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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아브라함의 승리의 삶 (창 14: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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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이익로 목사

1911년 남극 정복의 꿈을 가진 두 사람이 있었습니다. 한 사람은 노르웨이의 탐험가 아문센이고 다른 한 사람은 영국 해군 장교 출신의 스콧경이었습니다. 두 탐험대는 거의 동시에 출발했습니다. 아문센은 에스키모들이 여행하는 방법을 철저하게 분석하고 익혔습니다. 모든 장비와 물품을 개가 끄는 에스키모 썰매를 이용하여 운반했습니다. 또한 탐험 여행 중 사람과 동물 모두 충분히 휴식을 취하게 했습니다. 결국 아문센이 이끄는 탐험대는 출발한지 55일(1911. 12. 14)만에 역사상 처음으로 남극을 정복했습니다. 탐험대원 중에 한 사람의 희생자도 없었습니다. 반면에 스콧경은 장비와 짐을 나르는데 모터 썰매와 망아지를 이용했습니다. 모터엔진은 5일 만에 추위로 고장이 났고, 망아지도 동상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그 결과 대원들이 100kg의 짐을 지고 가야했습니다. 그들은 모두 동상에 걸렸습니다. 겨우 남극에 도착했지만 아문센이 다녀간 35일 후였습니다. 돌아갈 때 스콧경은 대원들에게 연구를 위해 화석을 30파운드나 짊어지고 가게 하였습니다. 결국 돌아오는 두 달 동안 굶주림과 추위에 지친 대원들이 하나 둘씩 죽어갔고 스콧경도 베이스캠프에 도착하기 전 마지막으로 숨을 거두고 말았습니다.

이 이야기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무슨 일이든지 길이 있고 방법이 있다는 것입니다. 아문센은 혹한 지역에서 살고 있는 에스키모들의 삶을 적용하므로 그의 꿈을 성취했고, 스콧경은 자신의 주관대로 자신의 식견을 따라 행했습니다. 그 결과는 참담했습니다. 이 시간에는 본문에 나타난“아브라함의 삶의 승리”에 관한 말씀을 살펴보므로 세상을 이기는 삶의 지혜를 얻고자 합니다.

먼저 본문의 내용은 간략하게 설명을 드리면, 아브라함의 조카인 롯이 분가하여 소돔과 고모라 성으로 이사를 갔습니다. 그 후 얼마 되지 않아 롯이 살고 있는 소돔과 고모라에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이 전쟁에서 소돔과 고모라가가 패하여 재산은 다 빼앗겼고 롯은 포로로 붙잡혀 갔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아브라함이 자기 집에서 기른 318명의 용사를 이끌고 소돔과 고모라를 침략한 적군을 쫓아가서 싸워 이겼습니다. 포로로 잡혀갔던 롯과, 빼앗겼던 소돔과 고모라의 재산을 모두 찾아 승전고를 울리며 돌아옵니다. 이때 살렘 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와서 아브라함을 환영했습니다. 아브라함은 멜기세덱에게 그가 얻은 전리품에서 10분의 1을 드리며 축복기도를 받았습니다. 전쟁에 패했던 소돔과 고모라 왕이 자기들의 원수를 무찌른 아브라함에게 감사의 뜻으로 도로 찾은 모든 물품을 아브라함에게 주었습니다. 이 때에 아브라함이 한 말이“네 말이 내가 아브람으로 치부케 하였다 할까하여 내게 속한 것은 무릇 한 실이나 신들메라도 내가 취하지 아니하리라”하고 거절했습니다. 이러한 아브라함의 삶을 통해 교훈을 얻고자 합니다.

1. 아브라함은 어려운 환경을 다스리는 승리자였습니다.

조카 롯과 분가한 후 아브라함이 거주한 헤브론 지역은 산악지대이며 목초가 잘 자라지 않는 광야였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그 지역을 개척하여 목축지를 만들었습니다. 부지런히 일한 아브라함의 가정은 하나님의 은혜로 크게 부요해졌습니다. 아브라함의 가정을 지키고자 훈련된 가신이 무려 318명이나 되었습니다. 고향과 친척 아비 집을 버리고 단신으로 떠나온 아브라함은 이처럼 자수성가를 했습니다. 아브라함은 어려운 조건들을 탓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믿는 믿음과 개척정신으로 악조건들을 복된 조건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환경을 탓하는 것은 신앙인의 생활자세가 아닙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만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이 환경을 탓하는 것은 신앙인답지 못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능력 안에서는 없는 것이 있게 되고, 안되는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홍해를 육지가 되게 하신 하나님, 반석에서 샘물을 내신 하나님, 하늘로부터 만나를 내리신 하나님을 믿기 때문입니다.

