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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잔치를 배설한 주인 (눅 14: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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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자 : 이용호 목사

왕이 잔치를 배설하여 손님을 초청했습니다. 그런데 이 초청받은 사람이 다 거절을 했습니다. 그래서 주인이 비상사태를 선포합니다. “길가나 골목이나 시장에 가서 가난한 자들, 병신들, 눈먼 자들, 저는 자들을 데려오라”고 했습니다. 그래도 잔치자리가 비었습니다. 그 때 주인은 또 한번 비상선언을 합니다. “길가나 산울가로 가서 사람들을 강권하여 내 집을 채우라.” 이런 스토리로 되어 있는 이야기입니다.

  왕의 잔치

  이 잔치는 천국잔치의 모형인데, 먼저 우리는 이 잔치의 수준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누가 이 잔치를 배설했습니까? “어떤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마태복음 22장에도 이 잔치이야기가 나옵니다. 거기는 “어떤 임금이 배설했다”고 했습니다. 왕이 배설한 잔치입니다. 누가 배설한 잔치냐 라는 것이 잔치의 격을 결정합니다. 대통령이 배설한 잔치와 서울시장이 배설한 잔치와 종로구청장이 배설한 잔치는 격이 다릅니다. 수준이 다릅니다. 여기 왕이 배설한 잔치는 굉장한 잔치입니다.

  그리고 16절에 보면 “큰 잔치”라고 했습니다. 큰 잔치입니다. 많은 사람들을 초청했다고 했습니다. 17절에 보면 “모든 것이 준비되었다”고 했습니다. 이 잔치는 최고의 잔치입니다. 영광스러운 잔치입니다. 일생에 한 번 참석할 수밖에 없는 잔치입니다. 이런 잔치에 초청받은 사람들의 반응이 어떠했는가? 18절에 보면 “다 일치하게 사양하여”라고 했습니다. 이 사람들은 이 잔치를 거부했습니다. 한 사람은 밭을 샀기 때문이라고 했고, 19절에 한 사람은 소 다섯 겨리를 사서 시험하러 가기 때문에 거절했습니다. 20절에 장가들었기 때문에 거절했습니다. 거절할 이유가 있고 자유도 있겠지만, 우선 이 문맥을 보면 16절에 이 잔치를 미리 초대했습니다. 처음에 초대할 때는 거절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17절에 보면 잔치할 시간에 사람을 보내어 오라하니까 못 가겠다고 거절했습니다. 처음 초청 때는 거절하지 않다가 막상 잔치할 그 시간에 못가겠다고 이 핑계, 저 핑계로 거절을 했습니다.

  우리가 전도를 해보면 전화로도 대답을 하고, 만나서도 대답을 하고, 약속을 다 했는데 막상 주일날 되면 이런 저런 이유로 못가겠다고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아마 23일 약속을 받아 놓은 사람들이 여러분 가운데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방심하면 안 됩니다. 당일 이 핑계, 저 핑계 하는 것이 인간의 원죄입니다. 핑계가 아주 많습니다. 직장, 남편, 가족, 종교 등 온갖 핑계를 가지고 주일에 못가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또 자신에게도 핑계가 많습니다. 체면, 자존심, 직장문제 등으로 못가겠다고 합니다. 이건 인간이 가지고 있는 원죄입니다.

  아담이 하나님에게 이 핑계를 했습니다. 선악과를 따먹고 범죄했을 때 하나님이 선악과 먹은 것을 추궁하자 아담이 대답하기를 “하나님이 내게 주신 여자 그가 내게 주어서 먹었습니다. 그런데 저 여자는 하나님이 지어서 내게 준 여자입니다”라고 했습니다. 핑계는 하나님께 책임을 돌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이 가지고 있는 원죄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잔치를 거부한 사람들은 유대인들을 말합니다. 메시야를 거부한 유대인들입니다. 이 잔치는 메시야 잔치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구원이 약속되어 있는 잔치입니다. 이 잔치는 보통잔치가 아닙니다. 이 잔치에 와야만 하나님의 언약 안에서 영생을 얻는 잔치입니다. 영생의 선물이 예비 된 잔치입니다. 이 영생의 선물이 예비 된 잔치를 유대인들이 메시야를 거부했습니다. 메시야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여 버리고 거부했습니다.

