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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희망의 공급자가 되라! (욜 2:2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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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공급자가 되라!
요엘 2: 28-32

'레빈'이라는 박사는 우연히 어떤 사람은 행복해지고, 어떤 사람은 불행해 지는가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연구한 결과 다음과 결론을 얻었다고 합니다.  행복하게 사는 사람은 행복한 언어를 듣고 자랐으며, 지금도 행복의 언어를 듣고 사는 사람들이라는 겁니다.  반면에 불행하게 사는 사람은 불행한 언어를 듣고 산 사람들이라는 겁니다.  결국 사람은 자기가 어떻게 형성되었는가를 말로 표현하면서 살고, 말한 것을 실천하며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의사들의 말에 의하면, 사람이 '죽겠다'고 말할 때에 어깨가 축 늘어지고 몸의 구조와 세포와 신경이 죽을 준비를 하고 있다고 합니다.  반면에 '살 수 있다'고 말하는 순간부터 몸의 모든 조직과 세포와 신경이 살 준비를 시작한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행복은 환경이 아니라 생각입니다.  우리의 역사가 아무리 어렵다고 할지라도, 여러분의 삶의 주변과 환경이 아무리 암울하다고 할지라도 우리의 생각이 병들지 않고 건강하다면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인생은 아직도 살아볼 가치가 있습니다.  인간은 삶의 형편이나 환경에서 받는 것보다 더 강한 지배를 받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영의 지배를 받는 길입니다.  하나님의 계시의 지배를 받는 믿음의 사람은 극한 환경에서도 당당하게 떨치고 일어설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성령의 이끌림을 받는 축복된 한 해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이 내 뱉는 말 그대로 역사는 이루어집니다.  죽겠다고 한다면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살겠다고 한다면 살게 됩니다.  기왕이면 보다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믿음의 생각으로 당당하게 살아가는 한 해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 한해, 반드시 하나님의 축복된 해가 될 것이다. 자기 체면을 거십시오.  행복의 언어만을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역사는 무엇이 움직일까? 어떤 사람은 총 끝이 움직인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돈이 움직인다고 말합니다.  어떤 사람은 권력이 움직인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아닙니다.  역사는 하나님의 뜻이 움직입니다.  하나님의 계시가 인류의 역사를 움직입니다.  인류 역사에서 위대한 지도자는 하나님의 계시를 받은 믿음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2002년 새해를 시작하면서 세상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말고 하나님의 계시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시기 바랍니다.  세상 사람들이 나를 바보 취급하고 조롱한다고 할지라도 요셉처럼 믿음의 꿈을 꾸시기 바랍니다.
저는 새해를 시작하면서 우리 모두가 희망을 공급하는 믿음의 사람이 되자고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나는 희망의 공급자가 되리라!  그렇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희망을 공급하는 믿음의 사람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어떤 분은 저의 말에 속으로 이렇게 외치고 있을는지도 모릅니다. '아니 목사님. 희망을 공급하기는 고사하고 나 먹기도 힘들고, 나 살기도 힘들도, 살맛도 안 나는데 도대체 무슨 희망을 공급한다는 말입니까?'

그러나 여러분, '희망의 공급자가 되라!'는 말씀은 저와 여러분을 향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 시대를 향한 하나님의 예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려울 때마다, 답답한 사람을 만날 때마다, 어리석은 사람을 만날 때마다, 인생을 혈기와 자기의 기분으로 하나님의 원칙을 깨면서 재주를 부리다가 넘어진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그 사람 속에 어떻게 하면  희망을 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용기를 줄 수 있을까? 이것만을 생각해야 합니다.  이것이 믿음의 사람이 가져야 할 바른 삶의 자세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금년 한 해를 살아가면서 우리 모두가 희망의 공급자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이 어느 곳에 가든지, 어떤 조직에 있든지, 누구를 만나든지 희망의 공급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때문에 여러분의 집안이 살맛이 나야 됩니다.  여러분 때문에 여러분을 만나는 모든 사람들이 살맛이 나야 됩니다.  우리 언양 영신교회 때문에 이 언양 땅이 살맛이 나야 됩니다.

