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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오직 말씀으로 새롭게 (시 119:130-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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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이덕휴 목사 (만나교회)

성서를 보면 입을 열어 말씀을 하는 경우가 많이 나타납니다.

1) 사도행전 8:35 "빌립은 입을 열어서, 이 성경 말씀에서부터 시작하여, 예수에 관한 기쁜 소식을 전하였다."
 
2) 마태복음 13:35 "이는 선지자로 말씀하신 바 내가 입을 열어 비유로 말하고 창세부터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리라 함을 이루려 하심이니라"

3) 예레미야 20:8 "저는 입을 열어 고함을 쳤습니다. 서로 때려잡는 세상이 되었다고 외치며 주의 말씀을 전하였습니다. 그 덕에 날마다 욕을 먹고 조롱 받는 몸이 되었습니다"
 
4) 욥기 11:5 "하나님은 말씀을 내시며 너를 향하여 입을 여시고"
 
5) 욥기 35:16 "이제 너 욥이 헛되이 입을 열어 지식 없는 말을 많이 하는구나"
  * 이것은 주님의 말씀이 아니고 사람이 쓸데없는 말을 많이 하는 경우를 지적하는 말입니다.
 
6) 골로새서 4:3 "또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되 하나님이 전도할 문을 우리에게 열어 주사 그리스도의 비밀을 말하게 하시기를 구하라 내가 이것을 인하여 매임을 당하였노라"
 
7) 에베소서 6:19 "또 나를 위하여 구할 것은 내게 말씀을 주사 나로 입을 열어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 할 것이니"
 
8) 호세아 14:2 "너희는 말씀을 받들고 주님께로 돌아와서 이렇게 아뢰어라. "우리가 지은 모든 죄를 용서하여 주십시오. 우리를 자비롭게 받아 주십시오. 수송아지를 드리는 대신에 우리가 입술을 열어 주님을 찬양하겠습니다."
 
오늘 주신 본문의 말씀, 시편 119편은 신구약 성경 중에서 가장 많은 절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내용이 말씀을 찬양하는 시이며 시문학의 형태가 히브리어 알파벳 순서로 시작하여 22단락으로 구성되었습니다. 그리고 매 단락의 첫 글자가 22자의 알파벳의 첫 자로 되었으며 매 단락마다 8절로 짜여 저서 176절이나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시의 특징인 답관체(acrostic) 형식을 띤 알파벳 시로 불리어지며 여덟 구절의 첫 문자가 모두 똑같은 알파벳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팔진법 시라고도 한다. 본시가 이러한 방식으로 지어진 것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반드시 기억해야 할 진리들을 잊지 말라는 의미가 있다. 또한 이 시의 저작권에 대한 분명한 이해는 없다. 다만 다윗의 시로 추정될 뿐이다.

또한 이 119편에는 말씀이라는 단어가 가장 많이 나오는 장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여러 가지 다른 말로 표현해 가며 찬양하고 있습니다. 주의 법, 증거, 법도, 규례, 계명, 판단, 길, 약속 등으로 표현하여 말씀의 다양성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본문의 말씀은 말씀을 대하는 성도의 태도를 잘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시 19:8에 보면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도다"라고 했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은 영혼을 소성케 합니다. 우둔한 자로 지혜롭게 합니다.

분명한 것은 오직 말씀으로 성도들이 변하여 이제 새롭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직 말씀으로 심령에 변화가 있어야 합니다. 말씀만이 신학과 신앙과 생활의 유일한 표준입니다.

딤후 3:16-17에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신 17:16-20에 왕이 되면 사람이 금해야 할 것이 세 가지라고 했습니다. 아내를 많이 두지 말라, 은금을 쌓아 두지 말라, 말을 많이 두지 말라는 것입니다. 반면에 꼭 해야할 것이 하나있습니다. 무엇이겠습니까?

신 17:19-20에 "평생에 자기 옆에 두고 읽어서 그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배우며 이 율법의 모든 말과 이 규례를 지켜 행할 것이라 그리하면 그의 마음이 그 형제 위에 교만하지 아니하고 이 명령에서 떠나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아니하리니 이스라엘 중에서 그와 그의 자손의 왕위에 있는 날이 장구하리라"고 했습니다.

