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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은퇴예배] 인내로 끝까지 달리자 (히 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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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윤정현 목사

오늘 우리 교회에서는 그 동안 시무 하시던 한점례 권사님의 은퇴식을 거행하는 날입니다. 그 동안에 신앙의 경주! 사명의 경주장에서 잘 달려 오셨습니다. 시작은 희망을 가지고 달려가는데 끝까지 달려가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신학교에 들어가는 사람들은 많은데 졸업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12제자를 부르셨습니다. 그러나 그들 중에는 중도에서 탈락한 사람도 있습니다. 우리 주변에는 사명을 받고 끝까지 달려가지 못하고 중도에 탈락하거나 다른 곳으로 도망을 간 사람들이 허다하게 많습니다. 그런가 하면 끝까지 받은 사명을 잘 감당하여 승리한 종들도 허다하게 많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1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함께 보시겠습니다.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실패한 케이스와 성공한 케이스의 증인들이 허다하게 많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끝까지 인내로 달려 갈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1,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려야 합니다.
 
유럽의 한 외딴 들판에 여관을 짓고 생활하는 모녀가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이곳에서 어렸을 때 집을 떠난 아들을 기리며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생활이 너무 어려워 모녀는 죄의 유혹에 빠져 살게 되었습니다. 투숙하는 손님들 중에 부유하게 보이는 남자 손님에게 독약을 먹여 살해한 후 금품을 빼앗고 시체를 강물에 던져버리는 것입니다. 어느 날, 말쑥한 차림의 한 청년이 여관을 찾았습니다. 모녀는 이전처럼 청년에게 독약을 먹인 후 시체를 강물에 던졌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의 지갑을 뒤지다가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왜냐하면 그 지갑의 주인이 바로 지금까지 자기가 기다리고 있던 아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청년은 고향을 떠난 후 크게 성공해 어머니와 여동생을 만나러 고향에 돌아오던 길이었습니다. 자기의 못된 죄가 사랑하는 아들을 죽이고 말았습니다. 그는 그 죄책을 견디지 못하고 아들을 던진 강물에 투신하고 말았습니다. 이것은 알베르 까뮈의 소설 "오해"의 줄거리입니다. 성경은 분명히 말씀하시기를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했습니다. 죄는 반듯이 보응을 받는다고 했습니다. 인간의 불행의 시작은 불순종과 범죄로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에게 경주장에서 승리하는 인생을 살아가기를 원한다면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라"고 권하고 있습니다. 돈이 없고 가난한 것은 잠시 불편하고 힘이 들뿐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죄를 범하고 불순종하고 죄를 떨쳐 버리지 못한다면 그 고통은 평생을 가든지 아니면 내 인생을 완전히 망쳐 버리는 불행한 길로 끌고 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좀 불편하고 힘들더라도 심령의 평안을 택하시고, 평생의 불행을 예방하여야 하겠습니다. 그 지름길이 바로 죄를 버리는 것입니다.
 
2, 신앙의 경주에서 승리하려면 인내하여야 합니다.
 
그래서 1절에도 승리하고 이기려면 인내로서 달려가야 할 것을 권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해도 단숨에 무엇을 이루려고 하면 실패합니다. 목회도 장거리 마라톤입니다. 사업도 장거리 마라톤입니다. 인간 관계도 장거리 마라톤을 하는 심정으로 해야 합니다. 우리는 쉽게 더워지거나 쉽게 식어지는 신앙이나 삶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신앙 생활은 경기의 마라톤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단순간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성도는 처음 얼마 동안은 잘 합니다. 그러나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신앙이 식어지고 게으르게 됩니다. 비 온다고 쉬고, 피곤하다고 쉬고, 바쁘다고 쉬고, 이유가 많고, 핑계가 많고, 이래서 못하고, 저래서 싫고! 쉽게 성질을 부리고, 느긋하지 못합니다. 처음에는 겸손했는데 계속 겸손하지 못하고 교만에 빠집니다. 아직도 되려면 멀었는데 다 된 것처럼 교만합니다. 이렇게 해 가지고는 승리의 삶도, 주께 인정받는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결코 승리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 가지고는 결코 축복을 받을 수 없습니다.
사람의 마음 밭을 예수님은 네 종류가 있다고 하셨습니다. 길가와 같이 딱딱하게 굳은 마음입니다. 또 가시밭과 같은 마음이 있습니다. 의심도 많고 염려도 많습니다. 그런가 하면 옥토와 같은 마음이 있습니다. 참 좋습니다. 그러나 돌짝 밭과 같은 마음이 있습니다. 믿음이 들어갑니다. 그리고 자라는 듯 합니다. 그러나 환난과 핍박이 일어나면 그것을 견디지 못하고! 인내하지 못하고 곧 넘어지는 사람입니다.(마13:20-21)
 
