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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뜻이 통해야 가족입니다! (막 3:3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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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장빈 목사

# 1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혈연을 중심으로 형성된 가족 공동체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말인데요, 우리가 사는 모습을 보면 이 말은 맞는 말인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피가 물보다 진한 것, 분명 맞습니다. 해서 우린 명절만 되면, 그 어려운 길을 달려, 피로 맺어진 가족을 찾아가는 것이요, 그렇게 내 가족과 함께 한 평생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의 피로 맺은 약속이 영원하지는 않습니다. 제 아무리 피를 나눈 가족이라 해도, 그 약속의 유효기간은 내가 이 세상에 살아있는 그 날까지입니다. 혈맹이라 해서 죽음을 넘어 영원하지는 못하다는 뜻인데요, 그런 점에서 가족이란 이름의 약속, 그것은 시한부 약속입니다.

또한 인간의 피로 맺은 약속은 의외로 그 강도가 매우 약하다는 성격도 지니고 있습니다. 피로서 맹세한 언약이란 말만 들으면, 그 무엇으로도 그 약속을 깰 수 없을 것 같은데, 그러나 혈맹이란 단어 자체가 무색할 정도로, 가족 관계를 아주 쉽게 깨버리는 사람들을 우리는 자주 보게 됩니다. 아니, 요즘은 가족 관계 자체가 급속하게 허물어지는 것, 부인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물보다 진한 피로 맺어진 관계요 언약일진대, 죽음으로 갈라지기 전에, 내 의지로 내 손으로 그 약속을 깨버리니, 그 약속이란 것이 얼마나 유약한지 모르겠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요즘은 피를 나누었다는 이유만으로 평생을 가족들과 함께 살아야 한다는 사실에 숨 막혀 하는 현대인들이 늘어가고 있습니다. 해서 <가족>이란 굴레를 벗어버리고, <싱글>의 자유를 만끽하며 살아가려는 젊은이들이 늘어나는 추세이며, 이런 추세에 발맞추어 <화려한 싱글>들을 위한 화려한 상품들이 쏟아져 나오는 것도 사실입니다. 이젠 가족이란 것이 더 이상 인간 삶의 기본 단위가 될 수 없다는 과격한 주장까지 들려옵니다. 그래도 피는 물보다 진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일까요?

# 2
오늘 우리는 예수님의 가족 이야기를 들어보려고 합니다. 이야기를 듣는 중에 우린 예수님의 가족도 만나게 될 것이요, 그 과정에서 주께서 기뻐하시는 가족이란 어떤 것인지, 나에게 가족을 주신 뜻은 무엇인지, 함께 알아보겠습니다.

마가복음 3장 31절을 보니, <때에 예수의 모친과 동생들이 와서>,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밖에> 선 채로, 예수님에게 <사람을 보내었다>고 합니다. 왜 예수님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예수님 계신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밖에 서서 사람만 들여보냈을까? 32절의 첫 단어가 그 답인데요, 바로 <무리>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 주변에 너무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의 병행 구절인 누가복음 8장 19절을 보면, 당시 상황을 더 정확하게 알 수 있습니다. <예수의 모친과 그 동생들이 왔으나 무리를 인하여 가까이 하지 못하였다!> 무리를 인하여 가까이 하지 못했다는 거죠. 그랬습니다. 예수님 주변에는 예수님의 가족들조차 가까이 할 수 없을 정도로 수많은 사람들이 항상 따라다녔던 것입니다. 마가복음 3장 20절을 보면, 심지어 우리 예수님, 몰려든 무리들로 인하여, 식사하실 겨를조차 없었다고 합니다.