믿음의 사람이 지나가는 곳에는 잔잔한 파도가 일어나야 합니다.  삶의 의욕을 잃어버린 사람에게는 살고 싶은 욕망 일어나야 합니다. 저주와 미움으로 가득찬 사람에게는 용서와 사랑의 훈풍이 불어야 합니다.  부정적인 생각으로 비뚤어지게 바라보는 사람에게는 긍정적인 생각으로 바로 볼 수 있는 영의 눈을 뜨게 해 주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절대로, 천에 하나 만에 하나라도 절망의 공급자가 되지는 마십시오.  실개천 같은 희망이라도 희망의 공급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희망의 공급자가 되기 위해서는 꿈을 꾸어야 합니다.  끔이 무엇입니까? 비전이 무엇입니까? 비전이 무엇입니까?  어렵습니까?  아닙니다. 쉽습니다.  비전이란 미래에 대한 그림입니다.  건축하는 분들을 보면 집을 짓기 전에 수많은 설계도를 그립니다.  이 설계도가 꿈입니다. 교회라고 하는 곳은 정신적 창조를 만들어 주는 곳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보이는 것들은 보이지 않은 것들이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정말로 어려운 시대에 혼란과 혼돈의 역경을 뚫고 나가는 사람들을 보면, 그들은 하나님의 계시와 영감으로 보이지 않은 것을 창조해 나가는 사람들입니다.  저는 우리 모두가 이렇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이런  하나님의 귀한 복을 받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는 지금 다 집단적인 피해자들입니다.  어떤 집단적인 피해자들입니까?  성공이 무엇이냐? 라고 하는 성공의 기준에 대한 집단 피해자들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런 것입니다. 내 것과 네 것을 바꾸자는 것입니다.  나는 조금 줄 테니 너는 많이 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못된 방법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속임수가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성품이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심보가 더러워졌습니다. 사람들이 갖고 있던 영원한 어떤 원칙들이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남의 것을 많이 뺏고, 남의 것을 많이 갖느냐 하는 그런 경제 구조의 시각들이 사람들을 물들이기 시작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내 것은 조금 주고 저 사람의 것을 많이 빼앗아 올 수 있을까?  그러다 보니 믿을 수 없는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원수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이 땅의 인류에게 준 행복의 경제 원리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런 교환 경제가 아니라 자선 경제라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봄이 되고 여름이 되면 꽃이 피고 열매가 맺습니다.  그렇게  꽃이 피고 열매 맺는 것들이 많이 주고 조금 받습니까?  그 것하고는 상관이 없습니다.  이들이 꽃피고 열매 맺는 것은, 어 다음다운 열 매, 더 큰 열매, 더 성실한 열매, 더 건강한 열매를 맺어서 더 많이 주기 위해서입니다.  그렇습니다.  꿈을 가진 자는, 하나님의 계시를 받은 자는 더 많은 것을 주기 위해서 나타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계시는 혼란의 시대를 여는 축복의 감추어진 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교회가 어떤 교회입니까?  자신의 그룹에 있는 모든 불신의 씨를 씻어 낼 수 있는 희망의 공급자들을 만들기 위해서 이 교회는 세워졌습니다.  어디를 가든지, 어느 집단을 가든지 모든 불신의 씨를 씻어 낼 수 있는 희망의 공급자들이 모인 곳, 그곳이 바로 언양 영신교회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어디를 가든지 희망의 공급자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소망의 공급자가 되십시오.  나는 형제만 만나면 살맛이 납니다. 그 가슴과 그 생명과 그 영혼 속에 하나님의 희망의 빛이 찬란하게 비추어지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지금 이 시간에 여러분의 몸 전체에 하나님의 생가가 철철 흘러 넘치도록 하십시오.  간혹 분재를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합니다.  만일 사장님이 하나님의 생가에 철철 넘쳐 가면 사원들이 어떨까요?  좋아할 것입니다.  반대로 사장님이 매일 이마에 주름살을 그리면서 '죽겠는데!' 안되겠는데!'라며 신경질을 내면 어떻게 될까요?  당연히 싫어할 것입니다.  기업을 어떻게 살립니까?  기업이 살기 위해서는 구조조정을 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그런다고 삽니까?  내 좇는다고 삽니까?  분재들이 살아날 때 다 끊어냅니까?  뿌리부터 생기가 돋아나서 살맛 나게 만들면 사는 겁니다.  우리는 믿음의 사람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세상의 원칙을 붙들면 안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원한 원칙을 붙들어야 됩니다.