이 아브라함의 신앙과 개척정신을 본받은 사람들이 미국의 조상 청교도들입니다. 이 청교도 정신을 나타내는 말 중에“어려운 일은 지금 즉시 시작하고, 불가능한 일은 시간을 두고 시작하라”는 말이 있습니다. 어려운 일이라 하여 주저하지 말고, 불가능해 보인다하여 쉬 포기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불굴의 투지를 바탕으로 세워진 나라가 미국입니다. 이러한 개척 정신으로 짧은 역사가운데에서 세계 최대의 부강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산림청장을 역임했던 신순우 집사님이 계십니다. 그는 1954년 보성중학교 2학년 때 기동차에서 뛰어내리다가 바퀴에 몸이 쓸려 들어가 한쪽다리를 잃었습니다. 워낙 집이 가난하여 의족을 착용할 수 없었던 그는 학교를 자퇴하고 3년 동안 독학을 한 끝에 고등학교에 입학을 했습니다. 말이 없고 소극적이었던 그는 신체적 장애로 더욱 우울한 나날을 보냈습니다. 그런 그에게 한줄기 빛이 비췄습니다. 교회로 인도함을 받아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게 된 것입니다. 그 후 그는 고독과 우울함, 소극성, 열등감 등을 모두 떨쳐버렸습니다. 그는 서울대치의대에 합격하고도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낙방을 했습니다. 이듬해 고려대학교 법대에 합격한 후 69년 행정고시 7회로 공직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이때에도 신체적 장애로 인해 많은 불이익을 받았지만 믿음으로 이를 극복했습니다. 그는 주일 마다 교회입구에서 신자들에게 주보를 나눠주는 봉사를 하고 있습니다. 그는 말하기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면 반드시 놀라운 선물이 주어집니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았더라면‘눈물’과‘탄식’과‘원망’의 삶을 살았을 것”이라고 고백했습니다.

성도여러분! 환경을 탓하지 말기 바랍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인의 자세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정성 다해 섬기며 순종하며 의지하는 사람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기 때문입니다. 믿음으로 역경을 해쳐나가는 것이 성도의 생활 자세입니다.

2. 아브라함은 전쟁에 승리했습니다.

아브라함의 가신 318명이 시날 군대, 엘라살 군데, 엘람 군대, 고임 군대 등 네 나라의 연합군을 이겼습니다. 물론 요즘처럼 인구가 많은 나라는 아니었겠지만 아브라함의 가정군대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 큰 병력이었을 것입니다. 이 연합군을 아브라함의 가신이 이겼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에 의한 승리였습니다. 그러나 반드시 이겨야 한다는 아브라함의 불타는 투지가 있었습니다.

우리에게도 아브라함에게 역사하셨던 하나님의 은총과 아브라함의 투지가 절실히 요구됩니다.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도 아브라함처럼 세상과의 싸움에서 이겨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철학자 야스퍼스는 말하기를“싸움은 인간의 어쩔 수 없는 한계 상황의 하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즉 싸움이란 운명적 현실이란 말입니다. 자연의 재해인 지진, 홍수, 각종 재난과 더불어 싸워야하고 부득이 인간 대 인간과의 싸움에 직면해야할 때도 있습니다. 이보다 더 심각한 것은 자기 자신과 싸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끝없는 욕망과 교만 그리고 양심의 가책과 싸우며 또한 게으름과 무절제, 비인간적인 자기 속성과 싸워야 합니다. 이 싸움에서 승자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인간의 운명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 말씀하시기를 이 유혹의 배후에는 악한 영인 사탄이 도사리고 있음을 알고 잘 무장을 하기를 당부하셨습니다. 에베소서 6:11~18에“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띠를 띠고 의의 흉배를 붙이고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화전을 소멸하고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고...”하셨습니다.

