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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송년] 한 해를 정리하며 느끼는 기쁨과 기대 (딤후 4: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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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최종천 목사
 
우리는 이러저러한 이유로 우리의 삶을 어느 시점에선가 결산해 보게 됩니다. 건강을 잃어서 내 삶에 대한 자신이 없을 때, 혹은 내 삶이 얼마 남지 않다고 생각할 때 혹은 지금의 시간 같이 한 해가 간다거나 하는 삶의 분절이 이루어 질 때 등등입니다. 이러저러한 이유로 우리는 지나간 삶의 회고해 보며 과연 나는 어떠한 모습으로 살았고 그것은 내가 이룰 삶의 원대한 목표와 계획 속에 어떠한 의미를 가지는 가를 평가해 보기도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삶의 생각해 보면서 하나님께 감사하기도 하고 또 하나님께 죄송한 마음을 느끼기도 하며 우리의 삶의 방향을 다시 한번 수정하고 또 강화해 보는 시간을 갖기도 합니다. 이러한 여건 속에서 우리는 스스로 살아온 삶의 자취를 반추해 보며 이제까지 살아온 나의 길이 과연 옳은 것이었는지 이제까지 살아온 삶의 자취가 하나님 앞에 과연 평가받을 만한 합당한 것인지 우리는 생각하게 됩니다. 세상을 살아오면서 이러저러한 일을 겪고 때로는 눈물 흘리고 기뻐하며 희로애락 속에 애걸복걸 하며 살아온 것이 우리의 삶이라 생각합니다.

모세는 그의 삶의 이루고 하나님 앞에 표현하기를 우리의 인생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라고 했습니다. 모세는 많은 사람 앞에 민족의 지도자로서 그의 공생애를 마쳤습니다. 그는 때로는 이와 같은 혈기 방정한 이와 같은 청장년의 시대도 있었고 또 40년 동안 광야에서 무기력하게 시간만 보내야 할 때도 있었고 민족의 지도자로 나서서 애굽에서 출애굽시키는 이와 같은 대역사와 40년 광야의 방황을 통해서 긴 장고 끝에 결국은 가나안 목정까지 백성들을 인도한 거대한 역사들을 이루었습니다. 그러나 그와 같은 거대한 역사를 이룬 민족의 지도자인 모세가 그의 인생을 돌아보면서 말하는 것이 우리의 인생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라는 것입니다. 내가 내 삶을 살면서 어떠한 수고를 했어 어떠한 고난을 겪고 어떠한 수고를 했어 라고 하는 것과 내 인생의 이러저러한 슬픔이 있는데 나는 그것을 어떻게 극복 했어 하는 인생의 어려움의 극복에 대한 마음들 바로 이것이 인생의 이야기라고 그는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 인생을 어느 시점에서 결산해 보게 될 때 과연 우리는 어떤 마음을 가지게 될까하는 마음을 가지게 될까 하는 것들을 또한 생각해 보게 됩니다.
언제나 우리가 이 세상 떠날지 모른다는 언제라도 하나님이 부르시면 우리는 이 세상을 떠나야 된다는 생각을 하면 우리는 결국 누구든지 숙연치 않을 사람이 없습니다. 결국 이와 같은 생각을 해 보면서 우리는 올 한해를 마감하는 오늘 주일에 하나님 앞에 우리의 한해를 정리하며 느끼는 여러 가지 생각을 회고해 보려고 합니다. 어떠한 감사가 있었고 어떠한 기쁨이 있었고 어떠한 기대함이 있는가 또 어떠한 마음의 회호가 있는가 하는 것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오늘 우리의 한해를 돌아보면서 점검해 보기 전에 우리는 오늘 성경을 통해서 오늘 본문에 나오는 대로 사도바울이라고 하는 한 사람의 격렬했던 삶의 투쟁의 과정을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그의 모든 삶을 마치고 죽음의 순간이 다가옴을 느끼고 있을 때 그는 회고 하며 사랑하는 제자 디모데에게 편지를 쓰는 것입니다. 이것을 통해서 성도의 삶의 모습은 어떤 것인지 한순간에 결산해 보는 그의 삶의 모습은 어떤 것인지를 우리들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지나간 우리 한해의 여러 가지 사건들 만났던 수많았던 사람들 이루었던 모든 일들 그와 같은 것을 종합해 볼 때 과연 우리의 가슴에는 어떠한 언어들이 남는가를 생각을 해봅니다. 30년 동안이나 복음의 증거를 위하여 삶을 투신했던 사도바울 그러나 그에게 주어진 마지막 결과는 차가운 로마감옥에 지하 한 구텅이에서 찾아오는 순교의 순간이었습니다. 이와 같은 것을 마음속에 받아들이며 그는 가슴속에 소회를 적어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느껴지는 것은 내가 이제까지 고생하며 고통을 겪으며 살아온 나의 삶은 헛것이라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제까지 이룬 모든 삶에 대하여 감사하며 마지막으로 그에게 이와 같은 고통의 순간이 엄습해 온다 할지라도 그는 소망과 기대를 가지고 주님 앞에 살아왔기에 하나님께서 그에게 원하시는 삶을 이루었기에 아무런 후회 없이 그의 삶을 마치고자 마음에 준비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도바울, 그는 한창 혈기가 왕성했을 때는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속의 복음을 이해하지 못하고 오히려 하나님을 위하여 수고한다고 하지만 오해 하여 예수 믿는 사람을 핍박하고 복음을 방해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마음에 정당성을 가지고 그 일을 진행했기에 그는 전혀 뉘우치는 기색도 없이 예수 믿는 사람을 잡아다 감옥에 가두고 고통스럽게 핍박을 했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예수 믿는 사람을 잡아 감옥에 가두기 위하여 다메섹으로 가는 길 중에 예수 그리스도를 만남으로 말미암아 그의 삶은 전 인격적인 변화를 이루게 됩니다. 이제 그는 그 이후 30년간을 오직 복음을 전하는 일에만 투신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주의 복음을 위하여 살아가는 길이 이제는 하나님의 일을 시작했으니 그에게 영광과 은혜로 그의 길이 열려지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복음을 전하기 시작하면서부터 그에게는 고난과 온갖 고통과 아픔과 괴로움과 곤고함의 역사였습니다. 산의 위험과 강의 고통과 옥에 갇힘과 매를 맞음과 굶주림과 배고픔과 그리고 춥고 곤고함 속에 거했던 것이 그의 삶입니다.

