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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나는 왜 이 세상에 존재하는가? (골 1: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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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강석공 목사 (2005년2월6일 설교) 
 
  지난 주 우리는 새들백교회 릭 워렌 목사가 인도하는 개회 예배를 영상으로 함께 드림으로써 앞으로 40주 동안 실시되는 “목적이 이끄는 삶 - 소그룹 성경공부”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이 캠페인과 직접적으로 관계되는 일곱 번의 설교를 할 것이며 또한 찬양 예배 시간을 통하여 여섯 번의 세미나를 갖게 될 것입니다. 오늘은 그 첫 번째 설교로서 인생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질문 몇 가지를 함께 살펴 보려고 합니다. 첫째, 나는 왜 살고 있는가? 둘째, 나는 정말 중요한가?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의 삶의 목적 또는 의미는 과연 무엇인가? 하는 것이 그 질문들입니다.

  첫 번째 질문은 존재에 관한 질문입니다. “나는 왜 살고 있는가?” 새삼스러운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미 오래 전부터 있었던 질문입니다. 선지자 예레미아가 일찍이 묻지 않았습니까? “어찌하여 내가 태에서 나와서 고생과 슬픔을 보며 나의 날을 부끄러움으로 보내는고?”(렘 20:18) 우리도 아마 그와 같은 생각을 한 적이 있을 것입니다. “이 고난을 겪으려고 나는 태어난 것인가? 그저 아픔이나 겪기 위해서 내가 있는 것인가?”

  책방에 가면 삶의 목적을 잘 가르쳐 줄 것 같은 책들을 많이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많은 책들도 결국 같은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책의 저자들은 대부분 우리에게 야망을 가지고 더 높은 목표를 세우라고 충고합니다. 모든 꿈은 이룰 수 있기 때문에 결코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고 권고합니다. 그리고 그들의 충고를 잘 따를 것 같으면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라는 말을 덧붙이곤 합니다.

  그러나 성공적인 삶을 사는 것과 삶의 목적을 아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내가 왜 여기에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모르지만 엄청나게 큰 성공을 거둘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삶의 목적을 아는 것은 성공적인 삶을 사는 것과 감히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아주 중요합니다. 삶의 목적을 분명히 알 때까지 그 어떤 성공적인 삶도 별 의미가 없기 때문에 하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그토록 중요한 삶의 목적을 과연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우리는 그 해답을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통해서 찾을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오랫동안 찾으려고 애썼지만 찾지 못했던 삶의 목적을 성경은 아주 명쾌하게 밝히고 있다는 말입니다. 성경은 먼저 우리 인간은 하나님께서 지으신 존재로서 하나님을 위한 존재라는 사실을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온갖 것을 그 쓰임에 적당하게 지으셨나니...”(잠 16:4 상반절) 하나님께서는 그 어떤 것도 목적없이 지으신 것이 없습니다. 돌 하나, 풀 한 포기, 그리고 모든 생물도 다 지으신 목적이 있습니다. 그 하나님께서는 특히 우리 인간에 대해서 다섯 가지 목적을 가지고 계십니다. 앞으로 우리는 이 다섯 가지 목적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살펴 볼 것입니다.

  먼저 하나님의 동기부터 살펴 보겠습니다. 에베소서 1장 4절 말씀에 뭐라고 기록되어 있습니까?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려고 지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기 위해서 태어난 것입니다.

  두 번째 질문은 중요성에 관한 것입니다. "나는 정말 중요한가?" 일찍이 이사야 선지자도 의문을 제기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말하기를 내가 헛되이 수고하였으며 무익하게 공연히 내 힘을 다하였다 하였도다.”(사 49:4 상반절) 앞에서 우리는 목적이 있어서 지으심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때문에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그 목적을 모르면 우리의 삶은 참으로 무의미해질 것입니다.

  인생에는 세 가지 단계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가장 낮은 단계가 생존의 단계입니다. 이 단계는 그저 목숨을 이어가는 것입니다. 살고 있지만 제대로 산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그 다음 단계가 생존보다 조금 나은 성공의 단계입니다. 이 단계가 바로 우리 대부분이 살고 있는 단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비교적 안락하게 살고 있습니다. 재산을 많이 가지고 있는 분도 있습니다. 어떤 분은 아주 성공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성공한 사람들조차 만족을 못 느낍니까?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 까닭은 우리가 만족할 수 있는 수준은 성공 그 이상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마지막 단계인 세 번째 단계에서 살아야 합니다. 그것은 중요함의 단계입니다. 생존의 단계나 성공의 단계가 아니라 중요함의 단계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그 단계에서 살 수 있겠습니까? 그 단계에서 살기 위해서 우리는 먼저 인생의 의미를 알아야 합니다. 다음으로 우리가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가 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삶을 향한 하나님의 목적을 깨닫고 그 목적대로 살아야 합니다. 이사야서 44장 2절은 우리가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것을 잘 보여 주는 말씀입니다. “너를 만들고 너를 모태에서부터 지어 낸 너를 도와 줄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나의 종 야곱, 내가 택한 여수룬아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님께서는 사랑하시기 위해서 우리를 지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실 대상이 소중하지 않으면 그 무엇이 소중하겠습니까?