1967년도에 있었던 6일 전쟁에서 이스라엘 군을 이끈 모세 다이안 장군은 세계가 깜짝 놀랄 만한 선언을 했습니다. 다이안은, 100배의 인구를 가진 아랍연합과 맞서는 전쟁에서 반드시 승리할 새로운 무기가 있다고 선언했던 것입니다. 세계 사람들은 그것이 틀림없이 원자폭탄이거나 수소폭탄을 능가하는 신무기일 것이라고 추측했습니다. 그러나 다이안 장군은“우리를 승리하게 할 신 병기는 바로 시편 121편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시편 121편이란“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여호와께서 너로 실족지 않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자가 졸지 아니하시리로다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자는 졸지도 아니하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자라 여호와께서 네 우편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낮의 해가 너를 상치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 아니하리로다 여호와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케 하시며 또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 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시편 121:1-8)하신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결국 이 전쟁은 6일 만에 이스라엘의 승리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세상과의 싸움에서 반드시 이겨야 합니다. 세속에 물들어 타락한 개인이나 가정이나 국가는 망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사탄이 배후에서 조종하는 이 싸움에서 이기는 방법이 무엇이겠습니까? 그 비결에 관해 말씀하시기를“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요일 5:4)하셨습니다. 세상의 온갖 유혹을 이겨 승리하는 길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작은 숫자의 가신으로 그 많은 연합군과의 싸움에서 승리한 것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이었습니다. 우리들도 이 믿음을 성장시키며, 잘 관리해야 하겠습니다. 믿음의 성장에 대해 하나님은 말씀하시기를“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로마서 10:17)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말씀을 듣는 일에 힘써야 하겠습니다.

3. 아브라함은 물질관리에 있어서 승리자였습니다.

성공하여 크게 존경을 받던 사람이 그만 물질문제로 인해 실패의 벼랑으로 떨어진 사람들을 흔하게 볼 수 있습니다.“황금은 시금석으로 시험하고, 사람은 돈으로 시험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들은 소중한 것일수록 위험도가 높습니다. 불, 물, 가스, 자동차가 그렇습니다. 이 모든 것들은 없으면 안 되는 것들인데 대단히 위험합니다. 물질도 그렇습니다. 물질(돈)이 없으면 우리는 하루도 살수 없습니다. 그러나 돈은 위험합니다. 대단히 위험합니다. 인류의 시조인 아담과 하와가 물질문제로 인해 에덴동산에서 쫓겨났습니다. 여호수아의 몸종 아간은 하나님이 금하신 전리품 가운데 시날산 외투 한 벌과 은 이백 세겔과 오십 세겔 중의 금덩이 하나를 보고 탐내어 취하였다가 돌무더기에 장사지낸 바가 되었습니다. 엘리사의 종 게하시는 은 두 달란트와 옷 두 벌을 몰래 취하였다가 하나님의 저주로 문둥이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스라엘 초대 왕 사울도 물질로 인해 하나님이 허락하신 복된 자리에서 쫓겨나 성경 최초의 자살자가 되었고, 그의 혈족까지 몰락하고 말았습니다. 예수님의 제자 가롯 유다는 돈에 눈이 어두워 은 삼십에 예수님을 팔아넘겼습니다. 그는 그 돈 한 푼도 쓰지 못하고 스스로 목매어 자살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권면하시기를“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디모데전서 6:9-11)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물질에 있어서 깨끗했습니다. 본문 17-20절의 말씀에는 아브라함이 살렘 왕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바친 기사가 있습니다. 이것이 성경에 기록된 최초의 십일조입니다. 그러면 아브라함이 십일조를 드린 살렘 왕 멜기세덱은 어떤 사람입니까?

히브리서 7장 1-3절의 말씀에“이 멜기세덱은 살렘 왕이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라 여러 임금을 쳐서 죽이고 돌아오는 아브라함을 만나 복을 빈자라 아브라함이 10분의 1을 그에게 나눠 주니라 그 이름을 번역한즉 첫째 의의 왕이요 또 살렘 왕이니 곧 평강의 왕이요 아비도 없고 어미도 없고 족보도 없고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어 하나님의 아들과 방불하여 항상 제사장으로 있느니라.”하셨습니다. 멜기세덱은 하나님의 모형으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아브라함이 누구의 지시를 받은 것도 아닌데 10분의 1을 드렸습니다.