그러나 그러함 속에서도 복음을 위한 그의 행보는 아무것에도 멈출 줄 모르고 거침없이 이루어졌던 것입니다. 그와 같은 복음 전도의 여정에서 그는 그의 사랑하는 동족 유대인으로부터 모함을 받아서 가이사랴 감옥에 2년을 갇혀있고 거기서 로마로 가서 호송되어 2년간 또 옥고를 치르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AD63년에 하나님의 섭리 속에 그는 로마 감옥에서 출옥합니다. 이제는 그는 이쯤 되면 좀 쉬고 싶은 쉼의 요청에 때였지만 오히려 지치고 지친 몸이지만 그는 그가 세웠던 이와 같은 로마 교회를 돌아보며 그들의 교회를 강하게 하기 위하여 행군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잠깐일 뿐 채 1년도 지나지 못하여 AD64년에 사도바울은 또다시 로마 감옥에 투옥을 당하게 됩니다. 바로 로마의 대화재 사건 때문입니다. 로마의 황제 네로는 이 로마에서 일어났던 대화재 사건이 기독교인들의 계획적인 방화요 조작적인 일이라고 모함을 하여서 사도 바울을 그 가운데 지도자의 한명으로 지목하여 마침내 그를 다시 감옥에 가두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 네로의 정치적인 실정으로 말미암아 흔들려진 모든 백성들의 이와 같은 지지에 대해서 오히려 기독교인들에 대해서 주목하게 함으로 말이 암아 그들을 핍박의 대상으로 삼아 제물삼아 자신의 정치적인 입지의 어려움을 해결하려고 했던 네로의 이와 같은 간악한 사행 때문입니다. 그리고 바울은 로마시민권을 가지고 있어 적법한 법의 절차를 받아서 심판을 받아야 되지만 그는 모든 기회를 다 박탈당하고 사형언도를 받아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게 됩니다.
이와 같은 사도바울의 삶에서도 사도바울은 그에게 서서히 삶의 마지막 순간이 다가옴을 느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하나님 앞에 그의 감정을 편편하게 소유한 것입니다.

관제와 같이 내가 부음이 되고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워왔다. 관제는 제사 중에서 부어서 기름이나 이와 같은 액체를 부어서 드리는 제사입니다. 관제와 같이 내가 벌써 다 따라서 부음이 되었고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워 왔도다. 그는 자신의 때를 알고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영감 속에서 그의 삶이 다 마쳐 질 때 그는 그의 마음속에 일어나는 모든 감정을 기록하고 있으니 그것이 우리가 읽은 오늘 본문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 가운데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것들을 생각해 봄으로 우리의 올 한해를 결산하는 데 도움을 받아보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 가운데 사도바울이 그의 삶을 다 마치는 이 순간 그에게 수고 끝에 마지막으로 고난이 닥쳐와 그는 죽음을 이루어야 한다는 이 순간 그의 마음속에 들었던 생각입니다.

