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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비전에 헌신된 사람들 (행 2: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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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김성덕 목사 

이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두 사람이 있습니다.
1) 꿈을 가진 사람 즉 비전을 가진 사람이고
2) 죽을 각오한 사람입니다. 한 마디로 말한다면 비전에 헌신된 사람입니다. 왜 초대교회 성도들이 행17:6절 말씀처럼 [ 천하를 어지럽게 하는 사람들 ] 즉 세상을 뒤집어 놓는 사람들이란 별명이 붙었을까요?
바로 비전에 헌신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이 주신 비전에 헌신된 사람들이 있다면
이 세상을 바꾸어 놓을 수 있습니다.
그럼 어떻게 비전에 헌신된 사람이 될 수 있겠습니까?
우리도 초대교회 성도들처럼 성령충만 받으면 하나님이 주신 비전에 헌신되어져 세상을 바꾸어 놓을 수 있는 사람들이 될 수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말씀은 베드로의 첫 번째 설교입니다.

왜 베드로가 이 설교를 하게 되었는가 하면
2:1절 이하에 오순절 마가 다락방에 모여 기도하던 120명의 성도들 위에
급하고 바람 같은 소리가 온 집에 가득하며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사람들 위에 임하는 성령강림의 역사가 나타나 저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방언을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절기를 지키러 당시 15개국의 다른 나라 사람들이 거기 모여 있었는데
당시 세계관으로 보면 그들은 세계 모든 백성을 의미합니다.
그들은 자기 나라 말로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 사건을 목도한 사람들은 혼돈에 빠졌습니다.
6절에 보니 제자들이 방언 하는 것을 보고 소동하더라고 합니다.
기대와 상상과 상식을 초월하는 사건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그들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어떤 사람은 그 사건을 부인은 할 수 없지만 내용을 그대로 받아들이기가
어려워 저들이 새 술에 취한 것이다 라고 조롱을 했습니다.
이 때 베드로가 일어나서 열 한 사도와 함께
[ 여러분 여기 귀를 기울어 보세요! ] 하고 외칩니다.
지금 시간이 몇 시인데, 오전 9시인데 무슨 술을 마시겠느냐?
술 취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술 취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선지자 요엘로 하신 약속의 말씀대로
성령의 부으심 즉 성령충만을 받아 하나님의 말하게 하심 따라
방언을 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베드로의 설교에서 첫 번째 말하고자 하는 것은 <2>
누구든지 성령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정말 중요한 일이 무엇입니까?
가정생활 직장생활 자녀교육 돈 버는 일, 다 중요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삶에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의 인생에 최우선 순위가 무엇입니까?
우리의 문제는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하나님이 우리의 삶에 최우선 순위에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다만 우리가 문제를 당하고 위기를 당할 때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고 위기에서 구출해 주시는 분으로 생각하지
그 분이 우리의 주인이요 왕이요 주권자요
창조주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성령의 충만을 받고 나면
하나님이 최우선 순위가 되는 것입니다.
그 분의 말씀이 먼저고 그 분의 뜻이 우선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건 즉 성령의 사건이 나의 삶의 우선이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한가지 짚고 넘어 가야 할 것은
베드로가 어떻게 선지자 요엘을 말을 인용하게 되었냐는 것입니다.
이것은 베드로가 요엘 선지자의 말을 기억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암송은 하고 있었지마는 무슨 뜻인지 몰랐습니다.
그런데 성령충만을 받고 보니 아하 바로 이것 이였구나!
말씀의 자각성이 일깨워졌던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성령이 임하면 말씀의 자각운동이 일어납니다.
말씀을 체험적으로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령충만을 받게 되면
무엇보다도 이렇게 말씀의 자각운동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성령 받으면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방언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복음이 세계로 전파되게 됨의 신호를 말합니다.
그리고 성령을 받게되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하면