여기서 상상력이 좀 필요합니다. 우리 어머니의 심정으로 이 상황을 한번 들여다보십시다. 지금 가장 귀한 아들이, 제 때 밥도 먹지 못한 채, 수많은 사람들에 둘러 싸여, 하루 종일 일만 하고 있다고 합시다. 그런 아들을 바라보는 어머니의 심정이 어떠하겠습니까? 당연히 버선발로 달려오시겠지요. 해서 지금 예수님의 모친도 다른 자녀들을 대동하고 아들 예수님을 찾아오시는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와서 보니, 사람들이 너무 많아, 아들이 있는 안까지 들어갈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해서 하는 수없이 어느 사람에게 부탁합니다. <여보시오, 젊은 양반, 어서 가서 여기 어미가 왔다고 전해 주소! 잠깐만 이 쪽으로 나와 어미 얼굴 좀 보고 들어가라 전해 주소! 내가 저 예수의 어미요. 여보!> 그런데 32절 말씀을 보니 이 부탁을 받은 사람도 직접 예수님께 들어가지 못하고 맙니다. 해서 예수님 가장 가까이에 앉아 있는 무리에게 전해 달라고 합니다. 해서 부탁은 한 사람이 받았는데, 정작 예수님께 이 전갈을 전한 주인공은 무리라 합니다. 32절, <무리가 예수를 둘러앉았다가 여짜오되, 보소서 당신의 모친과 동생들과 누이들이 밖에서 찾나이다!> 이제 우리 예수님, 그 소식을 듣고 맨발로 뛰어나가 어머니 품에 안기기만 하면, 그것으로 아름다운 이야기가 완성될 판입니다.

그런데 우리 예수님의 반응이 너무나 예상 밖입니다. 잘못 들으면 좀 짜증이 나신 것 같기도 하고, 혹은 누군가에게 심히 화가 나신 듯도 한, 그런 반응이신데요, 직접 들어보겠습니다. / 3:33 / (읽기) / 아니, 지금 저 밖에 서 있는 여인이 예수님의 모친이라는 사실, 온 세상이 다 알고 있는데, 지금 그 어머니가 동생들과 함께 와서 아들을 만나고자 기다리고 서 있는데, 거기에 대고 하는 말, <누가 내 모친이며 누가 내 동생들이냐!>라고 물으시다니요, 예수님이 당신 가족들을 이토록 냉정하고 쌀쌀맞게 대해도 된다는 말씀입니까? 지금 밖에서 기다리는 저들이 정녕 예수님의 모친도 아니요 동생들도 아니라는 말씀입니까? 정말 심각해지는 상황인데요, 왜 그러셨을까? 오늘 그 뜻을 깊이 헤아려 알고자 합니다.

# 3
먼저 우리가 조심해야 할 것 하나가 있습니다. 오늘의 말씀이 가족 관계를 부정하거나 혹은 가족 해체를 주장하는 말씀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이 말씀을 그렇게 읽는 것은 예수님의 깊은 뜻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소치입니다. 우리 예수님은 단 한번도 가족 관계의 해체를 명하시거나 주장하신 적이 없으셨습니다.

물론 예수님 보다 자기 가족을 더 사랑하는 소시민을 향하여 가족을 떠나 나를 따라오라 명하신 적은 있지만 가족 자체를 허물라고 말씀하신 적은 없다는 뜻입니다. 특히 온갖 차별로 인하여 가족에게서까지 버림받았던 최하층 민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해서든지 저들에게 가족을 찾아주시려고 노력하셨던 모습을 우리가 기억합니다. 그랬습니다. 우리 예수님, 완전히 버림 받은 사회의 약자들을 친히 찾아가시어, 저들의 질병과 문제들을 친히 고쳐 주시며, 항상 이르시기를, 어서 집으로 돌아가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한 군데만 확인할까요? 마가복음 2장 11절인데요, 중풍병자를 고쳐주시면서 하신 말씀이지요.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그러셨습니다. 우리 예수님, 병을 고쳐 주시고 나를 따라오라 하지 않으시고, 어서 너의 집으로 돌아가라, 곧 가족들에게로 돌아가라고 명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께도 <가족>은 중요한 단위였던 것입니다.

