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신년] 성령의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엡 4:3)

  • 잡초 잡초
  • 645
  • 0

첨부 1


- 설교자 : 박봉수 목사

  중국에는 소위 ‘소황제’ 세대의 등장으로 전에 없던 심각한 사회 문제가 대두되고 있다고 합니다. 소황제란 중국정부가 1979년 산하제한을 위해 실시한 한 가구 한 자녀 정책 하에서 태어난 외동아이를 뜻합니다. 이들은 부모의 맹목적인 사랑과 과보호 속에서 자라 나약하고 자기중심적입니다. 이 세대가 자라서 어른이 되면서 사회적응력 부족으로 갖가지 사회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특히 결혼 생활에서 심각한 문제가 나타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누가 설거지 빨래를 할 것인가와 같은 집안일에서 다툼이 시작되고, 누가 먼저 사과 할 것인가 놓고 싸움이 커지고, 급기야 점점 큰 부부싸움으로 번져간다는 것입니다. 한 통계 조사에 의하면 소황제 가정의 32%가 아주 심각한 부부 갈등을 겪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 인간의 행복은 사람과의 관계 안에서 얻어집니다. 부부가 금슬이 좋고, 부모 자식 간에 사이가 좋고, 동기간에 우애가 있고, 그리고 친구 사이에 우정이 깊다면 그 안에서 행복을 맛볼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성공하고 출세하고 큰 부자가 됐다고 해도 대인 관계가 원만하지 못하면 행복할 수 없습니다. 부부가 이혼을 하네 마네 한다면 행복할 수 없습니다. 동료들과 갈등을 빚고, 이웃과 등을 지고 산다면 행복할 수 없습니다.

  심리학자들은 다른 사람과 더불어 살 수 있는 능력을 “사회성”이라고 부르고, 이것을 지수로 측정해서 나타낸 것을 사회성 지수(social intelligence Quotient)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이 사회성은 발달해 간다고 보았습니다. 어떤 환경 하에서 자라느냐 어떤 학습을 받느냐에 따라서 이 사회성은 잘 발달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중국의 소황제들은 이 사회성 발달에 문제가 생긴 것입니다. 자기 혼자는 잘하는데 더불어 하는 일은 잘 못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중국 축구가 한국 축구를 이기지 못하고 공한증에 시달리는 이유가 바로 이 소황제들의 사회성 발달의 문제 때문이라고 보기도 합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신앙 성숙도의 우선적인 척도 가운데 하나로 이 사회성 발달을 꼽고 계십니다. 특히 그리스도인들 서로가 사랑하는 것을 들고 계십니다.

  요 13:34-5를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그리스도인들이 서로 사랑해야 하며 그래야 주님의 제자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서로 사랑하는 이것도 믿음이 자라면서 발달해 갑니다. 바울 사도의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바울이 선교의 사명을 받고 전도 여행에 나선 때가 40대 초반입니다. 행 15:39-40에 보면 이런 말씀이 기록되어있습니다. “서로 심히 다투어 피차 갈라서니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배 타고 구브로로 가고 바울은 실라를 택한 후에 형제들에게 주의 은혜에 부탁함을 받고 떠나 수리아와 길리기아로 다녀가며...” 바울과 바나바가 심히 다투었고, 끝내 갈라섰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바나바는 함께 선교에 뛰어든 동역자였습니다. 그러나 마가를 대동할 것인가 여부의 문제에 의견이 맞지 않았습니다. 심히 다투었고 화해와 타협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끝내 갈라섰고 각자 다른 길로 선교하기 위해 떠났습니다. 성령 충만해서 주를 위해 뜨겁게 헌신했지만 아직 성숙하지 못해서 동역자 간에 갈등을 빚고 다투고 화해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50대로 넘어서서 그는 고린도 교회의 심각한 갈등과 다툼을 지켜봐야 했습니다. 자칫 교회가 산산조각 날 위기를 맞게 되었습니다. 고린도 전서에서 있는 힘을 다해서 화해시키고자 노력합니다. 그러면서 그리스도의 몸이 하나가 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새삼 깊이 깨닫게 된 것입니다.

  이제 60대로 넘어와서 모진 고난과 박해를 받는 중에 동역자가 얼마나 소중한 지 깊이 깨닫습니다. 선교 초창기 그렇게 미워하고 욕하던 마가를 받아들입니다. 아주 가까운 동역자로 소중하게 세웁니다. 그리고 로마 감옥에서 쓴 옥중서신에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하나됨의 소중함을 강조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신앙도 성숙해 갑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성도들이 서로 사랑하지 못하다가 점점 사랑하는 자리로 나아가게 됩니다. 신앙이 성숙한 사람은 이제 믿음 안에서 누구와도 화해할 수 있습니다. 서로 상처주기 보다는 서로 높여주고, 자기 입장에서만 생각하기 보다는 상대방의 입장에서도 생각할 줄 알게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새해에는 우리가 더욱 성숙해서 더욱 서로 사랑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사도 바울이 신앙의 성숙한 자리에 서서 후배 성도들에게 교훈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성령의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성도들이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하나 되게 하셨다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우리가 주목해야 할 내용이 기록되어있습니다.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이미 성령께서 우리 성도들을 하나 되게 해 주셨다는 말씀입니다.

