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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믿음의 경주 (히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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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박춘수 목사

우리의 믿음 생활은 종종 육상경기에 비유되곤 합니다. 육상경기에는 단거리가 있고 장거리도 있으며, 장애물 경기도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고 난 후 우리의 믿음생활은 장거리 마라톤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100미터나 200미터의 단거리 경주가 아닙니다. 평생을 달려야 하는 장거리 경주이다. 어려운 시련과 고난을 넘어야 하는 장애물 경기와 같을 때도 있습니다.
바울은 고전 9장24절에서 그리스도인을 가르켜 운동장에서 달음질 하는 사람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디모데후서 2장에서는 그리스도인들을 경기하는 자로 말씀하면서 경기하는 자는 법대로 경기해야 면류관을 얻는 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저 천성을 향하여 달려가는 경기자들 입니다.
존 번연의 천로역정을 보면 그리스도인이 어떤 사람들 인가를 잘 알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순례자로서 천국을 향하여, 본향을 향해 순례하는 자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순례자와 나그네처럼 신앙의 경주를 하다보면 때로는 가파른 비포장길을 걸어야 할 때가 있습니다. 때로는 잘 닦여진 고속도로를 활기차게 달릴 때도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면서 기쁨과 감사와 그리스도의 나라를 위해 살기를 소망합니다.
1절 에 보면 우리에게는“ 구름 같이 허다한 증인들이” 있다고 말씀하신다. 이것은 11장에 나오는 16명의 믿음의 영웅들과 그 외에 알려지지 않은 수 많은 믿음의 사람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들은 모두 엄청난 시련과 역경을 극복하고 신앙의 경주를 한 사람들입니다.
참된 예배를 드리고 맞아 죽은 사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려서 죽음을 이긴 사람도 있습니다. 세상의 종말에 방주를 예비한 사람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믿음으로 인내하여 승리한 사람,그리스도를 얻기위해 좋은 것을 포기하기도 하였습니다. 여기에 나오는 믿음의 사람들을 말하려면 32절 말씀처럼 시간이 부족할 것입니다. 이들은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였고 나그네와 우거하는 자와같이 살았습니다.. 이들은 한결같이 나오는 단어는 믿음입니다. 6절 말씀에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라고 말씀합니다. 믿음으로 이 시간 살아계신 하나님 앞에 나아가시는 모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최근에 한권의 책을 읽었습니다. 2004년 영국 기독교 출판상을 수상하였고 2003년 영국 기독출판박람회 올해의 책으로 선정된 책입니다. 책의 제목은 “ 하늘에 속한 사람” 이라는 책입니다. 이 책의 저자는 윈이라는 중국그리스도인입니다. 본명은 리우전잉입니다. 중국의
허난성에서 태어나 아버지가 기적적으로 암에서 치유되는 것을 계기로 예수님을 영접하였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후 그는 부르심에 따라 복음전도자의 길을 걷게 되었고, 중국정부의 극심한 박해 가운데서 30회 이상 체포되어 모진 고문을 당했습니다. 그런 가운데도 그는 복음전도의 사명을 포기하지 않고 삼자교회에 가입하기를 거부하고 지하교회(가정에서 예배드림)운동을 계속하였습니다. 중국공안에 체포되어 감옥안에서 74일간의 금식기도로 승리하였고 기독교 연합운동을 펼치다가 또 체포되었습니다. 하나님의 기적과 같은 도움으로 탈옥하였고 하나님의 새로운 부르심에 따라 독일로 가게 되었습니다. 독일에서 현재 백투 예루살렘 운동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그의 별명이 하늘에 속한 사람입니다. 감옥 안에서 모진 고문을 당할 때 그는 “나는 하늘의 사람입니다. 주소는 천국입니다.” 라고 외쳤던 것을 계기로 하늘의 사람이라고 불리 우게 되었습니다.
윈형제는 말로 다할 수 없는 모진 고문 가운데서도 결코 타협하지 않고 끝까지 믿음의 경주를 다한 그리스도의 군사입니다. 지금도 세계도처에서는 그리스도를 따르는 증인의 삶을 사는 것 때문에 얼마나 많은 주의 종들이 피를 흘리고 있는지 모릅니다.
이들은 모두 자기에게 주어진 신앙의 경주를 달리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고 하는데 짧은 생애를 이 땅에 살면서 그리스도와 그의 나라를 구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믿음의 승리자가 되기 위해서는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할까요?
