 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저는 이 구절을 읽으면서 “하나님은 24시간 풀타임으로 근무하신다” 라고 생각했습니다. 우리가 잠들었을 때도, 하나님은 일하시고 우리가 졸고 있을 때도 하나님은 깨어 계십니다.
  한 순간의 방심이나 실수도 없으시며 완벽하게 우리를 보호하시는 분이십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보호는 우리가 수고의 날개를 접고 하늘에 휴식을 얻을 때까지 중단 없이 계속될 것입니다.
 
  ③ 그늘 되어 도우십니다.
  5절에 보면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자라 네 우편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라고 하였습니다. 낮의 해와 밤의 달로부터 그늘이 되어 우리를 지켜주시는 분이십니다.
  열대 사막 지방의 한낮 뜨거운 태양 열기는 모든 물 근원을 마르게 하고 일사병을 일으키는 살인적인 것입니다.
  왕하 4:18-19절에 보면 엘리사를 공궤하였던 수넴여인의 아들이 아버지의 곡식 베는 들에 나갔다가 갑자기 “내 머리야 내 머리야” 하면서 괴로워하다가 죽는 장면이 나옵니다. 성경학자들은 이 아이의 사망원인을 뜨거운 태양 빛에 노출되어 발생한 일사병일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밤의 달도 인체에 여러 가지 영향을 미친다는 설이 있습니다.
  팔레스틴 지역의 생활을 연구하는 학자들의 말에 의하면 열대 사막 지방의 노천에서 달빛을 맞으면서 잠을 잔 사람의 경우 일어나면 현기증을 느끼고 심하면 정신이상 또는 사망에 이르는 병에 걸리기 쉽다는 것입니다.
  정신 이상자를 영어에서 루네틱스(Lunatics)라고 하는 데 영어 사전에 보면  “달빛의 영향을 받은 뜻에서 미치광이” 라고 한다고 설명되어있습니다.
  어짿든 인간은 태양이 빛나는 낮이든 달이 비치는 밤이든 언제나 온갖 위험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인간이 만날 수 있는 모든 낮과 밤의 위험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해시는 그늘이 되신다는 것입니다.
 
  3. 우리의 무엇을 도우십니까?

  ① 발걸음을 도와주십니다. 
  3절에 보면 “너로 실족지 않게 하시며....” 라고 했습니다.  실족이란 말은 발이 미끄러져서 넘어지거나 다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두 가지 의미에서 생각할 수 있습니다.

  1) 발목에 힘을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행 3:7절에 보면 베드로가 성전미문의 앉은뱅이에게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고 명한 후에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었고 일어나 뛰고 걸으며 하나님을 찬미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2) 인생길의 걸음을 붙드신 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인생길에서 미끄러져 실족한 사람들은 봅니다. 좌절하고 낙심하며 자포자기하고 사는 사람들 말입니다. 그러한 자들에게 힘을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육신의 발목이든 인생길의 발걸음이든 하나님은 우리에게 힘주시기를 원하시는 분이십니다. 시66:9절에 보면 하나님은 “우리의 실족함을 허락지 아니하시는 주시로다” 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잠언 3:26절에서도 “대저 여호와는 네 발을 지켜 걸리지 않게 하시리라”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오늘의 여러분의 발걸음을 도우시기를 원하십니다.

  ② 영혼을 도우십니다. 
  7절 마지막 부분에 보면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 라고 했습니다.
  영혼은 우리 인간의 실체입니다. 육체는 잠시 존재하는 영혼의 집입니다. 영혼이 건강해야 정말 건강한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에도 영혼은 육체보다 훨씬 우위에 존재하는 것으로 표현하셨습니다.
  몸만 죽이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 마10:28절에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궁극적으로 우리의 영혼을 귀중히 보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혼을 지켜 주십니다.

  ③ 일들을 도우십니다.
  8절에서 “너의 출입을 ....지켜주신다고 했습니다.
  출입이란 말은 히브리인들이 공무수행을 말하는 말입니다. 직역하면 너의 들어오는 것과 나가는 것인데 한 인간이 이 땅에서 살아가는 모든 삶과 하는 모든 일들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로마 시대에 [헤릿그스]란 성도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박해자들에게 쫓겨 도망치다가 다급한 나머지 옆에 보이는 작은 동굴에 들어가 숨어서 기도하였습니다.  그때 거미가 나와 굴 입구에 줄을 치기 시작했습니다. 거미줄이 다 되어 갈 무렵에 악인들이 나타나 굴속을 수색하려고 하다가 거미줄을 보더니 "여긴 없어"하면서 지나가 버리더란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거미줄도 철장 보다 더 강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산이 많아서 차를 타고 여행을 하다보면 산맥을 뚫어 만든 터널을 지날 때가 있습니다. 지금은 거의 터널마다 조명등을 설치하여 환하게 밝혀놓았지만 예전에는 터널 안이 어두워서 자동차의 전조등을 켜지 않으면 어두워서 앞을 분간하지 못하는 곳이 많았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아무리 길고 어두운 터널이라 하더라도 끝이 있다는 것입니다. 잠시만 참고 달리다 보면 환한 빛이 보입니다.
  어쩌면 우리가 살며 걸어가는 인생길이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떤 사람은 짧은 터널을 지납니다. 어떤 사람은 아주 길고 끝없는 터널을 지나기도 합니다. 또 어떤 이는 불빛이 환히 밝혀진 터널을 어려움 없이 지나기도 합니다. 그런데 어떤 이는 아주 캄캄하고 절망적인 터널을 외롭게 혼자서 걸어가는 이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아무리 어렵고 힘든 인생의 터널에서도 누구와 함께하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주님은 “나는 길이요” 라고 하셨습니다. 친히 나의 발아래 있는 길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주님은 “길의 끝에서 나를 만나리라” 하지 않으시고 친히 길이 되어서 함께 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길에서 홀로 인 것 같으나 길 되신 그분과 함께 있는 것입니다.
  덧없이 흘러가는 시간에다가 매듭을 지어놓고 그 매듭마다 의미를 부여하는 인간들만이 가진 독특한 캘린더 문화 때문에 매년 연말이나 연초가 되면 사람들은 평소에 하지 않았던 깊은 생각들을 한번씩은 하게 됩니다.
  지나간 한해를 돌아보면서 후회를 하기도 하고 새로 다가오는 새해에 새로운 결심과 다짐을 하기도 합니다.
  오늘 새해의 첫 주일을 맞으며 우리의 도움이신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계획합시다.
  하나님은 우리를 도우시는 분이십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천지를 지으신 분이십니다. 그분이 나의 보호자이심을 믿고 주님만 바라보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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