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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을 감동시키자 (왕상 3: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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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하나님을 날마다 감동시킬 때에 우리 삶에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게 됩니다. 한번 따라 하세요.‘하나님을 감동시키자.’ 5월 달은 어린이날도 있고, 스승의 날도 있고 어버이날도 있고 그래서 우리가 돌아보아야 할 사람들이 많은 달입니다. 그래서 5월을 일명 ‘가정의 달’이라고 말을 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건강하게 자란 것은 첫째는 육신의 부모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육신의 부모가 돌보아 주지 않았다면 지금 여기에 앉아 있을 수가 없습니다. 어린 시절에 부모로부터 극진한 사랑을 받고 성장을 해서 오늘 여기에 와 있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선생님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어린 시절을 돌아 보면 한번쯤은 슬쩍 도둑질도 하고 거짓말을 했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우리를 바른길을 가도록 한 선생님들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가 지금 이렇게 건강하게 여기 있는 것입니다. 또한 신앙적으로도 하나님께서 이 땅에 세워 놓으신 많은 주의 종들을 통해서 영의 양식을 먹이심으로 이렇게 건강하게 잘 살고 있는 것입니다. 육신의 부모와 스승 그리고 영적인 스승들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가 지금 이렇게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스승의 날이 되면 어김없이 어린아이든지 어른이든지 그리고 어른이 되어서도 나에게 은혜 주었던 선생님을 꼭 한번 찾아가야지 하고 생각 나는 분들이 있어요. 스승의 날이 오면 국민학교 때 중학교 때 나에게 많은 감동을 주었던 또 나에게 은혜를 주었던 그 선생님 꼭 한번 찾아보아야지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스승의 날이 되면 어린아이들이 고사리 같은 손에 꽃 한 송이씩 들고 선생님을 달아 준다고 왔다 갔다 하는 것을 보면 보기 좋습니다. 자기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에게 꽃을 달아 준다고 하는 것이 얼마나 감사합니까? 나를 잘 보살펴 주신 것에 대해 감사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우리가 쳐다보고 있으면 보고 있어도 감동이 됩니다. 더 나아가서 우리가 어버이 날이 되면 유치원의 어린아이를 둔 부모들은 다 종이꽃을 선물을 받습니다.  유치원 아이들은 어김없이 종이로 꽃을 만들어 가지고 들고 가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이들이 유치원에서 돌아와 꽃을 달아 주면 가치는 별로 없지만 그것을 가슴에 다는 순간에 내 아들, 딸이 꽃을 달아 주는구나하며 감동을 받습니다.  그리고 마음이 찡한 것으 느낍니다. 그리고 우리의 삶의 주변에서 이런 일들이 아니라도 감동적 일을 접하게 될 때 코끝이 찡하면서 감격을 하고 눈물을 흘리게 됩니다. 그래서 어느 때는 우리가 몇 송이의 꽃에 감동을 받기도 하고 얼마 안 되는 도서 상품권에 우리가 감동을 받기도 합니다.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것은 큰 것만 가지고 감동을 주는 것이 아닙니다. 때로는 적은 것을 가지고도 큰 감동을 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가 이 땅에 살면서 감동시키는 일을 잘 해야 되는데 특별히 하나님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일은 우리가 잘 해야 됩니다. 하나님도 감동을 받습니다. 우리가 하는 것을 보고 하나님도 감동을 받습니다.  하나님께서 감동을 받으면 우리에게 불가능한 것도 가능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네 소원이 무엇이냐고 물어 보시기도 하시고 또 때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나타나셔서 응답도 주시는 축복된 일들이 일어나게 됩니다.  그래서 주의 종을 감동시키면 축복기도가 저절로 나오고 주의 종이 앉을 때마다 그 사람이 생각나게 되고 기도하게 됩니다. 육신의 부모를 감동시키면 안 나올 것도 나오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감동시키든 주의 종을 감동시키든 육신의 부모를 감동시키든 감동시키는 일은 좋은 것입니다. 우리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과 하나님을 감동시키면서 사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의 내용은 솔로몬이 하나님을 감동시킨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솔로몬이 하나님을 조금 감동시킨 것이 아니고 크게 감동을 시켰습니다. 어떻게 솔로몬이 하나님을 감동시켰을까? 오늘 본문은 하나님을 감동시킬 수 있는 방법이 어떤 것들이 있을까 하는 것들을 가르쳐 주시는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크게 하나님을 감동시키는 세 가지가 방법이 나옵니다.

