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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이렇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입니다. (창 6:22, 창 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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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박충웅 목사

벌써 2005년의 첫 달이 지나갔습니다. 새해 계획은 잘 되어가고 있습니까? 또 삐걱거리는 잡음이 납니까? 그런데 노아 할아버지는 “노아는 모든 일을 하나님께서 분부하신 대로 하였다.”(창 6:22)  “노아는 여호와께서 분부하신 대로 하였다”(창 7:5) 했습니다. 이미 지난 주일 말씀드렸습니다. 노아 시대 거인들이 살았습니다. 이를 네피림이라 합니다. 단순히 키가 크고 힘이 세다는 뜻도 있습니다. 그런데 거인이라고 해서 죄인이라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거인의 체격은 대단합니다. 그런데 행동이 거인답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성질이 급했습니다. 우리는 참을 수 있어야 합니다. 감정이 치솟아 오를 그 때를 잘 이여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이기심이 문제입니다. 나만 위해서 살아서는 안 됩니다. 그들은 진실치 못했습니다. 사탄의 속성이 거짓말입니다. 사탄은 이기심을 늘 부추깁니다. 사탄이 갖고 있는 도구 중 가장 요긴하게 쓰는 장비가 거짓말입니다. 여기 대부분 다 넘어갑니다. 사기꾼이지요.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말라 합니다. 하나님께 순종하지 말라고 합니다. 정직한 믿음을 비웃습니다. 열심 있는 성도를 이상하게 봅니다. 기도하는 사람을 좀 모자라는 사람으로 봅니다. 교회 봉사하는 것을 무시합니다. 귀족적인 신앙 생활을 강조합니다. 성경 말씀대로 사는 사람이 어리석다고 합니다. 적당하게 세상과 타협해야 한다고 합니다. 예수를 이상하게 믿지 말라고 합니다. 술도 적당하게 마시고 담배도 피울 때는 피우고 춤도 추고..... 성경과 목사의 설교대로 사는 사람을 반대편으로 봅니다. 너무 고리타분하게 살지 말자는 것입니다. 세상과 적당하게 어우러져 살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노아 시대 사람들은 도덕적으로 타락했습니다. 이 악은 전염병처럼 잘 번집니다.

인간의 타고난 속성 가운데 하나가 악을 행하고 싶어 하는 마음입니다. 이것이 도덕적인 악을 전염시키는 온상입니다. 다른 사람이 하는 행위를 너무 하고 싶어 합니다. 그러다가 거기 깊숙히 빠져버리는 것입니다. 여기 보세요.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을 아내로 삼았습니다. 이것이 잘못된 것입니다. 그리고 폭력과 부도덕한 행위가 난무했습니다. 바울 사도는 경건한 선교사였습니다. 아브라함도 늘 하나님의 말씀대로만 살았습니다. 우리는 악과 손 잡으면 상처를 입습니다. 곧 위험이 옵니다. 노아 시대의 사람들이 너무 타락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인간 지으셨음을 한탄하셨습니다. 지금 이 시대를 눈여겨보십시오. 눈여겨보지 않아도 너무 잘 보입니다. 도덕적 타락은 노아 시대보다 몇 백 배 더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세상을 탐하면 되겠습니까? 세상은 마귀가 장악하고 있습니다. 세상은 위험한 곳 입니다. 꼭 깊은 강 위의 외나무 다리와 같습니다. 조심조심 건너야 합니다. 실수하면 죽습니다. 외나무 다리 위를 술 취한 사람이 건너지 못합니다. 이와 같이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늘 긴장하고 조심해야 합니다.

사람은 어리석다는 것을 압니다. 우리는 영적인 동물입니다. 만물의 영장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어떤 때는 보면 가장 어리석은 것 같습니다. 우리의 표준이 있습니다. 목표가 있습니다. 그 표준은 하나님 말씀입니다. 하나님 말씀이 아니면 그건 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이 “그렇다”하면 그 길을 가야 합니다. 남이 한다고 그것이 진리가 아닙니다. 남이 간다고 그 길이 바른 길이 아닙니다. 사람을 보지 마세요. 실망할 수 있습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님만 바라봅시다. 저도 “이렇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입니다”라는 말씀으로 같이 은혜 받고자 합니다.