특별히 마라톤 선수들에게는 인내가 정말 중요한 것입니다. 그 험하고 지루한 길! 42.195km를 달려야 합니다. 끝까지 완주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아는 사람들은 알 것입니다. 어떨 때는 정말 포기하고 싶을 것입니다. 주저앉고 싶습니다. 그러나 참고 끝까지 달리면 승리의 월계관을 쓰게 될 것입니다. 우리 신앙의 경주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후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 생활을 하게 되는데 이것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쉬운 일이 결코 아닙니다. 우리가 처음 주님을 영접 할 때에는 아무 노력이 필요 없습니다.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으니 이것은 우리의 행위로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기 때문입니다.(엡2:8,9)

그러나 신앙생활에서는 우리의 믿음과 정성이 필요한 것입니다. 수많은 시험이 있습니다. 핍박이 있습니다. 괴롬이 있습니다. 유혹이 있습니다. 주님 가신 길이 십자가의 길이기 때문에 고생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분은 신앙 생활을 시작하고 중도에서 포기하고 넘어지며, 주저앉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인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승리는 인내하는 자의 것입니다. 복된 자가 되려면 인내해야 합니다. 인내가 필요한 것입니다. 약5:11절에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는 자시니라" 하나님이 이러한 욥을 갑절로 축복하여 주셨습니다. 그래서 승리의 면류관은 고난과 역경을 잘 극복하고 인내한 사람의 것입니다. 오늘 은퇴하시는 권사님은 오로지 한 길! 수많은 유혹과 시험을 이기시고 오늘 사명을 마치시고 은퇴하시게 된 것입니다. 이제는 주님 앞에서 면류관 받으실 때까지 남은 목숨을 주님을 위해서 헌신하고 다 드리고 상 받아야 하겠습니다. 우리 모든 성도들도 이같이 인내하고 끝까지 잘 달려서 주님 앞에 서시게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3, 달려가되 목표를 분명히 하고 달려가야 합니다. 

2절 말씀을 다 함께 봉독하겠습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함께 해 주시기 바랍니다. "끝까지 예수를 바라보자!"  우리는 신앙에서 목표가 있어야 합니다. 지난 중에 목적이 이끄는 삶에 대해서 설교했습니다. 우리는 다섯 가지 목표를 가지고 가는데 우리 성도들은 이 목적에 이끌려 신앙 생활을 해야 한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우리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첫째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예배) 둘째는 하나님의 백성들과 친밀한 교제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 한 가족이기 때문입니다.(교제) 셋째는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에 참여하는 일입니다.(훈련) 넷째는 예수님처럼 섬기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섬김) 다섯째가 영혼을 구원하는 일입니다.(전도) 이것이 우리의 사명입니다. 주님은 한 영혼의 가치를 천하보다 귀하게 보셨습니다. 이것에 목적을 정하고 살아야 후회하지 않는 생애를 살 수 있습니다.

아무리 유능한 축구 선수라도 적의 골문을 향하여 슈팅을 해야 잘하는 것입니다. 야구 선수가 아무리 공을 잘 쳐도 다이아몬드 한 바퀴를 돌아 홈으로 돌아와야 잘 하는 것입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좀더 나은 가치를 향한 목표를 정하고 달려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상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썩을 면류관을 향하여 목표를 정하고 달려가지만 우리 신자들은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여 목표를 정하고 달려가는 경주장의 선수라고 하는 사실을 기억하고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고전9:24,25)

나를 통해서 주님이 하시고자 하는 뜻을 이루는 것이 우리의 소원이며, 목표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렇게 살아갈 때에 우리는 시들지 않고 썩지 않는 면류관과 상급을 얻게 될 것입니다.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 대로 갚아 주리라"(계22:12) 
 
4,  승리의 삶을 위하여 훈련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3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치 않기 위하여 죄인들의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자를 생각하라"