방자하면 큰 일입니다.  교만은 패망을 가져오고, 겸손은 자유를 가져옵니다.  교만과 오만의 폭력으로부터 자신에게 자유함을 주어야 합니다.  나 지신을 교만과 오만이라는데 포로가 되면 큰 일입니다.  망합니다.  결코 자기 속의 자만심을 한시도 방치하면 안됩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늘 이 시간 교만의 바다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계시의 옷자락을 붙들기만 하면 다시 일어날 수가 있습니다.  열두 해 동안 혈루병으로 몸서리치던 여인이 주님의 옷자락을 붙들고 일어났습니다.  내가 교만의 바다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다고 생각된다면 여러분, 이 시간 하나님의 영감의 옷자락을 붙들고 일어나시기 바랍니다.  부정과 좌절의 바다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다고 생각된다면 여러분, 이 시간 하나님의 능력의 옷자락을 붙잡고 꿈의 사람으로 당당하게 일어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다 일어나야 합니다.

내가 살아야 할 이유를 5분 안에 명쾌하게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성공할 수 있다고 저는 확신합니다.  여러분, 성공하기를 원하십니까?  내가 이 땅에 살아야 할 이유를 단 5분 안에 명쾌하게 설명해서 그 사람을 설득하고, 그 사람에게 영향을 주고, 그 사람을 살맛 나게 만드는 사람은 성공할 수 있습니다.  부질없는 자리를 탐내지 마십시오.  있다가 없어질 돈을 탐내지 마십시오.  그런 사람은 다른 사람들에게 결코 희망을 전해 줄 수 없습니다.

저는 우리 성도 여러분들이 이 한해를 하나님의 영광에 미친 삶을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의 계시에 이끌림을 받는 믿음의 삶을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헌신하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어떤 사람을 붙여주시더라도 5분 안에 내가 경험한 하나님의 사랑을 설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누구를 만나더라도 5분 안에 내가 받은 하나님의 사랑을 설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누구를 만나더라고 5분 안에 내가 받은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말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믿음의 사람이 되기 위해서 영적으로 무장하시기를 바랍니다.

사람들은 희망을 찾기 위해 몸부림을 치고 있습니다. 어디에 희망이 있을까?  기업마다 직장마다 개인마다 국가마다 희망 찾기의 경쟁이 벌어졌습니다.  오늘 우리도 희망을 찾아왔습니다.  우리가 아는 것은 하나님의 앞에 나오는 일이야말로 우리 인류가 가진 유일한 희망이라는 사실입니다.  주님만이 희망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분만이 나와 내 가정과 이 나라와 민족의 희망입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엇갈린 운명]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오래 전의 이야기입니다.  미국의 남북전쟁이 끝난 후 모든 것이 엉망이 외었습니다.  그때 죽음의 사선을 넘던 젊은이 두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험악한 전쟁에서 건강한 몸으로 살았다는 사실에 감격하여 고향으로 돌아가는데 언덕 위에서 내려다보니 전쟁터에서의 피비린내 나는 그 상황과는 전혀 다른 평화와 아름다움이 있었습니다.  "저거야, 바로 저거야! 신천지야!  새로운 세계야!  이제껏  내가 살던 세계와는 전혀 다른 아름다운 세계야.  드디어 희망이 있는 거야"

사랑하는 여러분, 지나간 것은 다 잊어버리고 "그래 저거야!"  새로운 세계를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내가 바라던 세계야, 내가 꿈꾸던 저 세계야"  두 젊은이는 우뚝 섰습니다.
그런데 그 시간 무엇이 보였을까요?  한 청년의 눈에는 십자가가 들어왔습니다.  교회가 들어왔습니다.  "맞아! 저거야.  하나님이 나를 인도 하셨어.  하나님이 나를 걸음마다 지켜주셨어.  하나남이 나를 보호해주셨어.  하나님의 축복이 나와 함께 하는 거야.  하는 하나님의 인도를 받을 꺼야.  저기를 갈 꺼야"  그는 한걸음에 교회를 달려들어갔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 생명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 있기에 여기에 오게 하신 것을 감사합니다"

그런데 다른 한 병사는 언덕에 오른 순간 카페와 술집과 여인들이 있는 집이 보였습니다.  "저거야!  얼마나 굶주렸던고, 얼마나 그리웠던고.  저거야! 가서 퍼마실 꺼야.  실컷 놀 꺼야" 달려가서 밤새도록 먹고 마셨습니다.  그로부터 삼십 년의 세월이 지나갔습니다.
미국의 22대 클리브랜드 대통령이 취임하는 날, 운명의 갈림길에서 술집을 다녔던 그 친구는 감옥 속에서 클리브랜드 대통령의 얼굴이 실린 신문 한 장을 보고 오열하며 떨기 시작했습니다.  "이 친구야.  비로 이 친구야.  나와 전쟁터에서 손을 잡고 사선을 넘어가던 바로 그 친구야"