Ⅰ. 세상을 따르지 맙시다.

요즈음 잘 살아보자는 말이 유행입니다. 그런데 건강에 대한 책, 신문, 방송, 인터넷이 홍수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런 정보가 대단합니다. 모 방송국에서 건강 100세라는 프로를 100회 했답니다. 어떤 젊은이는 그 테이프를 다 샀답니다. 그걸 보고 잘 먹고, 잘 자고, 적당하게 운동하는 것이 건강의 비결이란 것을 알았답니다. 그는 꽤 돈을 많이 벌었답니다. BMW(비엠더블유) 고급차도 샀습니다. 음식은 잡곡밥, 사과, 식초, 토마토를 먹고 꼭 두부와 된장과 마늘을 먹으면 된다는 결론을 얻었답니다. 그는 건강 전도사가 되었습니다. 그거 이론상 맞습니다. 공부 열심히 하면 성공하는 것 압니다. 그런데 거기 알맹이가 빠졌지요. 믿음 안에서 기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인간이 불행한 것은 죄 때문입니다. 노아 시대도 세상과 짝했습니다. 지금도 교회가 세상과 적당하게 타협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위험합니다. 인간이 자기 편리를 위해 교회를 등지는 것입니다. 사람이 자기 유익을 위해 신앙을 등 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천국으로 가는 길에 방해 되는 것을 버려야 합니다.

히브리서 기자인 바울 사도는 이를 달리기 선수에 비유했습니다. 달리는 사람은 여러 가지 거추장스러운 것을 벗어 버려야 합니다. 저도 달리기 선수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정말 운동 선수는 복장부터 간편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화가 나셨습니다. 인간을 보시고 불쾌해 하셨습니다. 그들이 하나님 보다 세상을 더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죄는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는 것입니다. 저는 우리 부교역자들에게 최대한의 자유를 줍니다. 주중에 자기가 해야 할 일은 자기 스스로가 알아서 하라고 합니다. 그러나 꼭 당부하는 것이 있습니다. 교인들에게 예배는 꼭 참석하시라고 하는 것입니다. 예배 교육이 실패하면 신앙 교육이 실패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철저한 하나님 중심 신앙이었습니다. 신앙과 생활은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습니다. 신앙과 생활은 하나입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저는 제일 좋은 시간이 새벽기도회입니다. 저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제가 제일 먼저 4시30분에 교회에 옵니다. 그리고 기도 시간이 정말 즐겁습니다. 그리고 6시면 운동을 합니다. 어떤 사람은 뭐 꼭 그렇게 할 것 있느냐? 그런데 저(목사)도 사람입니다. 인간은 한 없이 간사합니다. 하루, 이틀 쉬어 보세요. 그만 새벽기도회 가기 싫습니다. 운동도 그렇습니다. 하루 이틀 하지 않으면 몸이 굳어집니다. 하기 싫어집니다. 자기를 채찍질해야 합니다. 그래서 목사가 필요합니다. 설교가 필요합니다. 제 동창인 매물도 교회 목사님은 고혈압이었습니다. 그 외에는 정상이었습니다. 아무 이상도 없었습니다. 그는 고혈압 약을 1주일 넘게 먹지 않았습니다. 그만 뇌졸중이 왔습니다. 반신불수가 되었습니다. 그에(건강) 관한한 의사의 말을 들어야지요. 신앙적인 삶에 관한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야 합니다. 목사의 설교가 때로는 귀에 거슬립니다. 때로는 짜증이 납니다. 듣기 싫을 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주사바늘을 찌르는 것처럼 아플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들어야 삽니다.

