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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넘치는 은혜, 풍성한 축복 (요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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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송헌영 목사 (대전주님의감리교회)

어떤 사람이 세상에서 제일가는 부자가 되고 싶어서 밤낮으로 기도를 드렸습니다. 정성이 갸륵해서였는지 하루는 꿈에 백발 노인이 나타나더니 내일 아침 날이 밝는 대로 어디어디에 가 있으면 도사가 그리로 지나갈 터인데 그에게 긴말할 것 없이 '그 보물을 나에게 주시오'하고 말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날이 밝는 대로 백발노인이 꿈에 일러 준 장소에 서 있자니 과연 바랑을 짊어진 도사가 나타났습니다. 그래서 이 사람은 다짜고짜 말하기를 '그 보물을 나에게 주시오' 했습니다. 그랬더니 도사는 말없이 바랑을 뒤져 주먹만한 다이아몬드를 꺼내 들고는 '이것 말이요? 그럽시다. 자, 가지시오'하고는 던지다시피 안겨주고 가던 길을 휘적휘적 걸어갔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큰 다이아몬드를 얻었으니 이제 세상에서 제일가는 부자가 된 그는 서둘러 도사가 가는 길의 반대쪽으로 내달렸습니다. 행여 처음 먹은 마음이 달라져서 도사가 보물을 돌려 달랄까봐 겁이 나서 바삐 걸음을 재촉했습니다. 그런데 한참을 걷다보니 길에서 만나는 낯선 사람들이 두려워졌습니다. 혹여 내 보물을 빼앗아 가면 어쩌나 싶었습니다.

그렇게 한나절을 도망치듯 달려가던 이 사람은 문득 걸음을 멈추고 뭔가 골똘히 생각을 하더니만 급히 발길을 돌려 도사가 사라져 간 쪽으로 달려갑니다. 그 날 밤 수소문 끝에 도사가 묵고 있는 여관에 도착해서는 네 활개를 벌리고 자고 있는 도사를 깨웠습니다. '여보시오, 여보시오'. 도사는 눈을 부비며 일어납니다. '아니, 왜 그러시오? 보물을 가져가고선 왜 또 날 찾아온게요?' 그러자 그 사람은 품에서 다이아몬드를 꺼내 도사에게 건네주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런 것 소용없소. 당신이 도로 가지시오. 그 대신에...' '그 대신에, 뭐요?' '그 대신에 이런 보물을 모르는 사람에게 선뜻 내어 주고도 아무렇지 않은 당신의 그 부요함을 내게 좀 주시오. 나는 이것보다 그것을 더 갖고 싶소...'

이 이야기는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데 있어 참으로 부요한 삶을 산다는 게 뭔가를 새삼 깨우쳐 주는 말씀입니다. 부요한 삶, 풍성한 삶은 무엇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일까요?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마음을 가장 닮은 마음이 있다면 자식을 향한 부모님들의 마음일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보면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 함이라.”
주님은 우리에게 큰 은혜를 주셨는데 그것은 영원한 생명을 주시고 또 삶에 필요한 모든 것들을 주시는데 모자라거나 딱 맞게 주시는 것이 아니라 넘치도록 풍성하게 주십니다.

옛날에는 쌀을 됫박이나 말로 사 먹었쟎아요. 아니 여러분들은 다 부자라서 가마니로 사 잡수셨어요? 곡식 살 때 됫박을 싹 깎아서 주면 얼마나 기분이 나쁩니까? 그런데 고봉으로 주면 그렇게 흐믓 할 수가 없죠.
또 주부들이 시장에 가서 채소를 살 때 덤으로 얹어 주면 기분이 좋지요.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들에게 주시는 축복은 이와 같이 차고 넘치는 풍성한 축복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모두 올 한 해 그러한 풍성한 하나님의 축복을 많이 받는 해가 되시길 축원합니다.

첫째, 구원의 은혜가 넘치면 천국의 소망이 풍성해집니다.
사람은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복을 받기 전에 복 받을 만한 믿음이 준비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 복 받을 만한 믿음도 내 속에서 생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부어 주시는 믿음이 참 믿음입니다.
사람 사이의 믿음은 깨질 수 있지만 하나님이 주시는 참 믿음은 변함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참 믿음은 은혜로 거저 값없이 주십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억만금을 주어도 살 수 없습니다.
하챦은 것들은 돈 주고 사지만 진짜 귀한 것은 돈 주고 살 수 없습니다.

