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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신년]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호 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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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홍문수 목사

2005년 새해가 시작됐습니다. 새해 첫 시간을 하나님 앞에서 맞이하는 여러분에게 풍성한 은혜와 축복이 임하기를 축원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렇게 기분 좋게 축복을 기원하면서도, 솔직히 마음 한 구석은 편치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이제 출발해서 뛰게 될 ‘2005년’이란 인생 경주의 코스가 그리 평탄하지만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변을 보면 심란합니다. 연말에 일간 신문들에 난 10대 뉴스를 보니까 국내외를 막론하고 10개 중 7~8개는 나쁜 뉴스였습니다. 이게 곧 세상의 모습입니다. 이런 모습이 해가 바뀐다고 금세 싹 달라질까? 그렇지 않을 겁니다. 그런 가운데 우리가 또 한 해를 살아가야 합니다. 또 우리가 개인적으로, 가정적으로는 우리가 얼마나 많은 문제들을 안고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새해에 새 출발을 한다고 표현을 하지만, 사실은 지금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온갖 문제들을 다시 짊어지고 가는 겁니다. 그러므로 그냥 지난 해 살던 대로, 지금까지 살던 대로 살면서 막연히 새해에는 잘 되려니 하고 앞으로 나아가면 얼마 안 가서 또다시 실망하고 실패할 게 뻔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새해에는 정말 승리하는 한 해, 축복된 한 해로 살아갈 수 있을까요? 지금 안고 있는 문제들을 냉정하게 바라보고 그 원인을 진단하고, 올바른 처방을 내리는 게 중요합니다. 마치 이런 것과 같습니다. 응급 환자가 피투성이가 되어 앰뷰런스에 실려오면 제일 먼저 무엇을 합니까? 지혈을 하는 등 응급처치를 해야 되지만, 온전한 치료를 위해서는 정확한 진단을 위해 검사를 해야 됩니다. 엑스레이를 찍는다, 피 검사를 한다 등등 ... 각종 검사를 실시합니다. 그래서 진단이 내려지면 거기에 따라 처방이 주어지고 적절한 치료를 실시하게 됩니다.

여러분,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안고 있는 개인적, 가정적, 사회 국가적 문제들을 해결하면서 새해를 승리하기 위해서 이런 과정이 꼭 필요하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호세아서를 중심으로 옛날 북 이스라엘 왕국의 시대상과 오늘 우리의 모습을 비교해 보면서 승리의 해법을 찾아도 보고자 합니다. 아무쪼록 이 말씀을 통해 오늘 시작되는 2005년은, 아니 남은 생애는 문자 그대로 형통하고 복된 삶으로 이어져가기를 축원합니다.

호세아서는 B.C. 8세기 경 이스라엘의 역사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 당시 이스라엘은 마치 풍전등화와 같았습니다. 곧 망할 나라의 모습입니다. 지도자로부터 백성들까지 속속들이 타락하고 부패한 가운데 하나님은 계속 무서운 심판을 경고하십니다. 구체적으로 당시 강대국으로 부상하던 앗수르 제국에 의해 멸망할 것을 경고하셨습니다. 그렇지만 살 길이 있다고 호세아는 호소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곧 자비로우신 하나님의 약속이기도 합니다. 그것이 오늘 본문 말씀이죠. 여기 보면 당시 이스라엘의 당면 문제의 원인을 진단하고, 해결책을 제시합니다. 이 말씀은 오늘 우리에게도, 오늘 이 시대에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한번 살펴보시죠.