1.제사를 드림으로 감동 시킬 수 있습니다.

  솔로몬이 하나님을 감동시킨 것은 제사를 드렸기 때문입니다. 제사들 잘 드렸기 때문에 하나님이 감동을 했습니다.  구약 시대 때는 제사를 드리면 하나님이 감동을 받았고 신약 시대 때는 예배를 잘 드리면 하나님이 감동을 받습니다.  예배는 그래서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예배를 왔다 갔다 드리는 것이 아니고 예배를 드리는 이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이 감동을 받으십니다. 우리가 육신의 부모를 감동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육신의 부모를 감동시키려면 어쨌든 만나야 됩니다.  ‘어쨌든 만나야 된다.’ 안 만나고 부모님을 감동시킬 수 있는 방법은 없어요. 여러분 안 만나고 부모님 감동시켜 보세요. 천년만년 앉아서 감동시킨다고 해서 감동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날 잡아서 부모님을 찾아가 보세요. 부모를 찾아 간 것만으로도 감동하는 것입니다. 네가 날 찾아왔냐 그러면서 좋아하십니다. 그러니까 예배는 하나님 만나러 나오는 것인데, 하나님은우리가 하나님을 만나러 나오기만 해도 감동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더 감동하시는 것이 있습니다.  제가 외국에 있는 은혜 있는 교회들을 돌아볼 때 어떤 교회에 갔더니 세상에 거기는 예배 드리기 2시간 전에 가서 문 앞에 서서 기다리고 있어야 한 답니다. 그리고 어떤 때는 더 일찍 나가야 된답니다. 왜 그러냐고 했더니 그렇지 않으면 들어라 수가 없답니다. 늦게 하면 자리도 없고 지금 가도 늦었다는 것이였습니다. 그래서 가 보았더니 진짜 1Km쯤은 사람들이 늘어선 것 같아요. 사람들이 늘어섰는데 줄을 서있는데 교회 문을 아직 열지도 않았습니다. 교회 문을 열어 주어야 들어 갈 것 아닙니까? 왜냐하면 사람들이 벌떼같이 몰려오기 때문에 그것도 일찌감치 와서 기다리기 때문에 문을 열어 놓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시간이 되면 문을 연다는 것입니다.  문이 닫혀 있는데 안으로 들어 가려고 순번을 정해 일찍 온 순대로 길이 좁으니까 꼬불꼬불 사람들이 줄을 서 있습니다.  그래서 사실은 뒷문으로 들어가는데 좀 쑥스러웠습니다. 외국에서 오신 목사님이니까 저기에 서 가지고는 들어 갈 수가 없으니까 뒷문으로 들어오셔서 예배 참석하시고 은혜를 받으라고 교회 담당 목사가 인도해 주어서 들어가 예배 드리고 왔습니다. 예배 드리고 밖에 나와 보니까 예배가 시작됐는데도 못 들어온 사람들이 태반입니다. 그러니까 생각해 보세요. 그 다음에 예배 드린다고 하면 늦게 가면 들어가지 못하고 길바닥에 서 있다 와야 하니 더 일찍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예배 드리는 교회를 본 일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교회가 외국에는 굉장히 많습니다. 얼마나 감동적입니까? 하나님께 예배 드리려고 일찌감치 와 가지고 자리 싸움이 벌어지는 거예요. 하나님 앞에는 우리가 나온 것만 해도 기뻐하지만 일찍 나오면 더 기뻐하십니다.  일찍감치 와서 무엇을 합니까? 하나님께 30분 일찍 와서 기도하고 예배드려 보세요.  하나님 오늘 예배를 통해서 내가 하나님께 영광을 또 하나님께 내가 은혜를 돌아가기를 원합니다.  그렇게 준비를 한 다음에 예배를 드려 보세요. 그냥 허겁지겁 달려와서 드리는 예배와는 차원이 다를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준비한 예배는 반드시 은혜를 받도록 되어 있는 줄로 믿습니다. 그러니까 그 나라 그 교회의 그 사람들이 우리와는 다른 별난 사람들이기 때문에 일찌감치 와서 예배를 하고 줄서서 기다리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예배를 통해서 감동을 받습니다.  우리가 예배를 잘 드리면 하나님이 감동을 받아요. 그래서 우리는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을 감동시킬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예배를 드릴 때 어떻게 드려야 합니까.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원칙이 있습니다. 예배는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려라.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우리 하나님은 영적 예배를 기뻐하신다는 것입니다. 예배는 육적 예배와 영적 예배가 있습니다.  육적 예배라고 하는 것은 사람 냄새가 많이 나는 예배를 육적 예배라고 합니다. 제 마음대로 제 뜻대로 제 생각대로  드리는 예배를 육적 예배라고 합니다. 우리는 우리 마음대로 우리의 생각대로 우리의 뜻대로 예배를 드릴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예배를 드리고 있기는 하지만 우리의 드려지는 예배가 전적으로 하나님의 뜻대로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하나님이 방식대로 예배를 드려야 됩니다.  