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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다시 예루살렘을 택하리라! (슥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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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장빈 목사

먼저 스가랴서 1장 1절을 찾아 읽겠습니다. / 1:1 / (읽기) / 그런데 이상한 것은 예언서의 첫 단어 자리에 이방 나라 왕의 이름을 적어 놓았다는 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한 예언서의 초두에 이방 나라 다리오 왕의 통치 이년이라 적다니요, 어인 일인가요? 그랬습니다. 바벨론 포로기 이전만 하더라도 선지자들이 자기 나라의 통치 연한으로 활동 연대를 기록할 수 있었습니다만, 망국 백성이 된 지금, 스가랴는 그들을 지배하는 식민 종주국의 통치 연한을 따를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해서 선지자 스가랴는 이 서글픈 현실을 파타하기 위해 제일 먼저 이렇게 외쳤습니다. 직접 들어봅니다. / 1:2-3 / (읽기) / 선지자의 안타까운 호소, 한 마디로 어서 돌아오라는 겁니다.

스가랴와 같은 시대에 활동했던 선지자가 한 분 더 있었습니다. 그 분의 이름은? 학개입니다. 학개와 스가랴, 스가랴와 학개는 늘 함께 기억되는 이름인데요, 한 마디로 하나님의 일에 있어서 환상의 영적 콤비였던 것입니다. 그런데요, 스가랴서의 바로 앞 책인 학개서 1장 1절을 보시면, 역시 다리오 왕 이년 유월 초하루에 학개가 선교 활동을 시작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스가랴는 다리오 왕 이년 팔월, 학개는 이년 유월, 그러니까 학개가 스가랴 보다 두 달 먼저 예언 활동을 시작한 것이지요.

그런데, 전하는 말에 따르면, 학개 선지자의 활동은 4개월 만에 끝이 난 반면, 스가랴 선지자의 활동은 2년 이상 계속되었다고 합니다. 무슨 뜻인가? 선지자 학개가 시작한 일을 선지자 스가랴가 완성했다는 뜻입니다. 해서 더욱 빛나는 아름다운 콤비인데요, 여러분, 여기서 우리가 기억할 것 하나는, 내가 시작한 일이라고 해서 꼭 내 손으로 완성해야 한다는 집착은 버리라는 겁니다. 그럼요, 나는 나에게 맡겨 주신 그 일을, 내가 할 수 있는 데까지 최선을 다하면 됩니다. 그런데 더러는 내가 시작했으니 반드시 내 손으로 끝내야 한다는 집착하다가 오히려 일을 그르치는 경우가 많다는 겁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하나님, 나를 통해 시작하신 일이지만 다른 사람의 손을 통해서 완성하실 수도 있습니다.

이제 오늘의 본문으로 와 보실까요? 스가랴서 1장 7절인데요, 거기 보니, 다리오 왕 이년 십일월 이십사일에 선지자 스가랴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선포하였다고 하는군요. 1장 1절의 기록과 비교할 때 3개월의 차이가 있는데요, 그랬습니다. 스가랴 선지자가 첫 예언의 말씀을 선포한 후 3개월 만에 다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전하고 있는 중입니다.

참으로 놀라운 사실은 우리 하나님께서 선지자 스가랴에게 환상을 통해 말씀을 주셨다는 점입니다. 그것도 여덟 가지의 환상을 통해서 말입니다. 그런데요, 선지자 스가랴에게 보여주신 여덟 가지 환상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그 안에서 매우 중요한 세 가지 공통점을 발견하게 됩니다. 먼저 정리하고 갑니다.

첫 번째 공통점은, 여덟 가지 환상을 본 주체가 선지자 스가랴, 바로 나 자신이었다는 점입니다. 그렇습니다. 환상을 보는 주체는 바로 나 자신입니다. 1장 8절을 보실까요? 거기 <내가>라는 단어에 동그라미, 별표 다섯 개, 환상은 누가 본다? 내가 본다! 그렇습니다. 환상은 내가 보는 것입니다. 그 누구라서 내 대신 환상을 봐 줄 수 있는 사람은 하늘 아래 하나도 없습니다. 여러분, 금년 한 해, 하나님 보여주시는 환상을 내가 꼭 보리라 다짐하시고 꼭 보게 되시기 바랍니다.