[1] 호세아가 내린 진단 : 중증 환자 같은 이스라엘

그 당시 이스라엘은 겉보기에는 멀쩡했습니다. 여전히 정치, 경제적으로 번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호세아 선지자는 알았습니다. 이스라엘이 곧 심판으로 멸망할 것을! 이미 기울어지고 있는 사상누각인 것을! 그리고 그 원인은 이스라엘의 죄악 때문입니다. 지도자부터 백성까지 온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떠나 부패하고 타락하고 음란한 가운데 빠져 있었습니다. 이렇게 되면 결국은 하나님의 심판으로 망하게 됩니다. 이것은 하나의 공식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피조물입니다. 하나님은 우주만물의 창조주요 주권자이십니다. 인간의 근본 죄는 그 하나님에게서 떠난 것입니다. 그 결과 자기 마음대로 온갖 범죄를 저지르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 모습을 보고 오래 참으시고 회개할 것을 경고하지만 끝내 돌이키지 않으면 반드시 심판하십니다.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영적인 죄는 도덕적인 죄로 이어지고, 회개하지 않으면 마침내 하나님의 저주와 심판을 받게 됩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5장 포도나무와 가지 비유입니다. 요15: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리워 말라지나니 사람들이 이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하나님에게서, 예수님에게서 떨어지면 반드사 망하고 만다는 것입니다. 인간 욕심으로 자행자지하면 결국은 멸망합니다. 약1:15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누가복음 15장 탕자의 비유를 기억하시죠? 탕자는 집을 나가 혼자서 마음대로 잘 살 줄 알았습니다. 잠시는 정말 괜찮았습니다. 그러나 얼마 못 가서 흉년을 만나 쫄딱 망합니다. 돼지 먹는 쥐엄열매도 못 먹는 신세가 된 겁니다. 아버지를 떠나 가출하면 이렇게 됩니다. 마찬가지 하나님의 집에서 가출한 인간은 반드시 불행해지고 멸망하게 됩니다. 요나의 경우도 보십시오. 그가 하나님의 명령을 거부하고 도망갑니다. 제 깐에는 멀리 떠나 배 밑창에 숨었다고 생각했죠. 그러나 풍랑이 불어와 배가 뒤흔들렸고, 결국 그는 하나님 앞에 사람들 앞에 끌려나올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을 멀리 떠나면 신자나 불신자나 다 이렇게 됩니다.

성경을 보십시오. 언제부터 인간의 불행한 역사가 시작됐는지! 창3:9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가로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범죄하고 하나님을 떠나가는 그때부터 불행해진 겁니다.

그렇습니다. 거듭 말씀드리거니와 모든 문제의 근본 원인은 영적인 데서 찾아야 합니다.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아버지와 아들)를 정립하지 못하면 잘 될래야 잘 될 수가 없습니다. 잠시 잘 되는 것 같아도 결국은 망하고 만다는 사실입니다. 시37:1~2 “행악자를 인하여 불평하여 하지 말며 불의를 행하는 자를 투기하지 말지어다 저희는 풀과 같이 속히 베임을 볼 것이며 푸른 채소같이 쇠잔할 것임이로다”

당시 이스라엘은 바람난 여자 고멜와 같은 모습이었습니다. 고멜은 자기 남편 호세아를 버리고 다른 남자를 따라가 먹고 마시고 희희낙락합니다. 그러니 망하지 않을 수 없죠. 호세아 선지자는 이스라엘의 말로를 불을 보듯 뻔히 보고 있으므로 안타까워서 미칠 지경입니다. 그래서 회개할 것을 외칩니다. 그러나 끝끝내 돌이키지 않은 이스라엘은 B.C. 722년 앗수르 제국의 침략으로 망하고 맙니다. 처참하게 살육을 당하고, 살아남은 자들은 포로로 끌려가고 ... 설마 설마 하던 게 현실이 되고 만 것입니다.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혹시 지금 우리나라가 어려움을 당하고, 혼란 가운데 있는 게 하나님을 떠나서 그런 건 아닌가? 불신자들은 말할 것도 없고, 하나님을 믿노라 하는 우리들도 고멜이 바람피우듯 세상과 바람나지 않았나? 하나님보다 세상을 더 사랑하고, 하나님 앞으로 나아오는 것보다 세상으로 가는 것을 더 즐기고 있지 않는가? 그대로 방치하면 안 됩니다. 말씀의 경고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역사의 경고를, 그리고 오늘날도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경고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번에 동남, 서남 아시아에서 일어난 지진 해일을 보면서 여러분은 무슨 생각을 하셨습니까? 어제까지 사망자가 12만 5천명에 이르렀는데 계속 늘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너무 너무 안타깝습니다. 강 건너 불구경이 아닙니다. 불행을 당한 분들을 우리가 위로하고,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하지만, 동시에 영적인 교훈을 얻어야 합니다. 참, 인간이 아무 것도 아닙니다. 사람들은 ‘자연 재해’라는 표현을 쓰지만, 저는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생각합니다. 인류를 향한 경고입니다. 다만 그들이 대표로 당했을 뿐입니다. 참새 한 마리가 하늘을 날다가 떨어지는 것도 하나님의 허락이 없이는 안 된다고 말씀하지 않았습니까? 앞으로 이런 일들이 세계 도처에서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는 과학자들의 말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정말 무서운 일입니다.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하도 인간들이 하나님이 없다고 하니까 “야, 이 놈들아! 이래도 없냐?” 하고 경고하신 겁니다. 크리스마스 연휴에 발생한 것도 우연이 아닙니다. 크리스마스에 즐길 줄은 알면서도 하나님이 없다고 하고, 예수가 사생아라느니 막달라 마리아하고 바람났다고 합니다. 이젠 아예 ‘크리스마스’라는 말은 없애자는 인간들마저 생기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휴일로 놀고는 싶어서 그냥 ‘할러데이’라고 부르자고 합니다. 여러분, 바꾸어서 생각해 보십시오. 이런 인간들을 하나님이 어찌 그냥 보고만 계실 수 있겠습니까?