첫째로 우리는 모든 방해물을 제거하여야 합니다.
1절 말씀에 보면 “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고 ” 경주를 해야 한다고 말씀 하십니다. 우리가 벗어야 할 것의 하나는 “ 무거운 것”입니다. 이 말은 방해물, 혹은 “방해하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그리스도를 온전히 따르는데 방해되는 것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 100미터 경주를 하는 사람이 핫바지를 입고 달린 다거나 무거운 것을 등에 지고 달리면 경주가 제대로 되지를 않지요. 또 배구 선수들이 치렁치렁 한복을 입고 시합을 한다면 이것은 게임이 되지 않습니다. 성경에 다윗이 골리앗과 전투를 하려할 때 사울의 갑옷을 입고 나가려 하다가 오히려 방해가 되어서 벗어 놓고 나갔습니다. (삼상 17:38절) 사울의 갑옷이 오히려 전투하려고 나가는 다윗에게 방해거리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평소에 자기가 신뢰한 만군의 하나님의 이름과 무기로 매끄러운 돌과 물매를 가지고 승리하였습니다.
우리가 신앙의 경주를 잘 하려면 “무거운 것”을 벗어 버려야 합니다. 방해가 되는 것을 제거하여야 합니다. 주일 예배를 거룩하게 지켜야 하는데 취미 생활이 방해가 되면 벗어 버려야 합니다. 토요일 늦게 까지 텔레비젼을 보고 늦게 자거나 오락이나 컴퓨터 게임 이 주일을 지키는데 방해가 되면 당장 벗어야 합니다. 우리의 다양한 생활 가운데 그리스도를 따르고 그의 말씀을 온전히 지키는데 방해물이 되는 것을 과감하게 버려야 합니다. 눈은 그리스도를 향하고 발은 세상을 향해 달려가고 마음은 어쩔 줄 몰라
두마음 가운데 있다면 그것이 어찌 하나님이 받으시는 향기나는 제사이겠습니까?

성경은 말씀하시기를 “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쫒는 옛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사람을 입으라” 고 말씀합니다. 옛 것을 벗지 않으면 새것을 입을 수 없습니다.
고질적인 나쁜 습관과 틀을 바꾸지 않으면, 변화시키지 않으면 새사람의 생활을 바르게 할 수 없습니다. 새 술이 되었으면 새 부대가 필요합니다. 옛것을 떨쳐 버리고 새것으로 바꿔 입으시길 바랍니다.
로마서13장12절에도 “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으라” 고 합니다. 제자생활에서 방해가 되는 모든 것을 과감히 벗어버리는 용기와 결단이 있기를 바랍니다.
신앙의 경주를 방해하는 다른 것은 “ 죄” 라고 말씀합니다.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려야 합니다.
죄는 누룩과 같습니다. 가만히 두면 누룩처럼 번져서 전체를 물들게 합니다. 죄는 영적생활에 암세포와 같습니다. 즉시 처리하지 않으면 온 몸에 퍼져서 영성을 흐리게 합니다.
죄의 문제는 예수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씻김을 받아야 합니다. 구원받은 우리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가 막히지 않게 되기 위하여 날마다 우리의 죄를 고백하고 보혈의 능력으로 성결케 되어야 합니다.
요한일서 1장 9절에 보니까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라고 말씀합니다.
지은 죄를 회개하고 깨끗한 심령으로 예배하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죄와는 투쟁해야 합니다. 죄 짓지 않기 위해 우리 자신을 쳐야 합니다. 말로, 마음으로, 눈으로,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을 버려야 합니다. 죄와는 정말 피 흘리기까지 싸워야 되는 것입니다. 본문 4절에 보시면 “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 흘리기까지는 대항치 아니하고” 라고 합니다. 죄는 우리를 하나님께로 가까이 가는데 가장 치명적인 존재입니다. 작은 죄라도 우리 모두 하나님 앞에 고백하고 씻김 받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교회사에 나타난 부흥의 시기마다 죄에 대한 철저한 회개가 있었습니다 1907년도 평양 장대현 교회에서 일어난 대 부흥의 출발은 아주 작은 어린아이 하나가 자신의 죄를 고백함으로 도화선이 된 것입니다.죄의 문제는 그리스도와의 동행에 가장 무거운 것이고 거추장스러운 것입니다. 신앙의 경주를 잘하려면 죄에 대하여 민감한 반응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날마다 주님의 보혈로 정결케 되기를 바랍니다. 주님이 찾으시는 경건한 심령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두 번째 믿음의 경주는 인내로 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토끼와 거북이의 우화를 잘 아실 것입니다. 토끼가 비록 빨리 달리기는 했지만 꾸준히 인내하며 달리지 않았지요. 그래서 인내로 한걸음 한걸음 꾸준히 걸어간 거북이에게 경주에서 패한 것입니다.