한 가지 더, 거기 8절에, 내가 환상을 언제 보았다? <밤에!> 이 말씀을 뒤집어 볼까요? 밤에는 무엇을 보라? 환상을 보라! 여러분, 요즘 밤이면 밤마다 무엇을 보십니까? 내 인생의 밤이라 생각되는 날들 동안 난 무엇을 보고 있습니까? 아니오, 우리가 캄캄한 밤에 보아야 할 것은 오직 하나님의 환상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금년 한 해 사시면서, 엉뚱한 것만 쳐다보지 마시고, 하나님 보여 주시는 환상을 많이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하여 날마다 보여 주시는 놀라운 환상 속에서, 꿈을 이루며, 마침내 승리하는 한 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두 번째 공통점은, 선지자 스가랴가 여덟 가지의 환상을 보긴 했지만, 각 환상의 의미를 이해하지는 못했다는 점입니다. 무슨 뜻인가? 분명 내가 보긴 보는데, 도무지 보여주시는 환상의 내용을 이해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여러분, 이 때 조심해야 합니다. 이 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얼른 주님께 여쭙는 일입니다. 선지자 스가랴가 그렇게 했습니다. 1장 9절을 보실까요? 선지자 스가랴가 말합니다. <내가 가로되 내 주여 이들이 무엇이니이까?> <주님, 제가 보긴 보았는데 무엇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보여 주신 이것들이 다 무엇입니까? 주님!> 그렇습니다. 환상을 보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은 그 환상의 의미를 해석하는 일입니다. 본 다음엔 그 뜻을 잘 헤아려야 하는 건데요, 이 때 각별히 조심해야 합니다. 어떤 분들은 실컷 좋은 환상을 보고서도 해석을 잘못 해서 이단이 되거나 사탄이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환상을 보았는데, 잘 이해가 되지 않거든, 엉뚱하게 해석해서 엉뚱한 결론으로 가지 마시고, 먼저 주님께 여쭈어 보시기 바랍니다.

세 번째 공통점은, 선지자 스가랴가 환상을 보여주실 때 마다, 그 환상의 뜻이 무엇인지 주님께 여쭙자, 즉시 천사를 통해 상세하고 친절하게 설명해 주셨다는 점입니다.  여쭙기만 하면, 우리 주님, 천사를 통해 그 의미를 다 설명해 주신다는 점입니다. 1장 9절 맨 마지막 대목을 보면, 주의 천사가 이렇게 대답합니다. <내가 네게 보이리라!>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천사를 통하여 나의 질문에 대답을 해 주십니다. 이미 보여주신 환상의 의미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 환상을 붙들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 모든 것을 자세하고 친절하게 알려 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금년 한 해 사시면서, 늘 하나님의 천사를 통해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응답 속에서 일마다 형통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환상 속에서 형통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요 한 가지 우리가 조심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환상을 보는 주체는 분명 나 자신이지만, 내가 환상을 보는 것 맞지만, 그렇다고 내가 환상을 만들어 낼 수는 없다는 점입니다. 그러니 하나님 앞에 겸손해야지요. 정말입니다. 그 누구라서 하나님 대신 환상을 만들어 낼 수는 없습니다. 그저 우리 인간은, 하나님이 보여 주시는 환상을 잘 보고, 잘 이해하여, 그 환상을 따라 순종하는 존재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환상을 보여주십사고 기도하는 일입니다. 기도하지 않아 평생을 살아도 하나님 보여 주시는 환상 한 자락 보지 못하는 인생이 가장 불쌍한 인생이기 때문입니다. 금년 한 해, 하나님 보여 주시는 환상으로 충만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선지자 스가랴에게 보여주신 첫 번째 환상은 무엇이었나? 일단 본문을 먼저 읽을 텐데요, 이 장면을 영상에 담는다고 생각하시고, 감독의 입장에서 상상력을 발휘해 보시기 바랍니다. / 1:8 / (읽기) / 가장 먼저 홍마를 탄 어떤 분이 등장하는군요. 배경은 골짜기 속 화석류 나무가 많은 어느 골짜기이고요, 그런데 그 뒤로 또 홍마, 자마, 백마가 또 보이는데요, 이어지는 환상을 미리 당겨 읽으면, 홍마와 자마와 백마를 탄 또 다른 분들이 등장하는 거죠.

