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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아주 특별한 치유 사건 (눅 8:4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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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자 박봉수 목사

  성경을 보면 예수님께서 병자를 고쳐주신 치유 사건이 많이 기록되어있습니다. 사복음서에만 무려 42회나 나타나있습니다. 분량 면에서 복음서의 1/5 정도나 될 정도입니다.

  그런데 이 많은 치유 사건들을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해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예수님께서 불쌍히 여기셔서 일방적으로 고쳐주신 사건입니다. 대표적으로 베데스다 연못의 치유사건을 들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가셨을 때 38년 된 병자가 베데스다 연못에 누워있었습니다. 주님께서 불쌍히 여기시고 찾아가셨습니다. 이 사람은 예수님이 누구신지 몰랐습니다. 이 분이 자기의 병을 고쳐주실 능력의 주님이라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주님께서 일방적으로 저를 고쳐주셨습니다. 성경에 이런 치유 사건에 여럿 기록되어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병 낫기를 간절히 청하는 사람들을 그 믿음을 보시고 고쳐주신 사건입니다. 대표적으로 여리고의 소경 바디매오 치유사건을 들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여리고를 지나가실 때 소경 바디매오가 그 소식을 들었습니다. 비록 보이지는 않아도 그에게 믿음이 있었습니다. 주님이시면 자기 눈을 뜨게 해 주실 수 있다는 믿음입니다. 그리고 그에게는 간절한 부르짖음이 있었습니다. 주님께서 들으셨습니다. 그리고 그 믿음대로 고쳐주셨습니다. 성경에 이런 치유 사건이 여럿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의 치유 사건은 이런 성경의 치유사건과는 아주 다릅니다. 주님께서 불쌍히 여기셔서 일방적으로 고쳐주신 사건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주님께서 여인의 믿음을 보시고 고쳐주신 사건도 아닙니다. 여인이 몰래 지나가시는 주님의 옷을 만져서 고침 받은 사건입니다. 다른 치유사건들과는 다른 아주 특별한 치유사건인 것입니다.

  본문의 치유사건은 이런 이야기입니다.

  예수님께서 가버나움에서 사역하고 계실 때 회당장 야이로가 주님께 찾아왔습니다. 12살 먹은 외동딸이 죽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제발 오셔서 살려달라고 간청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고쳐주시기 위해 회당장의 집으로 가시기로 했습니다. 수많은 무리들이 뒤를 따랐습니다.

  그런데 그 무리 틈에 12해를 혈루증으로 투병하던 한 여인이 있었습니다. 아무도 모르게 무리 속에서 주님께 다가갔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옷 가에 손을 댔습니다. 놀랍게 혈루증이 즉시 나았습니다.

  주님께서 알아차리셨습니다. 주님의 몸에서 능력이 나간 것을 주님께서 감지하셨기 때문입니다. 누가 손을 댔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아무도 몰랐습니다. 더 감출 수 없음을 알고 여인이 주님 앞에 엎드려 고했습니다. 자기가 주님의 옷에 손을 댄 것과 그래서 병이 나은 것을 말씀드렸습니다.

  주님께서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고 축복해 주셨습니다.

아주 특별한 능력

  본문의 치유 사건은 공관복음서에 다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런데 공관복음서에 모두 연속되는 세 가지 사건과 묶여서 소개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본문의 치유사건은 묶여진 큰 이야기 속의 한 토막이라는 말씀입니다.

  이런 사실을 본문 누가복음 8장에서 확인해 볼 수 있습니다. 눅 8:22-56에는 말씀드린 대로 네 가지 사건이 기록되어있습니다.

  첫째로, 22-25절까지는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갈릴리 바다를 건너시는 도중에 생긴 놀라운 일이 기록되어있습니다. 광풍이 불어 배가 침몰 위기에 있었습니다. 그 때 주님께서 바람과 물결을 꾸짖으시니 잠잠해 진 사건입니다. 주님의 능력 앞에 자연도 어쩔 수 없음을 보여준 사건입니다.

  둘째로, 26-40까지는 예수님께서 거라사 지방에서 귀신을 쫓아내신 사건이 기록되어있습니다. 군대라 부를 정도로 수많은 귀신들이 주님께서 말씀하시자 꼼짝 없이 사람에게서 나와 돼지 떼 속으로 들어간 사건입니다. 주님의 능력 앞에 귀신같은 영적 존재들도 어쩔 수 없음을 보여준 사건입니다.

  셋째로, 41-56절에는 회당장 야이로의 딸이 죽었는데 주님께서 다시 살리신 사건이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야이로의 집에 도착하시기 전에 이미 딸이 죽어있었습니다. 이미 곡소리가 들리고 장례 절차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손을 잡고 일어나라 명하시니 죽은 딸이 살아났습니다. 주님의 능력 앞에 심지어 죽음마저도 어쩔 수 없음을 보여준 사건입니다.