어두운 밤을 밝혀주는 백열등을 발명한 에디슨은 백열등을 발명하기까지 무려 2000번 이상 실패의 경험을 했다고 합니다. 그는 좌절하지 않고 놀라운 끈기와 불굴의 정신으로 백열등을 발명할 수 있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수많은 신앙의 위인들도 고난과 역경 가운데 인내로 달리면서 승리한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야고보서1장2-4절에 보면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고, 인내를 온전히 이룬 사람은 조금도 부족함”이 없다고 말씀합니다. “주의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고 하십니다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라고 하십니다. 10절에 “ 주의 이름으로 말한 선지자들의 고난과 오래 참음의 본을 삼으라” 11절에 “ 보라 인내하는 자를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결말을 보았다” 고하십니다.
농부는 봄에 씨앗을 뿌리고 가을에 거두기까지 오래 참습니다.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그 말씀이 이루어질 때 까지 오래 참고 기다립니다.
구약의 욥은 환난과 질병과 모진 시련에도 오래 참았습니다. 그러므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주시는 두 배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인내로서 달려야 합니다. 요즘은 모든 것이 스피드 시대입니다. 그래서 빨리 빨리 이루어지지 않으면 견디지를 못합니다. 즉석식품이 얼마나 많습니까? 30분 내로 피자를 배달하는 가게도 있습니다. 모든 것이 빨리빨리 안 되면 견디지 못하는 시대입니다. 그러나 믿음은 기다림입니다. 조급하면 하나님의 뜻대로 가지 못합니다. 사울이 조금만 더 기다렸다면 번제를 드리는 실수를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는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의 탑을 쌓아야 합니다. 사랑은 오래 참음으로 완성됩니다. 지금 우리 가운데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리시는 분이 계십니까? 조금만 더 참으십시오 엘리야는 비 오기를 기도할 때 무릎 사이에 얼굴을 넣고 7번까지 기도하였습니다. 인내의 기도로 값진 응답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교회 생활에서도 서로가 서로에게 참아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조그만 일에 참지 못하고 성질을 내면 인간관계가 파괴됩니다. 사이가 갈라지게 되고 문제를 발생케 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인내하면 기다림을 용납하려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믿음을 지녔다면 이해되지 않는 것이라도 참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많은 문제가 있지만 인내하면서 기다리면 해결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조급하면 일을 그르치기 쉽습니다. 중국 속담에 “ 천천히 하라 그러나 중단하지 말라” 는 말이 있습니다.
인내하면서 전진하면 어느 새 문제는 해결되고 한 계단 더 오르게 됩니다.
본문 2절에서도 예수님은 십자가의 부끄러움을 참으셨습니다. 참고 인내 하는 신앙이 되시길 바랍니다.

세 번째는 믿음의 경주를 할 때 예수그리스도만 바라보아야 합니다.