제가 이렇게 말씀드린다고 해서 우리는 예수 믿으니까 괜찮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런 일들은 언제든지, 어디서든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것입니다. 소돔 고모라의 심판은 지어낸 이야기도 아니고, 옛날 이야기가 아닙니다. 남의 이야기도 아니고, 오늘 우리의 이야기가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죠. 실로암에서 망대가 무너져서 사람들이 여럿 죽은 사건을 보고 말씀하신 겁니다. 눅13:4~5 “또 실로암에서 망대가 무너져 치어 죽은 열여덟 사람이 예루살렘에 거한 모든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치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됩니까? 호세아가 내린 처방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2] 호세아가 내린 처방 : 하나님을 향한 회개,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

 ① 1차 처방 :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가자!

1절.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기서 ‘돌아간다’는 말은? ‘회개’라는 말입니다. 이스라엘의 모든 문제의 원인이 하나님에게서 멀어진 것이므로, 그것을 해결하는 처방은 당연히 하나님에게도 돌아가는 것입니다. 회개하라는 겁니다.

흔히 많은 사람들이 후회하는 것을 회개와 혼동합니다. 전혀 다릅니다. 후회는 단순히 가책을 느끼고 심적으로 괴로워하는 것입니다. 별 게 아닙니다. 새로운 변화를 위해서는 후회 정도 갖고는 불가능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후회만 해서는 안 됩니다. 후회하는 가운데 새해라고 새롭게 결심을 해봤자 아무 것도 되질 않습니다. 죄악의 습관에서, 영적으로 악한 상태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어디 한두 번 속았나요? 매년 초에 지난 세월 후회하면서 금년만큼은 ... 이렇게 얼마나 여러 번 되뇌었습니까?

그러면 ‘진정한 회개’는 무엇일까요? 히브리어로 ‘슈브’인데 두 가지 개념을 포함합니다. 떠남과 향함!(Turn from, Turn to) 지금의 잘못된 모습이나 상태에서 완전히 돌아서는 겁니다. 그것은 곧 끊어버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 앞에 합당치 못한 죄악, 하나님을 멀리 떠나 즐기던 옛 습관을 단호하게 끊어버리는 겁니다. 그리고 하나님에게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회개에는 구체적인 결단과 더불어 구체적인 행동이 수반되어야 합니다.

요나가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도망갔지만 그래도 잘 한 게 있습니다. 그는 풍랑 이는 가운데 자기의 잘못을 솔직하게 고백하고, 뱃사람들에게 자기를 바다 물 속으로 던지라고 요구했습니다. 구체적인 결단과 행동이 있었다는 겁니다. 탕자 역시 잘못을 뉘우칠 뿐 아니라, 그 현장을 박차고 일어나서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이런 구체적인 행동이 없으면 회개가 아닙니다.

 ② 2차 처방 : 힘써 하나님을 알자!

우리는 하나님에게로 돌아올 뿐 아니라, 더 나아가 하나님과의 관계를 더욱 깊이 맺어가야 합니다. 그래서 호세아는 호소합니다. 3절.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힘써 알자! 여호와를 알자! 여기서 ‘안다’는 단어는 히브리어로 ‘야다’인데, 깊은 관계를 의미합니다. 마치 부부가 동침하는 것처럼 아주 깊은 관계를 의미합니다. 창4:25 아담이 아내와 동침했다는 기록이 나오는데, 여기서 동침한다는 단어가 바로 ‘야다’입니다.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이것은 어떤 것을 가리킵니까? 기본적인 경건 생활을 통해 하나님과 깊은 관계를 맺어가는 것을 가리킵니다. 말씀 묵상과 기도 생활,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깨들은 대로 순종하는 생활 등 신앙의 ABC입니다. 요한복음 15장의 포도나무 비유에서 포도나무이신 예수님에게 가지로 꼭 붙어 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무엇이든지 기본 자세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으면 문제가 생깁니다. 운동선수가 슬럼프에 빠지고 참패를 당하는 이유는 무엇때문인가요? 기본 자세가 흐트러져서 그러는 겁니다. 운동선수가 조금 잘 되고 유명해지면 연습을 게을리 하고 기본 자세가 흐트러집니다. 그러면 곧 슬럼프에 빠져버립니다. 그러나 기본 자세가 흔들리지 않고 잘 유지되는 사람은 롱 런을 합니다.

