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아벨의 제사만 받으신 하나님 (창 4:1-6)

  • 잡초 잡초
  • 526
  • 0

첨부 1


- 설교 : 빅충웅 목사

아담이 그 아내 하와 사이에 첫 아들 가인을 낳았습니다. 그 이름은 “여호와께서 나에게 아들을 주셨구나”라는 뜻입니다. 둘째 아들 아벨을 낳았습니다. 아벨은 양을 치는 목자가 되었습니다. 가인은 농부가 되었습니다. 때가 되어 가인은 땅에서 난 곡식을 하나님께 예물로 드렸습니다. 그 동생 아벨은 양떼 가운데서 첫 새끼와 그 기름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아벨과 그가 바친 예물을 반기셨습니다. 가인과 그가 바친 예물을 받지 않으셨습니다. 가인은 몹시 화가 났습니다. 하나님께서 이것을 보셨습니다. 하나님은 가인에게 “너는 왜 그렇게 화가 났느냐? 왜 고개를 떨어뜨리고 있느냐? 네가 잘 했다면 왜 얼굴을 쳐들지 못하느냐? 그러나 네가 만일 마음을 잘못 먹었다면 죄가 네 문 앞에서 도사리고 앉아 너를 노릴 것이다. 그러므로 너는 그 죄에 굴레를 씌워야 한다.” 그러나 가인은 아우 아벨을 들로 가자고 꾀어 들에 데리고 나가서 달려들어 아우 아벨을 쳐 죽였습니다. 이것이 본문에 기록된 역사적 줄거리 입니다.
가인이란 “얻음”이라는 뜻입니다. 아벨은 “공허”를 뜻합니다. 하와는 첫 아들에 대한 기대가 컸습니다. 그리고 둘째 아벨에게서 인간의 무상함을 목격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그 이름을 아벨(공허)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이미 하나님께서 감동을 주어서 이런 이름을 지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가인도 하나님께 제물을 드렸습니다. 그는 그가 지은 곡식으로 제사를 드렸습니다. 하나님은 그 제사를 받지 않으셨습니다. 그 이유는 법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미 하나님께서는 원시시대부터 소, 양, 염소, 비둘기를 잡아 드리도록 되어 있었습니다.(히 9:22) 이런 동물로 하라 하신 것은 우리를 위하여 속죄하여 주실 예수님을 예표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은혜로 구원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벨은 가인과 같은 형제입니다. 그는 그 형과는 다른 사람이었습니다. 형 가인은 불순종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죄를 지어 놓고도 뉘우칠 줄 모르는 뻔뻔스러운 사람이었습니다. 오히려 동생까지 죽였습니다. 그러나 그 동생 아벨은 믿음의 사람입니다. 순종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하라 하시는 대로 했습니다. 그는 양을 잡아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형이 마땅히 자기 잘못을 깨닫고 회개해야 했습니다. 무엇 때문에 하나님이 그의 제사를 받지 않으셨는지를 살피고 무릎을 하나님께 꿇었어야지요. 그런데 동생까지 죽였습니다. 아벨은 순교했습니다. 우리는 전에도 그러했던 것처럼 법대로 삽시다. ale음대로 주십니다. 믿음으로 삽시다. 하나님은 변함이 없으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믿읍시다. 혹시 목사(저의) 설교나 가르침이 시대에 맞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시대에 뒤떨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성경말씀대로 목회할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이 변질되지 맙시다. 아벨과 같이 예배나 신앙생활이 오직 하나님 중심이기를 바랍니다.

Ⅰ. 가인의 제사를 받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이 왜 가인의 제사는 받지 않으셨습니까? 하나님은 가인이라는 사람이 마음에 들지 않으셨습니다. 이것을 주목해야 합니다. 그 인격이 하나님의 마음에 들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의 제물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그 인격의 됨됨이가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의 법대로 제물을 드리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제사는 속죄 제물이었습니다. 양과 기름을 드려야 합니다. 그런데 농사 지은 곡식을 드렸습니다. 그가 농사를 지었기 때문에 곡식을 드린 것이 아닙니다. 마음만 있으면 동생의 양을 빌릴 수도 있습니다. 그는 법을 어긴 것입니다.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거역했습니다. 그는 자기의 분수를 몰랐습니다. 너무도 건방진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어려운 것만 주문하시지 않습니다. 그런데 보세요. 하나님이 그의 제물을 받지 않으셨습니다. “가인이 심히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그는 자기의 잘못을 회개했어야 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용서해 주십니다.