유명한 목회자 로이드 존스는 전직 외과 의사였습니다. 그는 큐티, 성경읽기, 수양회, 성경공부 다 좋으나, 설교에 은혜 받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합니다. 성경 말씀에 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사탄은 먼저 이 길을 막고자 합니다. 바람 불고 비온 다고 오늘은 가지 말라고 합니다. 감기 몸살이라고 오늘은 가지 말라고 합니다. 손님이 오시니 오늘은 가지 말라. 아이 학교 가서 안 왔으니 오늘은 가지 말라. 피곤하다고 오늘만 가지 말라고 합니다. 아주 우호적입니다. 부모처럼 우리를 돌봐주는 것 같습니다. 여기 함정이 있습니다. 여기 덫이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미끼인 것입니다. 아주 위험합니다. 그때 벌떡 일어서야 합니다. 우리의 언행을 보면 부끄러운 것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것이 다 세상적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진노하신 것입니다. 인간은 자만, 분노, 불신이 가득 차있습니다. 사람이 악합니다. 인간의 본성이 악합니다. 타락했습니다. 아담이 그랬습니다. 가인이 그랬습니다. 노아시대는 모든 사람이 다 악했습니다. 도덕적으로 타락했습니다. 이것을 우리는 육의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러고 보니 깨끗하지 못합니다.

성경에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요 3:6). 그렇습니다. 이것이 인류의 보편적 부패인 것입니다. 원래의 인간은 깨끗했습니다. 그런데 죄가 유전된 것입니다. 이를 원죄라고 합니다. 물론 어린 새 생명 그는 지은 죄 없습니다. 아주 깨끗합니다. 그렇다고 죄가 없습니까? 아닙니다. 원죄를 짊어지고 태어났습니다. 하나님께서 홍수로 몰살 시킨 것입니다. 사람이 너무 어리석지요. 어느 것이 더 중요한지를 모릅니다. 인간이 아무리 노력해도 타락은 추방되지 않습니다. 또 사람들은 위기를 느끼지 못하고 있습니다. 영혼을 잃고 육을 취하는 바보입니다. 인간은 철새입니다. 죄악의 달고 짜릿한 맛이 있는 곳을 이리저리 옮겨 다니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다 잃어버렸습니다. 정말 영적 실향민입니다. 다 놓치고 만 것입니다. 불행입니다. 인간 때문에 모든 생명체가 다 죽었습니다.

하나님은 기회를 주셨습니다. 인간이 하나님께 돌아갈 시간을 무려 120년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비웃었습니다. 노아 할아버지가 산꼭대기에서 배를 만들었습니다. 오히려 이상한 사람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노아가 120년을 전도했습니다. 그런데 한 사람도 하나님을 믿고 따르지 않았습니다. 그러고 보니 전도가 얼마나 힘든 일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한 생명의 가치를 알 수 있습니다.

Ⅱ. 오직 하나님

노아 할아버지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했습니다. 그렇게 더럽고 구역질나는 세상에서 단 한 사람 의인이 있었습니다. 노아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과 동물을 다 죽이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또 사람 만드신 것을 한탄하셨습니다. 그러나 노아를 살리시기로 하셨습니다. 그는 의인이었습니다. 그래서 120년 후에 내릴 비를 위해 산꼭대기에서 배를 만들라 하셨습니다. 그런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묻지도 대꾸하지도 않았습니다. 12시간, 열 이틀도, 열두 달 후라도 믿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무려 120년입니다. 그 말씀을 전적으로 믿었습니다. 사람으로서는 상상이 안 가는 일입니다. 그렇지만 노아는 믿었습니다.

바울 사도는 그의 삶이 거의 끝날 무렵 “내가 선한 싸움을 다 싸우고”라 했습니다. 예수님 때문에 죽게 된 익나티우스가 로마로 가는 길에서 “나의 주는 나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리셨도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존 후스(John Huss)는 화형주(火刑柱)에 메이면서 “그리스도를 위하여 이 사승을 환영하노라”라고 부르짖었습니다. 숨을 거두는 순간 마틴 루터(Martin Luther)는 “당신의 손 안에 내 영혼을 부탁하나이다. 오! 진리의 하나님이신 주여 주는 나를 구속하셨습니다”라고 중얼거렸습니다. 사람은 지혜로워야 합니다. 영리하면 앞서 갑니다. 그런데 참 똑똑한 것 같아도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낚시하는 것을 종종 봅니다. 떡밥을 던져 놓습니다. 그리고 고기가 좋아하는 미끼를 낚시에 꽂아 놓습니다. 고기는 먹이인 줄 알고 덥석 뭅니다. 낚시는 고기를 꼼짝 못하게 합니다.