그는 무엇보다도 자신의 때를 알고 있는 지혜로운 사람이었습니다. 사람이 자신의 때를 안다는 것은 무엇보다 지혜로운 것입니다.
내가 지금 무엇을 해야 될 때인가 나는 어떤 생각을 해야 될 때인가 나는 무엇을 이루어야할 때인가 나는 무엇을 준비해야 될 때인가를 안다는 것은 매우 지혜로운 사람의 일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도바울의 겸손한 모습이 그대로 드러나 있습니다. 관제와 같이 내가 부음이 되고 자기의 인생이 다 됨을 표현할 때 그는 관제와 같이 부음이 되고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실 관제라는 것은 주 제사가 아니라 보조 제사입니다. 주 제사는 주로 화제 같은 불로 피워서 재를 만들던지 연기가 이루어져서 이루는 이런 불로 피어서 태우는 이와 같은 제사가 이제 주로 된 제사로 많이 활용되고 있지요.

그런데 이 관제는 뭐냐 하면 전제라고도 얘기하는데 관제는 뭐냐 하면 기름이나 그 당시에 액체를 부어서 주제사로 드린 이후에 드리는 보조제사입니다. 그러니까 사도바울은 그의 모든 전생을 주를 위해서 다 30년간이나 바쳤으면서도 나는 그저 보조적으로 조그만 일을 했다는 그 마음입니다. 내가 이렇게 화려한 아름다운 업적과 그리고 모든 것을 전도하면서 주의 복음을 전하고 각각 곳곳마다 교회를 세우고 사람을 세워서 주의 영화를 일을 이루었다는 것을 그는 이렇게 자랑스럽게 주된 일을 했다고 하지 얘기하지 않고 나는 그저 관제와 같이 작은 보조적인 일을 했을 뿐입니다 라고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의 이러한 겸손한 심정을 볼 때 우리는 복음의 대 사도바울이 대 사도가 이와 같은 심정을 가진 것에 우리 마음이 놀라게 됩니다. 그 마음의 겸손그것이야 말로 하나님께 주신 은혜라는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이와 같이 사도바울은 자기의 모든 삶이 복음을 위하여 수고하고 헌신 하고 소신껏 그의 모든 삶을 이루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기 자신을 겸손히 하나님께 드리는 보조적인 사역자로 표현했던 것입니다.
초대교회의 사도바울만한 인물이 어디 있었겠습니까? 성경을 써서 초대교회의 교리를 파수했습니다. 논리적으로 뛰어난 사람입니다. 논리를 실천적인 정황 속에 적용하여 이루었던 실천가였습니다. 대부분 이두가지가 병행하는 것이 쉽지 않아요. 논리가 뛰어난 사람들은 보면 실천력이 떨어지는 경우가 있고 대부분 실천력이 뛰어난 사람은 논리력일 떨어지는 경우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논리가 뛰어나고 실천력이 뛰어난 두 가지를 합일하여 이룬 사람은 대단한 인물입니다. 흔치않은 인물이지요. 사도바울이 그런 사람이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대단한 인물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기는 주된 사역을 이룬 사람이 아니라 보조적인 일을 잠시 이루었을 뿐이라는 것을 이와 같이 필역하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관제와 같이 부음이 되고 내가 떠날 기약이 벌써 가까워왔도다. 자신의 마지막 때를 그는 감지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자신의 때를 알고 그때에 맞춰 어떠한 일을 행하려고 하는 것은 지혜로운 사람의 일입니다. 일할 때가 있고 다른 사람을 세울 때가 있고 내가 물러나 기도하고 위로해 줄 때가 있는 것입니다. 이때를 아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사도바울은 회개의 때 주님을 만나 회개하였습니다. 사역의 때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입어 힘 있게 사역에 전념하였습니다. 마침내 그에게 순교의 때가 다가왔을 때 하나님께서 그를 부르실 그날을 생각하며 하나님 앞에 그의 마음을 정돈합니다.

