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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배와 신앙 ①:예배 중심의 인생(창 12: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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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홍문수 목사

여러분, 우리가 신앙생활을 시작하면서 하면서 가장 먼저 배우는 것이 무엇입니까? 예배이죠? 그리고 교회를 생각하면 제일 먼저 무엇이 떠오릅니까? 예배이죠? 그렇습니다. 예배는 신앙의 기본이요 핵심입니다. 그런 점에서 예배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습니다.

새해를 맞이하여 많은 사람들이 무언가 새롭게 출발하려고 애를 쓰는데, 우리 신앙도 다시 한번 새롭게 출발하면 좋겠습니다. 늘 하던 것도 오래 동안 하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타성에 젖기 쉽고, 느즈러질 수 있습니다. 비근한 예로 나사를 꽉 조여 놓아도 시간이 흐르면 헐거워집니다. 그래서 수시로 확인하고 다시 조여 줄 필요가 있는 겁니다.

우리 신앙생활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새로 시작하는 분은 물론이고 오래 된 분들도 신앙의 기본을 다질 필요가 있습니다. 어쩌면 신앙생활을 한 지 오래된 분들에게 이런 과정이 더 필요한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어차피 처음 시작하는 분들은 아예 모르니까 서툰 반면 시키는 대로 잘 따라합니다. 그래서 처음에 잘 따라가기만 하면 제일 잘 할 수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오히려 오래되면 잘못 굳어진 것, 자기도 모르게 느슨해진 것을 모르고 방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엉뚱한 모습으로 변질될 가능성도 없지 않습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아일랜드 출신 플루트 연주자 제임스 길웨이라는 분이 있는데, 그는 명연주자이며 연습을 많이 하는 노력파였습니다. 그런데 나이 50세에 이르러 자신을 돌아보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매일 몇 시간씩 기본 음계를 연습하면서 자신을 점검해 보았던 겁니다. 그러던 중 자신이 얼마나 잘못되어 있는지 발견하고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나중에 제 페이스를 찾은 후 그는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나는 어떤 곡이든 척척 연주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처구니없게도 기본 음계는 부자연스러웠고, 조가 바뀌면 나도 모르게 흐트러지곤 했습니다.” 여러분, 노련한 사람도 얼마든지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대가는 늘 기본에 충실한 사람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신앙생활을 잘 해보고 싶습니까? 신앙의 대가가 되기를 원합니까? 그렇다면 마찬가지 신앙의 기본에 충실하기 바랍니다. 무엇보다 참 예배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신앙생활도 충실해지고, 그에 따라 우리 삶도 하나님의 축복으로 풍성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오늘부터 3회에 걸쳐 예배와 신앙이라는 주제로 말씀을 전해드립니다. 아무쪼록 이 말씀들을 통해 우리의 예배 생활을 재점검하시고, 더욱 아름다운 신앙과 복된 인생을 이루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은 그 첫 번째 순서로 ‘예배 중심의 인생’이란 제목으로 말씀을 전해 드립니다.

[1] 예배가 인생의 중심인 이유 : 인간 창조와 구속의 목적

먼저 예배란 무엇인가를 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여러분, 예배가 무엇입니까? 우리가 지금 드리고 있는 공식 예배는 물론이고, 넓은 의미로 예배는 하나님을 높이는 모든 행위를 의미합니다. 영어로 예배를 Worship이라 말하는데, 그 단어는 두 개의 말에서 유래합니다. worth(가치있는)+ship(신분) 그러니까 하나님이 가장 위대하신 분이므로 그분에게 최상의 가치를 돌려드리는 행위가 바로 예배인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영광과 위대하심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의 놀라운 은혜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이 예배는 신앙생활의 중심입니다. 아니, 그 이전에 ‘인생의 중심’입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이 바로 예배이기 때문입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하나님은 인간을 예배자로 창조하셨습니다. 사43:7 “무릇 내 이름으로 일컫는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들을 내가 지었고 만들었느니라” 사43:21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

그런데 안타깝게도 인간이 하나님을 배반하고 자기가 하나님이 되려고 했습니다.(창3:5) 이것인 인간의 근본 죄입니다. 인간은 어디까지나 창조주 하나님을 높이고 그분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복을 누리는 법인데, 하나님 대신 자기를 높이려고 했습니다. 그게 호락호락 되나요? 안될 말입니다. 결국 범죄한 인간은 예배의 실패자로 전락하고, 생명과 축복의 길 대신 멸망과 사망의 길을 가게 됩니다.