우리도 세상의 사탄의 낚시 밥이 많습니다. 돈, 명예, 기분 좋은 술자리, 도박, 놀이터 많습니다. 곳곳에 낚시가 있습니다. 위험합니다. 노아 시대가 바로 그랬습니다. 그들은 그 낚시의 미끼를 먹이인 줄 알았습니다. 우리는 잠시 편하게 해 줍니다. 잠시 즐겁게도 해 줍니다. 그러나 거기 죽음의 독약이 있습니다. 저가 어릴 때 꿩이 밭에 와서 농작물을 헤쳤습니다. 형님이 콩 속에다 청산가리를 넣어 밭에다 뿌렸습니다. 꿩은 콩인 줄 알고 주워 먹었습니다. 멀리 날아가지 못하고 곧 죽습니다. 참 마음이 아팠습니다. 사탄이 그렇습니다. 노아는 하나님의 분부에 기꺼이 실천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이 점을 우리는 본 받아야 합니다. 노아가 해야 한다고 명령 받은 일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는 크기가 엄청난 배를 만들라는 명령을 받습니다. 그는 배를 만드는 기술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바다와는 먼 내륙 지방에 살고 있었습니다. 아마 큰 배를 본 적도 없었습니다. 그때 노아는 거절할 명분이 충분했습니다. 배를 본 적도 없었습니다. 그런 기술도 없었습니다. 장비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못합니다’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곧 그 일을 착수했습니다. 의인은 뭐가 남다른 데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하라 하시는 일에 어떤 이유를 달면 안 됩니다. 그 배를 완성하는 데 120년이 걸립니다. 그는 이 일에만 매달렸습니다. “노아가 그와 같이 하되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 얼마나 멋진 분입니까?

옛날 다윗 왕도 “내가 주의 모든 계명에 주의할 때는 부끄럽지 아니하리이다”라고 했습니다. 예수님도 “너희가 나의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하셨습니다. 어떤 이는 이적 보다 귀한 것이 순종이라고 했습니다. 악한 사람은 두려움 때문에 순종합니다. 우리는 사랑 때문에 순종합니다. 하나님을 가장 많이 사랑하는 증거는 순종입니다. 하나님을 순종하는 데 두 마음을 품지 말아야 합니다. 요즈음 과학 문명이 엄청나게 발달했습니다. 너무 머리로 판단합니다. 성경 말씀에 대해 비판합니다. 시대에 맞지 않다고 합니다. 예나 지금이나 성경은 과학 교과서가 아닙니다. 창세기 1장부터 맞지 않습니다. 과학은 다 믿을 수 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다 모릅니다. 우리가 안다는 것은 아주 작은 것에 불과합니다. 노아는 오직 하나님만을 위해서 산 사람입니다. 그는 진실한 사람입니다. 변함이 없는 신앙인이었습니다. 1,2년이 아닙니다. 무려 120년 한결 같았습니다. 순종하는 데 있어서 어떤 이유도 달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노아다움이었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가장 현명한 삶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의 특징이고 자랑입니다.

맺는 말 :

저는 오늘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 2005.1.19일자(조선일보) 신문에 스위스 사람들의 일평생이란 토막기사가 실렸습니다. 연간 초콜릿 소비량이 세계최고인 11.3kg 포도주를 40ℓ마신답니다. 2004년말 통계로  평균 수명이 여자가 83세, 남자가 77.8세인데, 일생 키스하는 시간 12년, 잠자는 시간 25-30년, 화장실에 머무르는 시간이 여자가 1년, 남자는 10개월이랍니다. 가장 좋아하는 음료는 커피(하루4잔, 1년 1,460잔), 맥주 연간 57.5ℓ, 물 100ℓ를 마신다 합니다. 먹는 데 보내는 시간이 평생 3년 반 정도랍니다. 우리도 별로 다르지 않겠지요. 하나님과 만나는 시간은 얼마나 될까요? 금년 우리는 하남께 전적 순종만 합시다. 전혀 내 뜻과 달라도 순종합시다. 그것이 잘 사는 것입니다. 시작은 미약할 수 있습니다. 분명 그 끝은 창대할 것입니다. 주 안에서 늘 승리합시다.

2005.2.6    -충웅-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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