  그런데 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혼란스럽게 하시는 것입니까? 우리가 그만큼 덜 소중한 존재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가 하는 것을 알기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극히 소중한 존재인 우리가 삶의 목적과 의미를 알기 원하시며 그것을 알 수 있도록 도와 주십니다. 앞으로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해서 계속 이야기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한 장기적인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앞으로 우리가 이야기할 것들은 우리가 이 땅에서 살아갈 나머지 시간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이후로도 영원히, 또 영원히 지속될 삶에 관련된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왜냐 하면 하나님의 목적은 영원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 땅에 살게 하신 까닭은 우리로 하여금 이 땅에서 영원한 삶을 준비하게 하기 위한 목적 때문입니다. 일종의 준비 운동과도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삶을 향한 목적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 목적은 우리의 육신이 죽으면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죽을 것 같으면 육신의 모든 활동은 멈추겠지만 그것이 곧 종말은 아닙니다. 우리는 육체 그 이상의 존재들입니다. 우리는 영원히 살도록 지으심을 받았습니다. 시편 33편 11절 말씀입니다. “여호와의 도모는 영영히 서고 그 심사는 대대에 이르리로다.” 우리는 하나님께로부터 영원토록 사랑 받기 위해서 태어난 사람들입니다.

  죽음 후에 우리는 이 땅에서 살았던 것 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을 삽니다. 이 땅에서 우리는 보통 70, 80년 또는 90년을 살다가 갑니다. 그런데 이 삶은 우리가 천국에서 영원히 사는 삶에 비하면 큰 물통에 똑 하고 떨어지는 물 한 방울에 지나지 않는 아주 짧은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은 영원을 위한 준비이고, 앞으로의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에 대해서 배울 것입니다. 일찍이 사도 바울도 분명히 말한 적이 있습니다.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나니...”(고후 5:1)

  지금까지 우리는 존재의 문제를 다루었습니다. “나는 왜 살고 있는가?” 하나님께서 대답하십니다. “나는 너를 사랑하려고 지었다. 그것이 바로 네가 살아 있는 이유란다.” 우리는 또한 인생이 얼마나 중요한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물론 너는 나에게 있어서 정말로 소중한 존재란다.” 우리는 정말 소중하기 때문에 이 땅에서의 삶이 끝이 나도 우리로 하여금 영원을 살게 하신 것입니다.

  이제 마지막 문제입니다. “나의 삶의 목적은 과연 무엇인가?” “나는 왜 여기에 있는가?” 이것이 우리가 앞으로 다룰 문제입니다. 시편 89편 47절 말씀으로 시인은 이렇게 물었습니다. “나의 때가 얼마나 짦은지 기억하소서 주께서 모든 사람을 어찌 그리 허무하게 창조하셨는지요...” 그가 누구에게 물었습니까? 그렇습니다! 하나님께 묻고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그냥 자연에 의해서 진화된 그 어떤 복잡한 유기체에 불과하다면 우리의 삶에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우리의 삶은 별로 중요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분명히 우리를 향한 목적을 가지고 우리를 지으셨습니다. 때문에 우리의 삶의 목적을 찾는 방법은 그 하나님을 찾는 것뿐입니다.

  우리가 어떤 물건의 쓰임새를 제대로 모를 것 같으면 엉뚱하게 잘못 쓸 수도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참으로 엉뚱한 삶을 살고 있는 것 같지 않습니까? 왜 그렇게 되었을까요? 이유는 아주 분명합니다. 삶의 목적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물건의 쓰임새를 제대로 모르고 용도를 모를 때 잘못 쓰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물건의 쓰임새를 알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그 물건을 만든 사람의 설명을 듣는 것입니다. 아니면 그 물건의 사용 설명서를 읽어보든지... 우리도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매뉴얼을 읽어 보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 삶의 목적을 알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입니다.

  창세기 1장 1절에 뭐라고 기록되어 있습니까?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비롯한 만물을 창조하셨습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출발한다는 말입니다. 골로새서 1장 16절에는 또 뭐라고 기록되어 있습니까?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삶의 목적을 제대로 알고 싶으면 하나님을 아는 것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제대로 알아야 우리 삶의 목적과 의미를 알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알고 또 하나님께서 가지고 계신 우리 삶의 목적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약간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즉각적으로 해답이 나오고 문제가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때문에 그 목적을 찾기 위해서 40주라는 제법 많은 시간을 투자하려고 합니다. 결과적으로 이 40주는 우리를 변화시키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 영원을 준비하기 위해서 40주를 투자하는 것은 충분히 그럴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이 캠페인, 즉 영적인 여행을 함에 있어서 각각 다른 단계에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어떤 단계에 있든지 우리는 모두 함께 이 여행을 시작할 것입니다. 이 기회가 우리 모두에게 있어서 하나님과 좀 더 깊은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가 될 것입니다. 이 기간 동안 우리 모두는 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하나님과 더불어 좀 더 깊고 신비한 관계를 맺게 될 것이며, 또한 이웃과 더불어 뜨거운 사랑의 관계를 맺게 될 것임을 확신하는 바입니다. 고넬료의 집에서 베드로가 뭐라고 고백했습니까? 사도행전 10장 35절 말씀입니다. “각 나라 중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다 받으시는 줄 깨달았도다.” 자신의 삶의 목적과 의미, 그리고 자신의 중요성을 분명히 깨닫고 이제 후로는 그 하나님을 위하는 삶으로 온전히 헌신하고 충성하기로 다짐하는 여러분 모두의 삶의 현장에 하늘의 신비한 은혜와 땅의 기름진 복이 항상 넘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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