  오늘 본문은 이런 세 사건 사이에 삽입되어 있습니다. 12해를 혈루증으로 앓던 여인이 주님의 옷에 손만 대었는데 그 자리에서 즉시 나았습니다. 불치의 병도 다만 주님의 옷깃에 닫기만 했는데도 즉시 나은 것입니다. 주님의 능력 앞에 인간이 고칠 수 없는 불치의 병도 정말 어쩔 수 없음을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이 연속되는 네 사건은 이구동성으로 주님의 놀라운 능력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한결같이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주님의 능력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미친 듯이 불어대는 갈릴리 바다의 광풍도 주님 앞에서는 한 마리 어린 양일 뿐입니다. 날뛰던 귀신들도 주님 앞에서는 잠잠할 뿐입니다. 사람을 집어삼키는 죽음의 세력도 주님 앞에서는 순종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인간을 괴롭히던 불치의 병도 주님 앞에서는 힘을 쓰지 못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믿는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전능하신 분이십니다. 인간에게는 한계가 있어도 주님께는 한계가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불가능이 있어도 주님께는 불가능이 없습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철저하게 믿고 인정해야 합니다.

  많은 분들이 지난 송구영신 예배 때 2004년도 감사 제목과 2005년도 기도 제목을 써 내셨습니다. 철해서 제 기도실에 두고 시간 나는 대로 중보기도하고 있습니다. 읽어보면 한결같이 연약함이 고백되어있습니다. 주님의 도우심 없이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로 가득합니다.

  저는 중보기도하면서 우리 교우들이 마치 풍랑 가운데 저 갈릴리 바다를 지나고 있는 제자들처럼 느껴졌습니다. 귀신에 사로잡혀 어쩔 줄 모르는 저 거라사 광인처럼 느껴졌습니다. 죽은 딸을 바라보며 통곡하고 있던 저 가버나움의 회당장의 가족들처럼 여겨졌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기도하고 있습니다. 주님! 이분들에게 주님이 필요합니다. 주님의 능력으로 이분들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고 그 소원을 이루어주시옵소서.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에게 주님이 필요합니다. 주님의 능력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불가능해도 주님이면 할 수 있습니다. 그분을 붙드시기 바랍니다. 그분을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아주 특별한 믿음

  말씀드린 네 사건은 우리에게 중요한 사실 하나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 네 사건 속에서 주님께서 요구하고 계시는 것이 있다는 점입니다.

  폭풍 사건 속에서 주님께서 제자들을 책망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믿음이 어디 있느냐?”(25) 믿음 없음을 책망하신 것입니다. 귀신들린 사람을 고쳐주신 사건에서는 아무에게도 믿음을 찾아보실 수 없으시자 곧 그 땅을 떠나버리셨습니다. 그리고 회당장 야이로의 집에 가셨을 때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50) 두려워 떠는 사람들에게 주님께서 믿으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이 세 사건과 달리 아주 뜻밖의 주님의 칭찬이 주어집니다. 48절을 보면 주님께서 이 여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하시더라” 제자들에게도, 이방 땅에서도, 그리고 회당장 야이로의 집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던 믿음을 바로 이 여인에게서 찾으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아주 특별한 주님의 능력은 아주 특별한 믿음을 통해서 우리에게 임하게 됩니다. 주님의 능력으로 놀라운 역사를 나타나게 됩니다. 그 뿐 아니라 주님을 기쁘시게 해 드립니다.

  그러면 이 여인의 아주 특별한 믿음을 살펴보겠습니다.

1. 포기하지 않는 믿음입니다.

  본문의 여인이 앓던 병은 혈루증입니다. 혈루증이란 여성이 월경과 무관하게 하혈을 하는 질병을 말합니다. 지금 이 여인은 2000년 전의 사람입니다. 도대체 왜 하혈이 생기는지 이유를 알 수가 없습니다.

  본문을 보면 12년 동안 혈루증으로 고생을 했다는 것입니다. 당시의 위생상태로 얼마나 불편했겠습니까? 빈혈을 비롯한 몸의 통증은 또 어떠했겠습니까? 하루 이틀도 아니고 12년 동안 계속 하혈을 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아마도 차라리 죽고 싶은 생각을 가졌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죽음보다 더 큰 고통에 시달렸을 것입니다.

  같은 내용을 기록해 놓은 막 5:26을 보면 이 여인이 딱한 사정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많은 의원에게 많은 괴로움을 받았고 있던 것도 다 허비하였으되 아무 효험이 없고 도리어 더 중하여졌던 차에” 용하다는 의사들은 다 찾아다녔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처방대로 하라는 대로 다 해보았다는 것입니다. 그 끔찍한 고통을 참으면서 최선을 다해서 치료해 보았다는 것입니다. 12년 치료 도중에 가진 재산도 다 탕진했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병은 점점 더 깊어만 갔다는 것입니다.

  이제 웬만하면 포기할 만도 합니다. 그러나 이 여인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주님에 대한 소문을 듣고 믿음을 얻었습니다.