문제는 환상적인 환상이 내 눈에 보이긴 하는데, 그 환상의 의미를 도무지 알 수 없다는 점입니다. 해서 선지자 스가랴, 바로 주님께 질문을 드립니다. <주여, 이들이 다 무엇입니까?> 그러자 우리 주님, 천사를 통해 말씀해 주시는데요, 일단 직접 들어봅니다. / 1:10 / (읽기) / 먼저 화석류 나무 사이에 홍마를 타고 선 자가 대답합니다. 이들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땅에 두루 다니라고 보내신 자들이다. 아하, 홍마, 자마, 백마를 탄 저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이 땅에 두루 다니라고 보내신 천사들이라는 겁니다.

그러자 이번엔 홍마와 자마와 백마를 탄 사람들이 화석류 나무 사이에 홍마를 타고 선 그 분에게 이렇게 고합니다. / 1:11 / (읽기) / 저들이 보고하는 말, 땅에 두루 다녀보니 온 땅이 평안하고 정온하더라는 겁니다. 한 마디로 평온했다는 겁니다. 겉으로 보기엔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였다는 뜻이기도 하지요.

그러자 그 보고를 듣고 있던 홍마를 탄 가장 크신 그 분이, 갑자기 하늘을 우러러 여호와 하나님께 탄원하기 시작합니다. 직접 들어봅니다. / 1:12 / (읽기) / 지금 홍마를 타신 그 분이 무어라 하십니까? <아버지, 언제까지 예루살렘과 유다 성읍들을 돌아보지 않으시렵니까? 예루살렘과 유다 성읍들이 벌을 받아 망한 지 70년이 지났건만, 세상은 그런대로 평안하고 정온하다 하니, 이대로 가다가는 예루살렘과 유다 성읍들이 완전히 사라질 것 같은데요, 아버지, 정녕 이대로 저들을 잊으시려는 겁니까?> 지극한 사랑이 아니고서는 드릴 수 없는 탄원 기도이지요.

그러자 다음 순간, 어김없이 하늘 아버지께서 즉시 대답해 주십니다. 만군의 주 여호와 하나님께서 홍마를 탄 그 분에게 하시는 말씀을 직접 들어봅니다. / 1:13 / (읽기) / 거기 <선한 말씀>과 <위로하는 말씀>에 표시하시고요, 역시 별표 다섯 개, 여러분, 말씀이 중요합니다. 왜? 하나님의 징벌을 받아 70년 동안이나 죽은 듯 지내던 저들 이스라엘을 다시 살려내는 영적 힘이 바로 말씀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야로 말씀을 묵상하라 하신 것이요, 결코 말씀을 떠나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 하셨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금년 한 해 사시면서, 오직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위로하는 말씀으로만 충만하시기 바랍니다. 아무리 내 인생이 캄캄한 밤인 듯해도, 선한 말씀과 위로의 말씀 속에서, 새 길을 찾으시고, 새 복을 찾으시고, 하여 환상 속에서 마침내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새벽 마다 나누는 인사죠? 다시 굳센 믿음으로 신년 덕담 한번 나누십니다.