사실 우리가 예배를 드리고 있으면서 주일 낮에 예배가 자칫 잘못하면 형식화되어 갈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형식이라고 하는 것이 우리의 신앙을 지켜 주는 틀이 되고 우리의 신앙이 탈선하지 않도록 도와주는 좋은 도구이기는 하지만 그러나 반면에 매일 똑같이 드리고 찬송가 3장 찬송가 1장 헌금 시간 등의 순서대로 나가는 이 형식이 하나님이 기뻐하실 수 있는 예배와 상관없는 그런 습관적이고 형식화된 예배로 흘러갈 가능성이 많기 때문에 좋은 면이 있으면서도 위험 요소가 많은 예배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런 형식 속에 예배를 드리면서도 그 속에서 성령의 운행함을 느끼고 성령이 기뻐하는 예배를 드리려고 하면 하나님의 받으시는 예배를 드릴 줄로 믿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형식을 가지고 예배를 드리면서도 동시에 그 속에서 성령의 운행하심을 느끼고 성령의 감동을 받아 가면서 예배를 드려야 된다는 것입니다. 예배는 철저하게 예배 위에 성령이 운행하고 있어야 합니다.  성령이 원하는 바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것을 따라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요즘 외국에는 굉장히 급속도로 번지고 있는 예배가 있는데, 한국에는 그것이 정착화 되거나 아직 적용이 잘 안 되고 있는데 열린 예배라고 하는 것이 있습니다.  예배 형식을 버리자는 운동입니다. 성령이 원하는 대로 예배를 드리자는 것입니다. 아직은 한국에서는 시험 단계에 있고 문제점이 많이 발견 되어서 문제가 있을 수 있겠습니다 마는 그러나 어쨌든 그 사람들의 시도는 좋은 것입니다.  형식화 된 예배를 벗어나자 라고 하는 원칙적인 이야기는 좋은 것입니다. 저녁예배 때는 사실 저희 교회는 예배의 형식에서 벗어난 열린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형식 따라서 드리는 예배보다는 기도도 하다가 찬송도 부르는 형태로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런 예배가 가장 바람직한 예배 형태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예배 형태는 오랜 시간을 통한 사람들이 예배를 드리다 보니까 이렇게 예배를 드리는 것을 하나님이 좋아하신다고 하는 것이 형식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첫째, 둘째, 셋째  이렇게 예배를 드리라고 가르쳐 주신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오랜 시간을 예배를 드리다 보니 이런 형태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예배를 드릴 때는 성령의 지배를 받으면서 예배를 드려야 됩니다. 

  또 한가지는 믿음으로 예배를 드려야 됩니다.  ‘믿음을 가지고 예배를 드리자’ 하나님을 믿고 예배를 드리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고 드리는 예배는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예배를 드릴 때는 우리가 믿음으로 예배드릴 때 하나님이 감동을 받으십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가 되는 겁니다.  그래서 찬양을 부를 때도 믿음으로, 기도할 때도 믿음으로, 봉사할 때도 믿음으로, 헌금할 때도 믿음으로, 말씀을 들을 때도 믿음으로, 모든 것이 믿음으로 우리가 드려질 때 하나님이 그것을 들으시고 기뻐하신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다 빼 버리면 음식에서 소금을 뺀 것처럼 하나님이 감동을 하시지 않습니다. 드리는 것은 같지만 감동을 하시지 않아요. 우리가 성경에 드리고도 복 못 받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드렸다고 해서 다 복을  받은 것은 아닙니다. 가인도 드렸고 아벨도 드렸습니다. 가인이 드리지 않았기 때문에 문제가 생긴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원하는 대로 드리지 않았기 때문에 문제가 생긴 것입니다.  그러니까 오늘 우리는 불신자처럼 드리지 않아서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드리는데 문제가 생기게 드리지 말고 이왕 드릴 것 잘 드리자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배를 잘 준비해서 하나님을 감동시키자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감동시키면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날마다 하나님 감동시키는 그런 예배가 되도록 예배는 그렇게 중요한 것입니다.