이렇게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된 십일조를 야곱이 계속했으며, 모세는 율법으로 확증했습니다. 그리고 말라기 선지자는 십일조에 대한 하나님의 명령을 국운과 결부하여 간곡한 마음으로 지키기를 권유했습니다.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적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적질하였나이까 하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헌물이라 너희 곧 온 나라가 나의 것을 도적질하였으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황충을 금하여 너희 토지 소산을 멸하지 않게 하며 너희 밭에 포도나무의 과실로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리니 너희 땅이 아름다워 지므로 열방이 너희를 복되다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말라기 3:8~12)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물질에 대한 우리의 마음과 믿음을 확인하시고자해 정하신 제도가 십일조입니다. 천하의 만물이 다 주님의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힘겹게 살아가는 우리에게 소득의 십분의 일을 바치라고 하신 것은 우리들의 마음을 알아보기 위한 방법일 뿐 아니라, 더 많은 것을 주시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지혜로운 농부는 춘궁기를 맞아 아무리 먹을 것이 없어도 선반에 매달아둔 볍씨는 절대로 먹지 않습니다. 이처럼 십일조는 풍요로움의 씨앗입니다.

한 불행한 영국 소년이 있었습니다. 그의 가정은 항상 중환자실 같았습니다. 아버지는 중풍으로 움직일 수 없었고, 어머니는 폐결핵으로 심한 기침을 했습니다. 가난에 한을 안은 이 소년은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거부가 되겠다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그는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미국행 선박에 몰래 숨어들었습니다. 그러나 소년은 미국으로 가던 중 그만 선장에게 들키고 말았습니다. 이 소년은 선장에게“저를 미국으로 데려가 주세요 세계적인 부호가 되어 조국에 보답하겠습니다.”하고 애원했습니다. 불쌍한 마음이 든 선정은 이 소년을 자신의 양자로 삼았습니다. 선장이 늙어 병들자 소년은 그 배를 팔아 치약회사를 차렸습니다. 이 사람이 콜게이트의 설립자인 콜게이트입니다. 콜게이트사는 세계에서 가장 큰 치약회사로 성장했습니다. 그의 경영철학은“철저한 십일조”였습니다. 그는 말하기를“나는 오른쪽 주머니에는 십일조를, 외쪽 주머니에는 이익금을 담는다.”라고 했습니다. 콜게이트사는 현재 십일조를 관리하는 직원만 30명이나 된다고 합니다.

코카콜라의 창업자인 아사 G 캔들러는 알코올 중독자였습니다. 그는 항상 술에 취해 있었습니다. 캔들러는 의지력이 약했습니다. 주위 사람들에게 몇 번이나 금주선언을 했으나 번번이 실패했습니다. 어느 날 술에 취해 귀가하던 그는 벼락같은 마음의 음성을 들었습니다.“자신의 본능적 요구를 거절할줄 아는 사람만이 성공한다.”캔들러는 집에 돌아와 아내에게 이 이야기를 했습니다. 아내는 그 시간에 남편의 금주를 위해 간절히 기도하고 있었다는 대답을 했습니다. 이 부부는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리며 기도를 했습니다. 캔들러는 아내의 기도를 통해 영혼의 안식을 얻었습니다. 그 후로 알코올의 유혹으로부터 해방되었던 것입니다. 자신의 의지가 아니라 기도의 능력으로 술을 끊은 것이었습니다. 캔들러는 그때부터 하나님께 수입의 십일조를 철저히 드렸습니다. 코카콜라는 창업주의 금주와 십일조를 드린 후부터 장족의 발전을 거듭해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했다고 합니다.

인생은 결단의 연속입니다. 성공한 사람들은 인생의 전환점에서 강인한 결단력을 보이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또한 물질로 인한 오해의 소지를 없이하고자 전리품을 주는 소돔 왕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네 말이 내가 아브라함으로 치부케 하였다 할까 하여 네게 속한 것은 무론 한 실이나 신들메라도 내가 취하지 아니하리라”(23절) 물질을 대하는 아브라함의 마음은 이처럼 깨끗했습니다. 취해도 상관없는 물질이었으나, 하나님의 영광에 지장이 될까 염려하여 취하지 않았습니다. 조카와 분가할 때나, 하나님 앞의 십일조에 대해서나, 소돔 왕에 대해서나 아브라함은 물질에 대하여 시종일관 깨끗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가난하지 않았습니다. 거부가 되었습니다. 집에서 기른 가신들만 318명이나 되었습니다.

어려운 환경을 하나님을 섬기는 믿음으로 해쳐나간 아브라함의 개척정신을 본받아야 하겠습니다. 318명으로 불의한 대적들과 싸워 이긴 아브라함의 믿음의 용맹을 본받아야 하겠습니다. 물질에 대한 탐심의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았던 아브라함의 깨끗한 신앙을 본받아야 하겠습니다. 이러한 삶을 살아가므로 말미암아 아브라함과 함께하셔서 승리케 하셨던 하나님의 은총이 우리에게도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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