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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여호와의 손 (삼상 5:1-12, 롬 9:30-33, 눅 2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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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김오동 목사

1. 어떤 부자가 “환상의 섬”이라고 불리는 발리 섬에 아름다운 집을 한 채 지었습니다. 그 집은 자신이 유럽 여행 시 눈여겨보아 두었던 화려한 바로크식 건축 양식을 모방한 것이었습니다. 실내구조도 규모있고 다양하게 꾸며서 거실은 유럽풍으로, 그리고 방들은 동양적 분위기가 느껴지게 만들었습니다. 거기다 음악을 연주하고 감상할 수 있는 방과 값진 미술품이 소장된 방도 있었습니다. 한마디로 그 부호가 평생 꿈꾸어오던 가장 이상적인 삶을 누릴 수 있도록 온갖 배려를 다하여 집을 지었습니다.

마침내 꿈에도 그리던 그들의 “궁전”으로 온 가족이 이사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그들이 누린 기쁨도 잠시뿐, 이사한지 얼마 되지 않아 그의 아내가 사인도 분명치 않게 죽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불행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아내가 죽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아들도 죽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연거푸 불행을 겪고 나니까 이제는 그 아름답고 으리으리하던 “꿈의 궁전”이 악마의 소굴처럼 느껴져서 하루빨리 그곳을 떠나고 싶어졌습니다. 그리하여 그 화려하기가 궁궐 같던 그 집은 헐값에 팔려서 다른 사람이 와서 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희한한 일이 또 벌어졌습니다. 그 집에 이사 와서 살던 사람들도 하나 둘, 분명한 이유도 없이 시체로 변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리하여 건물이 세워진지 7년 동안에 그 집에서는 여러 사람이 죽어 시체가 되어서 나왔습니다.

7년째 되던 해, 당시 살고 있던 집 주인은 관계 기관에 의뢰하여 사인을 규명하게 되었는데, 세밀한 조사결과, 그 건물 밑으로 흐르는 하수구에서 흘러나온 독이 그 집 침실의 벽으로 스며들고 있음이 밝혀졌습니다. 조금씩조금씩 스며든 독이  그 방에 기거하던 사람들이 죽어갔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와서 정착하여 살게 된 것이 이미 수 백 년이 지났습니다. 그들이 출애굽할 때는 정말 오직 한분 하나님 신앙이 철두철미했습니다. 십계명 맨 처음에 “나 외에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라”, 두 번째가 “우상을 만들지 말고 절하지도 말고 섬기지도 말라”고 한 것을 봐도 그들의 절대적인 여호와 신앙을 엿볼 수 있습니다. 특히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 원주민을 남겨두지 말라고 엄명했습니다. 이 말씀은 “오직 여호와 신앙”을 목숨 걸고 수호하라고 하시는 하나님의 의지 표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대로 순종하지 못했습니다. 여호수아가 그의 고별설교에서 “오늘 섬길 자를 택하라”고 했을 때 “우리가 여호와만 섬기겠나이다”라고 맹세했지만  이스라엘은 그 맹세를 오래 지키지 못했습니다.

원래 이스라엘은 애굽의 노예생활에서 해방되어 광야 생활을 해왔고, 그들의 주업이 목축이었기 때문에 그 삶이나 문화가 매우 단순했습니다. 특히 우상숭배를 금했기 때문에 그들의 삶의 내용은 요새말로 하면 매우 청교도적이었습니다.

이런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갔을 때 가나안 원주민들은 이미 오랜 세월 수준 높은 문화생활을 누려오고 있었습니다. 단순 소박했던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이것은 상당히 매혹적인 것으로 보였습니다. 그것들은 세월이 흐르면서 마치 저 “꿈의 궁전”에 스며들었던 살인적인 독처럼 이스라엘 신앙을 침식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하여 결국 이스라엘은 숭고하였던 한 분 여호와 신앙에서 타락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이 결정적으로 노출된 것이 여호와의 언약궤를 전쟁터로 운반해 간 일 이었습니다.