17절에
[ 하나님이 가라사대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 합니다.
젊은이들이 예언을 합니다. 젊은이들은 환상을 봅니다.
늙은이들이 꿈을 꿉니다.
예언 환상 꿈은 구약의 하나님의 계시의 방편입니다. <3>
하나님이 계시하실 때 예언이나 환상이나 꿈을 통하여 전달했습니다.
하나님의 계시가 있다는 것 바로 희망을 말합니다. 비전을 말합니다.
삼상3:1절 사무엘 어린 시절 즉 엘리 제사장 시절에
[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여 이상이 흔히 보이지 않았더라 ]
하나님의 계시가 없으니 백성들에게 희망이 없더라는 말입니다.
희망만 없는 것이 아니라
잠29:18절 묵시가 없으면 백성이 방자히 행한다 고 말합니다.
즉 하나님의 계시가 없으면 사람들이 망할 짓만 골라서 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성령을 받으면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게 되고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게 되니 희망이 있습니다. 비전이 있습니다.
그러니 성령 받으면 비전의 사람이 됩니다.
우리도 성령받아 비전의 사람 되시기 바랍니다
그 비전에 헌신되어져 주위를 변화시키는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럼 성령이 누구에게 임합니까?
16절에,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17절에, 내가 내 영으로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니
구약에는 특정인에게만 하나님의 신 즉 성령이 임했습니다.
그러나 신약시대에는 모든 육체, 남종과 여종들,
그러나 누구에게나 성령이 임한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성령을 받게 되면
예언과 환상과 꿈을 보게 된다고 하는데
구체적으로 말해서 예언과 환상과 꿈이 무엇이겠습니까?

성령이 임하면 너희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합니다.
구약시대에는 예언자들이 예언을 했습니다.
그런데 성령이 임한 후에는 모든 사람이 예언을 합니다.
특히 자녀들이 예언을 한다는 것은
우리의 자녀들의 미래에 하나님의 사건이 개입한다는 것입니다.
요셉이 팔려가 종살이를 해도
하나님의 사건이 개입하니 형통하게 되는 것입니다.
다윗이 베들레헴 목동이었지마는
하나님의 사건이 개입되니 이스라엘 임금이 되고
하나님의 구속사에 주인공이 된 것입니다.
성령 받으면 우리의 자녀들 미래에
하나님의 사건이 일어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너무 공부 공부 하지 마세요. <4>
저들이 성령 받아 예언하는 자녀되도록 기도하세요
그러면 저들 가는 길에 하나님의 사건이 일어납니다.

몇 년 전에 명문대학교 다니는 학생이 4학년 때
신촌에서 아이스크림 장사를 했는데 얼마나 아이스크림 장사가 잘 되는지 이게 전국으로 나아가서요 체인이 되가지구요 돈을 버는데
몇 년안에 백억을 더 번거예요. 사람이 그만큼 어떻게 돈을 벌 수 있어요? 하루에 5천에서 6천만원 수입이 되는 거예요. 엄청나게 벌었어요.
최고로 좋은 집에서 최고로 좋은 자동차, 세계의 최고라는 건 다 가졌어요. 이 젊은 나이에 최고를 가져도 만족함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 어디로 빠졌느냐. 카지노로 빠졌어요.
막 잡아 땡겼니깐 다 빠져나갔어요.
2002년 2년이 안되어 가지고 80억이 다 나갔어요.
또 아는 사람은 많으니까 100억을 사기를 했어요.
마침내 걸려 들어가 감옥에 갔어요.
그가 한창 돈을 벌 때는 메스컴이 경영의 귀재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 귀재가 갈 곳은 감옥입니다.
나중에 감옥에서 나오면 뭐 할까요? 뻔한 것 아니겠어요.
그러니 자녀들에게 너무 공부 공부 돈 돈 하지 마세요. 감옥갑니다.
성령, 성령 하세요. 하나님의 사건이 일어납니다.