히 4:12에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시니"라고 했습니다. 


1. 말씀이 항상 열려야 한다

본문 130절에 "주의 말씀을 열므로 우둔한 자에게 비추어 깨닫게 하나이다"라고 했습니다. 말씀이 열려있다는 것은 큰 축복입니다. 요한계시록 5장에 보면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 책이 있는데 안팎으로 썼고 일곱 인으로 봉해져 있었습니다. 한 힘있는 천사가 외치기를 누가 책을 펴며 그 인을 뗄 수 있는가 라고 했습니다. 이때 사도 요한이 아무리 봐도 하늘 위에도 땅 아래에도 이 책을 펼 자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요한이 너무 안타까워서 크게 울었습니다. 말씀이 열려지지 않은 것은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이 닫혀졌기에 만사가 풀려지지 않게 되는 비극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계시의 말씀이 누구에게나 열려있습니다. 누구나 읽고 말씀의 가르침을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 앞에 말씀이 열려있는데도 우리는 계시의 말씀을, 열린 말씀을 바로 대하지 않습니다.

어느 시대나 말씀이 닫혀 있는 시대는 비극입니다. 국가도 마찬가집니다. 말씀이 없고 언로가 막힌 시대는 암흑의 시대였습니다.

구약성서 삼상 3:1에는 엘리 시대를 가르쳐서 말씀이 희귀하여 이상이 흔히 보이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말씀이 없으니 엘리 제사장의 영의 눈이 어두웠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수 없었습니다.

역대하 33:-34:을 보면 유대나라 므낫세 왕 55년간의 통치 기간에는 말씀이 없었습니다. 온갖 우상과 범죄가 전국에 만연했습니다. 그러나 요시야 임금이 8살에 왕이 되어 성전을 수리하다가 묻혀진 말씀을 발견했습니다. 이 말씀을 서기관 사반이 읽었습니다. 이 말씀을 듣고 왕이 자기의 옷을 찢으며 겸비했습니다. 말씀 때문에 뜨거워졌습니다. 마침내 전국적으로 말씀의 부흥이 일어났습니다.

오늘 우리의 모습은;

암 8:11에 말한 대로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 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는 그 시대와 같은 것 같습니다. 말로만 말씀하면서 전혀 말씀을 읽지도 듣지도 않는 성도가 또한 오늘의 크리스챤인 것 같습니다.

느 8장-9장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바벨론에서 귀국하여 성전과 성곽을 중건한 후에 7월에 이르러 모든 백성이 일제히 수문 앞 광장에서 모여서 말씀을 읽습니다. 새벽부터 오정까지 무릇 알아들을 만한 자 남자 여자 앞에서 말씀을 읽었고 백성은 귀를 기울였습니다. 백성들은 모든 이방 사람과 절교하고 자기의 죄와 열조들의 허물을 자복하면서 낮 사분의 일을 말씀 읽는데 시간을 투자했습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역사입니까?

본문에 말씀을 연다는 말의 히브리어, "패타흐"(jt'P"")는 성전의 출입구, 일반 가정의 대문, 도시의 성문이 활짝 열리는 걸 의미합니다. 본문, 130절 전반부의 "주의 말씀을 열므로"라는 말을 직역하면, "당신의 말씀의 문은 빛을 줍니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문이 열리면 우리가 그 집안이나 성안으로 들어가듯이 하나님의 말씀이 열리면 우리는 말씀 안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그리고 그 오묘함과 아름다움을 보게 됩니다(호크마주석, 시편 하, p. 554).

이처럼 말씀의 문을 열 때, 놀라운 역사가 일어납니다. 우둔한 자가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됩니다. 말씀이 심령을 밝혀서 열어주며, 알려주며, 계시해준다는 겁니다. 그때 우리가 그 말씀의 의미와 신비를 깨닫고 그 아름다움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내가 말씀을 열어 읽을 때에 말씀이 우리의 마음을 열어서 우리로 하여금 말씀의 신비 속으로 빠져 들어가게 될 줄 믿습니다. 말씀은 비추어 주는 힘이 있습니다. 우둔한 자라도 진리의 말씀을 깨닫게 해주십니다. 말씀이 닫혀 있고 봉해져 있지는 않습니까? 말씀을 엽시다. 성경을 펼쳐 읽읍시다.