  놀라운 말씀 아닙니까? 우리가 같은 교회에서 만나서 신앙생활하게 된 것은 이미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같이 만나서 신앙생활하게 될 때 성령께서 우리를 하나 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하나 되도록 하실 일을 다 해 놓으셨다는 것입니다. 물론 계속 하나 되도록 지속적으로 역사하시지만 기본적인 틀은 다 마련해 놓으셨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도행전 2장에서 이 사실을 확인해 볼 수 있습니다. 행 2:1-4을 보면 예루살렘 마가의 다락방에 120문도에게 성령이 임하셨습니다. 이미 저들이 하나가 됐습니다. 저들이 능력을 받고 밖으로 뛰어나가 복음을 전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믿고 교회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나중에 합류한 사람들도 성령을 받았습니다. 먼저 성령 받은 사람과 하나가 되었습니다.

  우선 저들이 한 성령 안에서 그 영이 하나가 됐습니다. 모두가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왔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힘써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이런 영적 사건에서 저들은 모두 하나였습니다. 그들의 영이 성령 안에서 하나가 됐기 때문입니다..

  다음 저들이 한 성령 안에서 그 마음이 하나가 됐습니다. 46절을 보면 날마다 마음을 같이 했다고 말씀했습니다. 매일 모이자고 했더니 모두가 찬성해서 매일 모였습니다. 기쁜 마음으로 자기 재산을 바치기 시작했습니다. 모두가 남이 아닌 우리임을 마음 깊이 느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마음이 성령 안에서 하나가 됐기 때문입니다.

  그뿐 아니라 저들의 삶이 하나가 됐습니다. 매일 모여 함께 예배하는 일이 저들의 생활이 되었습니다. 함께 더불어 먹고, 함께 가진 것을 나누고, 이제 저들은 새로운 형태의 가족이 되었습니다. 그들의 삶이 성령 안에서 하나가 됐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령은 우리를 하나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하나가 되도록 역사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믿음의 눈을 열고 말씀 안에서 볼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힘써 지키라

  그런데 본문에 또 주목할 말씀이 기록되어있습니다.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성령께서 성도들이 하나 되도록 해 놓으셨는데 이것을 힘써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대 전제가 있습니다. 성령께서 하나 되게 해 놓으신 것이 자꾸 흐트러진다는 것입니다. 두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하나는 사탄의 의도적인 훼방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성숙하지 못한 성도들이 귀한 줄을 모르고 함부로 하다가 망가뜨리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은 이미 예수님께서 너무도 소상히 잘 알고 계셨습니다. 요 17:11을 보면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저희는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저희를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마지막으로 제자들을 위해 중보기도하신 내용입니다. 그 중에 첫 번째 기도가 저들이 하나가 되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이 있습니다. 우리들은 하나 되기 힘든 존재들이라는 사실입니다. 주님께서 명령하셨고, 성령께서 하나 될 수 있도록 기본 토대를 만들어주셨지만 그것을 그대로 유지하고 지켜가기가 힘들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연역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기 준엄한 명령이 주어집니다. “힘써 지키라” 힘들더라도 힘써 지키라는 것입니다.

  새해가 시작됐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새해에 무엇인가 새롭게 시작해 보려고 결심을 하고 실천에 들어갑니다. 대표적인 것이 금연, 다이어트 이런 것들입니다. 그런데 대부분 며칠 못가서 실패합니다. 눈물겹게 버텨보지만 더 버티지 못하고 무너져 내렸기 때문입니다. 힘써 지키지 못한 것입니다.

  힘써 지키라는 말씀은 보통 노력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전제하는 말입니다. 교회의 하나됨을 지키는 것은 금연보다도 힘이 든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다이어트 성공하기보다도 힘이 든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요사이 한국교회 여기저기서 교회 내부의 갈등과 분열의 소리를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습니다. 밖으로 소문이 나지 않았지만 내부적으로 갈등이 증폭되고 있는 교회도 상당수가 된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전도하기 보다는 오히려 교회 스스로 전도의 문을 닫고 있는 안타까운 모습을 봅니다.

  왜 그렇습니까? 힘써 지키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남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힘써 지키지 못하면 우리도 교회가 갈등에 휘말릴 수 있습니다. 교회가 금이 가고 균열이 일어나서 그리스도의 몸이 찢어지는 끔찍한 사태가 벌어질 수 있습니다.

