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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아버지께로 돌아가자 (눅 15: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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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조병우 목사

예수님께서 하나님과 인생의 관계를 잘 말씀하신 이야기가 오늘 말씀입니다. 세계적으로 가족 제도가 잘 되어 있는 나라가 바로 이스라엘과 한국입니다. 한국은 가족에 대한 사랑과 질서가 잘 세워진 나라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창조하시고 사람에게 가장 먼저 하신 일이 바로 가정을 사람에게 주신 것입니다. 때문에 가정은 인류의 삶에 가장 귀하고 복된 제도입니다. 가정은 그 사회를 볼 수 있는 안경과 같은 것입니다.

이스라엘도 가정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는 나라입니다. 이스라엘은 주전 약 600년에 바벨론 느브갓네살에게 멸망을 당하게 됩니다. 이 때 예루살렘의 상류층의 사람들은 대부분 처형을 당하였고 왕족을 비롯한 지도층 인사들은 바벨론으로 포로가 되어 끌려갔습니다. 그리고 남은 유대인들은 주후 64년 로마의 디도 대장에게 완전히 멸망을 당하여 세계도처에 흩어진 민족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라가 망한 후 약 2,500년이 지난 1948년 5월 14일에 신생독립국 이스라엘이 재건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이 그 2,500년 동안 나라 없이 그 오랜 기간을 유랑의 삶을 살면서도 민족의 정체성을 잃어버리지 않았던 것은 바로 가정에 있었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예수님은 오늘 한 가정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가족의 서열을 중히 여깁니다. 그래서 아버지가 가정에서 절대 권한을 가지고 있습니다. 특별히 돈이 많은 가정에서는 아버지의 권한이 막강했습니다. 아버지는 자식에게 물려줄 유산에 대해서 절대적 권한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떤 가정에 엄청나게 돈이 많은 부자 아버지와 두 아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아들에게 유산을 줄 경우 아버지의 유산은 맏아들에게 2/3를 주고 둘째에게는 1/3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유산이라는 것은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다음에 자식에게 나누어주는 것이었습니다. 아버지가 살아 계시는 동안에는 모든 재산에 대한 권한을 아버지가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집에 둘째 아들이 아주 망나니였습니다. 자기 집에 있는 많은 재산을 자기 마음대로 쓰고 싶은데 아직 아버지는 건강했습니다. 아버지가 죽어야 유산을 물려받아서 자기 마음대로 쓸 수 있지만 둘째는 그 때까지 기다릴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어느 날 둘째 아들이 아버지를 찾아갑니다. 아버지 어짜피 아버지의 재산 가운데 얼마는 제게 줄 것이 아닙니까 그렇다면 나중까지 기다릴 필요 없이 지금 주시면 좋겠습니다 라고 요청을 했습니다. 아버지 보기에 아직 철도 없고 자식의 도리도 모르지만 그 아들을 너무도 사랑했던 아버지는 큰 아들의 몫은 떼어놓고 작은 아들에게 주려고 했던 재산을 미리 정해 주었습니다. 그렇게 하면 자기 것이라 생각하고 이제부터는 열심히 일을 하겠지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문제는 아버지로부터 재산을 물려받은 둘째가 열심히 일할 생각은 안하고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을 다 정리해서 아버지의 간섭이 미치지 않는 다른 나라로 이민을 가고 만 것입니다. 다른 나라에 가서 돈이 벼슬이라고 임금처럼 세월을 보냈습니다. 이렇게 편하게 살 수 있는데 아버지는 왜 그렇게 고생하면서 살까 하면서 세월을 보냈습니다. 고생을 모르고 자란 둘째는 날마다 아버지의 재산을 곶감을 빼먹듯이 사용하는 동안 주위에 쓰레기 같은 건달과 창기들이 파리떼처럼 몰려들었습니다.

자신이 무슨 왕이나 되듯이 그렇게 호사스럽게 시간을 보내는 동안 가지고 간 재물은 바닥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재산을 다 날렸습니다. 가진 것이 사라지고 나니 친구들도 떠나가고 자기를 사랑하는 줄 알았던 여자들도 떠나갔습니다. 거기에다 설상가상으로 흉년이 찾아왔습니다. 이제 먹고 사는 문제가 심각해지게 되었습니다. 경제 상황이 너무 좋지 않게 되었습니다. 당시 흉년이 들면 굶어죽는 사람들이 속출하던 때였습니다.

다급해진 둘째 아들은 직업을 구했는데 그 일이 바로 돼지를 먹이는 일이었습니다. 유대나라 사람들은 원래 돼지를 불결한 짐승이라고 생각하고 돼지 치는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당시에 다른 나라의 사람들이 돼지를 먹이는 방법이 방목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돼지를 따라 다니면서 돼지를 먹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방도가 없었던 둘째 아들은 들에 나가서 돼지를 따라 다니며 돼지 치는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하루아침에 둘째 아들은 돼지와 함께 자고 돼지와 함께 먹는 짐승같은 신세가 되었습니다.

흉년은 심하고 주인은 그에게 먹을 것도 주지 않았습니다. 그는 돼지가 주로 먹는 광야에 자생하는 쥐엄 열매로 배를 채우고자 해도 그것조차도 마음껏 먹을 수가 없습니다. 그야말로 춥고 배고프고 무서운 나날들이 계속되었습니다. 사람이 겪는 고생 중에 배고픈 고통이 가장 심각했습니다. 둘째 아들이 가만히 생각해보니 여기 있다가는 내가 주려 죽겠다는 생각에 정신이 들었습니다.