  왕의 특명

  하나님은 유대인들이 거부하는 메시야를 그냥 그대로 둘 수가 없습니다. 초청자들이 거부한다고 주인이 이 잔치를 포기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인이 비상선포를 하는 것입니다. “너희들이 시장이나 길가로 가서 병든 자, 가난한 자, 다 데리고 오너라” “그래도 자리가 비었나이다”라고 보고했습니다. 그 때 주인이 다시 더 강렬한 비상선포를 하십니다. 23절에 “주인이 종에게 이르되 길과 산울가로 나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 이 주인은 초청자들이 오지 않는 자리를 결코 포기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사람들을 교회로 초청할 때 핑계한다고 포기하면 안 됩니다. 핑계하는 것을 넘어서야 합니다. 핑계하고 오지 않기 때문에 잔치가 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 주인은 더 성대한 잔치를 예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주인이 말한 비상선포는 “길가나 골목이나 시장이나 산울가로 가서 가난한 자, 병든 자, 아무나 데리고 오라고 한 여기에 아주 중요한 전도원리가 있습니다.

  첫째로 전도는 특정대상이 없습니다. 아무나 데리고 오라는 것입니다. 모든 계층의 모든 종족에게, 모든 대상에게 열려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양반이 모이는 교회, 상놈이 모이는 교회, 상류층만 모이는 교회, 하류층만 모이는 교회는 교회답지 못합니다. 왜 교회가 부흥합니까? 모든 계층에게 복음이 열려있기 때문입니다. 아무에게나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전도는 쉬운 것입니다. 특정계층에게만 복음을 전하라고 한다면 그 계층에게만 찾아가야 합니다. 그 계층을 만나려면 온갖 절차를 거쳐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지 않습니다. 만나는 사람, 누구에게든지 복음을 전하라는 것입니다.

  둘째는 장소의 특정의미가 없습니다. 전도는 장소가 없다고 핑계하지 못합니다. 내가 일하는 일터, 사는 곳, 길가나 골목이나 시장가나 아무데서나 전도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전도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복음이 모든 계층에, 모든 종족에게 모든 나라에 개방되어 있는 아름다운 은혜입니다.

  제가 처음 전도사로 사역했던 한산도 동자교회라고 있습니다. 그 교회는 한산도에서 떨어진 지 섬에 있는 교회입니다. 60가구 있는 어촌 동네에 있는 교회입니다. 그 교회가 처음 설립된 계기를 보면, 한산도와 그 섬에 나룻배가 있습니다. 나룻배를 저어서 먹고 사는 뱃사공이 있었는데 어느 날 섬을 떠돌아다니는 전도자가 그 배를 탔습니다. 나룻배를 타고 건너는 중에 사공에게 전도를 한 것입니다. “예수 믿으시오,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을 믿으시오.”라고 전했습니다. 뱃사공이 이 복음을 받아들이고 자기 집에서 동네사람 몇 명과 예배를 드리다가 오늘날의 교회가 됐습니다. 뱃사공이 배 타고 가면서 복음을 전하는 이것이 복음의 역사입니다. 특정장소가 없습니다.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복음은 열려 있습니다.