그의 모든 사역을 정돈하기 위하여 옥중에 있는 서신으로 다시 한번 이와 같이 사랑하는 제자 디모데를 세우고 믿음의 백성들을 격려하며 세우는데 그는 계획을 가지고 옥중에서 글들을 썼던 것도 우리는 기억합니다.
주님을 만나 다메섹 도상에서 꺼꾸러짐으로 진정한 회개를 이룬 바울, 그에게 사역의 기회가 주어졌을 때 숨 가쁘게 달려가 그에게 주어진 모든 사역의 역사를 이루었습니다. 순교의 때가 다가왔을 때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편안한 마음으로 삶을 정돈하며 회고 하여 하나님께 감사를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도 누구든지 자기의 때를 아는 것은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 회개를 요구하실 때 우리는 하나님 앞에 통회하며 우리의 삶을 주님 앞에 내려놓고 주님 앞에 우리의자신의 모습을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 사역을 원하실 때 우리들에게 주어진 모든 삶의 여건들을 다 소진하여 하나님 앞에 사역을 이룰 수 있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우리의 삶을 정돈하여 후각들에게 남겨두고 그들을 세워주기를 원할 때 우리는 각각의 때를 구별하여 우리에게 합당한 일을 하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에게 능력이 있을 때 건강할 때 지혜가 있을 때 손과 발이 무엇인가 원하는 대로 움직여질 때 우리에게 사역이 주어지길 원하신다면 우리는 무엇인가 주님이 원하는 일에 우리를 드리는 것이 합당합니다. 우리에게 무엇인가 노력할 기회가 있을 때 우리는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엇인가 마지막 헌신을 요구할 때 우리는 이제까지 이루었던 우리의모든 사역들과 능력을 총집결하여 마지막으로 우리 뒤에도 그 일을 이룰 수 있는 사람들을 세워야 합니다.
모세는 여호수아를 후계자로 세워 그의 모든 사역을 계승시킴으로 진정한 지도자로 떠오르게 됩니다. 엘리야는 후학 엘리사를 두어서 그의 후계로 세워서 그의 사역이 지속적으로 계승될 때 진정한 지도자로 떠오르게 됩니다. 바울은 디모데를 세워 이와 같이 그의 이후의 사역을 이룸으로 말미암아 그의 사역이 당대로 끝나지 않았음을 우리들에게 보여줌으로 진정한 지도자였음을 우리들에게 보여줍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그 때를 구별하여서 사역의 때에는 사역을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의 때에 다른 사람을 세워야 할 때는 다른 사람을 세움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귀한 은혜를 이룬다는 것은 너무나 귀한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각각의 때 속에 하나님이 원하시는 이와 같은 사역을 이룸으로 믿음의 백성으로 합당한 역사를 이루어야 합니다.

올 한해를 지내면서 우리는 어떠한 일을 이루었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회개를 요구하셨으면 우리에게 진정한 회오와 각성 속에 하나님 앞에 진정한 회개의 눈물로 나아가며 우리의 삶을 수정하고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한 길로 우리를 다시 한번 재차 진입하게 되었는지요.

또한 하나님께서 우리 앞에 사역을 요구하셨다면 능력이 안돼서 안타까울 뿐이지 능력이 안 되어서 안타까울 뿐이지 우리에게 주어진 능력과 여건가운데선 그야말로 재가 되고 연기가 되어 다 드려질 때 까지 우리자신이 소진 되었을 때까지 하나님 앞에 아름다운 삶의 헌신을 드렸는지요.

아니면 우리에게 또다시 마지막 기력이 있어서 다른 사람을 세워 우리의 모든 사역을 이루어 하나님 앞에 영광을 올려드리길 원한다면 다른 사람을 세워서 그 일을 이루도록 우리의 삶의 모든 것을 다 소진하여 사람을 세우는 일에 우리가 힘을 썼는지 생각을 해봅니다.

우리가 각각 주어진 때에 맞춰 우리가 세워질 때 우리가 내려올 때 다른 사람을 세울 때 우리가 기도할 때 또 우리가 무엇인가 위하여 협력할 때를 각각 안다면 그것은 지혜로운 사람일 수밖에 없습니다.
내 때는 어떤 때인가? 하나님이 나에게 무엇을 워하는 때인가? 내게 잠잠할 때인가? 아니면 내게 어떤 일을 활기 있게 할 때인가? 아니면 내게 있어서 이제는 힘을 기를 때인가? 아니면 그 힘을 발휘할 때인가 아니면 정리를 할 때인가?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때를 감지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 사도바울은 자신에게 주어진 때를 파악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내 삶에 마지막 때가 왔으니 이제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 마지막으로 사람을 세워 그들에게 부탁하고 내게 주어진 길을 가야하는 것이 아닌가? 그는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 두 번째 사도바울의 삶에 모든 소외를 이루는 내용 중에 후회 없는 삶에 대한 확신입니다. 사도바울의 삶은 후회가 없습니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세 가지로 요약되지요 선한 싸움을 싸웠다는 겁니다. 헛된 일 한거 아니에요 그리고 달려갈 길을 마쳤다는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음을 지켰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완벽한 그의 삶의 모습입니까? 그야말로 그도 연약한 인간임에도 불구하고 이와 같은 온전한 삶을 이루었다는 것은 하나님 의지하고 오직 주의 삶을 이루기를 원하며 주의 영광을 이루기 위하여 혼신 하여 한 가지 목표를 향하여 달려갔던 그의 삶 때문입니다.