  이렇게 된다면 그 안의 모두가 하나님 앞에 책임을 면키 어렵습니다. 네 탓 내 탓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탓으로 하나님께 크게 책망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인가?

  성령이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기 위해서 우리가 어떻게 해애 할까요? 오늘 본문에서 다섯 가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겸손, 온유, 오래 참음, 용납, 평안의 매는 줄입니다.

  그런데 이 다섯 가지는 고전 13장을 보면 사랑의 구체적인 표현 양식입니다. 사랑이 있으면 겸손하게 되고, 사랑이 있으면 온유하게 되고, 사랑이 있으면 오래 참게 되고, 사랑이 있으면 용납하게 되고, 사랑이 있으면 서로 평화하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골 3:12-14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의 택하신 거룩하고 사랑하신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고 누가 뉘게 혐의가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과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 모든 아름다운 인격적 덕목들도 사랑이 있어야 하나로 묶여 아름다운 열매를 거둘 수 있다는 것입니다.

  진주 목거리를 보면 그 많은 진주 구슬이 끈으로 묶여 하나가 됩니다. 사랑이 바로 이렇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은사를 하나로 묶습니다. 우리 모두를 하나로 묶습니다. 우리에게 서로를 사랑하는 마음이 먼저 있어야 힘써 지킬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랑을 바탕으로 해서 우리가 해야 할 것이 다섯 가지입니다.

1. 겸손해야 합니다.

  겸손은 단순히 자기를 낮추는 행동이 아닙니다. 자기가 높은데 낮춘다고 할 때는 역시 자기 공로를 주장할 여지가 있습니다. 높은데 낮아져줬다는 자기 의를 내세울 여지가 있습니다. 이럴 때 바로 겸손은 교만의 가장된 모습입니다.

  겸손은 상대방을 높이는 행동입니다. 상대방을 높여서 어느덧 자기가 낮은 자리에 있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라 말씀하신 바로 그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교회 안의 다른 사람들 그들을 귀하게 여겨야 하겠습니다. 그들을 높일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2. 온유해야 합니다.

  온유는 약자의 비굴함이 아닙니다. 힘이 없어서 강자 앞에서 부드럽게 행동하는 것은 자기보다 약한 사람 앞에서는 다시 강퍅함이 드러날 여지가 있습니다. 이럴 때 바로 온유는 거친 자기  주장의 가장된 모습입니다.

  온유는 강자의 부드러움입니다. 마치 길들인 맹수들이 힘을 통제하여 부드럽게 행동하는 모습과 같은 것입니다. 힘도 있습니다. 자기 권리를 주장할 수도 있습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보여주신 연약한 모습 바로 그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일방적으로 자기 주장하는 것을 삼가야 하겠습니다. 교회 안의 다른 사람들을 부드럽게 대해야 하겠습니다.

3. 오래 참아야 하겠습니다.

  참는다는 것은 부당한 것을 견디는 것입니다. 누군가가 자기를 모함합니다. 누군가가 자기 약을 올립니다. 억울합니다. 얼마든지 할 말이 있습니다. 그러나 견디는 것입니다.

  오래 참는다는 것은 한 번 참을 것을 두 번 참는 것이고, 두 번 참을 것을 세 번 참는 것입니다. 끝까지 참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 의해서 오해가 풀리고 자기 입장이 바로 세워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억울한 일이 있어도 오래 참아야 하겠습니다.

4. 서로 용납해야 합니다.

  용납한다는 것은 받아들여주는 것을 말합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내가 좋아 하는 스타일이 아닙니다. 심지어 내가 싫어하고 혐오하는 사람입니다. 내가 도저히 함께 하기 힘든 스타일입니다. 그러나 주 안에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서로 용납한다는 것은 나도 받아들이고 너도 나를 받아들이는 것을 말합니다. 내가 용납하는 것으로 끝나면 안되고 그 사람이 내가 받아들였다는 것을 알고 그 사람도 받아들이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서로 용납해야 하겠습니다.

5. 평안을 단단하게 지켜야 합니다.

  로마 시대에 죄수들이 도망칠까봐 군사와 죄수를 줄로 묶어서 호송했습니다. 먹을 때고 같이 먹고 잘 때도 같이 잤습니다. 도망칠 수 없게 한 것입니다.

  교회 안의 사람들을 이렇게 평안이라는 줄로 단단히 묶으라는 것입니다. 사람들 사이에 다툼이 없고 갈등이 없도록 평안을 굳건하게 지키라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 사이에 평안을 지켜야 하겠습니다.

  금년 우리 교회의 표어가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입니다. 지금까지도 잘해왔지만 더욱 그렇게 하자는 것입니다. 평안한 교회, 코이노니아가 풍성한 교회를 이루어 갑시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