  셋째는 특정 방법이 없습니다. 전도는 절대로 정석이 없습니다. 전도는 어떻게 해야 하느냐 라는 방법의 정석 때문에 고민하지 마십시오. 여기 주인이 뭐라고 했습니까? “데려오라”고 했습니다. 그래도 안 된다고 하면 “강권하여 데려오라”고 했습니다. 데려오고 강권하는 것은 상당한 무리입니다. 안 오려고 하는 사람을 강권하는 것은 굉장한 무리입니다. 그렇지만 그 무리함을 감수할 이유가 있다는 것입니다. 왜 강권해야 하는가? 강권을 받아서라도 오기만 하면 거기에 하나님의 영생이 있고 구원이 있다는 것입니다. 강권할 이유와 가치가 있다는 것입니다. 강권해서 헛일이 아니라 강권을 받아서 오기만 하면, 그래서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구원을 받는 위대한 하나님의 선물이 있기 때문에 강권함을 받아서 얼마든지 올 이유가 있다는 것입니다.

  나의 순종

  그러므로 우리는 방법에 고민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 마음속에 언제나 사람을 주님께로 인도하려는 전도의 의지만 가지고 있으면 언제든지 데리고 올 수 있습니다. 기회가 주어져도 내 마음속에 전도하겠다는 의지가 없다면 데려오지 못합니다. 내 마음속에 전도의 의지를 담고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내 앞에 누구든지 어디서든지 대상이 나타날 때면 데리고 올 수 있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 마음속에 예수님의 복음의 잔치에 대한 열정입니다. 내가 이 사람을 우리 왕의 잔치에 데리고 가야 할 심부름을 받은 종이라는 이 복음 전도자의 열정이 우리 마음속에 있을 때 얼마든지 가능한 것입니다.

  요즘은 도우미 시대입니다. 도우미에 종사하는 인구가 굉장히 많습니다. 우리 사회는 점점 도우미 사회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요즘은 연애 대상자도 구해주는 시대입니다. 결혼 대상자도 구해주고, 결혼 준비도 다 해줍니다. 심지어 이혼하는 데도 도움을 주는 도우미가 있습니다. 이제는 환자 돌보는 것도 간병인이 하는 시대입니다. 만약 간병인이 없다면 부모님을 갖다 버릴 자식들이 많을 것입니다. 음식도 대체음식 시대입니다. 각종 질병에 따라 음식을 선택주문을 하면 아침에 배달이 됩니다. 대체음식 시대입니다. 도우미 시대입니다. 편리한 시대가 되어 갑니다.

  한 남자가 여자를 좋아 있습니다. 그래서 프러포즈를 했더니 답이 왔습니다. 이 답은 거절하는 답인데 이렇게 왔습니다. ‘당신이 100일 동안 내 창가에서 꽃을 들고 100일 동안 밤을 새운다면 내가 당신과 결혼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날 밤부터 한 사나이가 꽃다발을 들고 밤을 새우기 시작합니다. 이 여자가 마음에 부담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한 달, 두 달이 지나도,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꽃다발을 들고 창밖에서 밤을 새는 것이었습니다. 그만 이 여자가 마음을 돌이켰습니다. ‘내가 저 남자와 결혼을 안 할 수가 없다.’ 그래서 밖에 나가 “난 당신을 사랑합니다.”라고 고백을 했습니다. 그 때 이 남자가 비를 맞은 얼굴로 고개를 들고 말합니다. “저는 아르바이트생인데요.” 

  맺는 말

  여러분, 오늘 주일예배도 도우미가 가서 대신 드려주는 것, 하나님이 그것을 좀 허용해 줄 수 없나 싶지만 세상이 아무리 편해도 신앙생활은 도우미가 해결해 줄 수 없습니다. 기도는 도우미가 대행을 못합니다. 내가 해야 합니다. 이 주인의 잔치에도 도우미가 대행을 못합니다. 내가 가야 합니다. 하나님이 베푼 이 잔치, 복음의 잔치에는 우리 당사자가 가야 합니다. 하나님은 새 성전을 통하여 우리에게 잔치를 배설했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잔치가 아니라 하나님의 잔치입니다. 하나님이 베푼 잔치입니다. 이 잔치에 우리는 사람을 데려올 이유가 있습니다. 강권할 목적이 있습니다. 이 잔치는 영생이 보장되어 있는 하나님의 잔치이기 때문입니다. 그 잔치에 우리 모두가 참여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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