늘 말씀드리지만 우리 인생은 정말 연필 한 자루 같아요. 아무데나 쓸데없이 낙서하고 다니고 쓰지 않아도 될 이야기 쓰고 다니면 결국 우리가 정말 써야 될 인생의 이야기는 못쓰는 것 같아요. 마지막 무엇인가 남겨주고 싶은 얘기 쓸 때는 이미 연필의 심지가 다 달아서 아무것도 쓸 수 없어요. 안타깝게 남겨주고 싶은 얘기 남길 수 없다 이 말입니다. 하고 싶은 일 할 수 없어요. 여기계신 분들은 정말 그야말로 인생을 아까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인생을 아끼시기를 바랍니다. 과연 내가 여기다 내 목숨을 걸 것인가 그것 아니라면 거기 그렇게 애달게 그렇게 하지 마세요. 정말 이것은 내 목숨 다 걸어도 나는 이것이 하나님의 합당한 일이라고 생각한다면 거기에 우리 모든 힘을 투입을 해야 합니다.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는 것입니다. 그것이 선한 싸움이 되는 거예요. 쓸데없는 인생의 정력과 쓸데없는 인생의 모든 육신의 소욕과 쓸데없는 이 세상의 모든 자랑에 우리 자신을 소신하다 보면 마지막 우리가 정작 해야 될 일에는 아무 힘을 쓰지 못하고 안타까움으로 내 인생이 이렇게 엉뚱한데 힘을 쏟아서 나는 이렇게 아무것도 할 수 없어 하고 후회하며 세상을 떠나지 않겠습니까?

뿐만 아니라 나의 달려갈 길을 다 마쳤다고 애기 합니다. 달려갈 길이 저기인데 중간에서 그만 둔 것이 아니라 나는 내가 달려갈 길을 다 마쳤을 때 내가 하나님 앞에 그 성취를 후련하게 감사한다 이 말입니다. 그야말로 후회가 없어요. 나는 해야 할일 다 했다 이 말입니다. 이제는 내가 해야 할일 다 했으니 나는 아무런 후회가 없다 이 말입니다. 마라톤 선수가 42.195 km 달려간 후에 힘이 넘쳐서 한 번 더 돌 수 있다고 하면 그는 힘이 넘치는 사람이 아니라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그는 그럴 힘이 있다면 더 달려서 그 42.195 km를 다 달렸을 때 그야말로 힘이 소진되어서 더 이상 꼼짝할 수 없을 정도로 잘해야 경기를 잘 한겁니다. 만약에 그렇지 않고 힘이 펄펄 넘친다면 그는 레이스를 잘못 한거에요. 그는 오히려 그의 힘을 다 쏟아 넣어서 최고의 기력으로 그는 달려가서 결국 경기 마치고 그의 힘을 소진함으로 말미암아 모든 힘을 경기에 쏟았어야 됩니다. 우리는 이 세상을 마칠 때 힘이 남아서도 안 돼요. 이 세상에 두고 가는 것이 있어서도 안 되고, 그야말로 하나님 앞에 다 소진하고 하나님 앞에 그야말로 달아져 없어지고 소신되어 재화가 되고 연기가 되어 하나님 앞에 우리의 삶이 드려진 이후에 우리는 세상에 남을 것도 없어 그의 나라로 가는 것이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의 믿음의 인생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와 같은 부지런한 곤고한 이와 같은 삶 속에서도 오히려 믿음을 지킬 수 있었으니 그는 그의 삶을 감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언제나 우리 믿음의 성도들이 어떤 마음을 가져야 되는가에 대해서 이런 생각을 합니다. 비록 실패를 했어도 후회가 없는 이와 같은 결정과 결과에 대한 기꺼운 수납이 있는 삶을 살아야 우리는 인생을 후회하지 않고 살수 있다 생각합니다. 정말 신중하게 생각해야 되요. 신중하게 결정해야 해요.

내가 이렇게 결정한 것에 대해서 내가 10년 20년이 지나도 후회하지 않을 것인가에 대한 확신이 있어야 됩니다. 우리의 결정에 대해서 반드시 좋은 결과가 날수는 없습니다. 내가 이렇게 최선이라고 결정했는데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 내가 원치 않는 일이 일어 날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 원치 않는 결과가 일어 날 때 까지 포함해서 어떤 결과가 나에게 주어지더라도 나는 후회하지 않고 그것을 내게 주어지는 결과로 받아들이겠다는 마음의 각오가 있어야 합니다. 그 때 결정하셔야 됩니다. 그게 책임 있는 우리의 삶입니다.

결과가 주어졌을 때 내가 원하면 감사하고 원치 않으면 나는 후회하며 내 인생을 ‘잘못 했어 결정 잘못 했어.’ 이렇게 사는 것은 너무 누추한 삶이예요. 어떤 결과가 주어져도 의연하게 받아들이고 나는 이런 결과를 받을 수밖에 없어 나는 더 이상 어떻게 할수 없어 다시 그 기회가 주어져도 나는 이렇게 결정 할 수밖에 없었어 라고 그의 삶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살수 있다면 그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후회 없는 결정을 이루셔야 합니다. 결과에 대해서 좋다 나쁘다 거기에 대해서 어떤 경우도 나는 후회하지 않겠다 라는 결심이 있을 때 결정하셔야 되요. 그렇지 않으면 우리인생은 늘 후회뿐이고 후회하는 인생을 절대 행복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 믿음의 사람으로서 내가 조금 편하고 조금 어렵고가 아니라 나는 그런 결정을 할 수 밖에 없었어 또 뿐만 아니라 지금 주어져도 나는 그런 결정할 수밖에 없어 결과에 대해서는 나는 몰라 그러나 나는 최선의 결정을 하는 거야 라고 그 일을 결정하고 그 일을 진행해야 합니다.
삶에 있어서 언제든지 좋은 일만 있겠습니까? 나쁜 일이 있는 다손 치더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회하지 않는 그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하나님 앞에서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내 길을 다 달려갔고 그리고 믿음을 지키는 삶입니다.