그리고 젊은이들은 환상을 본다고 합니다.
젊은이들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환상을 본다는 것입니다.
빌게이츠는 검퓨터를 통해 환상을 보았습니다.
스필버그는 영화를 통해 환상을 보았습니다.
박세리는 골프를 통해서 환상을 보았읍니다.
오늘 우리 젊은이들을 어떤 환상을 봅니까?
젊은이들이 기껏해야 시집가고 장가가고
좋은 직장에 취직하여 안정된 생활을 누리고
박사학위를 따서 엘리트가 되는 환상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물론 세상적으로야 이것도 건전한 환상입니다.
오죽하면 오렌지 족이란 말이 생기고
복권 사서 한 밑천 잡아볼까 하는 망상보다야 낫지만
그러나 내 인생과 내 젊음을 투자해서
영원을 위하여, 진리를 위하여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도전하고 모험하는 환상을 가져야겠습니다.
이것이 성령받은 젊은이의 모습입니다.
명성교회 김삼환 목사님 설교 간증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5>
작년 5월 달에 아까운 젊은 분이 돌아가셨다는 것입니다.
한창 젊은 40대에 간암으로 죽었습니다,
이분은 항상 최고를 지향했습니다.
돈도 많이 벌었어요. 결혼도 미스코리아랑 했어요.
미스코리아, 최고의 미인과 결혼하려니 얼마나 경쟁이 많은지
결혼하기 위하여 벤츠420 S클라스!를 선물하고
억대 물방울 다이야를 선물을 했다는 것입니다.
사업이 잘되어 돈을 막 벌게되니 텔레비전에서 뜨게되었습니다.
대통령이 해외에 가시면 따라갔어요. 대단했어요.
높은 분들 많이 만나고 최고의 인기, 최고의 미인, 최고의 좋은 집에 삽니다.
그러나 병드는 걸 몰았어요.
가정에도 벌써 부부와 금이 가서
몸이 아퍼 사업이 기울어지니까 아내는 떠나갔어요.
병원에서 두달 정도 있다가 강남 세브란스에서 돌아가셨다는 겁니다.
이 부인이 오지도 않았어요.
최고의 환상에 사로잡혀 있던 청년의 말로가 남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러나 성령 받으면 하나님이 주시는 환상을 보게되는 것입니다.
반대 이야기 하나 할께요.
미국대통령 부시가 당선되었습니다.
미국 대통령 누가 되느냐? 굉장히 중요한 문제입니다.
부시 대통령이 좋고 나쁘고는 나는 잘 모릅니다만
확실한 건 그 분이 ‘하나님 앞에 기도 많이 하는 사람,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사람,
성령의 충만한 사람이기 때문에’
그 분이 나쁜 길로 가지 아니하리라고 믿어요.
부시는 마흔 살 될 때까지 얼마나 술을 많이 마셨는지 몰라요.
마약도 복용했습니다. 세상에 있는 모든 것 다 해봤을 정도입니다.
이거 해봐도 저거 해봐도 어디든지 만족함이 없었어요. 기쁨이 없었어요.
나중에는 폐인이 됐었습니다. 자기가 뭔지도 몰랐어요.
걷잡을 수 없어 이제 무너지는 순간에
마흔 살 생일날 아침에 친구가 교회로 데려갔어요.
교회가니 목사님이 설교를 하는데
[ 죄 사함 받아야한다, 성령 받아야 된다. ]
그때 부시는 교회 와서 성령받았습니다. 기쁨과 평안이 찾아왔습니다.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내가 그렇게 소중한 것을 이제야 알았습니다.
하나님 앞에 예배드릴 때 눈물이 줄줄줄줄 흘러 내렸습니다.
세상을 보는 눈이 열렸어요. <6>
그렇게도 안되던 사업이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맑은 정신으로 보니
돈 버는 길이 쫙 보이는 거예요.
사업을 해보니 쭉쭉 잘 됩니다.
하! 그 다음에는 내가 나라를 위해서 뭐 좀 봉사해야 되겠다.
그래서 이 분이 주지사에 나왔더니 주지사도 되고
대통령 나왔더니 대통령도 또 되었어요.
나라를 위해서 세계를 향하여 큰일을 하는 지도자가 된 거예요