지난 해 아테네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여자 양궁 선수가 언론의 쇄도하는 인터뷰도 끊고, 연습에 물두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러더니 얼마 후 벌어진 전국 체전에서도 계속 선전을 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저 선수는 계속 발전하겠구나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지만 항상 하나님 아버지를 의지했고 깊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늘 붙어 있었다는 겁니다. 한편으로 그런 생각도 해봅니다. 하나님 아들이기에, 하나님 자신이기에, 하나님 아버지에게서 따로 있다 하더라도 독자적으로 무엇이든 다 잘 하실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한시도 떨어지지 않으셨습니다. 막1:35 보면 새벽 미명에 항상 한적한 곳에 가셔서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와 깊은 대화를 하시고 깊은 교제를 나누셨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심으로써 예수님은 항상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셨고 승리하셨던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승리의 비결은 하나님에게 돌아가서, 하나님과 깊은 영적 관계를 맺고 교제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며 사는 것입니다. 아주 기본적인 자세를 늘 유지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혹시라도 우리가 신앙생활 하면서 흐트러진 게 있었다면, 새해 벽두에 바로 잡기를 바랍니다.

[3] 호세아가 전한 하나님의 약속 : 회복과 축복

1절(중). “ ...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중증 환자 같은 이스라엘을 치료하고 회복시켜 주시겠다는 약속의 말씀입니다.

2절.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제 삼 일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 앞에서 살리라” 이틀 후에, 제 삼일에 ... 이 말은 신속하게 회복시켜 주시겠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회개하고 돌아와 하나님을 힘써 알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들에게 단순히 과거 상태로 회복시켜 주시는 데 그치지 않으십니다. 그 이상의 은혜와 축복을 내리십니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징계를 하시고, 시련을 주시는 것은 그 자체보다 회개하고 돌아와서 하나님과 온전한 관계를 회복하고 축복을 누리도록 하시기 위함입니다.

3절. “ ... 그의 나오심은 새벽 빛같이 일정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리라” 새벽 빛은 동녘에 떠오르는 해를 가리킵니다. 매일 년 365일, 윤년에는 366일 하루도 거르지 않고 어김없이 떠오르는 해처럼 하나님의 사랑은 신실한 사랑입니다. 여기서 ‘비’는 이른 비를 가리킵니다. ‘이른 비’는 파종기에 내리는 비입니다. 그리고 ‘늦은 비’는 추수기에 내리는 비입니다. 그러니까 열매를 잘 맺도록 충분한 비를 주신다는 것입니다. 요즘으로 말하면 인생을 살아감에 있어 무엇을 하든지 때를 따라 형통하도록 축복하신다는 뜻입니다.

군대에서 사격을 할 때 ‘영점 조준’이란 게 있습니다. 자기가 쏠 총을 잘 조정하는 것인데, 이게 안 되면 아무리 앞에 있는 표적에 잘 조준해서 쏘는 것 같아도 자꾸 빗나갑니다. 헛총질이 되는 겁니다. 그런데 영점 조준을 하면 표적을 향해 이것을 쏘는 대로 명중합니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인생의 영점조준은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깊이 아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영혼도 기쁨과 평강으로 충만하고, 더 나아가 범사가 형통하게 됩니다. 혹시 시련이 와도 결국은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축복을 받게 됩니다.

성경에 보면 영점 조준이 잘 된 사람들이 많이 나옵니다. 그 중에 요셉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함께 하시므로 형통한 자가 되었다는 기록이 많이 나옵니다. 그러니까 고난도 변해서 축복과 영광이 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잘 정립된 사람은 이렇게 승리하는 법입니다. 이것이 혹시 흐트러진 사람도 다시 회복하면 모든 게 회복됩니다. 그리고 그 이상의 풍성한 복을 얻게 됩니다. 탕자를 보십시오. 그는 비극의 주인공이었지만 회개하고 아버지 지으로 돌아오자 축복의 주인공이 됩니다. 가락지와 새 옷이 그에게 주어집니다. 그리고 아버지는 그를 위하여 살진 송아지 잡고, 풍악을 울리고, 잔치를 열어줍니다.