<금년에도 말씀 안에서 승리하실 줄 믿습니다.>

여기서 사랑하는 동광 가족들께 한 말씀드리고 갑니다. 우리는 환상 중에, 하나님 주시는 선한 말씀과 위로하는 말씀을 받은 성도들인 줄 믿습니다. 그러니 이제 나도 선한 말만 해야 하고, 위로하는 말만 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혹여 입을 열어 말을 하려는데, 그것이 선한 말이 아니거든, 얼른 입을 닫고 그 말을 하는 대신 주께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내 입에서 나가는 이 말이 당신이게 오히려 상처를 주는 말이거든, 얼른 입을 닫으시고 말하는 대신 찬송하시기 바랍니다.

이 자리에 함께 하신 부모님들께 고합니다. 사랑하고 존경하는 부모님 여러분, 이 시대 아버지와 어머니가 된다는 것, 쉽지 않다는 것을 모르지 않습니다. 요즘 아이들의 그전 아이들과 너무나 다르다는 것, 모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자녀 세대를 향하여 아무 말이나 막 해도 좋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럼요, 우리 부모 세대가 자녀 세대를 향하여 하는 말, 모두 선한 말이요, 위로의 말이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그렇게 선한 말씀, 위로의 말씀으로 양육하실 때, 우리 자녀들, 그 말씀 안에서 형통의 복을 누리게 될 줄로 믿습니다. 이 소망 담아 신년 덕담 나누기!

<주 안에서 자식 농사 잘 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한 가지 궁금한 것이 있군요. 화석류 나무는 무엇이고, 홍마를 탄 사람은 누구인가? 하는 점인데요, 여러 해석이 가능하겠으나, 대체로 의견의 일치를 보이는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먼저 화석류 나무란, 당시 초막을 지을 때 많이 사용되던 매우 흔한 나무였습니다. 그런데 그 흔한 나무가 골짜기에 널려 있으니 더 흔한 존재가 된 것이지요. 해서 누구 하나 눈길조차 주지 않는 나무, 어딜 가도 흔하게 만날 수 있는 나무, 해서 누구도 소중하다고 여겨주지 않는 그런 나무였던 것이지요. 그런데 놀랍고 감사한 것은, 홍마를 타신 그 분이, 백향목 가득한 아름다운 정원에 오신 것이 아니라 그 흔한 화석류 나무가 우거진 골짜기에 오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렇습니다. 여기 홍마를 타고 오신 분은 오실 메시야, 곧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고 있습니다. 천군 천사와 함께 오실 그리스도, 그러나 헤롯 왕궁이 아니라 말구유에 통해 오실 그리스도, 세상은 더 이상 관심을 주지 않는 화석류 나무 같은 인생들을 친히 찾아오시는 메시야, 바로 그 분을 예표하고 있는 것입니다. 해서 복음이요, 해서 희망의 메시지였던 것인데요, 더욱 감사한 것은, 홍마를 타고 오시는 그 분을 영접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엄청난 축복이거늘, 그 분이 그냥 오시지 않고 놀라운 복을 가지고 오신다는 사실입니다. 이 축복의 말씀을 주시기 위해 지금까지 환상적인 환상을 보여 주셨던 것인데요, 오늘 말씀의 핵심 구절, 함께 읽으며 가슴에 새기겠습니다. / 1:16-17 / (읽기) / 여러분, 올 한 해, 이 말씀 꼭 붙드시고, 이 말씀 가운데 약속된 복을 다 받아 누리게 되시기를 소망하며, 이 말씀 가운데 세 가지만 기억하며 말씀 마당을 닫겠습니다.