한번은 <고르반>이란 엉뚱한 제도와 전통을 만들어서, 부모를 공경하지 않고 홀대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질책하신 적이 있었습니다. 가정에서 늙으신 부모님을 공경하지 않는 것을 보시고 대노하신 사건인데요, 직접 주님의 말씀을 듣고 가겠습니다. / 마가 7:9-14 / (읽기) / 거기 10절을 보니, 우리 주님 모세의 율법을 먼저 인용하시는 군요, <모세는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고, 아비나 어미를 훼방하는 자는 반드시 죽이라> 하였거늘, 어찌하여 너희는 <고르반> 이란 엉뚱한 전통을 만들어 육신의 부모님께 아무 것도 드리지 않으며 홀대하느냐는 질책이셨습니다. 이 말씀 뒤집어 받으면, 부모님 공경에 소홀함 없도록 할 것이며, 이를 통해 가족 관계를 공고히 할 것이요, 해서 주 안에서 행복한 가정을 이루어 살라는 명령이라 하겠습니다.

심지어 우리 예수님, 십자가에 달려 마지막 숨을 거두시기 직전, 지독한 고통 속에서도, 육신의 어머니 마리아를 염려하여, 사랑하는 제자 요한에게 특별하게 부탁하실 정도로, 어머니를 사랑했던 어머니의 아들이셨습니다.

해서 사도 바울도 이런 말씀을 전한 바 있습니다. / 디모데 전서 5:8 / (읽기) /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아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도 악한 자니라. 아멘.> / 여러분, 자기 친족을 돌아보지 않는 사람, 믿음을 배반한 자요, 자기 가족을 돌아보지 않는 사람,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라 하십니다. 그만큼 기독교는 가족 사랑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뜻이지요.

사랑하는 여러분, 이제 다시 설이 돌아왔습니다. 여러분, 이번 설에 내 사랑하는 가족들을 세심하게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명령입니다. 기억하실 것, 돌아보되 세심하게 돌아보아야 한다는 점입니다. 그럼요, 가족들에겐 세심한 배려가 가장 특별한 사랑입니다. 옆의 분과 인사하며 다짐 하실까요?

<세심하게 돌아보아, 특별하게 사랑하겠습니다.>

# 4
다시 오늘의 말씀으로 돌아오실까요? 마가복음 3장 34절인데요, <누가 내 모친이며 내 동생들이냐?>고 반문하신 예수께서, 여기 진짜 내 모친과 내 동생들이 있다고 말씀하시는 충격적인 장면인데요, 직접 들어보겠습니다. / 마가 3:34 / (읽기) / 먼저 <둘러앉은 자>라는 대목에 밑줄 그으시고, <자> 자에 동그라미 해 두십니다. 잘 보시며 잘 들이십니다. 둘러앉은 <가족>이 아닙니다. 둘러앉은 <제자>가 아닙니다. 둘러앉은 <형제자매>도 아닙니다. 그저 둘러앉은 <자>라 하십니다. 무슨 뜻인가? 저들은 아직 주님의 제자도 아니요 하나님의 가족도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저 예수님 주변에 몰려든 허다한 무리일 뿐이라는 겁니다. 그런 저들에게 결단을 촉구하는 한 말씀이 정말 충격적입니다. 내용인즉, 여기 <내 모친과 내 동생들이 있으니 똑똑히 보라!>는 말씀입니다.

아니, 지금 저 밖에 기다리는 당신의 친 어머니와 친 동생들은 그냥 놔두시고, 엉뚱한 사람들을 가리키며 이들이 내 모친이요 내 동생들이라 하시다니, 도대체 어찌 이해하고 수용해야 할지 좀 막막한 상황입니다. 이 대목에서 밖에서 기다리는 친 모친과 동생들 대신, 예수께서 <내 모친이며 동생들>이라 지목하신 저들이 과연 누구인가 하는 점이 궁금해집니다.

마가복음은 아무런 설명 없이 <내 모친과 내 동생들을 보라!> 하신 예수님의 말씀만 전하는데 반해, 마태복음은 저들이 누구인지를 정확하게 전해줍니다. 역시 병행구절인 마태복음 12장 49절인데요, <손을 내밀어 제자들을 가리켜 가라사대 나의 모친과 나의 동생들을 보라!> 하셨습니다. 아하, 저들은 다름 아닌 예수님의 제자들이었던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마가복음 3장의 오늘 본문도, 예수님이 12제자를 부르신 직후에 주신 말씀이군요. 마가복음 3장 13절 이하를 보시면, 우리 예수님이 산에 올라 제자를 부르시는 내용이 나오는데요, 놀라운 사실은 3장 34절에 와서 방금 전에 부르신 그 제자들을 나의 가족이라 부르신 점입니다. 종합하면, 지금 밖에서 나를 기다리는 저들이 나의 가족이 아니라, 여기 내 곁에 있는 이 제자들이 나의 가족이라는 말씀이지요. 정말 충격적인 장면인데요, 그 말씀에 충격을 받은 무리들을 향해 우리 예수님, 한 말씀 더 주십니다. 가장 중요한 말씀인데요, 함께 읽으며 가슴에 새기고 싶습니다. / 3:35 / (읽기) /