청년들 여러분 성령 받으세요
하나님이 주시는 환상을 가진 청년들 되시기 바랍니다.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합니다.
사람이 늙으면 경화 현상이 나타납니다. 모든 기능들이 굳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늙은이도 성령 받으면 꿈을 꿈니다. 희망이 있다는 말입니다.
반대로 꿈이 있는 자는 늙지 않습니다.
[ 끝없는 도전과 용기 ] 로 잘 알려진 미래 사회학자 피터 드러거는
지금 90이 넘은 노인인데
하바드 A급의 교수 강의료가 한 시간에 700- 800만원인데
아직도 피터 드러거는 1000만원을 받는다고 합니다.
그리고 90이 넘은 나이인데도 테니스를 친다고 합니다.
어떻게 그렇게 살 수 있는가? 물으니
내 전공이 미래를 내다보는 일이기 때문이다. 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성경에 보면
아브라함은 75세에 새로운 인생을 시작합니다.
모세는 80세에 새로운 사명을 감당합니다.
갈렙은 85세에 헤브론을 정복합니다.

이렇게 성령 받으면
우리의 자녀들도 젊은이들도 늙은이도
예언하고 환상을 보고 꿈을 꾸는 비전이 있는 사람들 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맹인이었던 헬렌켈러 여사는
[ 맹인보다 더 불쌍한 사람은 눈은 있지만 비전이 없는 사람 ] 이라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 꿈을 갖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독일의 실천 신학자 <루돌프 보렌>은
"설교는 환상을 주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저는 오늘 이 말씀을 듣는 우리 교회가 환상을 보는
영원한 젊은이들로 변화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리고 성령이 임하면 더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7>

19절 [ 또 내가 위로 하늘에서는 기사와 아래로 땅에는 징조를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로다 ]
하나님이 살아 계신다면 정말 기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하나님이 하실 일에 대한 기대감이 없습니다.
우리는 세상에 너무 이성과 상식과 경험으로 살도록 훈련되어
고정관념 속에서 살아가는데 숙달되고 익숙합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우리의 이성과 상식과 경험에 제한을 받는 분이겠습니까?
하나님은 그 누구에게도 제한을 받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하늘의 기사와 땅의 기적을 베풀 수 있는 분이십니다.
사실 가만히 관찰해 보면
이 세상은 하나님의 기적으로 가득찬 세상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마지막 때 피와 불과 연기로 심판하십니다.
앞으로 이 세상에는 이런 변화와 역사가 많이 일어날 것입니다.
현시도 우리는 미국테러사건과 남아시아 진진 사태를 눈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베풀어주시기 때문입니다.

이 모든 일들이 성령충만 할 때 가능할 줄 믿습니다.
저는 이런 면에서 예친중심의 교회가 될 것을 강조합니다.
예친이 모일 때 성경공부 모임이나 친교모임으로만 그치면
시간이 지나면 예친모임이 시들고 맙니다.
참된 공동체는 성령의 공동체로서
예친원들이 성령의 역사 하심에 활짝 열려있고
성령의 기름 부으심으로 역동적인 생명의 역사가 나타나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예친원들이 한 덩어리가 되어 성령 받기를 기도하고
초대교회 같이 가정에 모여 성령의 능력이 나타나도록 강력히 기도해야 합니다.

왜 하나님은 베드로의 설교를 통해서 우리가 성령을 받아야 한다고 강조합니까?
성령을 부어 주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21절에
[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는 것입니다.
이 구절은 이신득의의 교리와는 다릅니다.
우리가 예수를 주로 믿을 때 구원을 받는다는 말과는 의미가 다릅니다.
지금까지는 이스라엘에 국한된 구원이 <8>
성령강림 이후에는 만민에게 복음이 전해져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오순절 성령사건은
복음이 만민에게 전파된다는 출발신호인 것입니다.
우리도 성령충만 받으면
누구에게든지 복음을 전하는 자, 전도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성령 사건의 핵심이요 기적 중에 기적인 것입니다.
나의 신앙생활에
아직도 내 입술이 복음을 전하는 입술이 되지 못했다면
성령 사건이 일어나지 못한 증거입니다.
성령이 임하면 하늘의 기사와 땅의 징조가 나타납니다.
그러나 그 보다도 더 큰 기적 중에 기적은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어떤 재앙 가운데서도 구원을 얻는다는 확신과
이 복음을 전하는 일인 것입니다.