친구는 돈 주고 살 수 있지만 우정은 살 수 없습니다.
아파트는 돈 주고 살 수 있지만 가정의 행복은 돈 주고 살 수 없습니다.
돈을 주고 사람을 부릴 수는 있지만 존경은 돈 주고 살 수 없습니다.
돈으로 결혼은 할 수 있지만 진정한 사랑은 돈 주고 살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구원과 영생은 하나님께서 은혜로 값없이 거저 주시는 것입니다.

이사야 55:1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에베소서 1:3-6절 찬송 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 곧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

구원의 은혜와 감격이 넘치면 감사의 축복이 풍성해 진다. 구원은 곧 천국입니다.
따라서 그 심령에 구원의 은혜가 있는 사람은 언제나 무슨 일을 만나도 감사할 수 있습니다. 근심, 걱정이 없어요. 하나님이 벌레만도 못한 나를 구원해 주셨다는 생각만 하면 자다가도 일어나서 찬송을 하게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 무엇입니까?

이번에 인도네시아 인근 바다 속에서 일어난 진진으로 발생한 해일, 쓰나미로 십만 명이 넘는 사람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렇게 허망할 수가 없습니다. 엄청 나게 밀려오는 엄청난 파도 앞에서 나뭇가지나 판자 떼기, 기둥을 붙잡으려고 아우성치는 사람들의 처참한 모습을 우리는 생생하게 보았습니다. 그들에게 죽음의 순간이 닥쳤을 때 물 생각했겠습니까?
대학 졸업 못한 것이 한이 되겠습니까? 창고에 넣어 둔 쌀자루가 아까웠겠어요? 아 내가 이제 죽는구나, 내 육신의 생명이 끝나는구나, 내가 죽으면 어떻게 될까? 뭐 이런 생각이겠죠.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에게 육신의 생명을 넘어서는 영원한 생명을 약속해주시는 은혜입니다. 진정한 믿음은 죽음의 공포를 이기게 해 줍니다.

고린도전서 15장 19절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리라
고린도후서 5:1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나니

올 한해 구원의 은혜와 감격 안에서 천국의 소망이 풍성해 지시기를 바랍니다.

둘째, 성령의 은혜가 넘치면 치유와 회복의 축복이 풍성해집니다.
여러분 각박하고 죄 많은 세상 가운데 알게 모르게 사람의 영혼이 병들어있습니다. 괜히 외롭고 짜증나고 미운 사람이 많고 무서운 생각이 들고 그렇습니다. 영혼이 병들었기 때문입니다. 괜히 신경질이 나고 미운 사람이 생기고 분노의 감정에 휩싸입니다. 마음, 감정이 상처로 얼룩져서 그렇습니다. 마음은 건물의 창문과 같습니다. 창문이 더러워져 있으며 창 밖에 아무리 아름다운 광경이 펼쳐져 있어도 얼룩져 보입니다.
여러 가지 스트레스와 환경오염으로 몸이 병든 사람이 많습니다. 병원에 가보면 아픈 사람이 넘쳐납니다.

성령의 기름 부으심의 은혜가 넘치면 피폐해진 영혼과 상처 난 마음과 병든 육신이 치유되고 회복되는 역사가 있습니다.
이와 같은 사람의 영역뿐만 아니라 잘못된 가치, 사단의 문화, 타락한 문화, 더러운 권력도 치유되고 회복 되어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 지기 위해서는 성령의 기름 부으신이 있어야 합니다.모든 문제의 마스터 키, 만능 열쇠는 성령의 기름부으심의 문제입니다.
고린도후서 3:17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함이 있느니라

누가복음 4장 18,19절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모든 인간과 환경의 잘못되고 어그러진 것을 치유하고 회복시키는 것이 성령의 은혜입니다.
사도 바울은 가는 곳마다 만나는 사람마다 언제나 묻는 물음이 있었습니다.
사도행전 19:2 가로되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가로되 아니라 우리는 성령이 있음도 듣지 못하였노라
저도 여러분에게 묻고 싶습니까? 여러분은 정말 성령 충만한 사람입니까? 명목상으로만 성도의 모습으로 살아가십니까? 아니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진짜 하나님의 영의 충만함과 그 하나님의 영의 인도함을 받는 100퍼센트 진짜 참 하나님의 자녀이십니까?
올 한 해 성령 충만하여 모든 면에서 치유 되고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 되고 영적 축복이 풍성해 지는 해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셋째, 순종의 은혜가 넘치면 형통함의 축복이 풍성해집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않고 기억하는 사람은 그 은혜에 감사하고 순종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 감사는 감사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또 새로운 축복으로 연결됩니다. 이것이 감사와 순종의 놀라운 축복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넘치도록 받으면 마음에 여유가 생기고 담대함이 생깁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을 불쌍히 여기고 배려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넘치게 됩니다.