저의 모(母) 교회에 최연소 장로님이 계십니다. 그분이 비교적 연소한 나이에 장로로 선출되셨다는 소식을 듣고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왜냐하면 오래 전이지만 제가 있을 때만 해도 그분은 소극적이고 교회 변두리에서 빙빙 돌았거든요. 그런데 계기가 있었습니다. 초교 5년생 아들이 한번은 동네에서 놀다가 후진하는 유조차 치어서 중태에 빠졌답니다. 급히 병원으로 실려갔는데 가망이 없어 보였습니다. 그런데 노련한 의사 선생님이 나중에 원망하지 않고 맡겨 보겠냐고 묻더랍니다. 그 판국에 다른 말을 할 수도 없고, 그러겠다고 했더니 그분이 아이의 뒤통수를 세게 치더랍니다. 그러니까 아이가 피를 펑펑 쏟더니 호전되었습니다. 그후 급속히 회복되면서 완치된 것입니다. 그 일이 계기가 되어서 완전히 하나님에게 찰싹 붙어서 신앙 생활을 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축복도 많이 받고 마침내 장로님이 되셨다는 겁니다.

또 이런 이야기도 있습니다. 프랑스의 대문호 빅토르 위고의 이야기입니다. 그의 대표작인 「레미제라블」(一名 장발장)의 탄생 배경입니다. 그는 본래 사생활이 문란하고 방탕한 문인이었습니다. 가족들에게도 횡포가 심했고 ... 그러던 어느 날 그의 딸이 센느 강에서 익사체로 발견됩니다. 그는 딸의 시신 앞에서 오열합니다. “내가 천하의 큰 죄인인데 네가 죽다니 ... 아아, 죽은 것은 내 딸이 아니다! 죄인 중에 괴수인 나의 죽음이다!” 그는 이 일을 계기로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왔습니다. 방탕한 생활도 정리하고, 경건 생활에 열심을 냈습니다. 그후 그의 작품 세계가 완전히 달라졌고, 불후의 명작 「레미제라블」이 탄생한 것입니다.

[4] 새해 벽두 나의 결단 : 회개 & 힘써 하나님을 알자!

성도 여러분! 이 시간 잘 오셨습니다. 새해를 맞이하면서 여러분은 제일 먼저 무엇을 하고 싶으십니까? 지금 나 자신과 내 가정의 문제를 하나하나 살펴보십시오. 또 이 시대를 사는 동시대인으로 이 시대의 아픔과 문제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십시오. 그리고 과연 그 문제들의 원인이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 보십시오! 단 하나입니다! 하나님과의 영적인 관계가 문제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고 하나님을 날마다 깊이 알아가고 있습니까? 그러면 오늘 나에게 문제가 있어도 괜찮습니다. 기도하십시오! 그것이 변하여 더 좋은 것으로 변화될 줄로 믿습니다.

그러나 만일 하나님보다 세상을 더 가까이 하고 있습니까? 끊어버리지 못한 옛 습관들에 얽매여 있습니까? 진정으로 회개하십시오. 세상에서 죄악을 끊고 하나님 앞으로 나아오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을 가까이 하면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십시오. 그러면 모든 게 주 안에서 해결되고 형통케 줄로 믿습니다. 겨우내 산 위에 쌓인 눈을 녹이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봄이 되면 저절로 녹습니다. 하나님과의 영적 관계가 봄날과 같이 회복되면 우리의 삶을 저절로 승리하고 형통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인간은 별 수 없습니다. 요요 같아요. 요요 무엇인지 아시죠? 바퀴 같은 것 두 개를 붙이고 그 사이에 끈을 감아서 갖고 노는 장난감 ... 멀리 가는 것 같은데 결국은 가까이 돌아와요! 하나님에게서 도망가지 마십시오. 멀리 가지 마십시오! 도망가 봤자 돌아오고야 맙니다. 허송세월 마시고 정력과 물질 낭비하지 마시고 하나님 앞에 나아오십시오! 그리고 놀아도 하나님의 동산에서 노십시오!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과 더불어 사십시오! 그러면 반드시 승리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새해에 이런 축복이 여러분에게 차고 넘치기를 진심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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