이렇게 베드로는 마가 다락방에 일어난 성령 사건을 설명하면서
이 성령사건은 우연한 사건이 아니라
요엘 선지자를 통해 하나님이 예언한 사건이요.
너희가 십자가에 못박아 죽인 예수 그리스도와 별개의 사건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제 베드로는 설교의 주제를 바꾸어
22-24절에서 성령 사건의 주체는 예수 그리스도임을 증거 합니다.
많은 교인들이 성령의 역사에 대해 말할 때 실수하는 부분이
예수 그리스도가 없는 성령의 역사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없는 성령운동, 그리스도를 높이지 않는 성령의 은혜
이것은 잘못된 성령운동이요 역사인 것입니다.
우리가 성령의 은혜 받았다 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자랑하지 못하고 전하지 아니한다면
그것은 진정한 성령의 은혜라 할 수 없습니다.

이것이 베드로 설교의 두 번째 요지입니다.
베드로가 소개하는 예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이것은 성령의 은혜 받은 우리가 전해야 할 예수님입니다.
1) 22절 큰 권능과 기사와 표적을 나타낸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의 생애는 큰 권능으로 이뤄진 생애입니다.
많은 병자를 고치고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고 <9>
오병이어의 기적과 바다의 풍랑도 잠잠케 하는
초자연적인 기적을 행하는 것이 예수님의 생애입니다.
왜 이런 기적을 행하셨나?
바로 살아계신 하나님을 나타내기 위함이었습니다.
오늘 우리도 성령 받으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나타내는
큰 권능과 기사와 표적이 나타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2) 23절 십자가의 예수를 말합니다.
왜 십자가의 예수를 말합니까?
어떻게 보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게 한 사람들은 유대인이 아니라
로마 총독 빌라도요 로마 군사들입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베드로를 통하여 하시는 말씀은 이런 것입니다.
너희들이 예수를 죽이지 아니했다고 하지만
사실은 너희들이 하나님의 법을 모르는 빌라도와 로마병정의 손을 빌어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게 했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죽인 것이 아니라 너희들이 죽였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무서운 말입니까?
예수를 다른 사람이 죽였다고 할 때는 십자가가 별로 의미가 없습니다.
그러나 내가 예수를 죽였다고 할 때는 보통 일이 아닙니다.
내가 당사자 일 때는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내 죄 때문에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었다고 믿기워져야 은혜를 받습니다.

3) 부활하신 예수를 말합니다.
24절에 하나님은 예수를 죽음에 계속해 머물게 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사망의 고통을 풀어 주셨다고 합니다.
또한 그가 사망에게 매여 있을 수 없었음이라 합니다.
예수님은 사망에 매여 있을 분이 아니십니다.
예수님은 길이요 생명이요 부활이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사망에 매일 수 없다는 말이 무슨 뜻입니까?
예수 믿는 우리도 사망에 매일 수 없다는 말입니다.
사망의 고통과 권세에 매일 수 없습니다.
죄와 가난과 질병의 고통에 매일 수 없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성령을 받으면
큰 권능의 예수, 십자가의 예수, 사망에 매일 수 없는 예수가,
나의 구주로 믿기워져
십자가를 자랑하고 사망의 고통에 매이지 아니하는
능력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음을 믿습니다.
베드로는 다시 성령의 사건을 설교하면서 <10>
이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의 권능은 급작스럽게 만들어낸
하나님의 졸작이나 사람의 인위적인 사건이 아니라
하나님이 일찍이 다윗에게 보여준 부활의 신앙이
우리 눈앞에 나타난 것임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25-28절까지는 다윗의 시16:8-11절까지의 인용입니다.
예수님 오시기 전 약1000년 전 사람이었지마는
다윗은 부활의 신앙에 눈이 뜨여져 그가 사망의 고통 중에서도
하나님이 예비한 생명의 길을 바라보았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다윗의 부활의 신앙과 같이 진정한 성령충만이란?
이렇게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의 능력이 내게 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성령충만을 받으며
나의 삶에 3가지 뚜렷한 증거가 나타납니다.
26절 [ 이러므로 내 마음이 기뻐하였고
내 입술도 즐거워하였으며 육체는 희망에 거하리니 ]
1) 마음에 기쁨이 있습니다.
어찌 이 세상 기쁜 일만 있겠습니까?
병들 때도 있고 사업에 실패할 때도 있고 시험에 떨어질 때도 있습니다.
더군다나 성령 받아 복음 전하다 보면 바울같이
욕 얻을 먹을 때도 있고, 고생할 때도 있고, 심지어 감옥 갈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충만 받은 사람의 특징은 기쁨을 빼앗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성령의 역사가 나타나면
제일 먼저 우리 마음에 기쁨이 임한다는 것 믿으시기 바랍니다.
기쁨이 충만한 교우들 되시기 바랍니다.