  근자에 우리 사회 지도층 인사들의 자살 소식이 끊이질 않고 있습니다. 며칠 전 대법원장을 지내신 인사가 한강에 투신하여 자살한 사건이 보도되었습니다. 지병으로 고통을 겪던 중 견디기 힘들어 자살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살다보면 우리 힘만으로 견디기 힘든 일들이 생깁니다. 포기하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거기서 포기하면 안 됩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바라보면 벌써 몇 번이고 포기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바라보면 포기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마 19:26에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할 수 있느니라”
  사랑하는 여러분! 주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견디시기 바랍니다.

2. 장벽을 뛰어넘은 믿음입니다.

  혈루증은 당시 율법으로 부정하다고 규정되어있었습니다. 레위기 15장을 보면 이 혈루증을 앓는 사람은 그 자체로 부정하다고 규정되어있습니다. 그 뿐 아니라 그 사람이 누웠던 침대나 앉았던 의자 그리고 그 사람이 손을 대었던 것들이 다 부정하다고 규정되어있습니다. 게다가 그 사람과 접촉했던 사람들도 다 부정하다고 규정되어있습니다.

  이 사람이 부정하기 때문에 성전에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이 사람과 접촉되었던 것이 다 부정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 수가 없습니다. 이 사람과 접촉한 사람이 다 부정하기 때문에 대인 관계가 철저하게 차단되었습니다.

  질병도 고통스러운데 성전에 나아가지 못하도록 영적인 삶이 차단되었습니다. 다른 사람과 교제할 수 없도록 사회적 삶이 차단되었습니다. 이 사람 주변에는 온통 장벽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여인은 주님을 만나기 위해 과감하게 그 장벽들을 무너뜨렸습니다. 당당하게 사람들이 모인 곳으로 달려 나왔습니다. 주님의 옷에 손을 댔습니다. 부정하다고 금지된 일들을 저지른 것입니다.

  실제로 주님을 만나고 싶어도 만나지 못하게 가로막는 장벽들이 있습니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에게는 잘못된 신념과 지식이라는 장벽이 있었습니다. 대제사장들과 사회 지도층에게는 체면과 지위라는 장벽이 있었습니다. 부자 청년은 자기가 가진 재산이 장벽이었습니다.

  벌써 20년 전으로 기억됩니다. 이름도 잊어버렸습니다만 미국 한 교회의 찬양 집회에 참석했었습니다. 제 옆 자리에 얼핏 보아도 60대 중반으로 보이는 노신사께서 참석하셨습니다. 당시 젊은이들이나 알만한 최신 CCM 곡을 함께 부르고 계셨습니다. 손을 높이 들고 찬양을 부르셨습니다. 가끔은 자리에서 일어나서 두 손을 들고 찬양을 부르셨습니다. 또 눈물을 흘리며 소리 지르며 기도하셨습니다. 나중에 안 일입니다만 이 분은 당시 미국의 어느 대학의 총장이셨습니다.

  제 눈에 그분의 모습이 어찌 그리 아름답던지요. 주님 앞에서 체면이고 지식이고 지위고 다 던져버린 그 순수한 믿음이 아름다워 보였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믿음을 가로막는 장벽들이 있습니다. 과감하게 던져야 합니다. 그래야 주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3. 주님께 칭찬받은 믿음입니다.

  오늘 본문을 자세히 살펴보면 주님의 관심은 우리의 믿음에 초점을 맞추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갈릴리 바다의 풍랑이 문제입니다. 우리를 사로잡고 있는 귀신의 능력이 문제입니다. 우리를 힘들게 하는 12년간의 혈루증이 문제입니다. 그리고 우리를 무너뜨리는 죽음의 세력이 문제입니다.

  그러나 주님에게는 우리에게 믿음 없음이 문제입니다. 풍랑 속에서 믿음 없이 호들갑을 떠는 제자들이 문제입니다. 아이가 죽었다고 믿음 없이 통곡하는 야이로의 집 사람들이 문제입니다.

  그러나 이 여인은 달랐습니다. 막 5:28을 보면 “이는 내가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얻으리라 함일러라”고 되어있습니다. 이 여인이 믿을 수 없는 중에서도 믿음으로 주님의 옷에 손을 댔다는 것입니다.

  이 믿음이 주님을 놀라게 해드렸습니다. 지금까지 믿음 없는 사람들만 보셨습니다. 저들을 책망만 하셨습니다. 이제 이 여인을 보고 칭찬하셨습니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당시 볼 수 없었던 아주 특별한 믿음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바로 이 아주 특별한 믿음이 주님의 아주 특별한 능력을 받아 아주 특별한 치유사건을 일으켰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결국 인생의 모든 문제는 믿음의 문제입니다. 지금 내가 겪고 있는 문제가 어떤 문제이냐가 인생의 문제의 핵심이 아닙니다. 지금 내가 믿느냐 아니냐가 인생의 문제의 핵심입니다.

  주님께서 오늘도 우리에게 물으십니다. “네가 믿느냐?” 그리고 또 말씀하십니다. “믿음대로 될찌어다”

  사랑하는 여러분! 믿음으로 주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시기 바랍니다. 믿음으로 여러분의 인생의 모든 문제들과 싸워 승리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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