  2.헌물을 드림으로 감동시킬 수 있습니다.

  우리가 드리는 것을 통해서 하나님을 감동시킬 수 있습니다. 우리가 드리는 것 가운데는 선물도 있고 뇌물도 있습니다.  선물은 받으면 기분이 좋아요. 그래서 선물을 받을 때마다 마음이 흐뭇하고 마음이 찡해요. 그런데 뇌물은 받아도 왠지 마음이 찜찜해요. 대가성이기 때문에 무슨 일을 해 주어야 되고 뒤를 봐 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뇌물은 받으면서도 찜찜한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 앞에도 선물을 드리는 것과 같이 드리는 사람이 있구요. 하나님께 꼭 댓가성으로 드리는 사람이 있어요. 하나님께 댓가성으로 드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 없다고 눈을 동그랗게 뜨고 쳐다보는데 있어요. 헌물을 드리면서 하나님이 나에게 무엇을 주서야 된다는 것입니다. 반 협박과 반 공갈을 해 가면서 하나님께 내가 이만큼 드렸으니까 나에게도 이만큼 주셔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댓가성입니다.  드리면서 바라고 드리는 것입니다.  부모에게 갖다 드리는데도 선물도 있고 뇌물도 있습니다.  부모한테 갖다 드린다고 다 선물이 아닙니다.  자식이 부모한테 갖다 드리면 다 선물인지 아세요? 댓가성이 있습니다.  부모 돌아가실 때 유산이라도 더 받으려고 갖다 드리는 뇌물성의 댓가성 봉양이 있어요. 부모님 젊었을 때는 하나도 안 찾아보고 빈둥빈둥하다가 이제 돌아가실 날이 얼마 안 남았다 싶으니까 이틀이 멀다 하고 찾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선물 보따리 갖다 드리면서 부모가 가만히 보니 괘씸합니다. 나 건강하고 나 먹고 싶을 때에는 하나도 안 가져오다가 돌아갈 날이 다 되니까 먹지도 못하는 고기 잔뜩 싸 가지고 와서 어머니 드세요 하는데 보니까 생각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대가성 선물이 있습니다.  하나님에게도 하고 부모에게도 하고 세상에서는 말 할 것이 없어요. 세상에서는 돈주는데 공짜가 어디 있습니까?  먹으면 뒤를 봐 주는 것입니다. 그냥 아무 소리 안하고 있는 것도 봐주는 것입니다. 떠들면 문제가 되고 안돼 하면 안 되는 것 아닙니까?  지방 목사님이 다른 지방으로 옮겨가는데 이 지방의 어른 속을 좀 섞였습니다. 다른 지방으로 옮겨가게 되었는데 어른 목사님이 제게 전화 해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한 마디만 입 뻥긋하면 그 목사 그 교회에 부임 못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함께 있을 때 화목하게 잘 있지 쓸데없이 어른 비위 상하게 하다가 갈 때 되니까 얼마나 입장이 곤란해요? 눈치보이고 마음이 쓰일 것 아닙니까? 내가 괜히 속 썩여서 저 목사님이 한 마디만 입 열면 나는 그 교회에 부임 못하는데 하면서 마음 졸일 것 아닙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헌물 드리는 것을 통해서 하나님을 감동시킬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자꾸 뇌물을 갖다 드리지 말고 진짜 내 마음에서 우러나는 선물을 드려야 됩니다.  선물이라고 하는 것의 내 마음속에 있는 감사한 것 고마운 것 기쁜 것을 물질 속에 담아서 주는 것 그것이 선물입니다.  그래서 감사한 마음 기쁜 마음 고마운 마음을 싹 빼 버리고 그냥 물질만 가면 그것이 뇌물이 되는 것입니다.  뇌물이라고 하는 것이 똑같은 물질인데 내 마음이 그 속에 담기면 선물이 되고 내 마음이 빠져 버리면 뇌물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똑같이 주어도 뇌물도 있고 선물도 있습니다. 솔로몬이 일 천 번제를 드릴 때 그것이 댓가성 뇌물입니까? 