여기 이스라엘이 범한 두 가지 죄악을 보게 됩니다. 하나는 이미 이스라엘의 여호와 신앙이 우상숭배 화 하게 된 것이요, 다른 하나는 하나님을 내가 섬기는 주님이 아니라 내가 이용하는 도구로 전락시켜버린 일입니다. 이런 이스라엘의 망상을 깨기 위한 것이 여호와의 궤를 빼앗기게 되는 사건으로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2.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스라엘의 신앙이 타락했을 때, 그들에게 맡겨진 사명은 고사하고 하나님의 영광이 얼마나 짓밟히게 되었는가를 아시기 바랍니다. 적군들이 여호와의 궤를 빼앗았을 때, 적들은 자기들이 섬기는 신이 이스라엘이 섬기는 여호와를 이겼다고 승리의 개가를 불렀습니다.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의 거룩한 언약궤가 적군의 전리품이 되고 말았습니다.

오늘 사무엘 본문 2절을 보십시오. “블레셋 사람들이 하나님의 궤를 가지고 다곤의 신전에 들어가서 다곤 곁에 두었다”고 했습니다. 옛날에는 전쟁에서 지면 패전국의 왕은 포로로 끌려가서 승전국의 왕 앞에 무릎을 꿇게 됩니다. 2차 대전 때, 일본이 패망하고 났을 때 일본 천황이 미국 대통령이 아니라 당시 사령관이었던 맥아더 장군 앞에 무릎을 꿇지 않았습니까? 지금 블레세 사람들이 여호와의 궤를 그들이 섬기는 다곤 신전에 가져간 것이 바로 이런 것을 말합니다. 이 얼마나 수치스럽고 굴욕적인 일입니까?

그런데 다곤 신전에 이변이 벌어졌습니다. 여호와의 궤를 거기 안치하고 나서 다곤 우상이 넘어졌습니다. 다시 세웠더니 이번에는 다곤 우상이 넘어진 정도가 아니라 완전히 박살나고 말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 지역에 엄청난 역병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죽게 되었습니다. 그야말로 재앙이었습니다. 블레셋은 영문을 몰랐으나 성경은 이것을 “여호와의 손이 그들을 쳐서 망하게 했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되니까 이제는 여호와의 궤에 대한 두려움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애초에 두었던 아스돗에서 가드로, 가드에서 다시 에그론으로 옮기게 되었습니다. 저 이방인들이 하나님의 신성한 궤를 이리저리 끌고 다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궤가 이리저리 끌려 다니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눈을 돌려 복음서를 보십시다. 오늘 눅23:에 보면 사람들이 예수를 끌고 빌라도에게 갔습니다. 그리고 다시 헤롯에게로 끌고 갔습니다. 그뿐입니까? 나중에는 골고다의 십자가 현장까지 끌고 갔습니다. 이렇게 끌려 다니면서 온갖 욕을 당하시고 수치와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여호와의 궤가 전리품으로 이리저리 끌려 다닌 것과 예수께서 죄인으로 끌려 다닌 것이 얼마나 방불합니까?

우리 주님이 이렇게 끌려 다니고 재판받고 정죄 받을 때 그만한 무슨 죄가 있어서였습니까? 성경에는 “그는 우리와 꼭 같이 시험을 받으셨지만 죄는 없으신 분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왜 사형까지 당하셨습니까? 사53:5에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 시키셨도다”라고 했습니다. 주님의 십자가는 바로 나 때문에, 나를 위하여 당하신 것입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을 세상 사람들이 뭐라고 부릅니까? 사도행전에 보면 최초로 안디옥에서 사람들이 당시 교인들을 보고 “그리스도인-크리스챤”이라고 불렀습니다. 우리나라에 처음 기독교가 들어왔을 때는 사람들은 우리를 “예수쟁이”라고 했습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인이건 예수쟁이이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와 운명공동체가 된 것을 말해줍니다. 그래서 주님은 우리들을 “그리스도의 증인”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얼마나 우리 주님의 이름을 높이고 있습니까? 요한복음에 보면 다시 살아난 나사로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었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세상 사람들은 나 때문에 예수를 믿게 됩니까? 아니면 오히려 나 때문에 예수께서 욕을 먹는 일은 없습니까? 만일 오늘 우리들이 개인적으로나 교회적으로 주님 뜻대로 살지 못한다면 우리 주님은 저 여호와의 궤처럼, 아니 오늘도 역시 주님은 이 땅에서 십자가를 지고 끌려 다니시면서 온갖 욕을 다 당하시게 됩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가장 중요하게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주의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라”고 하는 말씀입니다.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세상에서 하나님의 홍보대사입니다. 예수 세일스 맨입니다. 그래서 “세상의 빛”이라고도 하였고 “세상의 소금”이라고도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먼저 하나님”이라고 했듯이 범사에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시고, 하나님의 영광을 들어내시기 바랍니다. “나 때문에” 우리 주님이 세상 사람들에게 어떻게 여김 받는 가를 깊이 생각하시면서 말도 하시고 행동도 하시기 바랍니다.