인생의 표피적인 면으로 보면 사도바울은 오늘 감옥 속에서 처참하게 죽는 거예요. 그러나 그는 그 삶을 그와 같이 실패로 여기고 후회 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감옥 속에서 처참히 죽어간다 할지라도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이제는 마지막으로 믿음을 지켰으니 그는 흡족하다는 것입니다.
후회 없는 삶 그것이야 말로 우리 삶의 가장 아름다운 삶의 정형입니다. 자신의 삶을 통해 이룰 것을 다 이루었고 그 가운데 주님의 부르심에 합당한 삶을 살았음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또 그가 자기 일을 하면서도 믿음을 지킬 수 있었으니 감사하고 감격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도 이와 같은 감격이 있어야 합니다. 어느 날 문득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실 때 후회 없는 삶으로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제까지 나를 베풀어 주신 것을 나를 은혜로 인도해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하는 고백이 있을 때 우리는 하나님의 진정한 은총의 백성입니다.

우리의 삶을 돌이켜 볼 때 우리 마음에 아쉬움이 남고 우리 마음에 여러 가지 회호가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통하여 주님의 영광이 잠시라도 빛났다면 내가 다른 사람을 상심하게 하지 않고 오히려 위로하는 사역을 이루었다면 우리는 하나님 앞에 감사할 것뿐입니다.
정말 우리에게 후회없는 삶은 무엇입니까? 주님이 원하시는 삶을 사는 것이고 나를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삶이요 나를 위해서 주의 이름이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나를 인하여 빛나는 삶입니다. 세상의 사람들은 각각의 능력에 의해서 각각의 역량에 따라서 각각의 하는 일이 다를 수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세상에서 각광 받는 일을 할 수도 있고 어떤 사람은 평생 노력했는데 남의 눈에 띄지 않는 미미한 일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룬 것이 어떤 것인들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것을 통해서 주의 영광을 받으신다면 우리는 감사할 뿐입니다. 무엇을 이루었어도 이루지 못했어도 내 역량 껏 달려가고 내가 그것을 마쳤을 때 하나님 앞에 우리는 감사함으로 후회 없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자 우리 한번 따라서 합시다 . 어떤 일이 있어도 결단코 후회는 하지 않겠습니다 . 항상 우리 자신에게 물어봐야 해요. 과연 이렇게 결정하고 나중에 후회하지 않을 것인가? 정말 이렇게 살고 후회하지 않을 것인가? 나는 이렇게 살수 밖에 없었다는 유일한 한 가지 길인가? 하는 것을 늘 우리들에게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이 말입니다. 후회가 남는 삶보다 후회 없이 주님 앞에 헌신하고 후회 없이 우리 삶에 합당한 은혜의 역사를 이루어야 합니다 .

자 우리 한번 따라서 합시다. 능력은 최고가 아니라도 노력만은 최고로 합시다. 정말 우리의 능력은 최고가 아닐 수도 있어요. 내게 주어진 여건은 최고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능력과 여건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노력은 최고로 해야 합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애씀과 ,봉사와 헌신과 희생은 최고로 해야 된다 이 말이에요. 사람마다 이러저러한 여건이 있지 않겠습니까? 어디어디 다른 위치에 놓여져 있지 않겠습니까? 그것은 우리의 후회거리가 아니에요. 우리의 후회거리가 아닌데 다만 주어진 여건과 위치와 상황 속에서 내가 나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을 이루었는가 그것이 우리에게 기쁨과 감사거리가 될 수도 있고 후회거리가 될 수도 있다 이 말입니다. 우리의 평가는 물리적인 일률적인 평가가 아닙니다. 내게 주어진 여건 속 에서 하나님께 대한 평가입니다.