그런 인간을 영원한 멸망과 사망의 길에서 구원하러 오신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는 십자가에서 인간의 죄를 대속하심으로 믿는 자를 구원하십니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마다 죄 사함을 받고 새 사람이 됩니다. 그래서 다시 예배자로 회복되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하나님이 예수님을 통해 인간의 구원하시는 목적은 다름 아닌 예배에 있습니다. 엡1:5~6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

이런 까닭에 장로교회 교리를 요약해 놓은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의 제1문에 보면 무슨 말이 나옵니까?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이 무엇인가?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과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러분, 신앙생활을 가장 잘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참 예배자입니다. 참된 예배를 드리는 사람이 곧 신앙의 대가인 것입니다.

[2] 예배가 인생의 중심이었던 사람 : 신앙의 대가 아브라함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입니다. 이 말은 우선 하나님 백성의 시조라는 뜻이죠. 동시에 신앙의 모델이라는 뜻입니다. 정말 아브라함의 신앙은 천추만대에 모든 성도들이 본받아 마땅한 신앙의 모범입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은 가위 ‘신앙의 대가’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귀한 신앙의 핵심이 무엇인가 하면 바로 예배입니다. 그는 늘 하나님을 높이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며 찬양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십시오. 아브라함은 메소포타미아 지방 갈대아 우르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 가나안 땅까지 왔습니다. 그런데 당시 갈대아 우르는 문명의 중심지인 반면, 가나안 땅은 낙후된 지방입니다. 땅이 척박하고 문화 문명이 뒤떨어진 곳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신앙 때문에 거기까지 찾아온 것입니다. 그는 가나안 땅에 도착하자 예배합니다. 그의 신앙의 중심이 예배였던 것을 우리는 본문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7절 보면, 가나안 땅에 들어온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이 나타나셨습니다. 그러자 그는 어떻게 합니까? 후반절 봅니다. “ ... 그가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를 위하여 그 곳에 단을 쌓고” 제단을 쌓았다는 것은 희생 제사를 드렸다는 겁니다. 희생 제사는 대속을 의미하는 피의 제사입니다. 요즘으로 말하면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를 의지하면서 예배를 드렸던 것입니다. 그는 비록 척박한 땅에 와서 힘든 상황이지만 하나님을 바라보고 그 약속을 굳게 믿음으로 하나님을 높이고 찬양합니다.

그런데 가나안 땅 안에서 다른 곳으로 자꾸 이동합니다. 왜 그랬을까? 아마 원주민이 차지하고 있는데다 땅의 형편이 좋지 않으니까 여기 저기 쫓겨 다닌 것인지 모릅니다. 말하자면 유목민 생활을 한 겁니다. 그는 옮겨가는 데마다 제단을 쌓고 예배를 드립니다. 어려운 여건 가운데서도 늘 예배 중심으로 살았습니다.

8절 보면, “거기서 벧엘 동편 산으로 옮겨 장막을 치니 서는 벧엘이요 동은 아이라 그가 그 곳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더니 ...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는 것은 하나님을 향해 감사 찬양하고 기도하면서 예배를 드렸다는 뜻입니다. 이처럼 그는 늘 예배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특히 아브라함의 예배에 있어 하이라이트는 무엇보다 창세기 22장에 나오는 이삭 번제 사건입니다. 하나님이 그의 신앙을 시험하려고 모리아 산에 가서 독자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는 믿음으로 순종합니다. 번제단에 이삭을 묶어놓고 칼로 내리치려고 합니다. 이로써 그는 하나님을 그 어떤 것보다, 자기 자신보다 더 소중한 이삭보다도 더 사랑하고 더 높여드린 것입니다. 말하자면 최상의 예배를 드렸던 것입니다.

우리는 이와같은 아브라함의 예배를 통해 두 가지를 배울 수 있습니다.