서울 신학대 대학원장 박명수 교수님의 이야기 교회사(국민일보 2005.1.8)에 고찬익 장로(서울영동교회)에 대한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그는 전형적인 노름꾼이었습니다. 또 사기꾼이었습니다. 그래서 관가에 끌려 가서 죽도록 매를 맞았습니다. 고문을 당했습니다. 그는 벙어리가 되었습니다. 그는 빚 독촉에 시달려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독약을 먹었습니다. 그러나 죽지는 않았습니다. 다시 게일 선교사의 전도를 받았습니다. 선교사는 그에게 “네 이름이 무엇이냐?”라는 전도지를 주었습니다. 전도지 내용은 고집쟁이며 욕심꾸러기인 야곱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그날 밤 고찬익이 잠이 들었습니다. 꿈을 꿉니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라는 음성이 들립니다. 고찬익은 말을 못합니다. “고~ 고~ 고~”라고만 했습니다. 그런데 다시 “네 이름이 무엇이냐?”라는 소리가 들립니다. 그는 너무 무서워 벌벌 떨었습니다. “내 이름은 고가요 싸움꾼입니다. 술꾼입니다. 망나니올시다. 누구신지 모르지만 저를 용서하여 주십시오”라며 울며 대답했습니다. 그때 흰 옷을 입은 사람이 나타납니다. “이제부터 너는 내 아들이다”라는 말을 하고 사라져 버립니다. 꿈에서 깼습니다. 꿈이 하도 이상하여 전도지를 몇 번인가 읽고 또 읽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벙어리였던 그의 혀가 풀립니다. 그는 그때부터 “제 이름은 고가요, 이제는 하나님의 아들입니다”라고 중얼거렸습니다. 고찬익은 원래 짐승 가죽으로 신을 만드는 갖바치였습니다. 조선시대 가장 천한 사람이었습니다. 천민에게는 원래 이름이 없었습니다. 찬익이란 하나님에게 유익이 되는 사람이 되라는 뜻으로 게일 선교사가 지어 준 이름이었습니다. 그는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고찬익은 자신이 지난 날 해를 끼쳤거나 신세를 졌던 사람들을 찾아갔습니다. “나는 도둑놈에다 사기꾼이었습니다. 이제는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제가 만든 신발을 드리겠습니다”며 전도했습니다. 그는 게일의 조사가 되었습니다. 1904년 영동교회 장로가 되었습니다. 게일은 내가 노벨상을 추천 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면 고찬익 장로를 추천했을 것이라고 했답니다.

가인은 제사법을 몰랐던 것이 아닙니다. 그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아버지로부터 배웠을 것입니다. 또 동생이 준비하는 것도 보았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있습니다. 그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사람이 갖추어야 할 순종이란 덕목이 없었습니다. 그는 성격이 거친 사람입니다. 부정적입니다. 또 소극적입니다. 순종형이 아닙니다. 인격이 잘 다듬어진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남을 편하게 해 주는 사람이 못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이 자기 제사를 받으시지 않은 책임과 분풀이를 동생에게 돌렸습니다. 가인과 아벨의 제사에서 이런 행위는 대단히 잘못된 것입니다. 사실 그는 살인자였습니다. 그는 동생을 죽였습니다. 분풀이를 동생에게 했습니다. 분노했다고 했습니다. 분노는 엄청난 불행한 결과를 가져옵니다. 사람들은 지나고 나면 후회합니다. 나도 일이 그렇게까지 될 줄을 몰랐다고 비명을 지릅니다. 분노가 달리기 시작하면 걷잡기 어렵습니다. 걷잡지 못하면 후회 막급한 큰일을 저지릅니다. 살인이 무엇인지 깨닫기도 전에 살인을 저지릅니다. 남의 목숨을 끊는 것만이 살인이 아닙니다. 중상, 모략, 험담, 말질은 사람을 상처 내는 행위입니다. 사람을 죽이는 보이지 않는 비수입니다. 가인은 동생이 하나님으로부터 사랑을 더 많이 받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아벨을 미워했습니다. 그는 돌로 동생을 때려 죽였습니다. 에던 동산에서 첫 살인사건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Ⅱ. 아벨의 제사만 받으셨습니다.