다섯 달란트나 두 달란트 받던 사람들 그들에게 무리한 평가를 하지 않습니다. 다섯 달란트 받은 사람은 다섯 달란트 남겼을 때 두 달란트 받은 사람은 두 달란트 남겼을 때 그들은 각각 최고의 칭찬을 듣게 되었던 것입니다. 내게 주어진 삶 가운데 최선을 이룬다면 그것은 하나님 앞에 아름다운 주의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마지막 세번째는 의의 면류관을 기대하는 삶 입니다.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사도바울의 곤고한 고통 속에서도 이와 같이 꺾이지 아니하고 그의 삶에 기쁨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그의 가슴을 뛰게 만드는 하나님께서 그를 위하여 예비해 놓으신 영광의 면류관이 그 앞에 늘 어른거렸기 때문입니다. 고통이 문제가 아니라 고통 뒤에 있는 은혜의 역사를 향하여 달려가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어떤 아픔이 있어도 눈물과 곤고가 있어도 그 뒤에 하나님의 은혜와 영광이 기대하고 있다면 우리는 그 영광을 위하여 달려가는 것입니다.
죽음을 능가하는 강한 동기가 있습니다. 영혼을 사모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은혜의 용기입니다 . 우리에게 바라볼 영원한 목표가 생기게 될 때 우리는 소망을 가지고 죽음을 능가하며 달려가게 됩니다. 영원을 사모하는 용기가 생기게 됩니다 .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세요. 여기서 광주를 간다 아니면 부산을 간다 하고 생각해 봅시다. 여기서 천안도 지나고 대전도 지나서 광주를 간다 아니면 천안도 지나고 대전도 지나서 부산을 간다 라고 생각해 봅시다. 여러분 가는 과정에 이와 같은 이정표 있고 지역을 지나서 가는데 여러분 어디 간다고 생각해요 ? 광주 목표로 했다 그러면 나는 광주가요 부산목표로 하면 나는 부산가요 이렇게 얘기 하죠?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나는 천안가요 대전가요 이렇게 얘기 하지 않아요. 나는 광주 갑니다 .

중간에 있는 과정들은 생략하고 목표를 향해서 달려가는 겁니다. 우리가 천국가고 하나님의 영화로운 영광의 자리의 면류관을 바라보며 가면 중간에 있는 개울물이나 징검다리나 아니면 여러 가지 이러저러한 삶의 과정은 우리는 그저 스쳐지나가는 것일 뿐입니다 . 스쳐지나가는 것에 너무 민감하지 마세요. 스쳐지나가는 것에 너무 민감하지 마세요 .
그냥 스쳐지나 갈 뿐이다. 과정 거쳐 결과에 이른다. 자 따라합시다. 과정 거쳐 결과에 이릅니다. 그냥 과정일 뿐이에요. 과정 거처 결과에 이르니까요 .

결국 세상의 역사는 용기 있는 사람에 의해서 쓰여지는 것을 봅니다. 용기라는 것은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죠 .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특히 하나님이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영적인 신뢰로 말미암아 그리고 어려움과 고통을 극복했던 이와 같은 극복의 체험과 자신감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진정으로 주어지는 것이 용기입니다 .

여러분 어떤 때 자신 있어요? 어떤 때 용기가 생깁니까? 어려움을 극복했을 때 자신과 용기가 생기지 않습니까? 여러 가지 난관을 극복했을 때 용기와 자신 이 생기지 않아요? 여러 가지 훌륭한 여건만 갖춘 사람은 불안해요. 이 여건들이 언제 깨질까? 이 여건들이 언 제 깨질까 ? 불안해요. 그런데 여러 가지 좋지 못한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그 어려움을 극복해 냈고 또다시 또 그 어려움을 극복하는 과정 속에서도 또다시 하나님의 기쁨을 체험한 사람은요 여러 가지 환경에 별로 신경 쓰지 않아요. 어려움이 있으면 또 해결해 나가면 되지 뭐 라고 생각합니다. 자 우리 따라서 합시다. 어려움이 있으면 또 해결해 나가면 되지 뭐. 여러분 굉장히 중요한데요. 그런 자신감 가지는 주의 성도들 되기를 바랍니다.
아니 어려움 있으면 해결해 나가면 되잖아 아 힘든 일 있으면 그것 이루어 나가면 되지 뭐 그것이 우리에게 힘이에요. 자신감입니다. 그와 같은 삶의 자신감이 결국 우리를 용기 있게 만드는 겁니다.
어려움을 극복해 보지 못한 사람은 자신이 없어요. 어려움을 극복해 본 사람만이 자신을 가지게 되고 그 자신이 용기 되고 그 용기가 결국 우리 삶에 하나님의 역사를 쓰게 하는 겁니다.
우리는 나약한 성도들이 아니라 어려움 즈음 두려워 하지 않는 강인한 하나님의 백성들이에요. 그것을 통해서 삶의 파도를 해쳐나가고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를 이루어 가는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부르실 때 아멘 주예수여 오시옵소서. 라는 마음의 소망을 가지고 이제까지 베풀어주신 은혜로 감사합니다. 이제까지 주를 빛내게 할 수 있는 일에 작은 일에 보조적으로라도 사용될 수 있는 일에 감사합니다. 라는 것으로 우리 삶의 기쁨과 은혜를 가지고 주님 앞에 달려가야 합니다.
우리 삶에 대한 성공과 실패가 우리의 근거가 아니라 성공과 실패를 아울러 하나님 앞에 그 어떤 경우라 도 그것을 통합하여 결국 승리의 자리로 나아갈 수 있는 진정한 힘이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입니다.