첫째는, 예배의 횟수에 관한 것입니다. 그는 항상 예배하는 사람입니다. 옮겨갈 때마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예배했습니다. 그에게 있어 예배와 생활은 한데 어우러져 있습니다. 일 헤아릴 수 없이 예배하는 모습입니다.

어떤 분들은 한국교회에 예배가 너무 많다고 비판을 합니다. 많기는 하죠. 주일낮, 오후(저녁), 삼일, 새벽, 구역, 금요기도회, 개업예배, 출생 예배, 돌예배, 입학예배, 졸업예배, 결혼예배, 약혼예배, 취임예배, 회갑예배, 고희예배, 임종예배, 장례예배, ... 계속 하라면 더 할 수도 있습니다. 정말 많기는 합니다. 그러나 저는 이렇게 많은 게 결코 나쁘다고 생각지 않습니다. 물론 예배를 너무 기복적으로만 생각하면 곤란하겠죠. 하지만 예배의 본질을 잘 지킨다면 횟수가 많을수록 좋습니다. 교회에서도, 가정에서도, 직장에서도, ... 어디서든 자주 예배하면 좋은 겁니다. 왜냐하면 예배는 하나님을 만나는 것 아닙니까? 그리고 그분께 감사드리고 찬양하는 것 아닙니까? 그러면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결과적으로 우리 영혼도 잘 되고, 하나님이 부어주시는 복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종말 좋은 것입니다.

여러분! 아무쪼록 금년에는 예배의 횟수를 늘려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중에 초신자분이라면 처음부터 예배 많이 드리는 것을 신앙의 틀로 세우시면 좋습니다. 그리고 오래된 신자라면 한번 스스로를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혹시 예배 생활에 게을러지지 않았나요? 곶감 빼먹듯이 하나 둘 빼먹고 하나 둘 달랑 달려 있는 모습은 아닌가요? 만일 그렇다면 예배 생활을 회복하십시오. 그래서 아브라함처럼 날마다 어디서든 예배하는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둘째는, 예배의 질에 관한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최선을 다하는 예배를 드렸습니다. 비록 어려운 환경 속에서 고단한 삶을 살았지만, 어디는 가든 무엇을 하든 제일 먼저 단을 쌓고 최선을 다해 예배를 드렸습니다. 심지어 독자 이삭까지 드리지 않았습니까? 우리도 아브라함처럼 뜻과 정성을 다해서 예배하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3] 예배를 통해 최상의 복을 누린 사람 : 복의 근원 아브라함

성경을 보면 아브라함처럼 영적으로 육적으로 복을 많이 받은 사람도 드뭅니다. 그러면 그가 그렇게 풍성한 복을 받은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그의 인생이 예배 중심의 인생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예배자 아브라함을 기뻐하셨습니다. 그리고 복을 주셨습니다. 물론 예배는 무엇보다 먼저 드리는 데 그 의미가 있습니다. 예배는 성도의 당연한 의무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예배자를 기뻐하시고 복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결과적인 면에서 보면 예배는 특권입니다.

사실 예배는 아무나 드릴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예수 십자가 보혈로 정결케 된 성도만이, 하나님의 자녀만이 하나님 앞에 나아가 예배할 수 있습니다. 오늘만 해도 우리가 이렇게 모여 예배드리는 것은 정말 큰 특권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이 예배의 자리에 나오기 위해 우리에게 세 가지 은혜가 필요했습니다. 신앙과 건강, 그리고 시간입니다. 이 세 가지 중 하나라도 결여되었다면 이 자리에 나올 수 없었을 겁니다.

아브라함은 예배 중심의 사람을 통해 큰 복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이 그에게 약속했던 모든 말씀이 다 성취되었습니다. 창12:2~3을 보십시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 정말 이 말씀대로 이스라엘이 큰 민족이 되었습니다. 수효도 그렇지만,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민족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유명인사가 되었습니다. 물질적으로는 거부가 되었습니다. 복의 근원이 되었다는 것은 원문을 보면 그냥 ‘복이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강조법입니다. 아브라함이 복 자체가 되었다는 것은 복이 넘쳐서 남에게 나눠주는 복의 통로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특히 그의 후손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모든 족속이 구원의 복을 얻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특히 흥미로운 것은 ‘복’이라는 단어입니다. 히브리어 복은 ‘베라카’인데, 어원 상으로 ‘무릎꿇다’라는 단어에서 유래합니다. 그러니까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는 것은 곧 예배입니다. 그러니까 예배가 곧 복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시편 가지는 말합니다. 시73:28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 ”