2) 내 입술도 즐거워합니다.
시편에는 [ 내 영광이 즐거워 하도다 ] 라고 합니다.
그 입술에 하나님의 영광이 담긴 찬송과 감사가 있다는 말입니다.
어떤 사람은 입술이 저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래서 입만 벙긋하면 욕이 나오고 비판이 나오고 불평이 나옵니다.
그 입술에는 하나님의 영광이 없습니다.
그러나 성령받은 입술은 항상 하나님의 영광이 있는 감사와 찬송이 있습니다.
성령받은 성도의 두 번째 특징이 바로 감사와 찬송입니다.
여러분 주위에 교우들 한번 살펴보세요.
우리 교우 가운데도 정말 어려운 가운데도 항상 감사하고 찬송하는 교우들 있습니다.
저들에게 부활의 능력이 임할 줄 믿습니다. 분명히 일어날 줄 믿습니다.
3) 육체는 희망에 거합니다. <11>
물론 부활의 신앙을 말하는 표현이지만
그러나 부활의 신앙은 우리가 죽어서 천당 갈 때만 유효한 것이 아니라
고후4:8절 이하 말씀같이 역동적인 생명을 안겨다 줍니다.
< 사방에, 답답한 일, 핍박을, 거꾸러뜨림을 >
비전이란 무엇입니까? 바라보는 것입니다.
[ 현상(現象) 너머에 있는 세계를 바라보는 것 ] 입니다.
즉, 현실을 넘어서 미래의 가능성과 잠재력을 보는 시야(vision)입니다.
성령 받으면 비전의 사람이 되어
현실 너머에 있는 영적인 세계를 바라볼 수 있는 줄 믿습니다.

베드로는 이제 설교의 결론을 내립니다.

결론을 두 가지로 받을 수 있습니다.
베드로는 이렇게 말합니다. 32절을 의역하자면
[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셨다.
다윗이 말했던 그 부활이 지금 이루어졌다 우리는 이 일의 목격자다 ]
그러니 행1:8절
[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는 말씀같이
너희도 성령 받아 증인이 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는 36절
[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은 정녕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
이게 설교의 끝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이 불덩어리가 되어
말씀을 듣는 순간 사람들의 가슴이 찔리고 어찌할꼬 하는 통회가 일어나고
그날 삼천 명이 믿고 세례를 받았다고 합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말씀입니까?
오늘 내게도 성령 사건이 일어나자면
예수님이 나 때문에 십자가에 못밖혀 돌아가셨구나
내가 주님을 멸시하고 비난했구나 하고 회개할 때
성령 사건이 내게 일어날 줄 믿습니다.

그럼 우리가 성령 받아 비전의 사람들이 되기 위하여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성령을 사모해야 합니다. 우리가 성령을 몰라서 받지 못한 것 아닙니다.
교만해서 못 받는 것입니다. 마음이 강팍하여 못 받는 것입니다.
성령 받기 위하여 모이고 전혀 기도하는 성도들 되시기 바랍니다.
성령 받는 일을 내 삶에 최우선 순위에 두고 사모하는 성도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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