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칼럼 필요와 원함

첨부 1


- 전병욱 (삼일교회 목사)

필요를 따라 사는 삶이 있고,원함을 따라 사는 삶이 있다. 세상은 원함으로 살지만,성도는 필요를 따라 살아간다. 원함은 많은 것을 요구하나 필요는 많은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종이에 글을 쓰기 위해 필요한 펜은 1개다. 그러나 자기가 갖고 싶은 펜은 여러 개일 수 있다. 미혼의 청년이 이성을 원함으로 바라보면 여러 명이 될 것이다. 그러나 필요로 바라본다면 남편이나 아내 1명이면 된다. 이성을 원함으로 바라보는 사람을 바람둥이,카사노바,꽃뱀이라고 부른다. 반면에 이성을 필요로 바라보는 사람을 성실한 남편과 아내라고 부른다. 필요에 집중하면 생명이 충만해지고,원함에 집중하면 죽음을 맛보게 된다. 신앙의 삶이란 원함으로 살지 않고 필요로 사는 삶이다.

애굽에 있을 때 이스라엘의 원함은 탈출이었다. 탈출 이후 마실 물이 없자 원망한다. 마실 물이 주어지자 먹을 것이 없다고 불평한다. 먹을 만나가 생기자 같은 것을 먹기 지겹다고 고기를 원한다. 하나님의 설득과 권면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계속 원함만을 추구한다. 계속 원하면 주신다. 그것이 심판이다. 고기를 원하니 고기를 주셨다. 하루 이틀이 아니라 1개월을 고기만 먹게 주셨다. ‘코에서 넘쳐서 싫어하기까지 일개월간을 먹게 하시리니 이는 너희가 너희 중에 거하시는 여호와를 멸시하고 그 앞에서 울며 이르기를 우리가 어찌하여 애굽에서 나왔던고 함이라 하라’(민 11:20) 한 달 전에 이스라엘의 원함은 고기였다. 그러나 한 달이 지난 후 이스라엘의 경멸의 대상도 역시 고기였다. 원함이 경멸로 바뀌었다는 말이다. 성경은 불신자와 결혼하지 말라고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신자와의 결혼을 원한다. 원함이 지나치면 들어주신다. 그것이 심판이다. 자기의 원함이었던 불신 배우자가 몇 년 지난 뒤에는 불행의 근본 원인으로 드러날 때가 많다. 원함이 경멸로 바뀐 것이다. 원함이 다 이루어지면 불행해진다. 인간은 무엇이 좋은 것인지를 모른다. 그러므로 최상의 기도는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다. 아버지의 뜻을 구하는 인생이 필요를 따라 사는 인생이다. 불만족이란 원함을 분모로 하고 채움을 분자로 하는 것이다.(불만족=채움/원함) 많이 채워지는데도 불구하고 만족하지 못하는 이유는 원함으로 살기 때문이다. 원함은 거의 무한대의 탐욕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만가지를 가져도 불만이다. 채워도 채워도 만족이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진정한 만족은 분모가 필요로 바뀔 때 나타난다. (만족=채움/필요) 필요는 몇 가지 되지 않는다. 그래서 조그마한 채움만 있어도 얼마든지 만족할 수 있는 것이다. 진정한 만족이란 더 많은 채움에 있은 것이 아니라 분모가 원함에서 필요로 바뀔 때 오는 것이다. 필요를 따라 살면 만족이 있다. 필요를 따라 살면 풍성한 생명을 맛보게 된다.

- 출처 : 국민일보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