요즘 극장가에 올리버 스톤이 감독하고 콜린 파렐이 주연하는 "알렉산더(Alexander)"라는 영화가 상영 중에 있습니다. 역사적인 영웅이라 한번 시간을 내어서 보았습니다. 한번은 알렉산더 대왕이 전쟁에 패하여 도망을 가게 되었습니다. 왕이 전쟁에 패하고 도망을 가야 하니 얼마나 가련한 신세가 되었겠습니까? 그때 다른 군사들은 슬금슬금 자기 살 곳으로 달아나 버렸습니다. 알렉산더 대왕은 도망을 가면서 말안장에 무거운 짐을 실어 사병 하나에게 끌고 가게 했습니다. 그 짐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병사는 말을 끌고 성실하고 충성스럽게 갈 길을 갔습니다. 말이 너무나 지쳐 중도에 쓸어져 죽고 맙니다. 그러나 이 병사는 무엇인지도 모르는 무거운 자루를 자기의 어깨에 메고 알렉산더를 따라갑니다. 천신만고 끝에 고향으로 돌아왔습니다. 알렉산더 주변에는 오직 그 충직한 병사 하나가 남았습니다. 그때 알렉산더 대왕이 그 병사에게 물었습니다. "네 등에 메고 온 물건이 무엇인지 아느냐?" 병사는 알 리가 없었습니다. "모릅니다."라고 대답합니다. 그것은 금덩이였습니다. 알렉산더는 그것을 그 병사에게 주면서 죽음을 무릅쓰고 알렉산더와 생사를 같이 한 그 병사에게 다 주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평안하고 형편이 좋을 때는 누구나 다 충성하고 잘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고난 중에도 충성하는 충성이 참 충성입니다. 힘들고 어려운 가운데 자기를 돌보지 아니하고 주님을 위하여 자기를 희생하면서 헌신한 그 헌신이 참된 헌신이며 충성입니다. 끝까지 충성한 자에게는 보상이 있는 법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계2:10) 무슨 말씀입니까? 죽도록 충성하라"는 말씀은 "죽인다고 해도 충성하라! 죽을 때까지 충성하라!"는 말씀입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중간에 변하지 말고 충성하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어려워도 충성하는 것입니다. 이유 조건 없이 충성하는 것입니다. 승리의 면류관을 얻으려고 하면 훈련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평소에 피를 많이 흘리고, 땀을 많이 흘리며, 자기를 절제하고 다스리기를 잘 한 사람이 실전에 강한 것입니다. 예수 이름으로 훈련받으시고 끝까지 승리하시기를 바랍니다.

신앙생활을 갓 시작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슬픈 표정으로 자신을 전도한 사람을 찾아와 하소연했습니다. 아무래도 신앙생활을 그만두어야 하겠다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시작한 이후부터 행복하고 즐거운 것이 아니라 고통스런 일들이 훨씬 더 많아졌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를 전도한 사람이 새 신자의 손을 꼭 잡고 이렇게 말해 주었습니다. "사과나무에 잔가지와 나뭇잎이 너무 많아 열매가 맺히지 않는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새 신자가 대답했습니다. "쓸데없는 가지와 나뭇잎을 잘라내야지요" 그러자 전도자가 말했습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지금 삶의 불필요한 부분들을 잘라내고 있어요. 조금은 아프지만 곧 많은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신앙생활은 위대한 결단입니다. 그리고 그 날부터 어김없이 숱한 시련이 닥쳐옵니다. 그러나 고난을 극복하면 탐스런 보람의 열매가 주렁주렁 열리는 것입니다. 역경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삶의 열매도 없습니다. 역경은 사람을 강하게 만듭니다. 온실 속에서 곱게 자란 나무는 재목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높은 산에서 춘풍한설(春風寒雪)로 연단 받은 나무가 궁궐로 들어가 대들보가 되는 것입니다. 고통의 훈련을 통과 할 때 승리가 오는 것입니다. 욥은 고난을 통하여 정금 될 기회라고 외쳤습니다.(욥23:10) 고난 없이 성공도 없고, 고난 없이 축복도 없는 것입니다. 성경은 오히려 우리에게 권하기를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좇아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딤후1:8)고 권하고 있습니다.

모쪼록 우리 하나님께서 천성을 향하여 경주하는 여러분들 모두가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고, 인내하면서 더욱 가치 있는 목표를 향하여 달려가심으로 면류관과 상급을 받으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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