첫째, 하나님이 긍휼히 여겨 주셔서 여기로 돌아올 수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하십니다. 16절에서 스가랴는 ‘하나님이 긍휼히 여기심으로 예루살렘에 돌아왔다’고 합니다. 한 마디로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기억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랬습니다. 저들은 바벨론에서 돌아오기 전 모두 노예들이었습니다. 저들의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모두 노예로 살다가 노예로 죽어갔습니다. 굶주리며, 매 맞으며, 평생 종으로 살며, 죽도록 일만하다 모두 불쌍하게 죽어갔던 것입니다. 그러나 더욱 심각한 문제는, 망국 백성들인 저들에게 스스로 해방할 힘이 없었다는 점입니다. 해서, 저들은 오직 자기들을 구원해 주실 어떤 분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저들을 하나님께서 불쌍히 여기시어 다시 돌아오게 해 주셨으니, 이제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잊지 말라는 겁니다.

여러분, 혹시 노예로 잡혀 간 이스라엘처럼 지금 절망적인 환경 속에 신음하고 계시진 않습니까? 여러분, 그래도 절대 낙심은 하지 마십시오. 절망은 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긍휼을 베푸시는 하나님 앞에 엎드려 간구하십시오. 그 때 긍휼을 베푸시어 이스라엘을 노예 생활에서 구해주신 하나님께서 오늘 나에게도 긍휼을 베푸시어 자유와 해방을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멘!

둘째, 유다 백성이 돌아온 것은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기 위함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라 하십니다. 16절을 보면 "내가 긍휼히 여김으로 예루살렘에 돌아왔은즉 내 집이 그 가운데 건축되리니 예루살렘에 먹줄이 치어지리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긍휼히 여기시고 예루살렘에 돌아오게 하신 이유는 예루살렘에 먹줄을 치고 무너진 성전을 건축하게 하기 위해서라는 뜻입니다.

중요한 대목입니다. 저들이 포로에서 돌아온 사건은 정치적 사건이었습니다. 그러나 돌아온 백성들에게 하나님은 영적 목적을 주셨다는 뜻입니다. 그랬습니다. 정치적 해방 이후 영적 목적을 더해 주신 것입니다. 그 영적인 목적이 바로 내 집을 건축하라는 것이니, 이 사실을 잊지 말라는 겁니다.

그렇습니다. 하늘 아버지께서 온갖 어려움에서 나를 건져 주시고, 우리를 여기까지 인도해 주신 궁극적 목적은 바로 아버지의 집을 건축하게 하려 하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두 하늘 아버지의 집을 건축하는 일꾼들입니다. 일꾼은 일을 해야 합니다. 일꾼은 일을 할 때 가장 행복합니다. 그것도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영적 일을 하는 일꾼,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입니다. 2005년 한 해, 우리에게 맡겨 주신 여기 아버지의 집을 더욱 중수하는 한 해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셋째, 돌아온 유다 민족에게 하나님은 넘치도록 복을 더해 주신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하십니다. 17절인데요,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에 나의 성읍들이 넘치도록 다시 풍부할 것>이라 하십니다. 예루살렘이 회복될 뿐만 아니라, 다시 넘치도록 풍성한 복을 내려 주신다는 겁니다. 할렐루야!

우리 하나님, 긍휼을 베푸시어 종의 멍에를 벗겨주실 뿐만 아니라 여기 돌아오게 하시어 아버지의 집을 건축하게 해 주십니다. 이 때 그 명령에 순종하기만 하면, 우리 하나님, 넘치는 풍성한 복으로 채워주시는 것입니다. 잘 믿고 잘 순종하는 성도들이 있어 하나님의 성읍들에 넘치는 복을 주신다는 거지요.

저는 확실히 믿습니다. 우리 동광 교회가 있어, 우리 서울의 강남에 넘치도록 풍성한 복이 임할 줄로 믿습니다. 우리 주를 믿는 성도들이 있어, 우리가 사는 이 땅 전체가 풍성한 복을 받게 될 줄로 믿습니다. 이를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으니, 바로 아버지의 집을 건축하는 일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의 가정이 모두 아버지의 집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우리 교회가 아버지의 집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하여 우리의 가정과 우리의 교회에 차고 넘치는 풍성한 복이 생수의 강이 되어 이 땅을 전체를 적시며, 그로 인하여 우리 민족 전체가 풍성한 복을 누리는 한 해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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