올 한해를 돌아보면서 여러 가지 이러저러한 일이 생각들이 일어납니다. 주보에도 기록을 했지만 감사함 안타까움 또 마음에 드는 자신감 또 새로운 소망과 기대들 여러 가지 생각들이 우리에게 일어남을 봅니다. 현재 교회가 13 주년을 넘어서 14 주년째 나아가고 있고 2004년도 한해가 현재 마감되는 주일에 있습니다. 언제든지 하나님께서 함께하신다는 은혜에 대해서 확신이 있고 감사하고 또 이런 성도들에 대해서 감사합니다.

우리 성도님들은 목사의 설교를 통해서 또 은혜를 받고 믿음 생활을 하실지 모르지만 또 목사는 성도들 때문에 은혜를 받고 또 성도들 때문에 감사하고 힘을 얻게 되는 것 같아요. 물론 하나님이 주시는 영적인 감화력 에서 힘을 얻지만 또 성도들 통해서 실생활 속에서도 큰 은혜를 받습니다. 우리성도들의 모습을 관찰할 수 있는 기회가 있죠. 심방을 한다든가 대화를 한다든가 이러저러한 일들이 있습니다. 우리 성도님들 중에서 또 편지를 주셔서 위로도 하시고 대화 속에 여러 가지 일들을 통해서 많은 깨우침을 주시기도 하고 뿐만 아니라 제가 늘 생각하는 것은 같이 그 자리에 있어 주는 것이 큰 힘이 되는 것 같아요. 그저 그 자리에 같이 앉아 있어주면 그것이 모든 내용을 다 대변하는 것 같아요. 내 마음의 표현이 이것입니다 . 그 자리에 있어주는 것이 그 마음의 대변인 것 같아요.

얼마 전에 저녁에 위원회 모임이 있어서 같이 식사했더니 그런 얘기하더라고요. 늘 잘 하는 말인가봐요.
사명은 생명보다 귀하다. 이렇게 얘기 하더라고요. 목사도 아닌 성도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오다니. 목사인 제가 ‘아 내가 너무 작은 목사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사명은 생명보다 귀하다. 우리 그렇죠? 자 한번 따라서 해봅시다. 사명은 생명보다 귀하다 .
우리가 성도로서 하나님께 받은 사명 있을 텐데 그것은 생명보다 귀하죠. 생명 때문에 살아가는 사람이 있고 사명 때문에 살아가는 사람이 있어요. 생명 때문에 살아가는 사람은 밥먹다 가는 것이고 사명 때문에 살아가는 사람은 사역하다 가는 겁니다.

우리 삶 속에 과연 어떤 것이 더 귀한가? 우리에게 다가올 때 우리 삶은 달라지는 거예요 . 저는 우리 사랑하는 모든 성도님들이 받은바 그 사명이 있어 사명 때문이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어떤 가정을 심방하다 보니 그 가정에 크게 휘호를 그려 예수그리스도는 내 생애의 전부 입니다. 예수그리스도는 내 삶의 일부가 아니라 내 생애에 전부라고 고백하고 살아가고 있더라고요. 그것이 우리 성도님들입니다. 저는 그와 같은 모습을 볼 때 참 마음에 감동 을 받는 것 같아요.

교회 봉사는요 여건 되는 사람만 봉사하는 것이 아니더라고요. 여건이 안 되는데도 봉사하고 불구하고 주님 앞에 나아와 봉사하고 헌신하는 분들의 애틋한 심정을 봅니다. 몸이 건강해야만 봉사하는 것도 아니고 몸이 아픔에도 불구하고 주님 앞에 나와서 기도하고 봉사하고 헌신하는 분들도 봅니다. 넉넉한 사람이 봉사하고 다른 사람을 돕는 것이 아니라 넉넉하지 못한 상태에서도 다른 사람을 돕고 봉사하고 헌신하는 것을 봅니다.
과연 주님 앞에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인가. 우리 성도님들의 삶을 통해서 하나님의 역사가 실현되는 모습을 봅니다. 그것을 통해서 우리는 서로 은혜를 받고 하나님 앞에 은총을 받으며 주의 사랑과 은혜를 나누어 더욱더 강한 하나님의 백성들이 되는 것을 봅니다

이제 오늘의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 올 한해를 마치 면서 우리 성도님들은 어떠한 마음을 가지게 되십니까? 올 한해를 마칠 때 어떠한 말들이 우리의 안전에 전개되고 안전에 흘러 다니고 있습니까?
저는 우리 성도님들의 마음에 하나님께 대한 감사한 심정 속에서 사도바울처럼 내 때를 알고 후회 없는 삶을 살아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나님 앞에 면류관을 바라보면서 달려가는 삶이 되어 한해를 보냈을 때 기쁨과 감사 와 기대 속에 우리의 시간들을 이루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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