성경에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거 하심이라. 저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오히려 말하느니라.”(히11:4) 히브리서 기자인 바울은 하나님이 보신 아벨의 인격을 짧지만 아주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는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순종의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법대로 살았습니다. 감사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양치는 사람이었습니다. 양을 잡아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설사 그가 형 가인처럼 농사짓는 사람이었어도 짐승을 드릴 사람입니다. 그는 하나님께는 어떤 예물을 드려야 하는가를 잘 압니다. 아마 형이 비웃었을지도 모릅니다. 고지식하고 앞뒤가 꽉 막힌 사람이라고 했을지도 모릅니다. 자기처럼 값싼 농산물로 하면 되는데 더 값 나가는 짐승을 잡는 동생이 어리석게 보였을 것입니다. 그것이 인간의 생각입니다. 하나님은 비싸고 싼 문제가 아닙니다. 생활정도에 따라 소, 양(염소), 비둘기로 할 수 있습니다. 반드시 피가 있는 짐승으로 해야 합니다. 아벨은 그 법대로 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사람입니다. 법대로(성경말씀) 살아야 합니다. 시대가 많이 변했습니다. 달라졌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성경이 하라 하시는 대로 해야 합니다. 거기 이러니 저러니 따지면 안 됩니다. 너무 고리타분하다느니 보수 꼴통이니 그런 말을 하면 안 됩니다. 적당하게 하지 하는 그런 말은 입 밖에도 내면 안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정말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을 보십니다. 때로는 내 마음에 맞지 않는 것도 많습니다. 상식으로 이해되지 않는 것도 많습니다. 하나님의 법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해가 되고 안 되고가 문제가 아닙니다. 상식에 벗어나도 안 됩니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그 민족을 해방시키라 하십니다. 잘 가다가 방향을 바꾸십니다. 쉬운 길을 포기하라 하십니다. 오히려 어려운 길 앞에는 홍해가 있습니다. 뒤는 사막입니다. 옆에는 깎아지른 절벽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뒤에는 애굽의 바로 군대가 추격해 옵니다. 틀림없이 죽습니다. 백성들은 모세를 원망합니다. 차라리 이집트 노예 생활로 두지 여기서 죽게 하느냐 합니다. 그때 하나님은 모세에게 지팡이로 홍해를 치면 바다가 갈라진다고 하십니다. 이 말을 누가 믿겠습니까?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모세는 믿었습니다.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믿었습니다. 모세는 신앙 생활의 경력이 아주 짧습니다. 그는 어머니 젖을 먹으며 3년 교육 받은 것이 전부였습니다. 그런데 호렙산 아래 가시떨기나무를 보여주셨습니다. 바로에게 10가지 재앙으로 항복을 받아 내셨습니다. 모세는 오직 하나님뿐이었습니다. 건너라 하면 바다에도 뛰어 들었습니다. 물이 나온다고 바위를 치라 하실 때 바위를 쳤습니다. 생수가 펑펑 쏟아졌습니다. 양식도 없는데 불볕 쏟아지는 사막길 40년 길을 갔습니다. 매일 매일 하늘의 양식 만나를 주실 줄 믿었습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이런 것을 세상 사람들은 “보수, 꼴통, 바보, 돌대가리”라고 합니다. 어쩌면 이런 머저리가 되어야 합니다. 바보면 어떻습니까? 머저리면 어떻습니까?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히11:1)”라 했습니다. 더 쉬운 번역은 이렇게 했습니다. “믿음은 우리가 바라는 것들을 보증해 주시고 볼 수 없는 것들을 보증해 줍니다”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그러기에 늘 긍정적인 삶을 삽시다. 그러기에 늘 감사하며 삽시다. 하나님은 크신 사랑이십니다. 그러기에 바울은 하나님의 사랑을 측량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기에 아브라함은 100살에 낳은 아들 이삭도 바친 것입니다. “아벨의 믿음을 보신 하나님께서 그의 예물을 기꺼이 받으시고 그를 의인으로 인정하셨다(히11:4)” 했습니다. 믿음은 계산하는 것이 아닙니다. 과학적이니 뭐니 따지지 않습니다. 믿음은 오직 순종하는 것입니다. 아벨은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맺는 말 ;

저는 오늘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 아담의 두 아들 가인과 아벨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가인은 농사를 지은 곡식으로 제사를 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제사를 받지 않으셨습니다. 그는 분이 목에까지 차 올랐습니다. 그 이유는 동생 아벨의 제사는 받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들판에 동생을 끌고 가 돌로 때려 죽였습니다. 가인의 제사를 하나님이 받지 않으신 것은 아벨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믿음이 없었습니다.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법대로 제사를 드리지 않았습니다. 그 당시 제사의 제물은 반드시 흠 없는 소나 양이나 염소나 비둘기이어야 합니다. 그가 그 법을 몰라서였습니까? 아담은 맏이인 가인에게 먼저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러나 아벨은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순종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법대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다가 순교했습니다. 우리도 아벨 같은 사람이 되어 주 안에서 늘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2005.01.23 -충웅-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