요한복은 21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후 제자들이 실망해서 흩어졌습니다. 베드로가 원래 직업이었던 어부로 돌아가서 갈릴리 호수에서 고기를 잡고 있었는데 마음이 심란해서 그런지 밤새도록 잡았지만 빈 그물질만 하고 고기를 못잡았습니다. 그 때 부활하신 주님이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셨습니다. 배 오른편에 그물을 던지라. 누가복음 5장 4절에 보면 고기 잡는 전문가인 베드로는 예수님의 말씀에 즉각 순종했습니다.
시몬이 대답하여 가로되 선생이여 우리들이 밤이 맞도록 수고를 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 그리한즉 고기를 에운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는지라

이 장면을 보면 순종은 하나님의 능력이 흘러나오는 수도꼭지와 같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순종하면 능력이 흘러나오고, 순종하지 않으면 능력은 멈추게 될 것입니다.
순종은 쉽게 말하면 ‘듣는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하나님께서는 ‘말하는 사람’보다 ‘듣는 사람’을 축복하신다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순종은 ‘행하는 것’입니다. 무식한 사람도 순종하면 하나님께서 축복의 문을 여시지만 다 안다고 더 배우려고 하지 않고, 더 들으려고 하지 않고, 순종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축복의 문을 닫으실 것입니다.

복의 근원은 누구입니까? 하나님이십니다. 찬송에도 “복의 근원 강림하사”가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창세기 12:2에는 아브라함에게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찌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셨을 뿐만 아니라 아브라함을 복의 통로로 삼아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복을 나눠 주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은 감사와 순종의 믿음이었습니다. 내 타락한 의지와 인간적인 판단을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어리석은 것 같지만 그 것이 복을 풍성하게 받는 지름길입니다. 나라에도 법과 질서가 있듯이 영적인 세계에도 질서가 있는데 하나님의 축복은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을 통하여 흘러갑니다.
로마서 11:33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고린도전서 1:27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는 여차하면 주시려고 쌓아두신 은혜가 있습니다.
시편 31:19에는 “주를 두려워 하는 자를 위하여 쌓아두신 은혜 곧 인생 앞에서 주께 피하는 자를 위하여 베푸신 은혜가 어찌 그리 큰지요”라고 합니다. 쌓아 두신 은혜는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나님은 쌓아두셨다가 사람을 통하여 공급하게 하십니다.

김진홍 목사님이 대학 때 불교에 심취했다가 기독교로 개종한 계기가 있었습니다. 그 당시에 유명한 효봉스님이 입적했다고 합니다. 효봉스님은 원래 판사였는데 어느 날 재판에서 살인범에게 사형을 선고하고 사형을 집행했는데 그 후에 진범이 붙잡혔습니다. 그 뒤 참회의 나날을 보내다가 금강산에서 머리 깎고 스님이 된 후, 열심히 불도에 정진하여 한국 불교계에 큰 스님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효봉스님이 입적하시면서 마지막으로 하신 말씀이 ‘무(無)’였습니다. 그 말을 듣고 다른 많은 친구들은 모두 감동했습니다. “확실히 큰 스님이야. 스님은 정말 달라. 인생은 ‘무’지 뭐...” 그런데 김진홍 목사님은 그 ‘무’란 말에 오히려 회의가 생겼습니다. “사람이 일평생 도를 닦았으면 마지막에 무엇인가를 찾아서 ‘유(有)!’라고 해야지 ‘무(無)!’라고 하면 무슨 소용이 있는가?” 그래서 그는 기독교로 개종했다고 합니다.
기독교는 ‘무’의 종교가 아니라 ‘유’의 종교입니다. 우리가 잘 믿으면 처음보다 나중이 ‘보다 풍성한 삶’이 약속되어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첫째, 구원의 은혜가 넘치면 천국의 소망이 풍성해집니다.
둘째, 성령의 은혜가 넘치면 치유와 회복의 축복이 풍성해집니다.
셋째, 순종의 은혜가 넘치면 형통함의 축복이 풍성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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