거기 <뜻>이라는 단어에 동그라미 하시고 별표 다섯 개,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라> 하십니다. 이 말씀을 뒤집으면 뜻이 어긋나는 자, 뜻으로 하나 될 수 없는 자, 뜻이 통하지 않는 자, 하늘 가족이 될 수 없다는 거지요. 그렇습니다. 무엇 보다 뜻이 통해야 가족이라 하십니다.

그러고 보니 피보다 더 진한 것이 있군요. 그것이 바로 하늘의 뜻입니다. 뜻이 통해야 가족입니다. 제 아무리 피를 나누었어도 뜻이 통하지 않으면 가족 관계를 유지할 수 없는 법, 해서 가정에서 일어나는 문제를 들여다보면 대부분은 뜻이 통하지 않아 발생하는 문제들인 것을 알게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가족들 사이에 뜻이 통하는 행복한 가정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부모와 자식 사이에, 남편과 아내 사이에, 형제와 자매 사이에, 그리고 모든 친족들 사이에, 뜻이 통하는 가족, 막힘이 없는 가족, 해서 늘 형통하고 승리하는 천국 가정들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가족들 사이에 뜻이 통하는 천국 가정을 이룰 수 있을까? 35절에 답이 있는데요, 거기 <하나님의 뜻>이란 단어에 다시 별표 하나 더, 정말입니다. 나의 인간적인 뜻만 주장해서는 온 가족이 하나 되기 어렵습니다. 내 뜻과 당신의 뜻이 충돌하니, 서로 고집만 부리지요, 고집은 불통으로 이어지지요, 통하지 않으니, 답답하지요, 답답하니 집안에 있질 않고 밖으로만 나돌지요, 그러다 참지 못하면 아예 집을 나가버리지요, 정말입니다. 내 뜻 가지고는 어림도 없습니다. 누구의 뜻으로 하나 되라? 네, 하나님의 뜻이어야 합니다.

해서 우리 주님,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자>가 모두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요, 해서 우린 하늘 가족이라 하셨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뜻만이 우리 모든 가족을 영원한 하늘 가족으로 묶어주는 가장 확실한 끈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같은 구절을 마태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라 하고, 누가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사람들>이라 합니다. 그럼요,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우리이기에 하늘 가족인 것 맞고요, 하늘 아버지의 말씀을 잘 듣고 행하는 사람들이기에 또한 우린 하늘 가족인 것 확실하다는 말씀이지요.

그러고 보니 <하나님의 뜻>이란 곧 <하나님의 말씀>이군요. 따라서 뜻이 통해야 가족이라는 말씀은, 곧 말씀 안에서 하나 된 가족이란 뜻이군요.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뜻이 통하는 가족, 행복한 가정을 이룹니다.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하늘 아버지의 뜻으로 하나 된 가족, 어떤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하늘 아버지의 뜻으로 똘똘 뭉친 가족, 언제나 잘 통하고, 언제나 형통합니다. 잘 통하고 형통하니 언제나 행복하고, 언제나 행복하니 언제나 주 안에서 승리의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 모든 말씀 가슴에 담아, 이렇게 옆의 분과 인사 나누실까요?!

<말씀 안에서 늘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 5
그런데 문제는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알고 제대로 실천하는 일이 그리 쉽지 않다는데 있습니다. 예수님의 친 어머니와 친 동생들이 그랬습니다. 오늘의 본문을 잘못 읽으면 예수님이 오히려 냉정하고 몰인정하신 분처럼 보일지 모르나, 그러나 정작 문제를 일으킨 장본인은 예수님의 모친과 동생들이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뜻을 제대로 헤아려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3장 21절을 보실까요? / 3:21 / (읽기) / 그랬습니다. 예수님의 친속들, 곧 예수님의 가족들이 지금 달려온 이유는 예수가 미쳤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해서 아들 예수를 어서 붙잡아 가려고 동생들을 대동하고 지금 어머니가 달려오신 것이었습니다.