하나님께 달라고 일천번제를 드린 것 아닙니다. 솔로몬은 왕이니까 일천번째를 드렸지 나는 가난해서 못 드려요. 나는 없어서 드릴 수가 없어요. 그런데 왕이라고 다 그렇게 일천번제를 드린 것 아닙니다. 아합이라는 왕은 제단을 다 무너지게 했던 왕입니다. 엘리야가 제단을 쌓으려고 하니까 제단이 다 무너졌다고 했습니다. 제단이 무너졌다는 얘기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오랜 시간 동안 제사 드린 일이 없다는 것입니다. 왕도 드린 일이 없다는 것입니다. 양 한마리 잡아 드리지 못한 아합 왕 시대가 있었습니다. 솔로몬이 임금이기 때문에 일천번제를 드렸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안 되요. 우리는 있어도 어떤 사람은 못 드리고 어떤 사람은 없어도 드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부자와 가난한 과부가 헌금하는 것을 예수님이 어느 날 보고 계셨어요. 예수님이 쳐다보고 있는데 부자가 헌금을 꽤 많이 냅니다. 그러니까 옆에 사람들이 아! 헌금 많이 한다. 그런데 옆에 보니까 과부가 두레 돈을 갖다 드렸다고 했어요. 돈으로 이야기하면 형편없는 돈이고 극히 적은 돈입니다.  그런데 그 두레돈을 헌금을  바구니에 넣는 것을 우리 주님이 보시고 이 과부가 저 부자보다도 훨씬 많은 헌금을 드렸다. 이 과부가 드린 이 헌금이 하나님이 열납하셨다. 우리 주님이 과부를 칭찬하셨습니다.  과부의 헌금을 보고 감동하셨다는 것입니다. 마음이 찡하셨다는 겁니다.  이 과부는 엘리야 찾아가 가지고 흉년 때 먹을 것도 없는데 그 집에 먹을 것이 다 떨어져 가지고  한번 먹을 것 밖에 양식이 안 남았는데 그것을 먹고 죽으려고 하는 그 순간에 엘리야가 도착해 가지고 그것 내가 먹게 가져와라. 그래서 일회분의 양식을 받쳐서 하나님을 감동시켰더니 3년 반 밀가루 통과 기름병이 마르지 않는 기적이 일어났어요. 하나님의 큰 축복과 은혜를 받았다고 하는 겁니다.  오늘 우리는 우리 신분에 맞게 우리 지위에 맞게 내게 주신 은혜에 맞게 하나님의 감동을 지키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없으면 없는데로 있으면 있는데로 내게 많이 주셨으면 많이 주신대로 내게 적게 주셨으면 적게 주신데로 최선을 다해서 하나님 앞에 드리면 드리는 것을 통해서 하나님이 감동하실 줄로 믿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물질로 드릴 수도 있고 시간도 드릴 수 있고 몸도 드릴 수 있는데 내게 주신 시간 중에 최선을 다해서 내게 주신 물질 중에 최선을 다해서 내게 주신 건강을 최선을 다해서 주님을 위해서 드리면 우리 주님이 감동하신다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드리는 것은 자원 예물도 있고 명령 예물도 있고 억지로 드리는 것도 있는데 하나님은 자원해서 드리는 것을 제일 기뻐하십니다.  시키지 않았는데 스스로 드리는 예물 이것을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두번째 하나님이 드려라 그리고 명령하실 때가 있는데 명령에 순종해도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그런데 기뻐하지 않는 예물이 있습니다.  드리기 싫어 가지고 억지로 또 드리다가 짤라 먹고 드리는 그런 것 하나님이 안 기뻐하십니다.  그러니까 시몬같은 경우는 십자가 지고 가라고 하니까 지기 싫어 가지고 툴툴대며 지고 갔던 것 아니예요? 그러니까 그와 같은 것은 사실 별스럽지 않다는 거예요. 오늘 우리 주님이 우리에게 감동받는 것은 드리는 것을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을 감동시킬 수 있습니다.  감동을 시킬 수 있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3. 기도를 드림으로 감동시킬 수 있습니다. 