그러므로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예배의 승리자는 인생의 승리자요, 예배의 실패자는 인생의 실패자이다!” 예배는 복과 저주의 갈림길입니다. 예배에 의해 복과 저주가 갈라지는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많은 인물들이 예배에 승리함으로 복을 받았습니다. 반면 예배에 실패함으로
저주를 받았습니다. 사무일상 7장을 보면 사무엘이 사사가 되자 마자 백성을 모으고 미스바 성회를 가집니다. 예배한 겁니다. 그때 숙적 블레셋이 침략해 왔지만 하나님이 승리케 해 주셔서 그후 태평성대를 이룹니다. 레위기 10장을 보면, 나답과 아비후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들은 대제사장 아론의 아들들이며 본인들도 제사장입니다. 그런데 다른 불로 분향하다가 즉사합니다. 예배에 실패해서 멸망한 것입니다. 가인도(창세기 4장), 사울왕도(사무엘상 15장) 예배에 실패해서 망한 사람들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날마다 예배하는 삶을 살아야 되지만 특히 주일을 잘 지키시기 바랍니다. 주일을 특별한 날입니다. 주일 예배는 결코 빼먹지 마십시오. 주일은 구약의 안식일의 연장입니다. 그리고 그 위에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로 재창조를 이룬, 즉 구속의 의미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주일은 부활기념일이요 구원기념일입니다. 구속의 은총에 감사하고 예배하는 날인 동시에 하나님이 복 주시는 날입니다. 창2:3 보면 안식일에 복을 주셨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주목할 것은 인간이 창조된 후 처음 맞이한 날이 무슨 날입니까? 안식일입니다. 그러니까 인간은 먼저 하나님 앞에 나아와 복을 받고 세상에 나아가 일을 하는 것입니다.

이게 하나님이 세우신 축복의 원리입니다. 복은 하나님이 주시는 겁니다. 인간 스스로 얻는 게 아닙니다. 아무리 애써도 안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시127:1~2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경성함이 허사로다 너희가 일찌기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도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원리대로 살아야 합니다.

달력을 볼 때마다 기억하십시오. 먼저 빨간 날이 있습니다. 그 날에 하나님 앞에 나아와 예배하고, 그후에 검은 날 세상으로 나아가 공부도 하고 사업도 하십시오. 그럴 때 하나님이 복 주시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주일은 정말 특별한 날입니다. 이상한 날입니다. 주일에는 좋은 일도 많고 나쁜 일도 많습니다. 주일은 은혜 받는 날입니다. 복을 받는 날입니다. 평일에 가랑비로 받는다면 주일에는 소낙비로 받습니다. 반대로 주일 날 무서운 일들도 많이 일어납니다.

6.25는 주일 날인데 그 새벽에 북한 인민군이 남침했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큰 손해를 보았습니다. 히틀러가 영국을 공격한 것도 주일입니다. 웰링턴 장군이 잘 막아내 독일군은 패배하였고, 그후 완전히 패전국이 됩니다. 일본도 진주만을 주일에 공격합니다. 그러나 그후 에 기울어져서 결국 원자탄을 맞고 패전합니다. 미얀마(버마)에서 있었던 아웅산 폭발 사건 도 주일 아침에 일어났습니다. 안타까운 이야기지만, 지난 연말 서남아시아의 지진 해일도 성탄절 다음 날인 주일에 발생되었습니다. 정말 이상합니다. 이것은 하나의 원리입니다. 주일의 중요성을 꼭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새해에 어떤 결심을 하셨습니까? 그 결심 가운데 예배에 관한 결심을 포함시키기 바랍니다. 아브라함은 우리에게 도전합니다. 예배 중심의 인생으로 승리한 이야기를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아무쪼록 저와 여러분도 아브라함처럼 예배 중심의 인생을 살아감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더 나아가 복된 인생 이루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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