본문 2절에서“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우리가 믿음의 경주를 할때 영원한 모델은 예수님 이십니다. 목표는 오직 예수님이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쫓아가노라 ( 빌 3:14) 라고 했습니다. 성도는 제멋대로의 사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에 따라 사는 사명자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4장 22절에 풍랑을 만난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 물위로 걸어서 오십니다. 이 때 베드로가 “ 주여 만일 주시어든 나를 명하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라고 청합니다 예수님께서 “ 오라 ” 명하시자 베드로는 인간 최초로 물위를 걸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가 주위의 풍랑을 보고 무서워했을 때 그는 물 속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예수님만 바라보았을 때는 물 위롤 걸었습니다. 주변의 풍랑을 바라보았을 때는 물 속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을 하고 나서 그들은 불평과 원망과 짜증 투성이였습니다. 물이 없다, 먹을 것이 없다. 조그만 힘들면 하나님을 원망하였습니다. 조금 살만하면 우상을 숭배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진노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불뱀을 보내서 물게 했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광야에서 범죄 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장대 끝 에 불뱀을 매어 달고 누구든지 장대 끝에 달린 놋 뱀을 바라보는 자는 나음을 얻을 것 이라고 했습니다. 믿고 순종한 자는 다 나음을 얻었고 불순종한 사람들은 불뱀에 물린 상처로 인해 결국 죽게 되었습니다. 예수님만 바라보면 구원을 얻습니다. 예수님만 바라보면 행복합니다. 역대하 19장과 20장에 보면 하나님을 잘 섬긴 여호사밧 왕이 등장합니다. 여호사밧 왕에게 위기가 닥쳐왔습니다. 20장 1절에 “모압과 암몬과 마온 자손들이 쳐들어 온 것입니다. 이 위기상황에서 여호사밧은 금식을 선포하고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합니다.
20장12절에 “우리 하나님이여 저희를 징벌하지 아니하시나이까 우리를 치러 오는 이 큰 무리를 우리가 대적할 능력이 없고 어떻게 할 줄도 알지 못하옵고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 “
주만 바라 볼 때 전능하신 하나님의 손길이 우리에게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어두움에 밝은 빛을 주십니다. 우리의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십니다. “언제나 주는 날 사랑하사 언제나 새 생명 주시나니 영광의 기약이 이르도록 언제나 주 만 바라봅니다.” 라고 찬송합니다.
주만 바라보십시오 거기에 문제의 해결이 있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그리스도를 바라 볼 때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입니다. 죄의 문제로 고통하며 신음하십니까? 예수그리스도를 바라보십시요? 십자가에 달리신 그 분은 우리의 무거운 짐을 벗기고 쉽고 가벼운 것으로 바꾸어 주십니다. 영혼의 갈증을 느끼십니까? 예수님을 보십시요? 흘리신 보혈은 우리의 갈증을 완전히 해결하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지금 여러분은 어떠한 환경에 계십니까? 환경을 보지 말고 눈을 들어 주를 보십시요. 영광의 주님만 바라보십시오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천지 지으신 나를 만드신 여호와께로다“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께로부터 옵니다. 할렐루야!


결론
믿음은 자전거 타기와 같습니다. 계속해서 페달을 밟지 않으면 자전거는 곧 쓰러집니다. 믿음생활도 똑 같습니다. 계속해서 달리기를 하지 않으면 넘어지고 뒤로 물러가는 것입니다. 현재 우리는 믿음의 달리기를 하고 있는 현재형입니다. 과거는 이미 지났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미래를 바라보면서 성공하는 신앙의 경주자 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무엇이 그렇게 믿음의 경주를 하는 우리를 옭아매고 있습니다. 예수님 믿는데 방해되는 것 과감히 벗어버리십시요. 당장 결단하십시오 내일로 미루지 마십시요. 지금 여기 이 자리에서 예배하는 이 시간에 내 삶을 다시금 정화하여 그리스도가 보시기에 정결한 그릇이 되겠노라고 말하십시요.
내일은 늦습니다. 다음에 하겠다는 것은 마귀에게 속는 것입니다. 죄악의 소굴에서 즉시 돌이키십시요. 죄악된 성품과 행실을 회개하고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게 해달라고 기도하셔야 합니다. 믿음의 인내를 지니십시오 조금만 더 참고 그리스도의 인내를 배우십시오 내 삶가운데 그리스도의 흔적을 달라고 말하십시요. 주바라기 인생으로 주만 바라보고 변함없이 사랑을 베푸시는 그분의 은혜로 만족한 생활을 하기로 작정하십시오 그리고 여러분 평생에 주님만 목표로 삼아서 달리십시오. 주님의 기쁨이 내 기쁨이요. 주님의 슬픔이 내 슬픔이고 주님의 기도가 내 기도가 되도록 온전히 주님과 일치된 나를 설계하는 한해가 되길 축원합니다. 내 인생의 종착역에서, 인생의 마지막 끄트머리에서 이런 고백이 터져 나오길 바랍니다.
.
“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 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 니라”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를 천국에 가는 그 날까지 온전케 하시고 견고케 하시며, 능히 의의면류관, 영광의 면류관, 생명의 면류관을 쓰게 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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