    솔로몬의 꿈에 하나님이 나타나셨어요. 그래서 솔로몬에게 말하기를 너는 내게 구하라. 내가 네가 무엇이든지 주겠다고 했습니다. 솔로몬에게 소원을 들어주시겠다것입니다. 군대에 갔면 소원 수리 받는 시간이 있습니다. 거기다가 써내면 다 들어 준다는 것입니다. 그것처럼 오늘 하나님이 솔로몬에게 나타나셔 가지고 네가 내게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면 들어주겠다는 거예요. 솔로몬이 그때 구할 것이 얼마나 많습니까?  부자 되는 것도 구할 수 있고, 오래 사는 것도 구할 수 있고, 원수를 막아달라고 하는 기도도 할 수 있는데 백성을 잘 다스릴 수 있는 지혜를 주기 원합니다.  솔로몬이 이렇게 하나님한테 구하되 그것이 하나님의 마음에 맞았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딱 맞는 기도를 해서 하나님의 마음을 감동시켰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속담에 말로 천냥 빚을 갚는다 그런 말이 있어요. 말 잘못하면 천냥 빚도 갚아야 되고 거기에 이자까지 쳐서 갚아야 되지만 말만 잘하면 그 말로 천냥을 진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오늘 우리가 하나님 앞에 기도를 잘하면 우리의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이 마음을 감동시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구한 것도 주시고 구하지 않은 것도 주시는 그런 은혜로운 역사가 일어날 줄로 믿습니다.  감동을 시키면 감동 결과가 따라오게 되어 있어요. 솔로몬은 구한 것만 얻은 것이 아닙니다.  솔로몬은 지혜도 얻었지만 구하지 않은 부도 영광도 얻고 내가 열 왕 중에 너 같은 왕이 없으리라는 은혜를 주셨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하나님만 우리가 감동시키면 우리가 구하지 않은 것처럼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런 은혜로운 놀라운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는 말을 잘 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솔로몬이 하나님을 감동시킨 것은 자기 자신을 위해서 구하는 것을 포기하고 왕으로써의 신분에 맞는 백성을 잘 다스릴 수 있는 기회를 달라고 하니까 하나님이 지혜를 주셨는데 네 전에도 너만큼 지혜를 가진 사람이 없고 내 후에 태어날 사람 가운데도 너만큼 지혜 가진 사람이 없는 지혜를 네게 주리라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기도할 때 그런 기도는 해 봐야 소용이 없습니다. 하나님 솔로몬과 같은 지혜를 달라고 그렇게 기도해도 소용없습니다. 왜 안 되느냐. 하나님이 이미 솔로몬에서 주셨고 그런 지혜가 다시는 이 세상에 나타남이 없을 거라고 했기 때문에 솔로몬은 지혜를 달라고 하는 기도를 바꿔서 하나님 솔로몬 다음 가는 지혜를 주세요 라고 그렇게 기도해야 합니다. 솔로몬보다 조금 못한 지혜는 얻을 수 있어도 솔로몬 같은 지혜는 안 됩니다.  그것은 어떻게 보면 잘못 구하는 것입니다.  솔로몬이 지혜를 받는데 얼마나 큰 지혜를 받았는지 그 지혜로 백성도 다스리고 주변의 국가들과 관계도 잘했습니다.

  그래서 열왕기 상을 읽어보면 솔로몬이 히람이란 왕이 다윗을 좋아했습니다. 솔로몬도 좋아 했습니다. 솔로몬이 지혜가 있으니까. 그래서 솔로몬이 히람 왕에게  나는 당신의 백향목과 잣나무가 필요하다 그것을 나에게 달라. 그것을 공짜로 달라고 안하고 당신의 꼭 필요한 밀과 기름을 내가 주겠다. 그러니까 히람이 너무너무 좋은 거예요. 자기네는 그것이 꼭 필요하데요. 솔로몬이 어떻게 자기 마음을 알아 가지고 가려운 등을 긁어 주듯이 준다고 하니까, 히람이 감동을 받아서 나무를 벌목해주는 것은 당연하고 벌목된 나무를 당신 나라 까지 운반까지 해주겠다.. 그래서 공짜로 운반까지 해주는 그런 은혜가 그리고 당신이 원하는 대로 내가 나무를 갖다주겠다 그렇게 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사람도 감동시키면 거기에다가 더하여 지는 은혜를 받습니다, 내가 당신에게 나무 주는 것은 당연하고 그것도 원하는 만큼 나무를 주고 그리고 운반까지 해 주겠다 그런 내용이 뒷 장에 나옵니다. 오늘 우리가 하나님 앞에 솔로몬같이 말을 잘하는 은혜를 여러분들이 가지시기 바랍니다.  솔로몬이 말을 잘해서 결국은 하나님을 감동시킨 겁니다. 그래서 우리 기도는 하나님을 감동시킬 수 있습니다.  우리의 기도가 특별히 하나님 마음에 맞는 기도라면 그러면 하나님께서 감동을 받으십니다.  사람도 말을 잘하면 감동을 받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 앞에 특별히 기도를 통해서 잘 말하는 것을 통해서 감동시키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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