30년 전, 운명의 갈림길에서 한 사람은 하나님의 품을 찾아갔고, 한 사람은 술집을 찾아갔는데 그 갈림길에서 하나님의 역사는 달라졌습니다.  오늘 삽자가를 바라보고 하나님의 전으로 달려온 사랑하는 여러분, 축복합니다.  잘 오셨습니다.  여러분의 운명의 갈림길에 달라진 줄 믿습니다.  할렐루야!

우리가 이 언덕 위에 서서 일년 후의 나의 운명의 갈림길은 어떻게 될까? 일년 후의 내 모습은 어떻게 될까?  오늘의 이 결정, 오늘의 이 선택이 일년 후 내 인생 길에 어떤 갈림길을 가져올까?
우리가 믿고 나오는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에게는 부끄러운 것이지만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한없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이 시대를 똑바로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더 깊은 세계에 눈을 돌려야 합니다.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릴 줄 알아야 합니다.  저 깊은 생명의 젖줄인 내 영혼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죽고 사는 권세가 내 마음의 깊이에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내 마음 깊은 곳에 어느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크고 찬란한 꿈을 품고 사시기 바랍니다.  꿈이 있는 자는 망하지 않습니다.  살아 가다가 거꾸러뜨림을 당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꿈이 있기에 다시 일어설 수 있습니다.

빛은 어두움을 단번에 흡수해 버립니다. 캄캄한 밤에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밤에 일어나서 한참을 더듬어야 합니다.  넘어뜨리기도 하고 넘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스위치를 올려 빛이 들어오면 단번에 어두움이 흡수되고 맙니다.
지난 1일에 2005년을 어떻게 맞을까하고 많은 사람들이 해맞이를 하기 위해서 동해안으로 달려갔습니다.  왜 그럽니까?  새로 뜨는 해로 어두움을 정복하고 흡수하기 때문입니다. 그날 저희 교회에서도 송구영신 예배를 마치고 피곤하고 지친 몸이지만 동해안으로 달려갔습니다.  영덕을 지나서 한 곳에 차를 세워두고 차안에서 새우잠을 잤습니다.  그리고 다시 차를 달려 영해를 지나 백암온천으로 가는데 마침 금곡이라는 곳에서 바다를 바라보는데 동해안 맑은 수평선 쪽에서 찬란하게 떠오르는 해를 보았습니다.  저는 해가 그렇게 멋있는 줄 예전에 미처 몰랐습니다.  붉은 해가 수평선 너머로 솟아오르기 시작하니까 단번에 어두움을 물러가고 맙니다.

오늘 이 시간 여러분의 깊은 곳에 하나님의 둥근 빛이 찬란하게 떠올라서 심령의 모든 어두움을 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올 때의 심령과 갈 때의 심령이 다르고, 올 때의 눈빛과 갈 때의 눈빛이 다르고, 올 때의 마음과 갈 때의 마음이 달라지는 은혜가 여러분에게 임하게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몇 년 전에, 모세라고 하는 사람에 대해서 세계적인 열풍이 일어났었습니다.  선진국에서 모세에 관한 연구가 대단했습니다.  모세가 어떤 사람입니까?