3장 30절 보실까요? / 3:30 / (읽기) / <이는 저희가 말하기를 더러운 귀신이 들렸다 함이러라!> 지금 온 동네 사람들이 예수님을 가리켜 손가락질 하며, 저가 미쳤다, 아니 더러운 귀신이 들렸다, 정신이 나갔다고 조롱하는 중입니다. 그러던 중에 아마 누군가가 이 소문을 예수님의 어머니와 동생들에게 전해 주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예수님의 모친이 동생들과 함께 급히 예수님을 붙들러 달려왔던 것입니다. 그런데 정작 더 심각한 문제는 예수님의 가족들인데도 불구하고, 예수님과 뜻이 통하지 않았다는 데 있었습니다.

여기 마가복음 3장까지 오는 동안 예수님이 하신 일이 어떤 일인 줄 아시나요? 우리 예수님, 나병환자, 중풍병자 등 온갖 병자를 고쳐 주셨습니다. 귀신 들린 사람을 고쳐 주셨습니다. 손 마른 사람을 고쳐 주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을 부르셨습니다. 그러면 이런 일을 하는 아들을 보고 누가 무어라 해도 내 아들은 미치지 않았다고 말했어야 합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예수님의 모친과 동생들은 그렇게 하지 못했었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을 따라 나선 제자들만이 예수님의 뜻을 이해해 주었던 것입니다. 해서 주신 말씀, 뜻이 통해야 가족이라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

<주 안에서 뜻이 통하는 가족 되시기 바랍니다.>

# 6

그렇다면, 뜻이 통하는 가족, 예수님이 인정해 주시는 하늘 가족이 되기 위해선 어떤 자격이 필요할까? 35절에 그 답이 있는데요, 먼저 읽겠습니다. / 3:35 / (읽기) / 35절의 첫 단어를 보실까요? <누구든지!> 그렇습니다. 누구든지 가족이 될 수 있습니다. 누구든지 하늘 가족이 될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주님, 하늘의 뜻을 알고 그 뜻을 행하는 것 이외에 그 어떤 자격도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 뜻은 통해야 합니다. 하늘 아버지의 뜻을 알고, 그 뜻을 실천하는 자라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부지런히 듣고 그 말씀을 부지런히 행하는 자라야 합니다. 그렇기만 하면 누구든지 가족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복음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고 말입니다. 또한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가 있는 자는 생명이 있고 아들이 없는 자는 생명이 없다>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늘 가족은 육신으로 되는 것 아니요, 혈통으로 된 것 아니요, 예수 그리스도를 말미암아 오직 하나님의 뜻으로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피는 물 보다 진한 것 맞습니다. 그러나 피 보다 더 진한 것이 있으니 바로 하늘의 뜻입니다. 하늘의 뜻이 통하지 않으면 피로 맺은 언약도 무용지물이 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해서 우리 주님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면서 당신이 흘리신 보혈로 우리의 관계를 영원히 확증해 주신 것입니다.

이제 우린 주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맺어진 한 하늘 가족입니다. 예수님의 피로 맺은 우리의 언약은 영원하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또한 십자가 보혈로 맺은 우리의 언약은 그 무엇으로도 파기될 수 없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우린 영원한 하늘 가족입니다. 해서 우리의 만남은 저 천국에 이르러 영생복락을 누리도록, 계속될 것입니다.

이 소망을 안고 이제 각 가정으로 돌아가 행복한 설날을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바라기는 이번 설날에 만나는 내 모든 친척들과 가족들 사이에 하늘의 뜻이 통하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오직 하늘 아버지의 뜻으로 하나 되어, 어느 해 보다 행복한 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하여 그 무엇 하나 막힘이 없는 가정, 말씀 안에서 함께 뜻을 찾고, 그 뜻을 이루어 만사형통하는 가정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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