둘째 아들이 가만히 생각해보니 자기 아버지의 집에는 많은 품꾼들이 있는데 그 품꾼들은 비록 일은 힘들게 하지마는 그래도 저녁이면 배불리 먹고 따뜻한 집에서 편하게 잠을 자는데 나는 우리 집에 있는 품꾼보다도 비참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자기가 아버지 밑에 있을 때는 품꾼을 부러워 해 본 적이 한 번도 없는데 지금 처지에서 생각해보니 자기 아버지 밑에서 일하고 있는 품꾼이 한없이 부러워 보였던 것입니다.

둘째 아들은 자신이 살 수 있는 길은 아버지께로 돌아가는 길 외에는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내가 아버지에게 돌아가려고 하니 아들로써는 도저히 양심이 허락하지를 않았습니다. 이미 나는 아버지가 준 유산을 다 사용했으니 아들로는 아버지를 찾지 못하겠고 다만 품꾼의 하나로 사용해 주신다면 이 흉년에 굶어 죽지는 않겠지 하는 마음으로 아버지를 찾아가기를 결심하게 됩니다.

다 떨어진 옷을 입고 신발도 신지 못하고 너무도 비참한 몰골을 하고 아버지에게로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는 고개를 들고 걸을 수가 없었습니다. 누가 자신을 알아볼까 부끄러운 마음으로 고향을 찾아 돌아오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막상 멀리 아버지의 집이 보였을 때 두렵고 부끄러워 머뭇거리고 있었습니다. 과연 아버지가 품꾼의 하나로 받아줄까 하는 마음으로 걸음이 머뭇거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한편 아버지는 둘째 아들에 대한 염려로 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둘째 아들은 철이 없는데다가 아버지가 보기에도 아직은 어린아이와 같았기 때문입니다. 험한 일도 해 본 적이 없고 날마다 떠받들려서 자랐기 때문에 혼자 살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버지가 준 재산을 가지고 외국으로 훌쩍 떠나간 이후 그 나라에 흉년이 들어서 사람들이 굶어 죽고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됩니다.

아들이 혹시 굶고 있는 것을 아닐까 혹시 아들이 굶어 죽은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이 항상 아버지의 마음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음식을 먹어도 아들 생각이 나고 옷을 입어도 아들 생각이 났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이 집을 떠나간 이후 대문을 열어 두었습니다. 아버지의 눈은 항상 멀리 마을로 들어오는 길 모퉁이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혹시 집을 나간 아들이 돌아오는가 하면서 아들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어느 날 아버지가 창문을 열고 바깥을 보고 있는데 멀리 길 모퉁이에 어떤 사람이 너무도 남루한 차림으로 머뭇거리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아버지는 직감적으로 그가 집을 나간 둘째 아들임을 알게 됩니다. 둘째가 집에 들어오기가 민망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아버지는 정신 없이 달려가서 그 아들을 감싸 안고서 집으로 데리고 옵니다. 아들이 아버지에게 아버지 나를 품꾼의 하나로 써 주세요 라고 부탁을 하지마는 아버지의 귀에는 그 아들의 소리가 들어오지 않습니다. 살아서 돌아온 것만으로 된 것입니다.

아버지는 종들을 불러서 아들의 냄새나는 옷을 벗기고 목욕을 시키고 새옷을 입히고 신발을 신기고 손에는 가락지를 끼워주고 살진 송아지를 잡아서 잔치를 준비하여 이웃을 초청했습니다. 아버지는 이렇게 손님들에게 말했습니다. 내 아들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고 잃었다가 다시 얻었기 때문에 이 기쁨을 혼자 감출 수 없어 오늘 잔치를 열었다고 했습니다. 아들이 내게로 돌아온 것만으로 나는 기뻐한다고 했습니다


여기 말씀에 등장하는 아버지는 바로 하나님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 둘째 아들은 우리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 교회는 바로 하나님의 집인 교회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떠난 삶을 외국에서 자신의 인생과 아버지의 유산을 허비하는 것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지금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오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우리의 아버지이시기 때문에 우리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과거 미국에서 방영했던 영화 가운데 뿌리라는 영화가 있었습니다. 그 드라마는 미국에 노예로 끌려온 흑인들이 그 조상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모든 인생의 뿌리는 부모입니다. 그 부모로부터 우리는 세상에 왔습니다. 그러나 그 뿌리의 뿌리는 하나님이십니다. 인생이 뿌리를 찾아가면 결국 하나님이 계십니다. 우리 모든 인생은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 인생을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사람이 누구나 하나님을 믿게 되면 한 가지 깨닫게 되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고 계셨구나 하는 깨달음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삶은 무언가 잃어 가는 삶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삶은 무언가 찾고 얻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이 사실을 가르쳐 주고 싶어하십니다. 내 아들들아 내가 너를 사랑한다 하시는 말씀입니다. 인생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알 때에 하나님을 믿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가 이렇게 많은 분들을 초청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하나님이 여러분들을 사랑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은 사람이 진정으로 행복한 삶을 살게 됩니다. 어린 시절의 행복은 부모의 사랑을 깨닫는데 있습니다. 어른이 된 이후에 행복은 배우자의 사랑을 깨닫는데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을 때 행복한 인생이 될 수 있다는 것에 대한 그림자인 것입니다. 이 시간 여러분에게 이 한 가지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하나님이 바로 여러분 한 분 한 분을 사랑하십니다. 여러분이 그 사랑의 하나님 품에 안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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