2. 말씀을 항상 사모하라

본문 131절에 "내가 주의 계명을 사모하므로 입을 열고 헐떡였나이다"고 했습니다.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 함 같고 어린아이가 젖을 사모하듯이 말씀을 헐떡이며 사모했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어느 한 곳에 머물어 있지 못했습니다. 도망을 다녀야했고 망명생활을 하기도 했습니다. 때로는 오랫동안 말씀을 접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말씀을 읽고 싶었습니다. 듣고 싶었습니다. 그는 말씀을 사모했습니다. 그의 사모하는 모습을 "입을 열고 헐떡였다"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타는 듯한 열기로 찌들리면서 한줄기 시원한 물을 갈망하는 사람과 같은 강한 열망을 가진다는 겁니다. 헐떡이는 사람은 사모하는 사람입니다. 가난한 사람입니다. 목마른 사람입니다. 주린 사람입니다. 갈급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성도들이 일주일에 겨우 한 번 예배에 참석하는 신앙생활로는 승리할 수 없습니다. 말씀을 사모하여 새벽 전에 일어나서 기도하고 말씀을 읽어 보셨습니까? 밤이 깊기 전에 일어나서 다른 식구들은 다 잠들었을 때에 말씀과 교제를 해 보신 경험이 있습니까? 말씀을 읽다가 감격해서 성경에 얼굴을 비비면서 말씀 때문에 울어보기도 하고 기뻐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3. 말씀에 굳게 서라

본문 133절에 "나의 행보를 주의 말씀에 굳게 세우시고 아무 죄악이 나를 주장치 못하게 하소서"라고 했는데 이 말씀에는 시인의 두 가지 간구가 있습니다. 이 말씀이 우리 모두의 기도와 소원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첫째, 나의 행보를 주의 말씀에 굳게 세우시고 라고 기도했습니다. 이 말씀은 말씀에 굳게 서는 삶을 계속 유지케 해달라는 뜻입니다. 영혼의 모든 움직임이 말씀의 한계 안에 있게 하소서, 그 길을 걷게 하소서, 그 길로 인도하소서 라는 소원을 가져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말씀을 떠나지 말고 다 지켜 행하라고 했습니다.

둘째, 아무 죄악이 나를 주장치 못하게 하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이 기도는 내가 죄에 사로잡히지 않게 하소서, 죄가 나를 주관치 못하게 하소서 라는 것입니다.
시편 119:105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이라고 하였습니다.

주님의 말씀은 어두움을 밝혀주십니다. 결코 헛발을 내딪지 않습니다. 내가 어디를 가든 주님의 말씀을 붙잡고 나아갈 때 내 행보에 실패가 없을 줄을 믿습니다.


이제 말씀을 마칩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고 날마다 그 말씀을 묵상하는 여러분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 주신 본문의 말씀은 참으로 성도 여러분의 지혜를 열어주십니다. 내가 말을 많이 하는 것은 말을 하지 않고 주님의 말씀을 대신하는 여러분이 되어서 모두가 정금으로 새롭게 태어나는 우리 만나인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남의 말을 경청하는 것도 참으로 대인관계를 원활하게 하는 일입니다.

누구나 내 말을 많이 하면 그 사람을 싫어합니다. 상대의 말에 귀를 기울일 줄 아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남이 내 가슴을 파고들어 오기를 바란다면 내 말을 삼가고 상대의 말을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하물며 생명의 말씀이신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고 열린 말씀을 듣고 그 말씀 위에 굳게 선다면 그 누구도 모두가 천국백성이요 모두가 하늘나라에 상급이 열린 줄을 믿습니다.

이제 오늘 주신 시편 119편을 항상 좌우에 선 예리한 검보다 더 우리의 골수를 쪼개고도 남을 영원하신 생명의 원천으로 받아들여 더욱 더 성령님의 은사가 차고 넘치는 만나인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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