3. 적군 블레셋의 전리품으로 다곤 신전에 안치된 여호와의 궤가 마침내 무서운 여호와의 손으로 그들을 심판하시는 모습이 오늘 본문에는 매우 익살스럽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1) 먼저는 우상을 심판하시는 모습입니다. 다곤 신상이 여호와의 궤 앞에 넘어졌습니다. 그 다음에는 다곤 신상이 엎드러져서 얼굴이 땅에 닿았고, 머리와 두 손목이 끊어져 문지방에 있고, 다곤의 몸뚱이만 마치 무슨 토막처럼 남아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상에 대해 내리시는 징벌을 보여 줍니다.

오늘 혹 여러분이 하나님처럼 섬기는 그런 우상은 없습니까? 돈을 우상처럼 섬기지 않습니까? 명예나 권세를 우상처럼 붙잡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자녀나 남편이나 아내 또는 자기 자신을 우상처럼 하나님보다 앞세우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하나님은 “질투하시는 분”이라고 했습니다. “나 외에 다른 신을 두지 말라”고 하는 말씀의 다른 번역을 보면 “나의 라이벌을 용납하지 않는다”고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 보다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우상을 용납하시지 않습니다. 세상에 그 무엇이라도 하나님과 라이벌이 되는 위치에 두지 마시기 바랍니다.

(2) 처음에는 우상을 치신 하나님께서 그 다음에는 우상을 섬기는 사람들을 치셨습니다. 6절에 “여호와의 손이 아스돗 사람에게 엄중히 더 하사 독한 종기의 재앙으로 아스돗과 그 지역을 쳐서 망하게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처음에는 여호와의 궤를 전리품으로 생각하여 그들의 신전에 가져다 두었습니다. 그러나 시2편에 보면 “하늘에 계신 이가 웃으심이여!”라고 했습니다. 인간들의 오만하고 불손한 행위에 대하여 비웃으시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저들을 마치 철장으로 질그릇 부수듯 하신다고 했습니다. 비록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운다고 해도 하나님은 자기 영광을 친히 지키시고 들어내십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하나님을 우습게 여기고 그 거룩한 궤를 마음대로 이리저리 끌고 다녔으나 하나님 결코 그들에게 당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반대로 하나님이 손은 마침내 그들에게 재앙을 내리셨습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정죄하고 비웃고 조롱하며 마침내 십자가에 못 박았으나 하나님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셨습니다. 모든 무릎이 예수 앞에 꿇게 하셨습니다. 모든 입으로 예수를 주라 시인하게 하셨습니다.

이것은 예수 이름으로 일컬음 받는 우리 그리스도인이나 그리스도의 교회에도 그럴 줄 믿습니다. 오늘 우리가 정말 하나님을 제대로 믿기만 하면 하나님은 그 영광을 위해서 나를 지며 주십니다. 내 명예를 회복시켜 주십니다. 우리 교회가 정말 하나님 앞에 제대로 서서 사명을 감당한다고만 하면 하나님은 오늘 우리 교회를 지키시고, 우리 교회를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들어내게 될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의 손은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무서운 진노의 손, 재난의 손, 심판의 손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러나 믿는 사람들을 위해서는 구원과 보호와 인도와 축복의 손이 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 주님의 친절한 팔에 안겨서, 그 손으로 내리시는 은총과 축복을 받아 누리시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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