여러분께서 잘 아시는 대로 궁궐에서 왕자의 귀한 몸으로 40년을 살아 온 모세가 어느 날 황량한 미디안 들판에 던져졌습니다.  아는 사람과 모든 권력의 줄이 다 끊어졌습니다.  그로부터 40년의 세월이  흘러갔습니다.  모세, 그가 민족을 지도하는 위대한 지도자가 되리라고 누가 기대했습니까?  아무도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계시가 임하는 사람 속에는 다시 기회가 찾아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계시가 임하는 사람 속에는 반드시 기회가 옵니다.  아무리 절망적인 상황이라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계시만 붙들고 있다면 언젠가 하나님께서는 다시금 때를 주십니다.  사막 한 가운데에서 무엇에 이끌렸는지 풀 한 포기 없는 바위 담벼락을 지나서 모세가 왜 거기를 찾아갔느냐 말입니다.  사막 한 가운데 절벽 같은 풀 한 포기 없는 바위산에 올라가니까 거기 가시덤불에 불이 타고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오늘 이 곳에 어쩌다 나오신 것이 아닙니다.  가시덤불 속에 불타는 불을 보여주기 위해서 하나님의 모세의 발길을 인도하셨듯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구원의 손이 저와 여러분을 이곳으로 인도한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창세기에 나오는 요셉을 보십시오.  어느 날 그는 아버지와 형님들 앞에서 엉뚱한 소리를 합니다.  "제가 꿈을 꾸었습니다.  계시를 받았습니다." 그 꿈 때문에 잠시 고난을 받기는 했습니다.  그 꿈 때문에 어려움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잠시였습니다. 그 꿈 때문에 아버지와 형제들이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 꿈 때문에 민족이 구원을 받았습니다.  꿈이 없으면 망합니다.  꿈이 없으면 무너집니다.  꿈이 없으면 방자해집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꿈을 꾸십시오.  이곳 하나님의 교회는 꿈을 잉태하는 인큐베이터 같은 곳입니다.  이곳에 있다 보면 꿈이 일어납니다.  믿음의 사람이란 다른 말로 하면 꿈이 있는 사람입니다.

삶의 표현이나 자기 선언은 비전이 아닙니다.  비전이라고 하는 말은 숫자화 됐다는 말입니다.  "내가 오늘 저녁부터 무엇을 한다" "작년에는 한 생명도 전도하지 못했지만 금년에는 어떤 일이 있더라도 한 생명을 전도하리라" "하나님, 내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이렇게 저렇게 쓰임 받기를 원합니다"  비전은 이렇게 구체적이고 숫자적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꿈을 구체화하십시오.  여러분의 꿈을 숫자화 하십시오.  내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내 꿈도 행동으로 옮길 수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인생에 닥쳐오는 저항이라고 하는 것이 어떤 때는 참으로 힘들고 어렵습니다.  그러나 비행기도 공기의 저항이 없으면 뜨지 못한다고 합니다.  저항이 없으면 비행기가 날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바람의 저항은 비행기를 날게 하는 축복입니다.  사람은 역경을 통해서 배웁니다.  역경은 우리에게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만족을 말하지만 그러나 만일 인간이 삶의 목표가 단순히 만족이라고 하면 그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만족하면 사회에 자기 도취가 되어서 쇠퇴의 길로 접어들어 망하고 맙니다.  결코 만족하지 마십시오.  저 하늘 나라에 가기 전까지는 이 땅에 만족이 없습니다.  언제나 꿈을 꾸십시오.

금년을 살아가다 보면 핑크빛처럼 아름다운 날들만 있는 것은 아닐 겁니다.  살다보면 장애물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힘들고 어려운 일 때문에 좌절의 그림자가 여러분을 휘감아 올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장애물 앞에서 절대로 물러서지 마시기 바랍니다.  장애물을 만나지 않고는 위대한 일을 이루기는 절대로 어렵습니다.  역경은 삶의 스승일 뿐입니다.  가슴을 펴시기 바랍니다.  나는 이 해에도 든든하게 시작한다.  희망을 안고 시작하십시오. 그리고 희망의 공급자가 되십시오.

바람과 파도를 만나지 않고 어떻게 유능한 사람이 됩니까?  우리 인생에 나타나는 수많은 장애물이나 수많은 파도가 인생의 위대한 항해사를 만들고 있습니다.  결국 아무 실패도 하지 않은 사람은 아무런 시도도 하지 않은 바보일 뿐입니다.  절대로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물결이 바뀌면 때를 따라 장소를 따로 새로운 역사가 일어난다고 하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면서 하나님의 파도를 타십시오.

저는 목회를 하면서 축복 받은 사람들을 많이 봅니다.  그런데 축복이라는 것은 기적이 아닙니다.  기적이란 변화의 결과일 뿐입니다.  축복이란 절대로 하나님의 그냥 주는 기적이 아닙니다. 그 사람들은 은혜를 따라 제단에서 나오는 말씀 한마디에 생명을 걸었습니다.  "저 말씀이 내 말씀이다"  그것을 붙들고 일주일을 사는 그런 변화의 작업이 있을 뿐입니다. 그렇게 말씀을 붙들고 살았던 사람은 다 축복을 받았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야곱처럼 하나님의 축복을 간절히 사모하십시오.  "오늘 제단에서 나오는 저 말씀은 내 말씀이다"며 강하게 말씀을 붙잡으십시오.  사모하는 영혼에게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이 임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가만히 보면 종교꾼이 있습니다.  10년 20년. 일평생을 다녀도 종교놀이만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변화하고는 아무 상관없는 그런 종교꾼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 속에 무슨 역사가 일어나겠습니까? 언제 어디든지 심판관이 되지 말고 하나님 안에서 변화의 등대, 희망의 등대가 되십시오.  사람들에게 희망을 전해 주는 믿음의 사람이 되시리라는 말입니다.  내 삶에 아무런 변화도 없고, 하나님의 축복도 없는 초라한 종교꾼은 단호하게 거부하십시오.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는 것이 어떤 감정적이라든가 잠시 잠깐 재미 삼아 믿는 것은 아닙니다. 만약에 우리가 그런 식으로 예수를 믿는다면 문제가 있습니다.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져도 하나님 안에서 꿈이 있기에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확신과 감격 속에 사셔야 합니다.  나를 비춰주는 진리의 샘이 있기에 양보할 수 없다는 그런 확고한 믿음으로 사셔야 합니다.  내가 가는 길을 하나님이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내 진실을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내 본 마음을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내 사명을 알고 있단 말입니다.

마지막으로 저는 유명한 종교 작가인 스코트 팩이란 사람의 '랍비의 선물'이라는 글의 내용을 전해 드리면서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진리를 갈망하는 많은 젊은이들이 산 속에 수도원을 짓고 공동생활을 시작합니다.  그러나 진리를 찾기는커녕 시간이 흐를수록 갈등과 불신이 쌓여지고 원망과 시비가 끊이지 않습니다.  처음 이상과는 전혀 다르게 그들의 삶은 지옥같이 느껴지고 이를 견디지 못한 젊은이들이 하나  둘 수도원을 떠나가고 다섯 사람만 남게 됩니다.  그들을 이제 수도원 문을 닫을 것인가, 아니면 좀더 기다려 볼 것인가를 결정짓지 않으면 안될 절박한 상황에 직면하게 됩니다. 고민하다 그들은 평소에 존경하는 랍비를 찾아가서 그에게 묻기로 했습니다.

묵묵히 젊은이들의 이야기를 다 들은 랍비가 대답합니다
"이제 다섯 사람 남았지요? 이들 다섯 사람 중에 메시아와 같은 훌륭한 사람이 나올 것을 분명하게 예언하는 바입니다.
랍비의 예언을 들은 후부터 그들의 태도가 달라집니다.  전에는 동료들의 모습 속에서 단점밖에 보이지 않았으나 이제는 동료들에게서 가능성과 장점들을 찾기 시작합니다.
"우리 중에 한 사람이 메시아 같은 훌륭한 사람이 된다고? 그가 누구일까?"하고 서로의 가능성을 따져 봅니다.
"토마스일까? 그는 의심이 많긴 하지만 정직한 사람이지.  그러니까 혹시 그가 메시아가 될지 모르지"
"제임스일까? 그는 반항심이 많지만 그 친구의 마음 바탕은 정의를 사모하니까 아마 그 일지도 몰라"
"아니 필립일지도 몰라.  우리가 보기에는 무능하고 약하지만 사랑은 많은 사람이니까 그가 메시아가 될지 모르지"
"혹, 요한일까? 감정이 격한 편이지만 기도의 사람의 사람이니 그의 기도를 하나님이 들으실지 모르지"
"아니면 아론일꺼야?  욕심은 많지만, 그의 의욕과 열정에 따를 사람이 없지"

다른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기 시작합니다.  모두가 메시아 같은 훌륭한 인물이 될 가능성이 있음을 깨닫게 되고 수도원의 분위기는 달라집니다.  존경과 사랑이 넘칩니다.  그러자 그 소문은 사방으로 퍼지고 이곳 저곳에서 사람들이 수도원으로 몰려들기 시작합니다.  진리를 찾는 사람들로 수도원은 가득 차게 되고 생명력이 넘치게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좋은 소문이 좋은 사람들을 모으게 합니다. 희망의 소식이 사람들을 몰려들게 합니다.  그르므로 이 한해는 우리 모두가 서로에게 희망의 공급자가 되십시다.  어떻게 살아야 희망의 공급자가 될 수 있습니까?
저는 방금 전해 드린 랍비의 선물에서 여러분 스스로가 그 대답을 찾을 수 있다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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